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72
72화 ep25. 모험가가 모험을 하는 이유 (4)
기도하는 동안은 눈을 감아야 한다.
이건 그저 규정이었다. 주신 교회는 신을 섬기는 이들이고, 신이란 온 마음을 담아 칭송해야 하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규칙으로 정해 놓았다.
신성한 힘을 빌려 기적을 사용할 때는 반드시 눈을 감고 예의를 다하라.
신의 자손이 아닌 존재에게는 기적을 베풀지 말라. 그들의 운명은 그 자체로 신의 섭리이니 신앙으로 관여하지 말지어다.
성녀, 비바치시모는 영물의 몸에 생긴 큰 상처들이 점차 아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들어 푸르게 빛나는 숲을 보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을 느꼈다.
눈을 감고 안정되는 영물의 박동을 느껴 보았다. 억센 털을 넘어오는 생명의 온기가 손바닥을 통해 점차 느껴졌다. 코끝을 스치는 달콤함의 정체는 알 수 없었으나, 단지 좋았다.
비바치시모는 고개를 들어 인간을 빤히 바라보았다.
인간은 웃고 있었다. 성녀의 행동에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숲이 당신들도 기억하겠네요.”
그 말이 뭔가 기뻤다.
자유, 그것에 대해서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저 기뻤다. 칭찬과 찬사는 수없이 받아봤으나, 지금 이 자리에서 지나가듯 툭 던지는 저 한 마디에 비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위를 올려다보았다.
열매들이 뿜는 빛에서는 어느샌가 온기가 느껴졌다.
이 숲에 처음 들어왔을 때, 그게 아름답다고 느꼈었다.
하지만 그건 이 숲이 보여 주는 단편일 뿐이었다.
아름다움은 화사한 풍경과 달콤한 냄새만으로 만들어지는 건 아니었다.
스스스—
천장에서 무언가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 숲이 영역을 넓히기 위해 뻗었던 노랑색 덩굴이었다. 그건 성녀의 앞까지 내려왔다.
그 끝에 매달린 하얗게 빛나는 동그란 열매.
톡—
떨어지는 열매를 양손으로 받았다.
설산에 위치한 주신교회에서는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열매였다. 그 안쪽에는 아주 작은 별이 뒤섞이는 듯한 소용돌이가 보였다.
어떻게 식물이 이런 열매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조각가의 별이 이 숲을 가호하기라도 한 걸까?
짝—
순식간에 열매의 빛이 꺼지며, 반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꽃은 아주 작고 보잘것없었다.
되다만 듯한 존재.
“…….”
되다만 듯한 존재. 성녀는 그것을 바라보며 동질감을 느꼈다.
그런데도 꽃은 만개했다. 성녀의 손 위에서 자그마한 봉우리를 열었다.
“오.”
인간의 탄성에 성녀는 고개를 들었다.
“그거, 나이를 많이 먹은 숲의 전통이에요. 경험이 많은 숲은 사람들이 꽃을 좋아한다는 걸 알거든요.”
“그래?”
어느새 로열 블러드도 손에 꽃을 하나 들고 있었다.
“무슨 의미입니까?”
기사도 손에 꽃을 든 채 말했다.
“고맙다는 거죠. 친구 하자는 의미도 있고. 나는 행운의 부적으로 취급했어요. 네 잎 클로버 같이.”
“네 잎 클로버?”
“있어. 그런 게.”
성녀는 다시 고개를 내렸다.
제 빛깔도 채 찾아가지 못한, 되다 만 꽃. 지금 숲이 내어 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 모습은 보잘것없었으나, 꽃에는 이곳에서 있었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래서 아름다웠다. 저 남자가 추구하는 가치가 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아름다움은 화사한 풍경과 달콤한 냄새만으로 만들어지는 건 아니었다.
아름다움이란 이야기에 담겨 있는 감정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이 숲이 살아남았다는 확실한 증거예요. 죽어 가는 숲은 꽃을 피우지 않으니까. 당신이 살렸네요.”
남자는 자신의 행동이 숲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었음에도, 기꺼이 성녀에게 그렇게 말해 주었다.
성녀는 바람에도 흩날려 버릴 것 같은 꽃잎을 조심스럽게 손으로 감쌌다.
* * *
“이건 어쩔 거야?”
리리가 물었다. 강선후는 기생체의 시체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쓸 구석이 없어. 너무 뒤틀려서 가죽도 너무 이상하고. 통째로 들고 가면 어떻게든 쓸만한 게 나올 수도 있긴 한데…….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네.”
그렇게 말하다가 기사를 바라보았다.
“그쪽이 가지실래요?”
기사는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처치 곤란일 것 같습니다.”
“그럼, 여기에 두고 가야겠다.”
강선후는 영물을 바라보았다. 아직 깨어나진 못했으나 그 호흡은 굉장히 평화로웠다. 잠이 들어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얘가 잘 분해해서 재활용할 거예요.”
“……정말 욕심이 없으신 분이네요.”
기사의 말에 강선후는 오히려 부정했다.
“저 욕심 엄청 많은데. 해야겠다 싶은 거 못하면 화딱지까지 나는 스타일이라서.”
기사는 어떻게 첨언하려다가, 그저 웃어넘겼다.
강선후는 숲의 심장을 잠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이 정도 숲이라면 씨앗이 있긴 할 거야. 그런데 오늘은 좀 회복하게 두고, 내일 오후쯤 돼서 다시 와 봐야겠다.”
“내일이면 될까?”
“안 되면 내일모레 다시 오면 되지?”
“……그렇겠지.”
너무나 당연하게 그렇게 말하는 강선후의 태도에 리리는 그저 납득했다.
강선후는 리리의 발치에 놓여 있었던 가방을 들어 올렸다.
“여기서 하룻밤 보내면 안전하겠지만, 그래도 나가는 쪽이 좋을 것 같아요. 숲도 회복에 집중해야 하니까.”
그들은 강선후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강선후는 너무나 쉽게 기생체를 잡았다. 레베카가 병력을 투입해야 한다고 판단한 그 존재와 맞섰다.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진행한 계획이라 넷 모두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장장 사흘에 가까운 작전이었다.
모든 일이 끝나자 누적된 피로는 한 번에 몰려왔다.
“당신.”
앞장서던 강선후가 고개를 돌려 리리를 바라보았다.
“나 졸려.”
“가서 빨리 자자. 침낭은 다 거기에 있을 테니까.”
“근데 배고파.”
“…….”
강선후는 기사를 바라보았다.
“그, 드시는 식량 하나만 빌릴 수 있을까요? 식사 준비하는 시간을 얘가 못 버틸 거 같아서.”
“얼마든지요.”
“대신에 어제 먹었던 그거 하나 드릴게요.”
사람들이 지쳐 있다는 걸 체감한 강선후는 걸음을 서둘렀다. 바깥의 차가운 공기가 가까워지고, 습기 가득했던 폐를 환기했다. 절로 심호흡이 나왔다. 정신이 조금은 또렷해지는 기분이었다.
“모스mohs.”
숲에서 조금 긁어 온 곰팡이로 간단한 부싯깃을 만든 뒤, 룬으로 불씨를 붙여 모닥불을 피웠다.
“리리.”
뒤를 돌아보자, 침낭 안으로 쏙 들어간 리리의 까만 머리카락만 보였다. 천천히 오르락내리락하는 침낭을 보고 강선후는 피식 웃었다.
강선후는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잠시 모닥불 앞에서 쉬다가는, 일어나 바위 위로 올라가 앉았다.
펑펑 내리던 눈은 언제부터인지 그쳐 있었다.
새하얀 평야 끝, 그 지평선에 걸쳐져 있는 산맥, 그리고 그 위에 떠 있는 천공섬.
강선후는 거기에 시선을 고정했다. 높이를 가늠하고, 거리를 가늠하고, 어떤 장애물이 있을지 추측했다.
가는 길에 머물 수 있는 마을이 있는지도 생각했다. 중간에 재보급을 받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쪽이 이로울 테니까.
생각은 빠르게 정리되지 않았고, 결론까지의 길도 멀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조급하지 않았다. 시간에 제한은 없었으니까.
그래서 좋았다.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성녀는 그 옆으로 다가와 천천히 무릎을 굽혀 쪼그려 앉았다.
눈은 그쳤지만 아직은 쌀쌀했다. 강선후는 재킷을 벗어 줄까 하다가 너무 참견하는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지금 성녀는 딱히 불편함을 느끼는 것 같지 않았으니까.
아니면, 고행에 익숙한 탓일지도 몰랐다. 강선후는 이런저런 망상이 머릿속에 자유롭게 돌아다니도록 두었다.
굳이 생산적인 생각만을 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성녀님은 안 주무세요?”
성녀는 그저 하늘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아, 칼 때문에 못 자겠구나.”
불편하겠네. 그 눈을 바라보니, 보라색으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게 바로 별의 자손들의 ‘식사’였다. 밤하늘에서 에너지를 끌어와 자신의 양분으로 삼는 것.
이런 게 너무나 당연한 세상. 이곳에서 얼마인지 모를 시간을 살았었으나 여전히 신기했다.
강선후는 다시 지평선 쪽으로 시선을 옮겼고, 성녀는 어느 순간 고개를 내려 강선후를 바라보았다.
말을 못 하는 자와 밤을 보내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그 칼, 왜 문 거예요? 예언자라고 들었는데, 예언이 하기 싫어진 거예요?”
성녀는 딱히 반응하지 않았다. 강선후도 딱히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저는 다음에 저 천공섬으로 갈 거예요.”
그러면서 성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서 관심이 느껴졌다. 기사가 성녀의 생각을 어떻게 읽어 내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저곳은 과거 황금의 시대에 건설된 왕국의 유적이라더라고요.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서 재밌는 거니까. 저기에 뭐가 있으려나?”
성녀는 그 말을 듣고 천공섬 쪽을 바라보다가, 손을 살짝 내밀었다.
그곳에 별빛이 모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건, 빛으로 벼려진 반투명한 성의 모형이었다.
강선후는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기적?”
성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별의 자손이라 할 수 있는 거?”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재밌게 사는 종족이네.”
강선후는 그렇게 말하며 성녀가 만든 성의 모형을 바라보았다.
“음, 맞아요. 저기에는 성이 있는 거 같아. 그런데, 보세요.”
성녀는 그 손가락을 따라 다시 천공섬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무리 봐도 성벽이 없어요. 보통 성이라고 하면 귀족들이 산 곳일 거고, 그런 곳은 방어가 중요하니 성벽의 흔적이라도 남아 있어야 해요. 멀어서 잘 보이진 않지만, 지어진 흔적도 없는 거 같지 않아요?”
성녀는 이번에, 탑을 만들었다.
“전초 기지? 저게 처음부터 하늘에 쭉 떠 있던 거라면 가능성이 있긴 한데……. 그렇게 생각하면 성벽이 없는 게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네.”
성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그 눈빛이 조금 반짝거렸다.
지금 피어오르는 감정은 낯설었다. 이건 뭘까? 조금은 부정적인 감정인 것 같아 씻어 내려고 했으나, 호기심 때문에 내버려 두고 관찰해 보았다.
그리고 바로 깨달았다. 성녀는 지금 이 남자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손을 거둔 성녀는 무릎을 모은 뒤 감싸 안았다.
이 남자는 저곳에서 뭘 할까?
남자를 빤히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강선후는 다시 천공섬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서 열정이 느껴졌다.
“…….”
그런데, 뭔가 달랐다. 이 사람은 지금 조금 당황스러워하고 있었다.
성녀도 고개를 돌려 천공섬 쪽을 바라보았다.
“……뭐지. 저건.”
성녀는 그 장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천공섬이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성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부릅떴다. 너무 멀어 확실하게 보이지 않은 탓이었다.
그 길이를 합치면, 천공섬의 좌우 폭의 절반 정도 되는 것 같은 날개.
그리고 지금 막 깨달았다.
저건 천공섬이 펼친 날개가 아니었다.
“……용이 사는 건가?”
인간은 추측성으로 내뱉었지만, 성녀는 그 판단이 확실하다고 느꼈다.
저건, 용의 날개였다.
신의 첫 번째 자손들.
어디에서 날아온 것도 아니었다. 저들은 풍화의 시대 중간에 돌연 모습을 감췄었으니까.
저건, 오랜 기간 웅크려 있었던 존재가 기지개를 켠 것과 같았다.
천공섬에는 용이 살고 있었다.
이 남자의 목적지는 저기가 아니던가?
성녀는 조금 당황했다. 이렇게 되면, 안 그래도 힘든 천공섬의 방문 가능성이 요원해질 수도 있었다. 용은 어쩌면 큰 재앙의 시발점일 수도 있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성녀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어느새 일어나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
그는 오히려 미소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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