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68
68화 ep24. 성녀 (3)
하늘을 한동안 바라보던 성녀도 모닥불 근처로 와서 쪼그려 앉았다.
그 칼을 입으로 물고 불을 바라본다.
저 사람이 열둘 지배자 중 하나인 예언자란 말이지?
“……지배자는 세상에 열둘밖에 없다며.”
리리에게 은근슬쩍 말하자, 리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자주 마주치네.”
“엘 로크라 벨라가 울렸잖아.”
사실 지배자가 움직이고자 한다면 그 행선지는 서로 겹칠 일이 많을 테니 만나는 게 아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나저나 저 사람이 예언자라는 거지?
“입을 못 여는데 예언을 어떻게 하나요?”
성녀는 그저 멍하게 모닥불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대답은 기사가 대신했다.
“남아 있는 예언은 선대 예언자가 남겼거나, 현 예언자께서 예언을 포기하기 전에 남기신 겁니다.”
한 번 물면 입에서 뗄 수 없는 단검.
그건 예언을 포기하기 위해서 문 모양이었다.
이유가 궁금하긴 했지만, 기사도 이 질문에 대해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는 것일 수도,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야기하고 싶지 않는 거라면 굳이 캐묻고 싶지도 않았다.
다시 아까 전에 기사가 했던 말로 돌아갔다.
엘 로크라 벨라를 울린 자는 흑성에게 변을 당한다는 예언이 있댔지.
……나는 흑성을 승천시키고 왔는데?
기사에게 잠시 양해를 구한 뒤 리리를 데리고 뒤쪽으로 가서 말했다.
“예언이라는 거, 완전 엉터리 아냐?”
그렇게 가볍게 생각했는데, 리리의 반응은 완전히 달랐다.
“예언자의 예언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어.”
“한 번도?”
고개를 끄덕이는 그 표정이 꽤 진중했다.
“틀릴 수가 없어. 신의 전언을 그대로 내뱉는 거라고. 그게 예언자의 숙명이자 타고남이야.”
리리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방랑자 봤지? 엘프로 태어났는데도 숙명을 이기지 못해서 떠돌다가 당신네 마을까지 왔잖아.”
뭐, 그랬지.
서지아는 숙명을 싫어하면서도 결국 이겨 내진 못했다고 했다. 물론, 리리를 찾아야 한다는 약속 때문에 우리 마을까지 흘러들어온 거기도 했지만.
그 정도로 절대적인 모양이란 말이지?
“근데 왜 이번엔 틀린 거야?”
“그게 진짜 이상한 거야. 이상해. 당신에 관련된 건 다 이상해져.”
이번에도 결국 저 결론이다.
“이제는 좀 익숙해졌네. 룬 언어 쓰는 인간이라 이상하고 지배자를 가진 인간이라 이상하고, 또 뭐 있지?”
“성격이 제일 이상하지.”
“내 성격이 뭐가 어때서? 나는 어디 가서도 잘 적응하는…….”
그 순간, 답답하다고 대학교를 자퇴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살짝 인정. 그때도 미친놈 소리 좀 듣긴 했어.”
리리는 내 대답을 듣고 배시시 웃었다.
* * *
리리는 생각했다.
강선후의 농담에 잠깐 미소를 지었지만, 이건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어렸을 적 아버지에게 들은 적이 있다. 신카 왕국의 멸망을 현시대의 예언자가 예언했었다고.
그리고 그 예언대로 이루어졌다.
아버지는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 어느 정도냐면, 신카의 멸문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 자체를 포기했을 정도로.
신카 부부는 차라리 딸을 살려서 가문의 숙명을 이어 나가기를 택했다.
그 정도로 예언은 절대적이었다. 그 어떤 시대에서도 빗나갔다는 기록은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번 예언은 빗나갔는가?
사소하지만, 절대로 사소하게 생각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강선후에게 이 이야기를 해 봤자 신경 쓸 리가 없다는 걸 잘 알았기에 그냥 넘겼다. 이 남자는 자기 자신의 특별함에는 놀라울 정도로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뭘 할 수 있는가. 뭘 경험할 수 있는가.
강선후의 관심은 오직 여기에만 있었다.
리리도 어느새 그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감을 느꼈다.
그 사고방식이 뭘 해 낼 수 있는지 강선후가 계속해서 보여 줬으니 그랬다.
자유로움.
강선후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였다.
‘포식자는 자유를 숙명으로 여기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답을 내리지 못했다.
서지아의 말대로라면, 초대로 추측되는 포식자는 인간성을 완전히 상실한 야인이나 다름이 없었고, 모두의 배척을 당했을 정도라고 했으니까.
그런 천성을 타고난 강선후는 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가?
매번 여기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래서 더 생각하지 않았다. 강선후가 가르쳐 준 방법이었다.
리리는 그래서 그저 미소를 지었다.
“나 이제 쉬고 싶어.”
리리의 말에 강선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직 해가 뜨기에는 몇 시간이나 남은 상황이니 쉴 시간은 충분했다. 강선후의 강행군을 그나마 잘 따랐지만, 그래도 리리는 조금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돌아가자. 기사도 자려나? 조금 더 얘기를 듣고 싶은데.”
강선후는 그렇게 말하며 모닥불로 돌아갔다.
기사는 어느새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것까진 괜찮았는데.
“저, 기사님?”
강선후가 조심스럽게 기사를 불렀다. 기사는 화들짝 놀라서 잠에서 깼다.
“아, 네. 오셨습니까?”
“저분, 주무시려고 하는데요?”
기사는 오른쪽을 바라보았다.
쭈그려 앉은 채 모닥불을 바라보던 성녀의 고개가 조금씩 내려가고 있었다.
“성녀님!”
기사는 큰 목소리로 성녀를 불렀고.
“쓰으읍!”
성녀는 확 고개를 든 다음, 양손으로 단검을 붙잡았다.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기사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읍! 읍!”
“……믿어도 될까?”
강선후는 그렇게 말했고, 리리는 그 말에 확실히 대답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좀 신비로운 분위기였는데.”
“그러게.”
“사람이 결국에는 다 고만고만한 거 같긴 해.”
“……그러게.”
이 말에는 대답할 수 있었다.
* * *
“으음…….”
리리는 눈을 떴다. 언제 잠에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장작이 타닥거리는 소리가 여전히 들려왔다. 시간이 얼마 안 지난 걸까? 아니면 누군가 먼저 일어나서 모닥불을 살린 걸까?
알 수 없었지만 중요한 사실은 아니었다.
눈에 들어오는 빛이 적은 걸로 보아 아직 해가 뜨지 않은 것처럼 느꼈다.
어깨를 덮은 침낭을 치웠다. 강선후가 덮어 준 모양이었다.
위를 올려다보니, 간단한 가림막이 쳐져 있었다.
“……?”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렇게 고개를 돌렸는데, 뭔가 이상했다.
주변을 둘러보고 나서야 가림막을 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리리는 서둘러 바깥으로 나왔다. 강선후가 팔짱을 낀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천천히 다가갔다.
뽀드득—
뽀드득—
간지러운 소리가 뒤꿈치를 타고 올라왔다.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천공섬도 흰색으로 치장되어 가고 있었다.
신비가 느껴졌다.
하늘에 떠 있는 섬, 그 위에 있는 성.
탈색된 것 같았던 고대의 풍경이 흰색으로 덧씌워지는 모습은 왠지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리리는 그 감정에 모순을 느꼈다. 바람은 이렇게나 차가운데.
“눈이 옵니다.”
기사가 말했다. 성녀도 모닥불 앞에 앉은 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리리, 이거 성좌 승천의 반동일까?”
강선후가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리리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가 이야기했다.
“아마도.”
강선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밥 먹자.”
리리는 조용히 가방을 풀어 레토르트 선짓국을 꺼내 들었다.
어느새 강선후의 행동 패턴에 익숙해져 가는 자신의 모습에 복잡한 감정을 담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기사는 양갱처럼 생긴 무언가를 꺼내 먹고 있었다.
뱀파이어 전용 휴대 식량이라나? 피를 어떤 식으로 가공한 모양인데, 별로 먹어 보고 싶진 않았다.
나는 서지아가 챙겨 준 하얀 떡을 먹었다. 생긴 것만큼이나 맛도 별로 좋지 않지만, 신기하게도 조금만 먹어도 허기를 채워 주는 터라 아주 좋은 여행 식량이었다.
모닥불에 올린 냄비에는 맛있는 냄새가 나는 국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리리 먹을 선짓국. 리리가 좋아하는 브랜드로 특별하게 챙겨 왔다.
오랜 여행에 지칠 것 같아서 조금 신경을 썼지.
그런데.
“……기사님.”
“예.”
“성녀님 저러다 냄비에 빠져 버리면 다음 재료가 되실 수도 있어요.”
성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냄비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침이 안 흐르는 게 다행으로 여겨졌다. 만약에 그랬다면 ‘성녀’라는 타이틀에 대한 내 기대감이 완전히 박살 났을 거야.
물론 지금도 늦었지만.
내 말을 들은 성녀는 고개를 획 들어 표정 그대로 내 쪽을 바라보다가는, 기사의 옷기를 잡아당겼다.
“읍, 읍읍!”
기사는 조금 당황스런 미소로 성녀와 눈을 마주치다가 말했다.
“요리에 대해서 궁금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 입장에서도 신기하긴 하네요.”
기사는 그 차갑고 날카로운 인상에 비해서 성녀에게 꽤 따뜻하고 헌신적인 사람이었다.
고아였던 어린 시절에 성녀가 구원해 줬다고 했지.
“그런 걸 다 알아들을 수 있어요?”
“대략적인 것만 파악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그것도 대단한데.”
“저는 뱀파이어고, 성녀님과 영혼을 연결했으니까요.”
그러면서 리리를 바라본다.
“로열 블러드께서는 인간을 선택하신 것 같군요.”
데워지는 냄비를 보며 조금은 멍 때리던 리리가 살짝 놀라며 고개를 내렸다.
“……너도 내 속마음이 들려? 조금 곤란한데.”
리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그냥 두 분의 마음이 잘 맞는 거겠지.”
기사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냄비를 구경하는 성녀를 바라보다가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성녀님은 바깥을 잘 안 돌아다니세요? 뭔가, 낯설어하는 느낌인데.”
“이번이 처음입니다. 거의 탈출이었죠.”
“…….”
“그전까지는 교회의 담벼락 바깥으로 나가 보신 적이 없습니다.”
최소한 미성년자는 아닐 텐데 첫 바깥 여행이라니.
성녀라는 직책도 꽤 답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 식사를 마무리했다. 성녀는 뱀파이어가 어떤 요리를 먹는다는 것 자체에 크게 흥미를 가진 듯했다.
기사도 리리의 음식을 맛본 뒤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라면……. 매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리리가 매일 먹지. msg 못 참거든.
식사를 마친 뒤 리리가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저기 위에 올라갈 준비해야지.”
나는 천공섬을 가리켰다.
“어떻게? 너무 막연한데.”
“막연하니까 한 단계씩 해야 하는 거야. 우선 저기에 닿을 방법을 찾아야겠지?”
천공섬을 바라보며 말했다.
산 정상 가장 가까운 곳을 기준으로는 수백 미터 정도의 높이라고 볼 수 있다.
“생각해 둔 게 있어?”
“……숲이 태어나는 경우는 두 가지야. 나무와 식생들이 한데 모여 군집 자아를 가지게 되거나, 아주 오래된 숲이 가지고 있는 신목에서 발생하는 숲의 씨앗.”
“그건 배웠어.”
“그 숲의 씨앗에 어떤 작업을 하면, 그건 숲이 아니라 아주 거대한 하나의 나무로 자라게 되거든? 그거라면…….”
가능성 있다.
스프리건이 그 나무를 급속으로 성장시키는 모습을 본 적 있었다. 셀피를 만나게 된 뒤 돌이켜보니, 그 원리를 대충 유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리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근처에는 숲이 없잖아. 그럼 미리 챙겨 왔어야 하는 거 아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버뮤다 숲은 아직 씨앗이 없으니 애초에 불가능했지. 그리고, 여기에 숲이 없을 거 같아?”
“……무슨 뜻이야?”
하늘을 바라보았다.
“눈이 오잖아? 이제 일어날 일을 우선 보고 다음에 할 걸 결정할 거야.”
그러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계의 눈은 살짝 푸른빛을 띤다.
이계의 하늘이 품은 마력을 담고 내리는 걸까?
멋대로 생각해 보고는 했다. 이계니까.
잠시 과거를 회상하다가 입을 열었다.
“나, 예전에 숲속 생활할 때 눈이 몇 번 왔는지 알아?”
리리는 당연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딱 두 번.”
“……당신, 와일드 헌트를 여덟 번 경험했다며.”
“그렇지.”
“근데 눈을 두 번밖에 못 봤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이 안 오는 곳이었나 봐. 그래서 알게 된 게 있어.”
“뭔데?”
“눈이 안 오는 곳에 눈이 내리면 일어나는 일.”
잠자코 기다렸다.
오래되지 않아 기억 속의 그 사건이 재현되기 시작했다.
“……눈이 안 오는 지역에 눈이 내려 버리면 숨어 있던 것들이 화들짝 놀라서 도망치더라고.”
이계 토착민인 리리도, 기사도, 성녀도 이 사실을 몰랐던 듯했다.
당연하지. 천장이 있는 곳에서 평생을 지내던 사람들은 구경도 못할 광경이라고 확신하니까.
여기저기서 땅이 솟아난다. 집채만한 버섯이 급속도로 자라는 것처럼, 땅 아래에서 무언가 모래와 흙을 밀어내며 위로 솟구쳤다.
쿠그그그그—
이 근방에서만 세 구가 보였다. 내가 지은 오두막보다 두 배는 높은 거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 등딱지 위에 얹혀 있었던 눈과 흙, 그리고 잔디들이 속절없이 쏟아졌다.
“……뭐야?”
“거북이.”
“거북이?”
그건 거대한 거북이었다. 높이만 해도 건물 2층 정도가 넘어가니, 그 크기가 어느 정도일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난 저걸 이렇게 불렀어.”
— 지하 숲의 문지기.
“이계의 숲은 지상에만 있는 게 아니더라고.”
이계에서 숲은 하나의 생명체다.
생존을 위해서 각자 사는 곳에 맞게 끊임없이 진화한다는 뜻이다.
그들 중 일부는 일생을 지하에서 보내기도 한다. 한정된 땅 경쟁에서 한 발자국 물러날 수 있는 좋은 선택지니까.
눈이 오기 시작한 시점에서, 나는 이미 이 상황을 염두에 두고 계획을 짜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시간을 끌었던 거고.
“……위험한 건 아닙니까?”
“완전 겁쟁이들이에요.”
이 녀석들은 보기보다 온순하다. 그래서 숲과 쉽게 공생 관계를 맺는다.
“숲의 입구를 몸으로 막아 주는 대신, 그들이 제공하는 수액을 먹고 살아요. 그러니까 초식도 아니지. 수식(水食)동물이라고 해야 하나?”
대신에 녀석들은 추위를 질색한다.
그래서 온난한 곳에서 기상 이변이 일어나면 온 세상이 난리가 난다.
물론 지하에서 살던 숲에는 좋은 상황이 아니겠지. 입구가 훤히 열리는 셈이니까.
기상 이변은, 지구에서든 이계에서든 자연에 이로운 현상은 아닌 셈이었다.
“으어어어—.”
거북이들이 조금 웃긴 울음소리를 내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이들의 행선지가 어디고, 이후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는 모른다.
나도 이 이동이 시작하는 것 자체만 목격했었으니까.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장관이었다.
고개를 살짝 돌려보니, 성녀, 리리, 기사의 표정이 완전히 똑같았다. 침을 흘릴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거대 거북이 행렬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녀는 기사의 옷깃을 슬며시 잡아당겼다.
행렬이 끝난 뒤, 평야 여기저기에 뚫린 거대한 구멍이 나타났다.
“……전부 하나의 숲으로 연결된 듯한데.”
이 입구가 각자의 숲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하기 힘들었다. 너무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었으니까.
“생각보다 규모가 큰 숲이 있나 본데?”
나는 그중에서 경사가 가파르지 않은 입구 하나를 찾아서 들어갔다.
지하로 내려오며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리리가 내 옷깃을 잡으며 어둠에 대비했다.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태양빛이 완전히 들어오지 않는 지하로 진입했으나 모스mohs의 불빛은 필요 없었다.
“……와.”
잘 놀라지 않는 리리의 입에서마저 감탄사가 나왔다.
“……숲은 하나의 생명체야.”
나도 위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래서, 자신이 사는 곳에 맞게 진화하는 거거든.”
생물이 진화하는 이유는 순수하게 생존을 위해서다. 다른 목적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그 결과는 대부분 아름답다. 그 사실을 떠올리면 한층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지금 우리 눈앞의 풍경이 그랬다.
어쩌면 밤하늘을 보는 것 같았다. 천장일 게 분명한 저 위에 성좌가 내려다보는 것처럼 무수히 수놓은 별빛이 있었다.
숲의 덩굴이 천장에서 바닥까지 늘어져 있었다. 그 끝에는 빨강, 파랑, 보라, 주황, 각양각색의 빛을 내는 열매가 매달려 있었다.
반짝이는 날개가 달린 벌레 하나가 열매에 달라붙어 수액을 빨았다.
그러자, 빛나는 수액이 벌레에게로 옮겨지며 하나의 반딧불이가 된다.
리리가 입구 옆에 솟아오른 나무를 만졌다.
“……버섯.”
“광합성을 하지 못하는 환경에 대처하기 위한 선택이겠지?”
리리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
뒤를 돌아보니, 기사와 성녀도 여기까지 따라와 있었다. 그럴 필요가 없을 텐데.
아마도, 성녀의 결정인 모양이었다.
위를 올려다보는 성녀는 슬쩍 눈가를 훔쳤다.
나는 저 느낌이 뭔지 잘 알고 있다.
나도 히말라야산맥에 올라, 내 발밑으로 지나가는 거대한 구름을 보며 감정이 북받쳐 오른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게 내 첫 탐험이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냥 그렇게 되더라.
나는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 거대한 숲이면, 숲의 씨앗 하나 정도는 그냥 달라 해도 되겠는데?”
그렇게만 생각하다가, 문뜩 발밑에 잔뜩 엉겨 있는 실뭉치를 발견했다.
근처에 있는 덩굴 하나를 끌어와 빛의 열매를 가까이 댔다.
처음에는 거미줄인 줄 알았던 실뭉치는 붉은색이었다.
물론, 붉은 실을 뿜는 거미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건 거미줄이 아니었다.
리리가 관심을 보였다.
“이게 뭐야?”
“…….”
함부로 대답할 수는 없었다.
이건, 기생체가 뿜어내는 실이었으니까.
이전에 만났던 하얀색이 아니라, 빨간색.
“……리리.”
“응.”
“날도 추워지는데 외투 하나 필요하지 않아?”
“외투?”
구체적인 사정을 모를 텐데도, 리리가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얘가 나한테 좀 익숙해진 건 맞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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