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79
79화 ep26. 여정, 하늘로 (6)
* * *
강선후는 용에서 내렸다.
마을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쿠그그그—
마을에서 엔진에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려왔다. 꽁꽁 숨겨 놓았던 고화력 화기가 작동되는 소리였다.
서지아는 문뜩 용 앞에서 나이프나 내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초라함을 느꼈다.
난 지금 뭐 하는 걸까.
엘프를 설명하는 문장이 몇 개 있었다.
정착하여 은둔하는 종족.
집을 가장 원하는 종족.
첫 번째 성좌, 엘신을 배출해 낸 종족.
서지아는 이렇게 살지 않는 극소수의 엘프 중 하나였다. 원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그저, 방랑자의 숙명이 태생에 맞게 살지 못하도록 그녀에게 가면을 씌우고 끌고 다녔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엘프의 태생에서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니었다.
엘프들은 많은 걸 기억한다. 장생종 중에서는 세상과 가장 가까운 이들이니.
그래서 서지아는 용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풍화의 시대 초기, 어느 순간 일시에 사라져 버린 불멸의 종족.
그때, 대륙을 휩쓴 대전쟁이 처음으로 일어났다. 신의 첫 번째 자손마저 이 시대를 버렸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혼란과 불안에 빠진 탓이었다.
불멸자의 존재성은 그토록이나 선명한 것이었다. 단순히 몸을 감췄다는 이유만으로 역사에 흉터를 새길 만큼.
마주하기만 해도 필멸자의 한계를 깨닫고 겸손해지게 된다고 들었다.
마주하기만 해도 자신의 미천함을 깨달아 절망하게 된다고 들었다.
마주하기만 해도 바람 앞 촛불처럼 공포에 떨어 눈물만을 흘리게 된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 모든 전승은 거짓이 아니었다.
용이 이해할 수 없는 비행을 보이며 이곳에 도달했을 때, 서지아는 이 모든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그럼에도 검을 꺼내어 맞선 건 돌아올 누군가를 기다리는 탓이었다.
황금의 시대를 선언한 그 인간에게, 서지아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이 순간에서야 자신의 진짜 마음을 깨달았다.
엘프답게 살고 싶었다. 그러려면 방랑자의 옷을 벗어야만 했다.
그 인간이 그렇게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 등에서 내려오는 인간을 봤을 때 허탈감은 더욱 심했다.
불타는 갈기를 가진 말을 타고 간 인간이, 돌아올 때는 용을 타고 돌아왔다.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신화의 시대가 수많은 로크 벨라에 의해서 묻혀 사라졌는데, 이 인간은 홀로 신화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불멸자는 젊고 늙음이 없음을 알아라 건방진 핏덩이 녀석아! 내가 한숨을 내쉬어도 너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리라!」
“아니,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저를 좀 인정하셨던 거 같은데, 왜 갑자기 다시 핏덩이에요?”
「필멸자는! 무엇을 하든 필멸자이니라!」
인간은 용을 올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그 뒤에서 내린 뱀파이어 역시 조금은 위축되어 있었으나, 용을 바라보는 표정에는 친근함이 서려 있었다.
필멸자와 불멸자가 서로를 친구로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이건, 오래된 전승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전설이 현실의 형태로 눈앞에 있었다. 그래서 너무나 이상한 모습이었다.
이 순간은 설화가 되어 남을 것이란 사실을 서지아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하나 강선후는 자신의 업적에 아무런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멋있었어요. 너무 빨라서 정신은 없었지만. 그렇지? 리리?”
“……응.”
「네 녀석들은 불멸자가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서 알게 된 최초의 필멸자일 것이다. 그 영광을 평생 가슴에 새기며 살지어다.」
“이걸 어떻게 잊어요?”
강선후는 그저 용에 타는 것 자체가 굉장히 즐거운 모양이었다.
“잊지 못할 거예요.”
용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돌려보았다. 마을과, 바로 앞에 있는 인간들과, 그리고 강선후와 리리를 바라보았다.
「……여기가 너의 집이냐?」
“네.”
「네놈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에 비해서 초라하구나. 이 인간들은 네가 뭘 할 수 있는 자인지 알고는 있는 거냐? 격에 한참 못 미치는 대접이니라.」
강선후는 주변을 돌아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알아야 하나요? 귀찮아지기만 할 텐데…… 별로 관심도 없어요. 그리고 난 만족해요. 예쁘지 않아요? 아기자기하니.”
「노쇠한 숲지기의 쉼터 같구나.」
“그래서 좋은 거예요.”
용과 강선후, 리리.
그리고 차소희, 서지아, 진서연, 정지훈.
이들은 같은 공간에 있었으나, 다른 세상을 살고 있었다.
용은 이들을 한 번씩 훑어보았다.
「널 바라보는 눈빛이 나쁘지만은 않구나. 너의 격(格)을 이해하진 못하나, 너의 덕(悳)은 알고 있는 자들이리라.」
“꽤 멋있는 말을 하시네요?”
「불멸자의 기억은 로크 벨라와 함께 사라지지만, 격은 여전히 내 안에 있다. 건방진 녀석아. 이제 뭘 할 것이냐?」
강선후는 품속에서 황금 지침을 꺼내었다. 그 뒤에는 세 개의 보석이 박혀 있었다.
그 지침은 동북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용은 그걸 바라보며 말했다.
「기사가 떠난 방향이군.」
“기사요?”
「천공 섬의 문지기 역할을 하는 기사가 하나 있었다.」
“영감님이랑 같이 그곳에서 있었다고요? 영감님은 황금의 시대부터 그곳에 있었잖아요.”
「그가 불멸자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나, 그 역시 어떠한 소명을 위해서 살아왔다는 것 정도는 기억한다. 항상 천공섬에 있었으나, 백 년 전 동쪽으로 떠난 이후로 돌아오지 않더군.」
“백 년 전…….”
리리가 생각을 더듬었다.
“황제 살해 사건 때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필멸자의 일을 내가 어찌 알겠느냐?」
강선후는 지침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들어 말했다.
“영감님은 이제 어쩌실 생각이세요?”
「용의 귀환. 내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러 가야 한다. 그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나조차도 시험에 들 정도로.」
강선후는 미소를 지었다.
“친구의 부탁이 그렇게 중요한 거예요?”
「이 자리에 나 대신 그가 있었더라도, 그 역시 나와 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그러더니, 용은 머리를 내려 강선후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하나, 네놈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면 지금 떠나지 않겠다.」
“아뇨. 영감님은 소명을 다해 주세요.”
「……네놈은 항상 날 의문에 들게 만드는구나. 네놈이 원한다면 난 널 동쪽으로 데려다줄 수 있다. 라 시마가 이 땅을 횡단하는 것보다 우리의 도착이 더 빠를 텐데, 어째서냐? 혹시, 또 날 과소평가하는 것이냐?」
“영감님. 저는 관광객이 아니에요.”
「…….」
“탐험은 그 목표가 아니라 과정에 의미를 두고 있어요. 제가 관광하듯 목표점만 찍고 왔다면, 영감님도 만나지 못했을 거예요.”
용은, 그 눈을 바라보았다.
「……미친놈이구나.」
“그런 말 자주 듣네요. 요즘 들어서 더더욱.”
키호테는 날갯짓을 시작했다.
비현실적이었다. 우아하게 위아래로 움직일 뿐인데, 그 몸은 안정적으로 여유롭게 솟아올랐다.
「들어라.」
용은 동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세상이 바뀌지 않았다면, 내가 기억하는 영광이 아직도 이 땅에 있다면.」
용이 바라보는 방향에는 작은 산맥이 있었다. 강선후는 그 너머에 엘신 포리에리라 불리는 숲이 있다는 것과, 그 숲에 유적이 하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저쪽에는 ‘존재해선 안 되는 설산’과 ‘바닥이 없는 나락’이 존재한다.」
“오…….”
강선후는 그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기사가 있다면 그곳에 있지 않겠느냐.」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역사적인 만남은 언제나 역사적인 장소에서 일어나기에 그렇다.」
“그거, 진짜 마음에 드는 말이네요. 기억해 둘게요.”
「그 기사 역시 왕좌의 자격을 갖춘, 열둘 지배자 중 하나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자가 그걸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용은 위를 올려다보았다.
지금은 푸르나, 두 개의 태양이 지고 나서는 검보랏빛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는 하늘.
동족은 그 하늘의 장막 건너에 있을 터였다.
「……고된 여정이겠구나.」
하나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용들에게 이 땅이란 애증의 존재였다.
실망했기에 떠났으나, 고향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만약에 정말로, 진실된 황금의 시대가 온다면, 그 귀환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영광이었다.
키호테는 동족의 슬픔을 잊지 않았다.
최소한 키호테는 그렇게 생각했다.
고개를 내려 강선후를 바라보았다.
「고행은 너 역시 마찬가지이니라. 솔직히 불안하구나. 네놈의 정신에서는 격이 느껴지나, 그 몸은 나약하기 짝이 없으니. 죽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
“아뇨.”
리리와 서지아는 강선후를 바라보았다. 둘 다 그 대답에 조금은 당황하고 있었다.
“죽을 수도 있죠. 솔직히 장담 못 해요. 내가 아무리 원칙주의자라고 하더라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 건 오만이니까.”
「그래도 떠나겠느냐?」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요?”
그 말을 듣고 용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고개를 서쪽으로 돌렸다.
그곳에는 커다랗고 거친 바위산이 하나 박혀 있었다. 셀피가 사는 산의 뿌리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는 곳이었다.
용의 입에서 불꽃이 일어났다.
“……?”
강선후는 본능적으로 리리를 감쌌다.
불꽃이라 느꼈으나, 불꽃이라는 호칭으로는 설명하기 부족했다.
닿으면 찔리고 베일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날카롭게 일렁이는 불꽃.
그건 불꽃이 아니라 불꽃으로 이루어진 칼날에 가까웠다.
그리고.
콰아아아—!
네 명의 필멸자는 용의 숨결을 직접 목격했다.
전설은 간혹 과장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축소된다는 걸 알았다.
불꽃으로 이루어진 송곳은 하얗게 빛났다. 그 경로에 있는 모든 걸, 심지어 정기마저 태워 버리는 절대적인 숨결.
그건 바위산에 닿더니 거칠게 뿌려진 붉은 물감처럼 산개했다.
폭풍이 지나간 뒤, 강선후는 파묻었던 고개를 들었다. 피부에서 옅은 화상이 느껴졌다.
왜 갑자기 키호테가 이런 행동을 했을까?
강선후는 고개를 들어 바위산을 확인했다.
저 멀리 있는 바위산의 한 면이 녹아서 평평해졌다.
그리고, 그 위에 정으로 새긴 듯한 하나의 문자.
그건 하나의 거대한 룬 문자였다.
“……세상에.”
리리가 침묵을 참지 못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강선후는 고개를 돌려 용을 바라보았다.
“당신의 이름인가요?”
「나의 진명(眞名)이다.」
“…….”
「세계가 시작한 뒤, 신을 제외하고 나의 진명을 아는 자는 둘뿐이다.」
용은 강선후를 빤히 바라보았다.
「왕, 그리고, 네놈.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오랜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아라.」
“왜 알려 주시는 거예요?”
「네놈이 거대한 위기에 닿았을 때, 네놈이 힘이 부족하여 소명을 다 하지 못할 것 같을 때, 내 진명을 사용하라. 진명에는 그 자체로 힘이 있으니.」
용은 고개를 올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부름은 내 어디에 있든 세상을 횡단하여 내 귀에 들어오리라.」
용의 날개에서 다시 광채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강선후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다.
날개막에서 시작된 광채는 안개처럼 퍼져나가며 용의 신체를 감쌌다.
용의 날갯짓이 시작되었다. 광풍이 불기 시작했다.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을까요? 영감님?”
「모른다. 이놈아. 네놈이 살아 있으리라는 확신이 없다고 말하니 나도 확신을 할 수 없다.」
광풍은 강해졌다. 강선후는 그 모습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았다.
그렇기에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 이곳의 자연이 용을 받들어 모시고 있었다.
이게 불멸자가 가진 격이었다.
「하나, 네가 실패하더라도.」
신이 활을 쏜다면, 그 화살은 이런 소리를 내며 날아가리라.
그런 확신이 드는 굉음과 함께 용은 거대한 광채와 함께 솟구쳐 올라갔다.
「불멸자가 인간 강선후를 기억하리라.」
용은 유성이 되어 하늘을 올랐다.
리리와 강선후를 등에 태우고 행한 비행은, 그저 이들을 배려하기 위했을 뿐이었다.
저게 진짜 용의 자유였다.
“……선후 씨?”
짧지 않은 시간 침묵이 흐른 뒤, 처음으로 입을 연건 진서연이었다.
“저랑, 약속했죠……?”
진서연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울었던 모양이다. 그 눈가가 조금 붉어져 있었다.
“여정 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 주기로……. 그렇죠? 모든 이야기를 다 해 줄 필요는 없어요. 그래도, 그래도 뭘 보고 뭘 느꼈는지 듣고 싶어요!”
연구의 목적도,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진서연은 그저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강선후는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저 멀리 유성 하나가 하늘을 거꾸로 오르고 있었다.
그게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고정하다가 입을 열었다.
“앉아 봐요. 개쩌는 이야기를 해 주지.”
강선후는 서쪽, 키호테의 진명이 적혀 있는 바위산을 바라보았다.
그만이 읽을 수 있는 언어로 적힌 그 이름을 머릿속 깊숙한 곳에 새겨넣었다.
돈 베르니카 키호테
DON BERNIKA QUIJOTE
길을 여는 여정을 떠나는 자.
그의 이름이 가진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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