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85
85화 ep29. 사막에서 살아남는 법 (1)
또각, 또각, 또각—
렐릭시나는 이렇게 천천히 간다는 것 자체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투정을 부렸지만 그러면서도 순순히 따랐다. 그 모습이 나름 기특해서 웃음이 나왔다.
램프의 정령은 몇 번 급발진하다가 이내 포기했다. 그제야 결계 룬을 없애고 이 정령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우선 정령인지라 리리와 내가 지배자라는 건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사사로운 대화를 할 필요는 없었다.
“그, 이름이 뭐예요?”
「날 모른다고? 내가 오십 년만 더 젊었어도 네놈 거죽을 꿰매 내 이름을 새겼을 거다! 대해적 에드워드를 모른다니,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는 거냐!」
대해적이라니. 소원의 정령 주제에 조금 자기만의 세상에 살아가는 느낌이 드는데.
나는 그러려니 맞춰 주었다. 사실, 이렇게 망상에 사로잡힌 사람은 좋은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왜 동쪽 사막에서 널브러져 있었던 거예요? 대해적 에드워드 님?”
「빌어먹을 왕문어한테 배가 침몰당했다.」
“사막 끝 거대 균열에 있는 그 크라켄이요?”
정면을 바라보던 에드워드가 휙 나를 돌아보았다. 그 덥수룩한 수염이 출렁거릴 지경이었다.
「둔탱이, 그 문어 대가리를 아냐?」
“지금 제 목적지가 거기라서요.”
리리가 뒤에서 옷깃을 잡았다.
“거기로 갈 거라고? 진짜로?”
“다음 유물이 거기에 있어.”
지침을 꺼내서 바라보았다.
황금 지침은 네 번째 유물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평행하게 세운 채 두면 지침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지침은 정확히 땅 밑을 가리키고 있었으니까.
땅 밑.
그 문어가 사는 균열 아래에 있다고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렇게 대책 없이 가도 되는 거야? 그건 진짜 보통이 아니라고.”
“용이 사는 곳으로 갔을 때도 별말 안 했잖아. 이제 와서?”
“……그래도 용은 최소한 말이 통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지금 우리의 목적지에 있는 것은 키호테와는 다르게 확실하게 괴물이니까.
분명 싸움을 피할 수 없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집에서 알아낼 수 있는 건 더 없었잖아. 이제는 부딪힐 차례야.”
“그렇긴 한데…….”
“책상 위에서 볼 수 있는 건 결국 책상과 창문뿐이야. 더 나아가려면 의자에서 일어나 창밖으로 나가야지.”
“……이번에는 복원 마법사들처럼 말하네.”
“복원 마법사?”
“고대 왕국의 룬 언어를 복원하는 사람들. 마법사들 중에서도 독종이라고 소문난 부류야. 제국 북부에 본산이 있대.”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었던 에드워드가 넌지시 말했다.
「그럼, 너. 둔탱이. 그 문어 대가리가 있는 곳으로 가는 거냐?」
“그렇죠?”
「네놈이 처음으로 마음에 들었다! 당장 약탈을 시작하자! 보급품을 확보해라! 아까 그 마을부터 시작한다!」
“정확히, 당신이 원하는 게 뭔데요?”
「약탈!」
“……약탈해서 준비한 다음에 또 약탈을 해요?”
「그 문어 대가리가 지키고 있는 곳은 모든 해적들의 꿈, 금은보화가 가득한 도시가 있기 때문이지! 전설적인 약탈을 할 수 있는 곳이다!」
‘크라켄이 도시를 지키고 있다’라.
진위 여부를 떠나서 마음에 드는 이야기였다. 원래 한 군데 머무는 거대한 괴물이 있다면, 보통 그 괴물이 어딘가를 지키고 있다는 상상이 들기 마련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미지의 무언가에 환상을 품게 되기 마련이니까.
하늘을 바라보니, 첫 번째 태양이 벌써 중천을 찍고 지평선으로 천천히 향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제 막 버뮤다 숲을 지나쳐 온 상태.
“렐릭시나. 속도를 좀 내자. 해가 지기 전에 장벽은 넘어야 해.”
속도를 좀 더 낸 뒤, 왕의 언어를 사용하여 장벽을 넘었다.
에드워드는 내가 왕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왕의 언어를 모르는 것일 수도 있었다.
같은 정령인데도, 셀피와는 이렇게나 성격이 달랐다.
첫날 밤은 계곡에서 묵었다.
성녀의 수호 기사가 보여 준 뱀파이어 전용 비상 식량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어 낸 특제 페미컨은 다행히 리리의 입맛에 맞는 모양이었다.
에드워드는.
「럼주는 없냐!」
이상한 소리를 하길래 그냥 놔뒀다. 정령인데 뭘 먹어야 하겠냐는 생각도 들었고.
다음 날, 계곡을 통과하여 비프로스트가 만들어 낸 균열을 넘을 수 있었다. 다시 한번 커다란 열풍이 느껴졌고, 키가 작은 풀이 늘어서 있는 완만한 경사 끝에 출렁이는 사막이 뿌옇게 보였다.
진서연에게 얻어 온 작은 망원경을 꺼내서 살펴봤다. 넌지시 보이던 풍경이 망원경의 렌즈를 타고 더 자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모래가 이리저리 파도처럼 움직이는 게 눈에 들어온다.
바다처럼 그 높낮이가 일렁이고, 치솟았던 파도가 땅에 부딪치며 모래알을 흩뿌린다.
“가자.”
망원경으로 보니 더욱 궁금할 지경이었다. 다시 렐릭시나의 등에 탄 뒤, 완만하게 뻗어나가는 산의 동쪽을 따라 달렸다.
한창 달리다 보니, 저 멀리 투명한 막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칫 잘못하면 놓치고 그대로 달려 나갈 정도로, 정말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볼 수 없을 투명한 막.
우리는 그 앞에 멈춰 섰다.
“……장막이야.”
각 구역을 격리하는 역할을 하는 자연 현상. 대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의 벽.
우리가 처음 만났던 장벽은 꽤 거대한 현상이었다. 대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환각 가스였고, 그 폭도 밧줄을 연결해야 간신히 건널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하지 않았지.
하지만 지금 우리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건, 종잇장만큼이나 아주 얇은 장벽이었다. 땅을 바라보니 이 장벽을 뿜어내는 균열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세했다.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모래가 흘러들어와서 균열을 막았구나.”
모래가 흐르는 사막.
그 거대한 사해(砂海)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나는 다시 장벽에 집중했다.
보통 장벽은 기체나 에너지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땅에서 솟아오르려면 그런 성분들이 만만하니까.
하지만 여기는 이계고, 항상 상식대로 흘러가기만 하는 곳은 아니다.
우리 눈앞에 있는 장벽은 아주 얇은 유리벽 같은 모습이었다. 높이는 못해도 수백 미터. 가로 넓이는 여기에서 측정할 수 없을 정도다.
“…….”
조심스럽게 손바닥을 대보았다.
뜨거움이 느껴졌다. 건너편 사막의 열기가 이 유리벽을 달궜겠지.
콜드 포레스트 나이프를 꺼내 강하게 내리쳐 보았다.
카각—!
거친 소리가 들리지만, 흠집도 나지 않는다.
“……완전 격리 장벽이야.”
리리도 내 말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 격리 장벽이란 내가 붙인 이름이다.
장벽 중에서도 특히 강력해서 구역간 교류를 완전히 끊어 버리는 장벽을 의미하지.
“예전에 조난 생활할 때 이런 걸 많이 마주쳤었어.”
이건 정말 골치덩어리였다. 완전 격리라는 이름이 붙은 만큼, 돌파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그 순간, 우리가 있는 곳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곳.
사막 쪽에서 망치로 장벽을 두드리고 있는 열 명 남짓의 사람을 보았다.
* * *
베두헨.
이들은 사막에서 태어난 종족이었다. 모래 위에서 태어나 평생을 모래 위에서 살다가 모래로 돌아가는 종족.
이들은 항상 부족함이 많은 삶을 살았다. 사막은 척박한 땅이었고, 어디에 정착하더라도 필요한 모든 것을 구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서로 간의 교류에 적극적으로 의존했다. 남는 것을 제공하여 부족한 것을 받아 내는 일은 곧 삶의 방식이 되었다.
척박함은 베두헨이 상단 형태로 부족을 이루는 배경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도적 떼의 습격을 받아 배를 잃어 버리고 도주 중인 한 베두헨 상단이 있었다.
다행히 그들이 밟고 있는 땅은 배가 필요로 하지 않는 지역이었다. 이 사막의 외곽은 배 없이 두 발로 설 수 있는 땅이었으니.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사, 상단장님!”
한 젊은 베두헨이 사색이 된 채 모래산을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입자가 작은 모래 먼지가 튀어 올라 매캐한 연기가 되어 솟아올랐다.
그들의 뒤에는 다행히 큰 모래산이 있었다. 그렇기에 추격자의 시선을 잠시 피할 수는 있었다.
“약탈꾼들이 바로 우리 뒤를 쫓아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사막에서 배 없이 추격자를 따돌린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곳으로 도망친 그들의 발자국은 분명 모래 위에 아직도 남아 있을 게 분명했다.
상단장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도주를 막는 거대한 장벽을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장벽은 거대한 거울의 형태였지만 그건 알 바 아니었다.
중요한 건, 무슨 짓을 해도 부서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
상단장은 이 장벽을 절대로 뚫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상단원들은 하염없이 망치 등으로 벽을 두드리고 있었다.
이거 말고는 희망이 없기 때문이었다.
쏴아아아아—!
절대로 듣고 싶지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약탈꾼들이 타고 다니는 서핑 보드가 모래를 가르는 소리였다. 순식간에 약탈꾼들은 높은 모래산 꼭대기 위로 날아오르듯 등장했다.
“키헤헤헤헤!”
그들은 머리에 천을 둘둘 묶은 어인(魚人)들이었다. 물갈퀴가 달린 그 손에 들린 곡도를 휘두르며, 그들은 보드를 타고 모래산을 빠르게 미끄러져 내려왔다.
“켈켈켈!”
도망칠 수 없었다. 장벽에 막혀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사지로 몰린 쥐처럼 상단의 생존자들은 몸을 떨었고, 추격자들은 보드에서 내려 그들 앞에서 여유롭게 혀를 내밀거나 웃었다.
그들은 당장 덤벼들지 않았다.
두목의 지시가 없었으니까.
“키헤헥! 예쁘다! 청소부 삼기 좋은 베두헨이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어인 하나가 그 혀를 날름거리며 여성 베두헨 하나에게 다가갔다.
그 순간.
퍼어억—!
누군가 그 어인을 후려쳤다. 꽥 하고 날아가는 어인.
거대한 근육질 몸통을 가진 어인이 걸어왔다. 그가 이 약탈꾼의 두목이었다.
“……전부 팔다리 묶어라. 저항하면 죽여.”
어인들이 밧줄을 들고 그들에게 다가가려는 그 순간.
“——.”
촤르르르르륵——
갑자기 뒤쪽의 장벽이 쪼개지기 시작했다.
절대로 부술 수 없는, 아주 작은 구멍 하나 낼 수 없는 절대적인 그 장벽이 지금 갈라지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신음소리도, 약탈자들의 웃음소리도 모두 멈췄다.
작은 변화였지만 상식의 파괴였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치르르르—
그렇게 갈라진 틈에서 들어온 건, 좋은 품질의 가죽 재킷을 입고 있는 검은 머리의 인간 하나. 그리고 챙모자를 쓰고 있는 뱀파이어 하나.
“…….”
“…….”
이곳에 있는 삼십 명이 넘어가는 사막 거주민들은 넘을 수 없는 벽을 너무 당연하게 넘어온 인간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인간이 넘어오자마자 장벽은 닫혔다.
“아, 반대쪽에서는 거울이구나? 취조실 창문이랑 비슷한 느낌인가 보네.”
“취조실 창문?”
“우리 동네에서 쓰는 거야. 한쪽에서 바라보면 투명한데, 반대쪽에서는 거울이야.”
“그런 걸 만들 수 있다고?”
방금까지 이곳을 지배한 살벌함은 저 인간에게 있어서 아무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인간과 뱀파이어는 너무나, 너무나 여유로운 표정으로 장벽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을 뿐이었다.
“……거기, 고깃덩어리 둘.”
근육질의 거체를 가진 약탈꾼 두목은 아가미를 벌렁거렸다. 그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으나, 그가 크게 분노했다는 사실을 졸개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뒷걸음질 쳤다. 두목이 힘을 과시할 무대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
“뭐 하는 새끼들이냐.”
“볼일들 보세요-.”
인간은 어인의 위협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취급했다.
“리리, 여기는 아직 배가 필요 없나 봐? 발을 들이밀면 푹 빠질 줄 알았는데.”
“물이 아니라 모래잖아. 이게 정상이라고.”
두목의 아가미에서는 이제 더운 김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이, 고깃덩어리 새끼들아. 지금 너희들 앞에 서 있는 존재가 누군지는 알고 그딴 식으로 행동하나.”
“인간의 진화 과정 중간 단계? 우리는 예전에 물고기였다는데. 진짜였나 보네.”
“……사막의 서부 지옥 구덩이의 왕, 곧 이 사막 전역을 지배할 노예 추격자 발루르 가순이다.”
아가미에서 증기가 보일 정도였다.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었다. 그는 거대한 검을 뽑았다.
어마어마한 무게를 가진 그 검을 깃털처럼 다루며 발루르는 인간에게 다가갔다.
“네놈은 내가 손수 내장을 발라내 주지. 배 속이 텅텅 빌 때까지 의식을 잃지 않게 해 주마.”
인간은 그저 그 모습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그 건방진 얼굴에서 구걸이 나오게 해 주…….”
그 순간.
모두가 보았다. 축 늘어져 있던 인간의 손이 빠른 속도로 올라오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어인으로 향하는 순간을.
그렇게, 그 입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모잠비크 드릴Mozambique Drill.”
타앙—!
뿜어지는 화염과 함께 거대한 파열음이 들린다. 그리고 어인의 거체가 쓰러진다.
어인들은 그 일련의 과정 속 상관 관계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손에는 금속으로 된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그 주둥이에서 연기가 흘러나왔다.
이들도 알고 있었다. 마법사들이 내뱉는 이해할 수 없는 단어, 룬에 대해서.
하지만 이토록이나 강력하고 즉발적인 단어가 있다는 이야기는 누구도 들어 보지 못했다.
혹시 눈앞의 인간은 고대의 언어를 복구하는 데 성공한 마법사인 건가?
뱀파이어는 인간을 올려다보며, 타국의 언어로 중얼거렸다.
“……그거 룬 언어 아니지?”
“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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