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67
67화 ep24. 성녀 (2)
여자가 물고 있는 칼.
온통 검은색에, 빛을 받으면 희미하게 적색의 광택을 낸다. 화려한 장식에 날의 구조도 실용성이 전혀 없다.
무기라기보단 장식, 혹은 상징용으로 만들어진 느낌.
그 디자인 양식이 궁금증을 꽤 자아냈다. 어디 문화권에서 만든 걸까?
저 검은 왜 물고 있는 걸까?
그리고 이걸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거 역시 이계의 문화인가?
그러면서 슬쩍 리리를 바라보았는데, 아무래도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리리가 나보다 훨씬 더 놀란 거 같았으니까.
괴담에서 본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호기심이 동했다.
검은 고양이도 친구 집 캣타워 위에 있으면 귀여운데, 한밤의 폐교 탐사 중에 만나면 소름 끼치잖아?
이 사람의 모습도 비슷했다. 어떻게 보면 무서울 법한 장면인데, 그 표정이나 복장, 그리고 태도 때문에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 좀 놀랐을 뿐.
그런데, 리리의 반응은 꽤 격정적이었다.
리리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뒷걸음질 치며 헌팅 나이프까지 뽑아 들었다. 대놓고 내밀어서 위협을 하진 않더라도, 뭔가에 공포에 질린 듯한 모습이었다.
“어떻게 그 검이 여기에 있는 거야.”
리리는 그녀가 문 단검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
수도자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저 그 큰 눈으로 멀뚱멀뚱 우리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검을 떼고 입을 열 생각은 없어 보였다.
저벅—
가죽 부츠가 모래를 밟는 소리가 들렸다.
수도자는 손을 살짝 내밀며 리리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리리는 살짝 뒤로 물러났다.
리리는 영혼의 상을 본다. 그래서 그 영혼이 악의를 가지고 있는지, 호의를 가지고 있는지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도망치지도, 먼저 공격하지도, 그렇다고 안심하지도 못하는 리리의 혼란스러운 태도는 이 수도자의 영혼에서 악의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에 수도자는 엄지손가락을 리리의 이마에 댔다. 아까 지하를 탐험하면서 화상을 입은 부위였다.
수도자의 엄지손가락이 지나간 자리의 상처가 씻은 듯 사라졌다.
“…….”
리리는 헌팅 나이프를 잡은 손에 힘을 풀었다.
너무나 명백한 호의에 마음이 풀어진 모양이었다. 아직 시선이 단검에 집중되어 있는 걸 보아 불안함이 풀리진 않은 것 같지만.
“……저기요?”
수도자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나를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말을 못 하는 사람인가? 그 어슴츠레한 눈빛이 조금 부담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한동안 나를 바라보다가, 다시 아까 자리로 돌아가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식사를 방해한 모양이지.
나는 고개를 내려 리리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말을 못 하는 사람일까?”
“그건 잘 모르겠는데, 이 신성력은…… 그냥 일반적인 수도자가 아니야.”
리리는 자신의 이마를 문지르며 말했다.
“이건 기적이야. 기적을 사용할 정도라면 정식으로 주신의 가호를 받은 고위 사제인데.”
“그런 사람이 왜 여기 혼자 있는 거지?”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았는데 대화를 나눌 수가 없으니 사정이 애매해졌다. 그냥 근처에 자리 깔고 밤이 지나갈 때까지만 버텨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였다.
“……성녀님!”
어딘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누군가 말을 타고 급하게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가죽 갑옷을 입고 검을 뽑아 든 모습에 나도 살짝 경계했다. 몸을 낮추고 콜드 포레스트를 들어 올린 뒤, 반지를 착용했다. 반지 안에는 고정된 물체를 강제로 이동시키는 바크vakk가 저장되어 있었다.
잠시 경계했는데, 다행히 기사는 우리와 성녀를 번갈아 보더니 칼을 거뒀다. 우리가 위협이 아니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도 나이프를 거두고 전투 태세를 풀었다.
기사는 다가와서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활동성이 좋은 가죽 갑옷, 그리고 장검을 허리춤에 맨 게 딱 봐도 경호원처럼 보였다.
리리가 나서서 고개를 숙였다.
“아홉 주신의 가호가 있기를.”
“아홉 주신이 그대들의 여정을 가호하기를. 모험가십니…… 세상에.”
기사가 렐릭시나를 보더니 말을 잃었다.
……아무래도 나중에 시간 내서 저 불꽃을 가릴 방편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보는 사람마다 이렇게 반응하니.
“연금술을 이용해서 튜닝한 거예요. 우리 마을에선 요즘 이런 스타일이 유행이거든요.”
적당히 얼버무렸다. 기사는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딱히 트집을 잡진 않았다. 그럴 만한 이유가 없기도 하겠지.
리리도 분위기를 살피다가 조금 더 입을 열었다.
“빛을 발견해서 길이라도 여쭐까 해서 이렇게 왔습니다. 놀라게 한 모양이에요.”
“아닙니다. 모험가끼리는 그런 경우가 많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냥 말 때문에 조금 놀랐습니다. 대단…… 하네요. 멋있습니다.”
그녀는 의외로 부러움을 담은 시선으로 렐릭시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사는 검은 단발에 하얀 피부, 적안을 가지고 있었다. 성녀와는 달리 고데기라도 한 것처럼 곧게 뻗어 있고, 머릿결이 거친 것도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조금 더 거칠게 살아왔다는 걸 대변하는 듯한 느낌.
기사는 우리를 바라보다가 말에서 내리고는 성녀에게 먼저 말했다.
“성녀님. 아무래도 남쪽에서 성좌의 승천이 일어난 게 맞는 듯합니다. 천공섬의 베일을 벗긴 것도 그 성좌가 승천하면서 저지른 일이고요.”
성녀는 고개를 내려 기사를 바라보았다.
아, 그렇다면 성녀는 식사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방금 승천한 성좌를 보고 있던 건가?
“위치를 대략적으로 확인했는데, 승천 장소는 남쪽 고열 지대인 듯합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그곳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데…….”
그러더니 우리를 바라보았다.
“혹시 모험가분들께서도 성좌의 승천을 목격하시고 오는 길입니까?”
리리와 나는 잠시 눈빛을 교환했다.
우리가 승천시켰는데.
‘말할 거야?’
리리가 입만 움직여서 내게 말했고.
‘귀찮아.’
당연히 내 대답은 이랬다.
우리는 간단히 의견을 나눈 뒤 오늘 밤 야영을 같이하기로 했다. 바위로 주변이 가린 곳 중앙에 자리를 잡았다. 이 사람들이 우리를 너무 많이 신뢰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우리가 무장 강도로 돌변하면 어쩌려고?
기사는 소지하고 있는 잔불을 이용해서 모닥불을 피웠다. 내가 룬 언어로 도와주면 간단한 일이 됐겠지만…… 또 ‘헤에! 인간이 룬 언어를! 대단해!’이러면서 소동이 날 게 뻔했고, 나는 슬슬 그 상황에 질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근방을 돌아다니며 습격자에 대한 간단한 대비를 했다.
그 뒤, 자리를 깔고 앉았다. 성녀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여전히 하늘을 보고 있었고, 기사는 모닥불 앞에서 우리와 함께 앉았다.
“기분이 좋아 보이시는데요.”
기사가 넌지시 내게 말했다.
사실 그랬다. 내가 원하는 분위기가 이런 거였거든. 굉장히 만족스러운 기분이었다.
리리는 그런 내 속마음을 파악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기사는 그런 우리를 바라보다가, 이번에는 리리에게 물었다.
“당신은 제 동족이신 듯합니다.”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검은 머리에 하얀 피부, 그리고 적안이면 뱀파이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까.
리리는 그런 기사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북부 귀족이신가요?”
기사는 당황하며 손을 휘저었다.
“저는 로열 블러드 같은 고귀한 종족이 아닙니다. 고아 출신이에요. 성녀께서 저를 손수 거둬 주셨고, 지금은 주신교의 수호 기사로서 복무 중입니다.”
리리는 그런 기사와 성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예언자하고 그 수호 기사가 왜 교회를 떠나서 이렇게 방랑하는지 들어 봐도 될까요?”
모닥불을 바라보던 나도 리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기사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설마, 로열 블러드십니까?”
“딱히 영혼을 보고 안 건 아니에요.”
“그럼, 어떻게…….”
“예언자께서 물고 있는 검, 콜브’랑데쥬Colb’randeju 잖아요.”
기사는 그 이야기를 듣고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물었다.
“콜브 뭐시기가 뭐야?”
“아홉 신 중에 하나가 추락해서 사망했고, 그 시체 위에 뿌리를 내린 게 바로 이 대지라는 이야기. 예전에 했었지?”
고개를 끄덕였다.
대지가 신의 몸뚱어리로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는 많은 신화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이야기다.
“그 신이 추락해서 사망할 때 내지른 단말마에서 태어난 악마 이름이 콜브’랑데쥬.”
“……그게 저 단검 안에 봉인되어 있다는 말이야?”
리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단검이 그 악마야.”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계속 이야기해 봐.”
“저 검은 붙잡은 자가 한 번이라도 입을 열면, 죽은 신의 단말마를 희생자의 입을 빌려 구현해 내.”
“그럼 어떻게 되는데?”
“……아무도 몰라.”
모른다고?
리리는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은 다 죽었거든. 당신, 저 설산 위가 왜 저렇게 되었는지 알아?”
천공섬 아래에는 산이 하나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정상이 반달 모양으로 움푹 들어가 있었다.
화산의 경우 꼭대기가 움푹 들어가 있는 경우가 있다. 백두산의 천지처럼.
하지만 누군가 한 입 베어 물기라도 한 것처럼 거대한 반달 모양으로 들어간 지형은 아무리 봐도 신기했다. ‘이계라서’라는 이유로 그러려니 넘어가긴 했지만, 이유가 있다면 궁금한 게 사실이었다.
“백 년 전, 황제 시해 사건이 있었어. 저 자리가 황제가 죽은 곳이야.”
“황제가 죽었는데 산이 저렇게 파였다고?”
“황제가 당시에 콜브’랑데쥬를 들고 있었거든.”
“…….”
미친.
나는 어느새 자리에 앉아 있는 성녀와 그 입에 물린 검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기사는 우리를 달래듯 말했다.
“성녀께서는 몇 년째 저 검을 물고 계십니다. 그 의지가 대단하니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지만, 만약에 걱정이 된다면 저희가 자리를 먼저 떠나겠…….”
“미친, 개쩔잖아? 왜 저런 선택을 한 건데요?”
기사는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건 리리도 마찬가지였다.
그 순간이었다.
성녀가 먼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기사가 검을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리도 마찬가지로 헌팅 나이프를 뽑아 들었다.
나는 여전히 모닥불 앞에 앉아 있었으나, 이들이 왜 이렇게 반응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우리를 습격하려고 하는 한 무리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뭔가…… 다가옵니다. 대비를 해야 할 것…….”
“성녀니까 악마를 봉인하려고 스스로 입에 문 건가요? 그럼 진짜 멋진대?”
기사도, 리리도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았다.
“얘기는 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이것 먼저 해결해야 할 듯한데요.”
“보통 이 시간에 평야에서 습격하는 놈들은 스캐븐 울프예요. 그리고 진동을 보니까 딱히 우두머리도 없는 피래미들 같은데.”
“그걸 바로 아십니까? 어쨌든,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제가 나가서…….”
발밑에 깔아 뒀던 낚싯줄을 잡아당겼다.
끼이익—.
콰가쾅쾅쾅—!
미리 깔아 둔 화합물에 적어 둔 모스mohs 문자가 발동하며 다섯 번의 폭발이 일어난다.
“키에에에에—!”
놀래키기만 하면, 싸울 필요도 없다.
비명이 들리는 걸 보니 타이밍을 잘 맞춘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물었다.
“아니, 그럼 왜 교회에서 나와서 여기로 오신 거예요? 쫓겨나기라도 하셨어요?”
“……에효.”
리리는 이제 익숙하다는 듯 자리에 앉았다.
기사는 이리저리 시선을 굴리며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두리번거렸다.
성녀는 일어서서 손으로 단검을 꾹 잡은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보았다.
“쿱, 콜록!”
기침을 하면서도 절대로 입을 떼지 않는 걸 보니, 그 의지가 대단하다는 게 느껴지긴 한다.
스캐븐 울프 피래미들은 폭발에 일부가 당한 뒤 꽁지가 빠지게 도망쳤다.
저 녀석들은 상대하는 방법은 힘이 아니라 공포다. 나는 스캐븐 울프와 꽤 많이 싸워 봤고, 녀석들이 겁이 굉장히 많다는 걸 알고 있었다.
기사는 한동안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주변이 안전하다는 걸 확인한 후 슬며시 자리에 앉았다.
“……저희는 엘 로크라 벨라를 울린 당사자를 찾고 있습니다.”
“왜요?”
“그자가 여행길에 흑성을 만나 변을 당한다는 예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리리와 나는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예언자의 예언은 황금의 시대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습니다. 그자가 흑성에게 당하기 전에 성녀께서는 그자에게 이 사실을 경고할 의도셨습니다.”
“……왜요?”
“그자가 황금에 대한 비밀을 아는 유일한 자라는 초대 기록관의 기록이 최근에 발굴되었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면서 기사는 남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네요. 하필 이 시점에서 성좌 승천이 일어나다니. 우연의 일치일까요?”
아니.
당신들 예언 애초에 틀렸어. 엉터리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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