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82
82화 ep27. 휴식, 이 또한 여정 중 하나 (3)
장거리를 비행한 드론의 최종 목적지는 동쪽에 있는 거대 한 균열이었다. 그곳에서 거대한 문어 다리가 올라와서 드론을 부쉈다.
“…….”
차소희는 의자에 앉아 팔짱을 끼었다. 숙취 가득한 그 얼굴에 고민이 서리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차소희는 이 상황을 꽤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OWIC은 이계에 지구를 노출시키지 않는다는 협약을 맺었어. 그런 말로 국제단체를 진정시켰거든.”
“사람들 반발이 심했나 보네.”
“뭔지 모르는 차원문이 전 세계에 일시에 열렸는데 좋아할 사람이 몇이나 있겠어? 특히 한국에서는 서울 한복판에서 열렸으니까 더 심했지. 그래서 OWIC은 이계에서의 활동을 심하게 제약했어. 봐 봐. 공사 장비도 못 들여와서 건물도 3층 이상 못 짓잖아.”
“그런데?”
“그런데, 자기들은 드론을 운영하고 있다고?”
차소희는 이 사실에 뭔가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이거 동쪽이야? 동쪽에는 장벽 현상 때문에 위험하다고 접근 금지되어 있었단 말이야. 그것도 자기들이 어긴 셈이네?”
차소희는 이 사실에 꽤 충격을 받은 모양이지만, 나로서는 놀랄 것도 없었다. 이미 OWIC은 앞뒤가 잘 맞지 않는 회사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솔직히 내 알 바 아니기도 하고.
나는 그저 이 영상이 내게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동쪽, 종을 울린 유적이 있는 방향이었다.
그 너머에는 큰 사막이 있고, 그곳에는 바닥이 보이지도 않는 거대 문어가 사는 균열이 있었다.
그게 키호테가 떠나기 전 말해 준 바로 ‘바닥이 없는 나락’의 정체였다.
생각보다 빠르게, 어쩌면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움직일 때가 된 거다.
리리는 눈을 비비며 방 안에서 나왔다. 차소희는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
“리리 잠옷, 내가 골라 준 거네? 잘 어울린다.”
차소희와 함께 동대문에 들렀다가 사 온 거지.
리리는 차소희와 날 바라보다가 이계 언어로 물었다.
“지금 바로 동쪽으로 출발하려고?”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바로는 아니니까 좀 쉬고 있어.”
“어디 가려고?
“여관에 좀 갔다 오게.”
“같이 가도 돼?”
나는 차소희를 바라보았다. 리리의 말을 전달하자 차소희는 문제 있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문제 될 거 있나? 지금 베이스캠프에 사람 한 명도 없을걸? 그리고 지난번 유령 사태 때 이미 들어왔는데도 경비대장님이 아무런 말도 안 했잖아.”
그렇지. 내 생각에도 문제 될 건 없었고, 리리한테는 이제 굳이 애써서 숨기고 싶진 않았다.
핸드폰을 챙긴 뒤 마을로 출발했다.
마을은 한산했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경보 발령 때문에 이러는 거지?”
차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안 풀렸으니까 우리 휴가는 안 끝난 셈이지. 후후.”
차소희는 오늘 출근 안 해도 될 이유가 생겼다는 사실에 마냥 즐거운 모양이었다.
여관으로 들어가자 텅 빈 의자와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여관은 조명도 제대로 켜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도 카운터에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민지 씨! 오랜만이에요.”
“어? 선후 씨? 돌아오셨어요?”
윤민지는 여전한 모습 그대로 나무 그릇을 닦고 있었다.
“아직도 여기서 일하고 있네요?”
“이제 제가 여기 주인이네요.”
“주인이요?”
뭔가 해탈한 듯한 말투의 윤민지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인수했어요. 사장 새…… 그놈이 경찰서 들락날락하다가 헐값에 올리길래 냅다 물었거든요.”
“민지 씨 생각보다 부자였네요?”
윤민지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계 창업 지원 대출받았어요. OWIC에서 만든 지원 정책이라고 해야 하나. 영끌한 거죠. 고정 금리니깐 비벼 볼 만하다 싶어서요.”
“와, 나도 때려치우고 창업이나 할까. 그럼 여기 주모네요?”
차소희의 말에 윤민지는 헛웃음을 지었다.
“주모요? 소희 씨는 외상이나 좀 갚아 줄래요? 외상 장부도 지금 다 떠안았거든요? 무슨 장사를 이따위로 한 거야 진짜.”
“헤헤…….”
차소희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딴청을 했고, 나는 바로 용건을 내뱉었다.
“그, 서연 씨하고 지훈 씨 아직 여기 있나요?”
“누구요? 이름으로 말하면 잘 모르는데.”
“OWIC 쪽 사람들이요.”
“아, 어제 오신 그 두 분? 네. 아마 어제 유일한 손님일걸요?”
아직 자고 있으려나?
급할 건 없다. 나는 그냥 테이블에 앉았다.
“장사하시죠?”
“그럼요. 커피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뱀파이어 아가씨는?”
나는 리리를 바라보았다.
“……커피가 뭐야.”
“얘도 커피요.”
윤민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외로 리리를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는 모양이었다.
이건 이계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었다. 자기가 모르는 게 있어도, 문제가 없어 보이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었지.
마지막으로 윤민지가 차소희를 바라보자.
“주모! 여기 까르보나라랑 맥주 한잔 시원하게 말아 오시게!”
얘는 또 헛소리를 시작했다.
윤민지는 한숨을 쉬면서도 딱히 따져 들지 않았다. 말은 저렇게 하지만, 차소희가 외상을 진짜 떼먹고 그러지는 않는 모양이지.
그와 동시에, 위층으로 연결된 계단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다리부터 보였지만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으아……. 어제 그렇게 드셔 놓고 맥주가 또 들어가요?”
“알코올은 탄산으로 씻어야죠!”
“어제 기억은 나요?”
“아뇨!”
진서연은 머리를 잡으면서 내려왔다.
“그, 식사되죠? 해장 되는 거로 아무거나 부탁할게요. 커피도요.”
“토마토 스프면 되겠죠? 토마토 스프 하나, 커피 셋, 맥주 하나.”
진서연은 물 한 잔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지훈 씨는요?”
“어젯밤에 바로 차원문 타고 넘어갔어요. 회사에서 찾아볼 게 있다고.”
어제 나눈 대화가 기억났다.
“천공의 기사는 분명 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착각이 아니니, 따로 찾아보겠습니다.”
아마 회사로 복귀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거다.
그렇다면 거기에도 조금 더 기대하면 좋겠지.
“그러는 선후 씨는 아침부터 무슨 일이에요? 볼일 있어요?”
나는 핸드폰을 꺼냈다. 겉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핸드폰이었는데, 화면을 켜기도 전에 진서연의 표정이 달라졌다.
“……어디서 얻었어요?”
“뭔지 알 거 같아요?”
“우리 회사 직원용 디바이스인데.”
뭔가, 구분하는 방법이 있는 모양인데, 거기에는 난 관심이 없었다.
그 안에 있는 영상 목록을 보자 진서연이 한숨을 쉬었다.
“……업무 자료를 핸드폰에 저장하는 건 규정 위반인데, 하여튼 지키는 사람이 아무도 없네요.”
원래 그렇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규정을 잘 지키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건 나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체감했다.
특히, 감시를 매시
간 받지 않는 곳에서는 그게 더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건설 현장이라든가.
“서연 씨도 그 부분에 대해선 좀 무법자 아닌가요?”
“그러네. 내가 할 말은 아니지. 뭘 가지고 오셨는지 볼까요?”
영상이 재생되었고, 끝으로 갈수록 진서연의 표정은 점점 굳기 시작했다.
“어때요?”
“…….”
“저 북쪽으로 갈 때도, 서연 씨가 고열 지대에 대해서 알려 줬잖아요. 이번 목적지는 여기거든요? 아시는 게 있나 싶어서.”
“잠시만요.”
진서연은 핸드폰을 가져가 이것저것 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떤 창을 띄워서 내게 보여 줬는데…….
날짜가.
“……3년 전?”
“정확히는 3년 10개월 전이네요.”
“…….”
내가 착각하고 있는 건가?
차소희도 이걸 보고는 맥주잔을 입술에 댄 그대로 굳었다.
“차원문이 열린 지 얼마나 지났다고 했었죠?”
“민간 개방된 지는 2년 2개월, 발생 시기만 따지면 2년 9개월째네요.”
이건, 차원문이 발생한 지 1년 전에 촬영된 영상이었다.
진서연은 다시 핸드폰을 가져가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저 이제 결심했어요.”
“어떤 결심이요?”
“회사에 정떨어졌어요. 탐험가 길드 아직 구인하세요?”
“뭐…….”
나쁠 거 없지?
“퇴사한다는 이야기인가요?”
진서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가 이 회사에 남아 있는 쪽이 선후 씨에게 더 도움 되겠죠?”
제법 유쾌한 대답이었다. 틀린 말이 아니지.
이 영상은 진서연에게 어떤 다짐을 하게 된 계기가 된 모양이었다.
하긴, 나 같아도 그렇다. 선임 연구원급이 되는 사람마저도 이렇게 속이는 건 기만이나 다름이 없다.
“제가 한 연구가 의미가 있을까요? 거짓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연구가 무슨 쓸모가 있을까요?”
“누님 말씀이 맞네요. 저는 솔직히 말하면…… 회사가 우리를 속이고 있다는 생각까지는 했었습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정지훈이 사복 차림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정장을 입지 않은 정지훈은 처음 보는 거 같은데.
그 손에는 아주 낡은 금속의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역광이 비추는 바람에 그게 뭔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어제 회사 여기저기를 좀 뒤져 봤습니다. 그러다 찾아낸 겁니다.”
정지훈은 테이블 위에 금속 재질의 무언가를 올렸다.
그건…… 램프였다. 주전자 형태의 램프.
기름을 채우고 심지를 주둥이로 빼서 사용하는, 익숙하다면 익숙한 형태의 램프였다.
“동화…… 에서 볼 법한 램프네? 이런 게 진짜 있구나?”
차소희가 간단하게 감상평을 했다.
전체적으로 황동빛을 띠고 있었는데 주둥이와 뚜껑, 그리고 손잡이는 조금 더 광택이 나는 은색이었다.
“회사에서 동쪽에서 얻어 왔다는 샘플입니다. 기밀 보고서를 좀 봤고, 이 물건 자체는 아무 가치가 없는 골동품으로 취급 중이었습니다.”
“…….”
나는 그걸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확실히, 천공의 기사를 추적하여 동쪽을 조사한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보안 문제 때문에 이거 말고는 당장 확보할 단서는 없는데, 혹시 선후 씨라면 우리보다 더 많은 걸 볼 수 있지 않을까…….”
“이거.”
생각 정리를 끝내고 입을 열었다.
“만지고 죽은 사람 없어요?”
“…….”
정지훈과 진서연이 나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있어요? 없어요?”
“모릅니다. 우선 기밀이 아닌 거로 보아 특이 사항은 없었던 것 같은데…….”
“회사가 속이는 게 한두 개여야지.”
진서연의 말에 정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일반 창고에 있었다는 말이지?
“잘 가져왔어요.”
“왜 그러십니까?”
“이계에는 별게 다 생물이라는 생각해 본 적 없으세요?”
숲도 생물. 산은 생물인지는 모르겠다만 양분을 옮기는 뿌리가 있고, 심지어 글자 몇 개 적으면 강철 갑옷도 제멋대로 움직이는 세상이다.
그리고 그건 이것도 마찬가지였다.
“이거, 생물이에요.”
“……네?”
그 이야기를 들은 차소희가 은근슬쩍 몸을 뒤로 빼는 게 느껴졌다.
죽은 사람이 없느냐. 이건 생물이다.
이 두 문장만으로도 이 램프의 위험성이 잘 표현되니까.
나는 램프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사람들이 따라 나오는 게 느껴졌다.
램프는 차가웠다. 이 안에 뭔가 들어 있다고 느낄 수 없었다.
그저 골동품으로 위장하고 있는 존재.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을 때는 나는 이미 바닥에 룬 문자를 그리고 있었다.
결계 역할을 하는 룬 문자.
그 위에 램프를 올려놓은 뒤.
나는 조심스럽게 그 옆을 쓰다듬었다.
“……뭐 하는 거야? 뭔 요술램…….”
차소희의 의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퍼어엉—!
그 안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나는 빠르게 뒷걸음질 쳐서 거리를 벌렸다. 이 안에 들어 있는 건 천차만별이지만, 대체로 그다지 성격이 좋지 못한 것들이다.
나는 스프리건과 싸울 때, 스프리건을 산 요정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것과 싸울 때, 이걸 이렇게 불렀지.
“맞아. 램프의 요정.”
내가 이계의 요정들을 안 좋게 본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싹 다 성격이 좀 이상했거든. 시비나 걸고.
그 안에서 나온 건 휘어진 검을 한 손에 들고 있고, 구름 같은 하반신이 램프 끄트머리에 연결된……
해적이었다.
……해적?
「으하하하! 드디어 새로운 선원이 나를 필요로 하는구만! 약탈! 약탈이다! 여기가 이번에 약탈할 마으갸갸갸갸갸갸그아아앗!」
결계 룬이 잘 작동하는 걸 조금은 뿌듯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동쪽은 사막인데, 왜 해적의 형상을 한 요정이 거기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알 수 있었다.
“리리.”
“……응.”
“이거, 정령이지?”
내가 요정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대체로 정령인 듯했지.
조금 주저하던 리리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나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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