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66
66화 ep24. 성녀 (1)
성좌의 승천은 일생 동안 단 한 번을 경험하기 힘든 거대한 사건이었다.
그렇기에, 강선후의 오두막을 지키고 있었던 서지아는 항상 쓰고 있는 헤드폰마저 벗어 던지고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베이스캠프에서 고함과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하늘이 진동했다. 엘 로크라 벨라가 울린 때와 버금가는 거대한 현상이었다.
별이 움직여 빈자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어둠을 관통하는 빛기둥이 저 멀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빛기둥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저건 빛의 폭풍이었다.
땡그랑—
차소희가 들어 올리던 술잔을 떨어트렸다.
서지아의 귀를 보고 일차적으로 놀랐으며, 솟아오르는 빛의 기둥을 보고 그 자리에서 펄쩍 뛸 정도로 놀랐다.
“저게…… 뭐예요?”
서지아는 지구 쪽 친구에게 이 거대한 사건을 어떤 식으로 설명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소희 씨, 친구가 사고 쳤다고 생각하시면 되려나.”
“걔가 사고 한두 번 치는 것도 아닌데, 이건 좀 크네요. 하여간 진짜 미친놈.”
“……미친놈은 확실히 맞는 모양이네요.”
그러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강선후가 북쪽으로 나아간 지 이제 한 달이 아직 되지 않았다.
그리고, 같은 방향에서 성좌가 승천했다. 딱 강선후가 도달했을 법한 거리였다.
이게 우연일까?
서지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을에서 진서연이 호다닥 뛰어왔다.
“지, 지아 씨? 선후 씨 지금 안 돌아왔죠?”
서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서연은 고개를 들어 북쪽을 바라보았다. 한창 빛이 일어나고 있었다.
“저거 선후 씨 때문이죠?”
서지아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저게 뭐예요?”
“……승천.”
“네? 선후 씨가 승천한 거예요?”
서지아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사람들, 이계에 대해서는 정말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서지아는 옛날이야기를 하는 걸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보이는 설산.
그 위에 숨어 있었던 섬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달을 정확히 가려 실루엣만 보이는 섬. 그 모습 그대로 마법과도 같은 풍경이었다.
서지아는 약 백 년 전, 잠시 드러난 저 섬을 본 적이 있었다.
“연구원 씨.”
“아, 네! 뭔가 생각난 게 있나요?”
“혹시, 이계 전설 중에 천공의 기사에 관한 얘기 들어 본 적 있어?”
“어…… 선후 씨한테 들어 본 적 있는 거 같아요. 선후 씨도 같이 다니는 뱀파이어한테 들은 이야기라는데.”
신카가 이야기해 준 적이 있구나.
서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지아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정의를 집행하기 위해서 천공 섬에서 내려온다는 전설 속 천공의 기사.
그가 제국의 황제를 살해한 그때를.
서지아는 복잡한 표정으로 희미한 천공 섬을 바라보았다.
* * *
나는 성좌가 뒤늦게 내준 선물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리리가 조심스럽게 내 옆에 서며 말했다.
“이게 뭐야?”
주황색으로 빛나는 달걀 모양의 보석.
연금술사에게 거둬졌던 때, 나는 이 보석을 본 적이 있었다.
자줏빛 머리를 한 남자는 태양신이 되고자 했다. 그래서 연금술사의 집에서 이 보석을 훔쳤다.
그때, 분명히 보았다. 연금술사가 그 도둑질을 일부러 모른 척해 주는 모습을.
“……따뜻해.”
리리가 손을 가까이 대보며 말했다.
“이건 태양의 돌이야.”
“태양의 돌? 당신 이게 뭔지 알아?”
마냥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었다.
내가 아는 건 이 물건의 이름이 태양의 돌이라는 사실과 연금술에 사용되는 재료 중 하나라는 것뿐.
“뭔가, 아무튼 귀한 거 아닐까?”
그래도 범상치 않은 물건이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살며시 쥐자 따뜻함이 느껴졌다.
모스mohs의 불꽃을 앞에 둔 따뜻함과는 느낌이 달랐다. 온기가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지는 느낌이 드는 신비로운 물건이었다.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고마워요!”
내 목소리가 들렸을까?
조금 전 승천한 별이 살짝 깜빡이는 것 같았는데, 내가 좋을 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여기는 그래도 되는 세상이니까.
렐릭시나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크르릉—!”
“당신, 쟤 좀 어떻게 하면 안 돼? 오금 저려 죽겠어.”
호랑이의 울음소리는 생물의 근육을 경직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주파수 어쩌고는 과학적 근거가 없고 심리적인 위축 효과가 있다는데.
리리는 못내 렐릭시나의 울음소리가 무서운 모양이었다.
작은 점처럼 보이던 렐릭시나가 자세히 보이기 시작하자 우리는 말 없이 녀석을 바라보기만 했다.
“너 또 뭐 먹었어?”
“크릉—!”
그 입이 피투성이였다.
어디에서 뭘 잡아먹었는지. 배도 좀 빵빵한 거 같았다.
이거 말이 아니라 사냥개 대용으로 써도 될 정도 아닌가?
“……가자. 리리.”
“응.”
우리는 렐릭시나의 등에 탔고, 가방은 안장 측면에 단단히 고정했다.
그리고 박차를 가했다. 렐릭시나는 다시 한번 뜨거운 땅을 밟아 북쪽으로 나아갔다.
이제는 막연하게 북쪽이 아니다.
저 멀리 산맥 위 달을 가리고 있는 천공 섬.
저기가 내 목표였다.
밤이 된 지 오래였기에 많은 시간을 이동할 수는 없었다. 등에 닿은 리리의 머리가 느껴졌다.
탑에서 지낸 시간을 무시하기 힘들고, 흑성이 세상을 뒤집으려고 할 때 느낀 심리적인 압박이 대단했을 거다. 나도 저 영웅을 믿기는 했지만, 그렇게 압도적인 힘이 눈앞에 있는데 그저 평온할 수만은 없었으니까.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여유로울 수 있어?”
리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가 리리의 이마가 닿은 등으로 전달되는 느낌이 간지러웠다.
리리는 내가 그저 여유롭기만 하게 보인 모양이었다.
“만약에 혼자였으면 정말 여유로울 수도 있는데, 너랑 같이 있으니까 불안하긴 하더라고.”
“왜?”
“예전에 탐험했을 때, 나는 아무리 위험해도 웬만하면 혼자를 고집했었거든. 혼자일 때는 내가 저지른 결과를 나 혼자 감당하면 되니까.”
하지만 지금 느꼈다. 죽어도 내가 죽지라는 마인드로는 어쩌면 부족할 수 있다는 걸.
“인도자는 짐이 되지 않아. 걱정하지 마.”
리리는 거의 잠꼬대하듯 말했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식지 않아 여전히 끓는 대지를 달리는 렐릭시나,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고, 무수히 많은 별빛이 여전한 모습으로 빛나고 있었다.
저 사이에는 내 앞에서 승천한 성좌가 있었다. 그녀가 뿜는 빛은 푸른색이었다.
고대인이 지은 탑, 그 안에 스며들어 있었던 이야기, 그리고 흑성.
흑성이 기나긴 인내의 끝에 승천하는 모습.
그 모든 걸 돌이켜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멋있었지?”
리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잠꼬대하는 건지, 내 말에 대답한 건지는 알 수 없었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고열 지대가 끝나고 안전한 곳이 나오면 바로 캠프를 펼칠 생각이었다. 나도 솔직히 눈이 감기기 시작했거든.
허리춤에 매단 콜드 포레스트를 슬며시 붙잡았다가 놓았다.
굳이 이유가 없다면 이 물건에 의존해서 체력을 회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캠핑도 탐험의 재미 중 하나니까.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렐릭시나는 고열 지대의 끝에 닿았고.
“……으앗!”
그 경계를 넘어서자마자 리리가 놀랄 정도로 가속이 붙었다.
고열 지대에서도 굉장히 빠르게 달리던 렐릭시나는, 단단한 평야를 만나자마자 제 속도를 되찾기 시작했다. 아니, 맨 처음보다 훨씬 더 빠르게 느껴졌다.
백호의 영혼이 그새 새로운 몸에 더 적응한 거다.
“오…….”
“크헝—!”
“말 몸뚱어리가 적성에 맞다니 다행이네.”
“크르릉!”
처음에는 모래가 흩날리는 황무지였다. 조금 달리다 보니 곧 드문드문 풀이 보였으며, 나무의 밀도가 조금씩 높아졌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 너무 노출되지 않은 바위나 큰 나무, 혹은 동굴이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았다.
약 한 시간은 달린 거 같았다 생각보다 평야는 넓게 드리워져 있었고 야영을 할 만한 곳은 나오지 않았다.
렐릭시나는 지치지도 않고 놀라운 속도를 유지했으니 이대로 아침까지 주파한 뒤 하루 넉넉하게 쉬는 쪽을 생각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그런데.
“……리리.”
“응…….”
“리리, 깨워서 미안한데 일어나 볼래.”
“응?”
어느새 다시 잠들었던 리리가 고개를 들었다.
“왜?”
“저기.”
우리가 진행하는 방향에서 11시 방향 멀리에 빛이 보였다.
“저거, 불빛이지?”
“응. 그러네.”
“무슨 불빛일까?”
“모험가들의 모닥불이 아닐까? 당신이 엘 로크라 벨라를 울렸잖아.”
“그거랑 관련 있는 거야?”
“자극을 받은 사람들이 많을 거야. 특히 남자들. 그중에서 죽고 싶어서 환장한 사람들이 모험하겠다고 떠났을걸.”
지구의 1800년대가 딱 그렇지 않았나?
괜히 기뻤다. 이 세상이 모험할 가치가 있는 곳이라는 걸 다시 한번 증명받은 느낌이었거든.
“가까이 다가가면 혼날까?”
“…….”
딱히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리리가 무슨 표정을 하고 있는지 다 알 것 같아 괜히 웃었다.
“……잘 모르겠는데. 우리한테 호의적일 거라는 확신은 없어. 그리고 특히.”
리리는 렐릭시나의 갈기를 쓰다듬었다.
“이런 말을 타고 다니면 데스나이트라고 착각하지 않을까? 당신이 타고 다니는 말, 와일드 헌트인 건 잊지 않았지?”
그렇긴 해.
그래도 조금 궁금했다. 어차피 저쪽에서도 우리의 존재를 이미 눈치챘을 거다.
“……구경하고 싶은데. 모험가들이 어떤 식으로 모험하는지도 궁금하고.”
“음, 모험가들만의 규칙이 있어.”
“규칙?”
“서로의 얼굴이 확인되기 전에 말에서 내린다. 정면으로 천천히 다가온다. 숨지 않는다. 접근을 밝힌다.”
리리는 말을 이었다.
“이 규칙을 지키면, 서로에게 적의가 없다는 뜻이래.”
“신기한 규칙이네.”
“장거리 모험가들은 물건을 거래할 때가 많고, 정보도 교환해야 하니까 의외로 싸우는 경우는 잘 없다고 하더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지 않을 이유가 없지.
만나고 나서 어떻게 할지는 우선 보고 결정하면 될 일이었다.
운이 좋다면 이계 모험가가 해 주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지 않을까? 같이 밤을 보낼 수도 있을 거고. 그들의 이야기는 꽤 흥미로울 게 분명했다.
내가 타고 있는 말이 아무리 무섭게 생겼어도, 리리가 시키는 대로 하면 확실히 적의가 없다는 걸 드러낼 수 있었다.
그들의 얼굴이 보이기 전에 말에서 내렸다. 이 시점에서 저들이 활 같은 무기를 소지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한 명인 거 같은데?”
심지어 다수도 아니었다.
더 다가가니 구체적인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모닥불이 아니라 허공에 떠 있는 하얀빛이었다. 그 시점에서, 저게 룬 언어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호기심은 더 동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적대를 드러내지 않는다면 이야기도 나눌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확실히 서로를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졌다. 그 얼굴을 확인하기에 충분한 거리였으나, 모험가는 우리를 등지고 있었다.
여성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입고 있는 건 주신교 순례단의 것과 흡사한 수도복이었다. 하지만 조금 더 화려 했다. 일반적인 수도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었다.
“특이한 영혼의 상을 가지고 있어.”
리리가 그렇게 말했다.
리리는 영혼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볼 때마다 답을 딱딱 내놓을 수 있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당장 서지아가 방랑자의 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간신히 추측했을 뿐이었으니까.
베일 아래에는 별의 자손을 상징하는 붉은 장발이 늘어져 있었다.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리리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식사 중인가 본데.”
별의 자손은 별빛을 몸으로 받는 것만으로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다고 했지.
참 편한 종족이란 말이지.
나는 이계인들의 문화를 잘 모른다. 처음 만났을 때 어떤 식으로 인사를 나눠야 예의 있는 건지 모른다. 이런 부분에선 리리가 나보다 훨씬 더 잘한다.
그래서 리리에게 눈짓으로 부탁했다.
리리는 가볍게 목을 가다듬고, 그녀에게 인사했다.
“아홉 주신이 그대의 여정을 가호하기를. 주신교회의 신도님이십니까?”
평소의 리리를 생각했을 때 의외일 정도로, 리리는 고풍스러운 억양과 어조를 유지하며 말을 건넸다.
그제야 여성은 고개를 내리고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
나는 당연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리리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리리는 조금 뒷걸음질 칠 정도였다.
살짝 굴곡이 들어가 있는 긴 적발. 별의 자손을 상징하는 우주를 담은 눈.
여기까지는 이전에 만났던 순례단과 다를 게 전혀 없었다.
그런데.
그 입에는 단검이 물려 있었다.
“……튈까?”
“…….”
아이러니하게도 그 눈빛에는 아무런 적의가 담겨 있지 않았다. 약간의 호기심만이 느껴질 뿐.
그래서 더 혼란스러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