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73
73화 ep25. 모험가가 모험을 하는 이유 (5)
다음 날 해가 뜨고 한참의 시간이 지났는데도 리리는 일어나지 않았다.
극도의 긴장 속에서 며칠 동안이나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않고 버텼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강선후는 여유를 가지고, 본인도 조금 잠을 청하며 오전을 보냈다.
기사는 경비를 자처했다. 이 사람이 잠들어 있는 동안에는 조금은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으니.
오후가 된 지 한참 지나고 나서야 리리는 눈을 떴다. 아침마다 보여 주는 특유의 사자 머리를 한 채, 멍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조금은 부끄러워했다.
강선후는 어떤 씨앗을 손에 들고 있었다.
숲의 씨앗.
지하에 있는 숲이 그에게 건넨 선물이었다. 강선후는 이 물건을 이용해서 천공섬으로 닿을 생각이었다.
지하 숲의 입구는 묘하게 생긴 뿌리들로 반쯤 틀어막혀 있었다.
문지기를 자처하던 거북이가 사라졌으니, 자연은 변한 상황에 적응을 준비하고 있었다.
“깨우지 그랬어.”
“휴일에 뭐하러?”
기사는 웃었다.
“로열 블러드가 이렇게 융통성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묘하네요. 그건 칭찬이려나.”
“좋은 뜻입니다. 그들은 귀족의 품격에 온 인생을 바친다 들었거든요. 오히려 이쪽이 저는 더 편하게 느껴집니다.”
리리는 챙겨 온 빗으로 적당히 머리를 정리했다. 저렇게만 해도 인상이 불결해 보이지 않는 게 강선후 입장에서는 특이하게 보였다.
이계의 인종들은 각자 신기한 점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성녀님이 당신들의 이름을 궁금해하십니다. 저부터 소개하자면, 전 레베카입니다. 성은 없습니다.”
“리리, 이 사람은……. 간서누.”
“강선후!”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어. 어디 언어인지도 모르겠고.”
성녀는 그런 둘을 빤히 바라보았다. 해가 뜨면 그에 비례하여 어두워지는 눈동자였다.
많은 종족이 이 눈빛 때문에 별의 자손을 부담스럽게 생각하곤 했다.
리리가 깨자마자 강선후는 바로 식사를 준비했다.
그리고 이들이 식사하는 동안.
“아니, 진짜 용이었다니까?”
“믿는다니까?”
“진짜였다고! 내가 봤어! 천공섬이랑 거리가 이렇게나 먼데, 여기에서 그 날개가 보일 정도였다니까?”
“아니, 믿는다니까?”
“막 날개를 펼치는데, 이 거리에서도 그 크기가 보일 정도면 얼마나 큰 거야? 어떻게 생겼을까? 왜 저 천공섬에 사는 거지?”
“……에효.”
리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리리도 그 말을 듣고 놀랐었다. 이 시대에 용을 직접 목격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용을 봤다는 이야기는 허풍쟁이들의 단골 소재였다.
하지만 강선후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온 순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 강선후는 쉬지 않고 용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나열했다.
“대체 그 많은 이야기는 어디서 들은 거야? 나는 처음 들은 설화들이야.”
지구에 있는 용에 대한 설화들이니 당연했다. 강선후는 딱히 그 부분에 대해 대답을 하지 않았다.
리리는 그런 강선후를 바라보다가는, 이야기를 돌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성녀님은 이제 뭐 하시나요?”
교회에서 벗어날 일이 없는 성녀가 왜 여기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이는 강선후의 뜻이었다. 강선후는 그런 이유에 별로 관심이 없었고, 리리도 그 판단에 동의했다.
레베카는 성녀를 슬쩍 바라보다가 말했다.
“성녀께서는 남쪽에서 일어난 성좌의 승천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 이곳으로 오셨습니다. 한 시대에 한 번 간신히 일어나는 사건이니까요.”
“구경하러?”
“성좌의 승천은 신앙적으로도 중요한 사건이니까요. 그래서 아마 이제 돌아가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구나. 짧은 여행이었네요.”
“로열 블러드와 인간께서는 이제 천공섬으로 출발하십니까?”
강선후는 어느새 짐을 다 챙기고 말 안장에 매달아 뒀다.
“그렇죠. 지금까지 왔던 것보다 두 배는 더 가야 할 거 같은데. 조금 오래 걸릴 거 같긴 하네요. 여기까지만 해도 한 달은 걸리지 않았나?”
강선후는 저 멀리, 산맥을 바라보았다.
어젯밤 달빛을 등지고 펼쳐진 용의 날개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리리.”
“응.”
“갈 준비하자.”
만남만큼이나 헤어짐은 빨랐다. 이 인간은 여정 중 만나는 행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때.
“…….”
성녀가 가만히 다가가 옷깃을 슬며시 잡았다. 강선후는 등자에 발을 올리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성녀가 그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인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성녀를 바라보다가 레베카 쪽으로 눈을 돌렸다.
레베카도 이유를 모르겠다는 뚱한 표정이었다.
“……아쉬우신가?”
그 이유는 아닌 듯했다. 레베카는 성녀에게 다가갔다.
성녀는 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동북쪽이었다.
레베카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아는 듯했다.
그 표정이 조금 심각해졌으니까.
“……진심이십니까?”
성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성녀님의 결정에 반할 권한은 없습니다. 하지만…….”
레베카는 고민했다. 그 시간이 짧지 않아 무시 못 할 정적이 이어졌다.
“알겠습니다. 강선후 님, 리리 님.”
성녀와 기사는 말에 탔다.
“따라와 주시겠습니까?”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성녀님께서 그대들에게 무언가를 드리고 싶은 듯합니다. 가서 보여드리겠습니다. 별로 멀지 않습니다.”
강선후와 리리는 서로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렐릭시나 등에 올라탔다.
“크릉—!”
“푸르르…….”
렐릭시나가 크릉대자 기사의 말이 위축되었다.
“그럼 못 써!”
“크르릉—!”
“쓰읍!”
“……히힝.”
“옳지.”
레베카는 불타는 갈기를 가진 말을 잠시 바라보다가 앞장서서 출발했다.
그 말대로 거리는 멀지 않았다. 근처에 휑한 바위산 하나가 있었는데, 그 안쪽에 작은 틈새가 있었다.
틈새라고는 하지만, 그 안에 작은 구조물 하나는 충분히 있을 정도의 크기.
그리고 그 생각대로 정말 구조물이 있었다.
“……이건.”
리리는 그게 뭔지 알고 있었다.
“비프로스트.”
“그게 뭔데?”
강선후가 말에서 내리며 물었다.
“고대 왕국이 대륙 전역으로 확장할 수 있었던 이유.”
돌인지 금속인지 알 수 없는 재질로 이루어져 있었다. 링 형태의 구조물이었다. 높이는 대략 3미터 이상, 폭도 그 정도 되어 보였다.
그 테두리를 따라 룬 문자가 그려져 있었는데, 발동될 수 있는 형태가 아니었다. 그 요소를 조각내어 일렬로 풀어 놓았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이런 거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고대의 유물이 대체로 다 그랬지만, 이 역시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겉에는 종류를 알 수 없는 이끼 자국만 남아 있었다. 아주 오래된 흔적이 엿보였다.
강선후는 저도 모르게 그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
따뜻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작동한 기계처럼.
“이건 다리입니다. 하나의 비프로스트는 정해진 다른 비프로스트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레베카가 다가왔다.
“이 물건의 경우에는 교회의 총본산 뒤쪽, 산 능선에 있는 비프로스트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 그래서.”
강선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며칠 만에 그 먼 거리를 오실 수 있었던 거구나?”
“그렇습니다. 근데…… 이 물건은 교회 내부에 전해져 내려오는 기도로만 작동시킬 수 있습니다.”
“……그럼 난 못 쓰는 거 아냐?”
그때, 성녀가 다가와 강선후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강선후가 뒤를 돌자, 성녀가 그의 손을 양손으로 꼭 잡았다.
가까워진 그 눈빛은 여전히 평온했다.
손에서 뜨거움이 느껴졌다.
별의 자손은 원래 뜨거운 손을 타고난다. 이전에 순례자의 손에 닿았을 때 깨달은 사실이었다.
성녀의 손이 미끄러지듯 강선후의 손을 놓았다.
그러자.
“…….”
그 손바닥에 미세하게 새겨진 기도문이 적혀 있었다.
“비프로스트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 보십시오.”
강선후는 레베카와 성녀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조용히 비프로스트의 한가운데 허공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지직, 지지지지직——
무지개를 이루는 칠색의 빛이 링의 일곱 틈새에서 조금씩 뿜어져 나왔다.
물에 희석되어 가는 물감처럼, 그렇게 링 가운데의 허공을 채우더니.
쩌엉—.
균열을 만들어 냈다.
“…….”
강선후는 뒤를 돌아보았다.
성녀는 여전히 평온한 눈빛으로 손을 모은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마워요. 왜 주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에 또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레베카가 말했다.
강선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저 예전에 탐험할 때, 반년 동안 똑같은 사람을 네 번 만난 적 있어요. 서로 어디 간다고 이야기도 안 했는데.”
리리도, 기사도, 성녀도 그 얘기를 그저 들었다.
“서로 목적이 비슷하면 한 번 이상은 무조건 다시 만나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성녀님이랑 저랑 원하는 게 같다면.”
강선후는 자신이 한 말이 만족스러웠는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을걸요?”
“그곳에 용이 있는데, 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솔직히, 용에 대해서는 안 좋은 전승이 많습니다.”
“용이 있어서 가는 거예요.”
“그…… 렇군요.”
“이 사람 완전히 미쳤으니까 그러려니 하시는 게……. 아야!”
강선후는 리리의 이마에 가볍게 딱밤을 때렸다. 리리는 이마를 문지르며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많이 편해졌네. 이제는 손도 대고.”
“너야말로.”
성녀는 그런 그들을 가만히 보다가 양손을 가슴에 대고 고개를 숙였다. 베일이 흘러내려 그 얼굴을 조금 가렸다.
인사말은 레베카가 대신했다.
“아홉 주신이 그대의 여정을 가호하기를. 성녀께서 그대의 여정을 축복합니다.”
“즐거운 여행 되기를 바랄게요.”
둘은 각자의 방식으로 인사를 나눴다.
“……기사님?”
“예?”
“그 기사왕이요. 결말이 그렇게 비극적이진 않았어요.”
“무슨 의미십니까?”
“자부심을 가지셔도 된다는 의미예요.”
“…….”
“다음에 만나면 더 얘기해 드릴게요.”
그리고 강선후는 리리의 손을 잡고 비프로스트의 균열 안으로 들어갔다.
주저함이 없는 모습이었다. 아마, 아쉬움이 남지 않았기에 그랬을 것이다.
성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레베카는 서서히 가동을 멈추는 비프로스트를 바라보다가, 그대로 입을 열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
“비프로스트의 기도문을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그 말대로였다.
비프로스트를 작동하는 기도문은 복사되는 게 아니라, 전달되는 것이었다.
성녀는 이제 그 권한을 잃었다.
“물론 주신교회에 보고한다면 다시 받을 수도 있지만……. 그 기회 없이 징계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어쩌면 경질될 가능성도 큽니다.”
성녀는 자신의 수호 기사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여전히 평온했다.
그 감정을 읽은 기사는 쓴 미소를 지었다.
“……제가 이야기해 봤자 소용이 없네요. 성녀께서 저보다 더 알고 계실 테니.”
인간을 만난 닷새 남짓의 시간.
그 짧은 시간 동안 성녀가 이렇게 바뀌었다는 게 놀랄 정도였다.
이제는 성녀의 눈빛에서 슬픔이 보이지 않았다.
짙은 고뇌는 아직 그 깊숙한 곳에 남아 있는 듯했으나, 그보다 평온함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레베카는 그게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더 말하고 싶지 않았다.
둘은 바위틈에서 나와 북쪽을 바라보았다.
비프로스트가 없다면, 두어 달이 걸릴 거리를 움직여야 하리라.
크게 위험할 건 없었지만, 그건 고된 여정이 될 게 분명했다.
성녀는 레베카의 옷깃을 잡았다.
레베카는 고개를 돌렸다.
성녀는 손가락으로 서쪽을 가리켰다.
저 멀리, 대수림이 있는 곳이었다. 최초의 성좌, 엘신의 후예가 살고 있다는 전설 속의 숲.
“……돌아가지 않으십니까?”
성녀는 그저, 레베카를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저곳을 가리킬 뿐이었다.
레베카는 그런 성녀의 눈에 담긴 의미를 읽어 냈다.
—자유
저 인간이 움직이는 원동력인 그것이 뭔지 이해하고 싶었다.
이게 방법이 아닐 수도 있으나, 저 인간은 이렇게 살았으니까 그저 따라 해 보고 싶었다.
어쩌면 그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는 말했다.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고.
그렇다면 이게 재회의 열쇠가 되지 않을까.
레베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에 올라탔다.
“타세요. 조금 거칠게 움직일 겁니다. 거기에 익숙해지셔야 할 거 같거든요.”
성녀는 레베카의 허리를 감싼 채 고개를 끄덕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