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69
69화 ep25. 모험가가 모험을 하는 이유 (1)
실뭉치를 바라보는 리리의 표정에 불안이 약간 떠올랐다.
“이거, 설마…….”
눈치를 챈 듯했다.
“기생체 고치 흔적이야.”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았다.
여기저기에 발광하는 식물, 그리고 곤충들이 날아다닌다. 시야가 확 트이진 않더라도 대략적인 풍경이 그 빛의 도움을 받아 엿보인다.
딱 봐도 작은 숲은 절대 아니었다. 최소한 버뮤다 숲의 세 배는 훨씬 넘을 거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기생체…… 말입니까?”
기사가 내 말을 듣고 가까이 다가왔다.
“기생체에 대해서 좀 아시나요?”
나는 여전히 정면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기사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서려 있었다.
“숲에 기생하는 마수 말씀이라면, 기사 학교에서 그 대처법에 대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런 훈련도 받아요?”
“기생체는 내버려 두면 근처의 마을이나 다른 숲을 침공하는 괴물이니, 수호 기사는 당연히 그 대처법을 숙지합니다.”
“어떤 식으로 대처하나요?”
“기생체의 현 상태에 따라 다릅니다. 아직 미숙한 상태라면 먼저 치는 쪽을 고려합니다.”
“늦었다는 판단이 들면요?”
“우선 기다립니다. 어차피 기생체는 숲을 완전히 죽이는 경우는 잘 없고, 충분한 에너지를 뽑았다고 판단되면 다음 희생자를 찾으니까요. 보통은 근처의 마을을 노리는 경우가 많으니 방어진을 치고 미리 대기해 놓죠.”
“좋네요. 교과서적이네.”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내 시선은 정면을 향하고 있었다.
기사는 내 반응이 영 미지근하다는 걸 눈치챈 듯했다.
기사를 무시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었다.
전방에 깔린 어둠 속에서 전달되어 오는 정보에 온 신경을 뺏겨, 다른 생각을 할 여지가 없었으니까.
“뭔가 맘에 걸리는 게 있습니까?”
있다. 솔직히 좀 생각이 많아질 지경이다.
“좋은 교과서에서 뭔가를 배우는 건 옳아요. 먼저 가 본 사람의 시행착오를 대부분 패스할 수 있으니까.”
그 시점에서 기사도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정글은 아무리 공부하고 가도 방심하면 엿을 먹기 마련이더라고요.”
“뭔가 보여?”
내 말의 의중을 깨달은 시점부터 리리는 이상한 점을 발견하기 위해 부단히 돌아다녔다.
하지만 그럴싸한 걸 발견하진 못한 모양이다.
나는 기사와 리리를 데리고 옆에 있는 버섯나무로 다가갔다.
쿠크리로 나무를 베어 내자.
푸슉—
점성이 있는 검붉은 액체가 튀어나왔다.
퓨슉— 퓨슉—
“……?”
이건 리리가 익숙한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액체가 흘러나오는 장면은 누가 봐도 나무에서 흘러나오는 수액을 연상할 수 없었다.
이건.
“……심장 박동 같아.”
베어진 동물의 동맥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처럼, 그 강약이 리듬감을 가지고 있었다.
리리는 흐르는 피를 손가락으로 훑은 뒤, 조심스럽게 혓바닥에 가져다 대었다.
“……피. 당신, 이걸 눈치채고 있었던 거야?”
나는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바닥에 손을 가져다 대고, 눈을 감았다.
박동이 느껴졌다.
마치 이곳 전체가 살아 있는 것처럼.
물론 숲은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생명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박동하지 않는다. 하나의 공통된 혈관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저런 피가 흐르지도 않는다.
나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아름다워 보였던 풍경은 이곳이 처한 상황의 단편일 뿐이었다.
방울진 빛들이 차마 비추지 못한 곳, 그 어둠 속에 묻혀 있는 이야기가 더 중요했다.
생각을 정리하고, 결론을 내었다.
“이건 기생된 상황이 아니에요.”
기사는 이해를 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기생되거나, 이미 양분을 빨리고 죽거나, 둘 중 하나 아닙니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동화된 겁니다.”
“……네?”
기사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돌며 어둠 저편을 바라보았다.
“기생체는 이곳의 양분을 완전히 다 빨아먹고도 떠나지 않기로 결심한 거예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렇겠지.
다 먹고 남은 껍데기를 뒤집어쓰는 게 뭐가 좋겠어?
근데, 그 껍데기에서 흘러나오는 꿀이 무한대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겠지?
지하에 숨어들었던 숲이 이렇게 거대한 이유를 눈치챌 수 있었다.
눈을 감자 복잡한 소리와 냄새 사이로, 달콤한 향기가 미약하게 코에 스며들었다.
익숙한 향기였다.
“……이곳으로 정기가 새어 들어오고 있네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리리가 생각을 빠르게 정리한 뒤 입을 열었다.
“들어 본 적이 있어. 정기가 새어 나오는 곳에 자리 잡은 숲이 이상 증식하는 경우.”
“그리고, 운 좋은 기생체 하나가 이 좋은 자리를 포기하지 않기로 결정한 거지.”
지구에도 있다. 숙주의 혈관과 신경을 끌어와서 그 몸의 일부가 되는 기생 동물들.
이 숲에 기생한 기생체도 자신의 신경, 혈관을 오랜 시간에 걸쳐서 숲 전체로 퍼트린 거다.
정기를 섭취하는 숲, 그 무한한 에너지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기생체의 그릇에는 한계가 없다.
그래서 항상 양분에 굶주려 있다.
그런 기생체에게 무한한 양분이 공급된다면?
그 결과는 끔찍하다.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보여 주는 게 나을 정도로.
* * *
주신교회의 수호 기사는 오랜 전통을 가진 집단이었다.
그 역사가 황금의 시대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사들은 굉장히 자랑스러워했다.
황금의 명맥을 잇는 집단은 현시점에서 많이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교회에 충성을 다하는 수호 기사는, 정식 기사가 되며 한 사람을 위해 살겠다는 서약을 맺는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치고자 맹세한다.
이는 황금의 시대를 살았던 한 기사왕에게서 비롯되었다. 백성을 위해서 거대한 무언가를 기꺼이 포기했다는 영웅. 그 마음가짐을 잇는다는 명분이었다.
그 영웅은 수호 기사단의 자부심이었다. 어느 정도냐면, 영웅이 여성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여성만을 뽑았을 정도로.
레베카는 수호 기사단의 유일한 뱀파이어였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 어린 시절 부모를 잃었고, 그런 그녀를 성녀가 구원해 줬다.
그렇기에 레베카는 성녀의 수호 기사가 되었다. 기꺼이 영혼 연결까지 행할 정도로 성녀를 아꼈다.
하지만 지금, 대의를 위해서 성녀의 뜻에 일부 반해야 하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대의를 위해 소중한 걸 포기한 기사왕의 의지를 이어야 하기에.
“성녀님.”
성녀는 고개를 돌려 레베카를 바라보았다.
“죄송하지만,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성녀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성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가끔은 모르겠는 그 모습.
오히려 이 인간 남성을 만난 직후, 다채로워진 성녀의 감정 표현에 놀랄 지경이었다.
성녀는 그저 레베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거대한 재앙이 될 수 있습니다. 돌아가서 기사단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거리가 멀지 않나요?”
인간 남자의 말에 레베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멀기 때문에 아마 교회까지 피해가 오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수호 기사는 백성을 위해 희생한 기사왕의 의지를 잇습니다. 이 재앙이 근처에 사는 무고한 이들을 덮치는 걸 두고 볼 수 없습니다.”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아 정면을 바라보는 검은 머리의 인간 남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제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기사단의 병력이 필요합니다.”
남자가 풍기는 분위기가 어젯밤과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으나, 이곳에 흐르는 습한 공기 탓으로 느꼈다.
호흡은 사람의 감정에도 영향을 주기 마련이니.
“……결정했어요.”
인간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베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험가께서도 서둘러 이 자리에서 벗어나셔야 하겠지요. 조금 성급하지만 이 시점에서 헤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돌아가는 건 그쪽 자유인데, 기사단을 불러올 필요는 없을 거예요.”
짐을 챙기던 레베카는 다시 고개를 들어 인간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입니까?”
“아마 사흘 정도 걸릴 거 같은데.”
“어떤 거 말입니까?”
“사냥이요. 준비가 오래 걸리거든.”
레베카는 다시 고개를 돌려 저 안쪽, 빛이 들어오지 않는 구역을 바라보았다.
저곳에는 공포와 미지가 있었다.
숲과 동화된 기생체, 그게 가능하다는 사실은 듣고 보니 이해가 되었지만, 바로 이 순간까지 그런 게 있을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동화된 기생체를 사냥할 거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십니까?”
인간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 남자는 전방으로 펼친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규격’과 ‘각’을 재고 있는 행동이라는 걸 깨달았다.
마치 건물을 쌓기 전날 설계학자들이 여유롭게 재점검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인간 남자는 끝내 ‘할 만하다.’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하실래요? 떠나실래요? 지금 결정하셔야 해요. 그래야 저도 움직일 수 있어서.”
“……정기가 흐르는 곳에 숲이 발생했고, 그 숲에 공급되는 무한한 에너지를 흡수하는 기생체가 오랜 기간 있었다면, 그건 어쩌면 흑성에 버금가는 재앙일 수도 있습니다.”
“그릇은 아무리 커도 그릇이에요. 그 안에 뭐가 얼마나 채워져 있든, 크기가 어떻든 간에.”
인간 남자는 메고 있었던 가방을 땅에 풀어 놓았다.
“깨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깰 수 있어요.”
“……방법이 있는 겁니까?”
남자는 가방 속에 손을 깊숙이 집어넣었다가, 꺼내며 말했다.
“……두 가지 정도.”
“두 가지 정도.”
그 옆에 있었던 로열 블러드가 남자의 말을 따라 했다. 남자는 놀란 표정으로 로열 블러드를 바라보았고, 로열 블러드는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그 표정에 화답했다.
“당신 말버릇이야.”
“벌써 이렇게 분석당했네.”
그렇게 말하며 남자는 가방 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
레베카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특히, 로열 블러드.
로열 블러드는 자신의 목적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거의 하지 않는, 극단적인 효율만은 추구하는 종족이었다.
같은 뱀파이어였기에 그 습성을 너무나 잘 이해했다.
그런데, 로열 블러드는 지금 이 인간 남자의 턱도 없는 결정을 아무런 반박도 없이 따르고 있었다.
싫어하는 기색도 없었다. 오히려, 적극적이었다.
너무나 일상적이고, 너무나 당연한 일을 하는 것처럼. 이 인간이 그런 선택을 할 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레베카는 대체 어디부터 짚고 넘어가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단 하나의 의문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왜라뇨?”
“이런 큰 위험을 굳이 감수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모험가께서는 애초의 목적이 더 중요한 것 아닙니까?”
“이유라.”
레베카의 질문에 인간 남자는 고개를 들었다.
“여기 되게 멋있지 않아요?”
레베카도, 성녀도 고개를 들었다.
“그렇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이런 숲이 썩게 내버려 둘 순 없잖아요.”
레베카는 다시 말문이 막혔다.
고작 그런 이유라고?
상식에서 너무나 벗어나 있어 오히려 반론이 떠오르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쪽이 말해 준 기사왕의 이야기가 좀 맘에 들기도 해서.”
“…….”
“그 기사왕, 결말이 어땠어요?”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레베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비극적이었습니다. 기사단 내부 전승에 따르면 흑성이 되어 태양의 돌과 함께 땅 밑으로 가라앉았다고 합니다.”
“아닐걸요?”
레베카는 고개를 들어, 로열 블러드와 인간 남자를 바라보았다.
가방에서 꺼낸 물건을 점검하는 그들의 입가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미소가 서려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성녀는 저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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