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70
70화 ep25. 모험가가 모험을 하는 이유 (2)
레베카는 몇 시간 전 처음 만난 이 모험가들의 모습을 그저 멍하게 볼 수밖에 없었다.
검은 머리 인간 남자는 질 좋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러고는 도시 마법사들이 쓸 법한 고품질의 필기구를 꺼내, 이것저것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자, 보자. 리리.”
“응.”
“제일 먼저 신경 써야 할 건?”
“제한 시간.”
남자는 고개를 들어 로열 블러드를 바라보았다.
이 답변이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로열 블러드는 의견의 근거를 나열했다.
“이 기생체가 계속해서 이 상태로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잖아. 내일 갑자기 외부 활동을 시작할 수도 있고.”
“내가 생각한 건 그런 게 아니긴 한데, 제법인데?”
인간 남자는 진심으로 놀라며 로열 블러드를 칭찬했다.
이 모습 역시 레베카의 눈에는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로열 블러드는 뱀파이어의 귀족이다.
같은 종족이어도 평범한 인물과 귀족은 생물학적인 수준에서부터 차이가 있었다.
그런 고귀한 태생과 아홉 신 모두에게 버림받은 종족.
그 둘이 지금 머리를 맞대고 기생 생물을 사냥하기 위한 계획을 짜고 있었다.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특히, 이 행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로열 블러드의 태도가 가장 그러했다.
로열 블러드는 영혼의 상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인간에게서 특별한 무언가를 봤던 걸까?’
‘인간이 특별할 게 뭐가 있지?’
이 시점에서 잡생각이 너무 많다는 걸 깨달아 고개를 휘저었다.
그 사이에도 둘은 머리를 맞대고 종이에 이것저것 쓰고 있었다.
강선후는 종이에 물음표를 그리며 말했다.
“내가 보기에 가장 중요한 건, 현재 어떤 생김새를 하고 있는가. 이거거든?”
“응.”
“최소한 고치 상태일 리가 없겠지? 이렇게 혈관까지 퍼트렸을 정도니까.”
“그렇겠네.”
이 모습은 마치, 인간이 로열 블러드에게 수업을 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어느새 레베카는 한 걸음 그들에게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기생체의 성체는 형태가 정해져 있는 거 아닙니까?”
인간이 고개를 들어 레베카를 바라보았다.
“일반적으로는 그래요. 일반적으로는. 그런데 그런 식으로 접근하면 반은 틀린 거거든요.”
“잘못되었단 말씀이십니까?”
“기생체는 고치 상태에서 어떤 자극을 받았냐에 따라서 성체 생김새가 정해져요. 보통은 다 비슷비슷하겠죠? 숲에서 받는 자극은 다 거기서 거기일 테니까.”
강선후는 고개를 들어 숲 안쪽을 바라보았다.
“근데 지금은 특수한 상황이니, 내가 아는 그게 저 안에 있다고 단정 지었다간 목숨 줄 날아 갈 수도 있는 거예요.”
“……그렇군요.”
레베카는 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식에 조금씩 흥미를 느꼈다.
들어오자마자 몇 분 지나지 않아 숲의 상태를 깨달을 정도의 안목이 있는 인간.
보통의 인간은 아닌 듯한데, 어디 소속의 누구인지 예상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이 남자가 하는 말이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그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의문이 생겼다.
“그럼, 그걸 어떻게 확인합니까? 정찰하려면 결국 위험을 부담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두 눈으로 목격하기 전까지는 저 안에 뭐가 있는지 모른다.
그러려면 결국 위험을 감수하는 건 매한가지 아닌가?
이 숲 자체에 동화된 기생체라면, 숲 전체가 기생체의 발톱이자 이빨이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 불확실성이 레베카 입장에서는 큰 위험처럼 느껴졌다.
인간 남자는, 그런 레베카와 성녀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말했다.
“……저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아, 네. 들어 보겠습니다.”
남자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호들갑 금지.”
“네?”
“이제 좀 질렸거든요. 인간인데 어쩌고저쩌고하는 거.”
“그게 무슨…….”
“탐-탓사Tham-tatha.”
인간의 혀와 성대에는 허락되지 않은 발음과 발성이 낮게 울렸다.
기사단은 마법사 부대를 소수 운용한다.
그래서, 수호 기사단은 룬을 접할 기회가 비교적 많은 이들이었다.
당장 성녀도 입이 자유로웠던 시절 적지 않은 룬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토록이나 날것 느낌이 나는 룬은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탐-탓사Tham-tatha.
점성술사의 룬 언어.
이렇게 알려져 있었지만, 사실은 사기꾼들의 언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은, 주변과 자신의 감각을 공유하는 언어였으니까.
주변 생물의 감각을 빌린다.
대신에, 주변 생물들 역시 사용자 자신을 인지하게 된다.
즉, 기습하기 위해서는 적합하지 않다.
“인간이…… 아니셨습니까?”
“하지 말라니까.”
인간은 눈을 감은 그대로 정신을 집중했다.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판단이 우습게도, 단 30분도 되지 않아 이 숲 전체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 * *
두 번의 밤이 더 지났다.
지금 성녀를 지배하는 감정은 당황스러움이 아니라 호기심이었다.
강선후는 거의 간이 공방을 만들었다. 이는 본격적인 사냥을 위한 사전 준비를 의미했다.
나무를 엮고, 모래를 섞고, 물을 끓인 뒤 약초를 데치고, 그렇게 만들어진 초록색의 액체를 작은 병에 담았다.
둘은 밤에는 여유롭게 식사를 하며 별을 보았고, 해가 뜨면 작업에 매진했다.
이 인간이 하는 행동은 의문투성이였다.
단순히 숲을 구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모든 위협을 감수하는가?
이 인간은 모험가다.
위험한 길을 떠난 이는 누구나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고작 이런 일에 시간과 체력을 쓰고 위험을 부담하는가?
인간은 그런 종족이 아니지 않은가?
인간을 포함한 필멸자는 이득이 없는 행동에 아무런 매력을 느끼지 못하지 않는가?
그렇기에 항상 예언을 바라지 않는가?
그런 생각이 성녀의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강선후가 성녀에게 물었다.
“혹시, 가지고 있는 활이 있나요?”
“…….”
성녀는 자신의 기사에게 눈빛을 보냈고, 기사는 숏보우를 강선후에게 건넸다.
“여정 중 호신용으로 쓰이는 거라 많이 작습니다. 명중률이 좋지는 않을 겁니다.”
“명중률은 상관없어요.”
남자가 하는 말은 의문투성이였다.
명중률이 필요가 없다니, 그럼 활을 어디에 쓰려고 하는 것인가?
남자는 화살도 몇 개 빌려 갔다.
도움은 이걸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성녀는 아주 짧고 특수한 형태의 화살을 깎는 작업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이틀이 지났다.
남자는 나무를 가공해서 뽑아 낸 실과 밧줄을 조합해서 이상한 그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물이라고 하기에는 그 형태가 조잡했다. 차라리 거미줄에 가까운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것에 가까웠다.
형태를 종잡을 수 없는 그것이 완성된 뒤, 숲과 지상을 잇는 좁은 통로 바닥에 그걸 늘어놓았다.
그리고, 나이프를 들고 안쪽을 바라보았다.
“리리.”
“응.”
“계획대로만 하면 아무도 다치지 않아. 알지?”
“뱀파이어는 영혼 연결 대상을 믿어. 좀 웃긴 계획이지만.”
남자는 고개를 끄덕인 뒤 성녀를 바라보았다.
“이번 일에는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할지도 몰라요. 간단합니다. 그냥 리리가 하는 말을 따라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어느새, 성녀는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이 남자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성녀는 저 안쪽에 존재하는 위험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
신성력이었다. 신의 가호를 받는 사제는 자신을 덮칠 위험의 크기를 직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렇기에 알고 있었다.
이 남자가 가지고 있는 힘은, 저 안에 있는 위험을 극복하기에는 너무나 미약하다는 사실을.
하지만, 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믿음의 크기는 절대적이었다.
그래서 더욱 궁금했다. 대체 뭘 믿고 이러는 건지.
인간은 안쪽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버섯들과 원형의 작은 균류들로 이루어진 숲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인간은 불꽃을 피우지 않았다. 자신의 위치를 노출해서는 안 되니까.
인간은 바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저, 버섯으로 된 나무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작게 말했다.
“이제 일어나.”
누구에게 말을 건 걸까?
그저, 사기를 북돋기 위한 일종의 기합이었던 걸까?
그렇게 생각한 순간.
드드—
드드드드드——
변화는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숲이 움직였다. 반짝거리는 날개가 달린 벌레들이 몰려왔다.
벌레들은 강선후 주변을 한 바퀴 돌고는, 숲 정중앙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곳이 숲의 심장이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기생체에 대한 경고라는 사실을.
숲은 오히려 버섯나무와 각종 알 수 없는 식물을 기울여 입구를 막았다.
‘가능성은 없으니 들어오지 마라.’
라고 말하는 듯했다.
인간은 그 대답이 들린 듯, 더욱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뭔 짓을 하든 들어갈 거야. 이미 준비는 끝났어.”
숲은 더욱더 오밀조밀하게 입구를 막았다. 하지만, 그건 일종의 의사 표현일 뿐이었다.
인간의 진입을 막기에는 숲은 지금 너무나 나약해져 있었다.
“포기하지 말고 저항해. 내가 도와줄 테니까.”
생명의 소리로 가득 차 있었던 이 지하에는 그 순간, 고요로 가득 찼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 숲은 다시 움직였다.
알 수 없는 균류와 식물로 가득한 땅.
그곳에 길이 생기기 시작했다.
숲은 미약해진 몸을 억지로 움직여 인간에게 길을 만들어 줬다.
강선후는 숲에게 요구했다. 저항하라고.
그러자 숲이 움직였다.
대화는 그뿐이었다.
엘프도 아닌 인간이, 엘프조차 의식을 통해서만 행할 수 있는 소통을 그저 한마디 말로 행했다.
숲은 죽지 않았다.
이 남자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로열 블러드마저 미약해진 그 영혼을 보지 못했는데,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숲에 말을 걸었다.
남은 세 사람 중에서 여유가 있는 건 리리뿐이었다.
“리리. 부탁할게.”
“영혼 연결을 했으면 서로를 믿어야 해. 당신도 날 믿어.”
인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어둠 안쪽으로 사라졌다.
리리는 화살과 활을 든 채, 그 자리에 앉아서 기다렸다.
그리고.
“저, 뭔가 잘못된 거 아닙니까?”
인내심이 바닥난 기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성녀도 같은 생각이었다.
남자가 안으로 들어간 지 이틀이 지났다.
그나마도 지금까지 참았던 이유는 이 로열 블러드의 표정에서 한 줌의 의심이나 불안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어떤 전투가 이틀이나 갑니까? 더군다나, 아무런 반응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숲은 더 죽어 갈 뿐이에요.”
기사가 리리에게 말했다.
리리는 고개를 들어 기사에게 말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리리는 과거, 버뮤다 숲에서의 전투를 떠올렸다.
아니, 그건 전투가 아니었다.
“근데 이건 전투가 아니니까요.”
“그럼 뭡니까?”
“사냥이에요.”
“……다릅니까?”
리리는 가만히 생각했다.
아버지의 가르침, 그리고 그 가르침의 본질이 뭔지 정확히 알려 준 강선후의 실행력.
“사냥꾼에게 가장 중요한 건 날카로운 송곳니와 강인한 근육이 아니더라고요.”
“그럼…….”
기사와 성녀는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승리할 수밖에 없는 시간과 환경. 그걸 통제하는 지배력.”
그게 강선후가 알려 준 포식자의 격.
싸워 이기는 완력의 강함이 아닌, 원인과 결과의 이해를 지배하는 것.
그 순간.
피이이잉—!
무언가 날아왔다. 그 정체가 뭔지 드러나기도 전에 리리는 활을 치켜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악—!
경사진 바닥에 꽂힌 건.
“화살?”
밧줄이 달린 화살이었다.
기사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저 인간은 화살을 가지고 들어가지 않았는데.
“기사님! 그 밧줄을 팽팽하게 당겨 주세요!”
레베카는 생각할 새도 없이 밧줄을 잡아당겼다. 어딘가에 고정이 되어 있는지, 금방 팽팽하게 만들 수 있었다.
리리는 가지고 있는 화살을 밧줄에 매달았다.
“……?”
그 화살촉에는 아주 작은 룬 문자가 그려져 있었다.
리리는 활시위를 놓았다.
밧줄에 고정된 화살은 그 경로를 따라 빠른 속도로 어둠 속을 향해 쇄도했다.
명중률 따위는 고려할 요소가 아니었다.
화살이 그려야 할 궤도를 밧줄이 지휘해 주고 있었으니까.
리리는 준비된 화살을 계속해서 쏘았다.
“……오오오오오—.”
처음으로 안쪽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기사도 검을 든 손에 힘이 들어갔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뒤를 바라보니, 성녀는 눈을 크게 뜬 채 안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생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거대한 입구의 반절은 충분히 채울 것 같은 몸집.
수십 개의 다리, 거대한 하나의 집게발.
게처럼 생겼으나, 포유류의 살점으로 이루어져 있는 끔찍한 모습.
여섯 갈래로 갈라지는 그 입에서는 거품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외부로 돌출된 두꺼운 혈관.
그걸 끌고 잔뜩 격노한 채 다가온 기생체.
혈관은 모두 잘려져 있었으나, 이게 기생체에게 큰 피해를 준 건 아니었다.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 기사는 이를 악물었다. 기생체가 휘두른 집게발에 벽이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 공격이 아니라, 그저 움직이다가 부딪힌 결과가 그랬다.
“기사님! 저기 반대편에 밧줄을 당겨 주세요!”
리리가 외쳤다.
레베카는 반대편에 있는 밧줄을 보고, 당겼다.
리리도 그 반대편에 있는 밧줄을 당겼다.
입구 양쪽에 서서 밧줄을 당기자 땅에 떨어져 있는 그물이 솟아올라 입구를 막았다.
바보 같은 생각인 줄 알았다.
고작 이렇게 얼기설기 만드는 밧줄로 저 거대한 존재의 전진을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건가?
내가 이 사람의 기행에 눈이 멀어 너무 믿어 버린 건가?
레베카는 순간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걸 빠르게 깨달았다.
통로를 가로막으며 세워진 그물은 그물이 아니었다.
정교하게 짜인 하나의 룬 문자였다.
“…….”
룬 문자는 손으로 그리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이렇게 밧줄로 짜서 제대로 작동할 거라 생각한다고?
기사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카츠kaahz.”
로열 블러드가 그곳에 손을 댄 뒤 시동어를 외었을 때.
파지지지직—!
“크오오오—!”
그 룬문자에게 거칠게 들이박은 기생체가 붉은 전기에 큰 손상을 입었을 때,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밧줄로 짜인 만들어진 거대한 룬 문자.
그건 고대에서 명맥이 끊겨 버린 ‘결계’ 룬이었다.
그물에 몸을 부딪치려던 기생체는 정면에 큰 화상을 입으며 비틀거렸다. 그 스무 개가 넘는 그 끔찍한 다리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중심을 잡았다.
* * *
갑작스러운 습격.
실질적인 위협.
충분히 강해진 기생체는 그래서 더 크게 당황했다.
강한 만큼 오만했기에, 상처를 인내하는 법을 몰랐다.
기생체는 자신을 위협하고 있는 존재의 실체가 무엇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혈관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끊겼다.
그 뒤, 갑작스럽게 몸에 꽂힌 화살.
그리고 그렇게 연결된 밧줄을 타고 들어온 또 다른 화살.
그 화살에서 느껴지는 불에 타는 듯한 격통.
격노하여 화살이 날아온 곳으로 달려들었으나, 이유를 알 수 없는 벽에 부딪혀 다시 화상을 입었다.
어디가 얼마나 다쳤는가.
내 생명에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가.
어떤 판단도 내릴 수 없었다. 실체가 없는 공격은 미지의 공포가 되었고, 오만한 존재는 공포에 대한 대처법을 잊어버렸다.
기생체는 다리를 휘젓다가 결계에 의해 두 개를 잃어버렸다.
그제야 조금은 냉정해질 수 있었다.
우선 다시 숲의 중앙으로 가자, 그곳은 나의 영역이니.
그렇게 고개를 돌리는 순간.
자신에게 다가오는 인간의 존재를 처음으로 깨달았다.
한 손에는 조그마한 나이프를 든 채 그저 걸어오는 인간.
자신을 공격하던 존재의 실체.
기생체는 아주 찰나의 순간, 집게발을 쭉 뻗으며 몸통의 중앙을 가렸다.
“……리리.”
그때, 남자는 입을 열었다.
“생명체가 위기의 순간에 저도 모르게 가리는 곳은 급소일 확률이 높아.”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 순간 결정적인 실수를 해 버렸다는 사실을.
인간은 손을 뻗었다. 그곳에는 반지가 하나 끼워져 있었다.
인간이 가리킨 곳은 기생체 본인이 가렸던 급소.
두 개의 심장이 뛰는 바로 그곳.
쩌엉—!
반지가 빛나는 듯싶더니 약간의 파열음이 울렸다.
처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줄 알았다.
“키이…….”
기생체의 유연한 눈이 자신의 급소를 향했다.
그곳에는 알 수 없는 문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키이에에에에에엑—!”
격통이 몰려왔다.
밧줄을 타고 날아와 얕게 박혔던 몇 개의 화살들.
그 화살의 촉들이 갑자기 몸 안을 휘젓기 시작했다.
* * *
리빙 메탈. 혹은 골렘.
기생체의 몸 안으로 파고든 미약한 금속들은 룬의 명령을 받아 한자리에 모인다.
그 경로에 살점이 있든, 뼈가 있든, 심장이 있든, 룬의 법칙은 신경 쓰지 않는다.
아주 작은 골렘의 부품들은 기생체의 속을 헤집기 시작했고, 기생체는 격통에 몸부림쳤다. 버섯나무와 천장을 받치는 기둥이 무너져 내렸다.
인간은 그 모습을 그저 바라보았다.
성녀와 기사는 그런 인간을 그저 바라보았다.
입을 연 건 기사였다.
“……저분은 누구십니까?”
“음.”
리리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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