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86
86화 ep29. 사막에서 살아남는 법 (2)
털썩—
서로 대치하고 있었던 어인과 베두헨 양쪽 모두 경악했다.
발루르 가순은 죽음의 순간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 죽었다.
사막 서쪽을 장악하고 수십 년을 군림하던 지옥 구덩이의 왕. 유목 문화였던 이 사막을 하나의 집단으로 통일할 가능성마저 점쳐졌던 어인.
이 사막의 역사 한편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군웅은 폭음과 함께 피를 뿜어내며, 구겨지는 종잇장처럼 쓰러졌다.
“…….”
순간적으로 정적이 찾아왔다. 공포는 한 박자 늦게 찾아왔다.
그저 팔을 뻗는 것만으로도 이마에 구멍을 뚫을 수 있는 마법사.
그 누구도 통과할 수 없는 절대 장벽 건너편에서 아무렇지 않게 들어오는 마법사.
미개한 어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
결론은 빠르게 나왔고, 어인들은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이이익—!”
아가미에서 괴상한 소음을 뿜어내며 이빨을 드러냈다. 맨 앞의 어인을 시작으로, 일제히 곡도를 들고 달려들었다.
베두헨들은 다시 겁에 질렸다. 다행이라면, 지금 저 검은 베두헨 상단이 아니라 인간과 뱀파이어에게 향했다는 점이었다.
어인들이 달려드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인간은 요술을 부리지 않았다.
그런 강력한 마법을 자유롭게 쓰진 못하리라.
어인들은 그렇게 결론을 지었다. 그리고, 인간에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
“—.”
들을 수조차 없는 언어가 그 입에서 튀어나왔다. 말한 게 분명하고, 그 소리가 귀에 들어온 것도 분명한데 들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맨 앞의 어인은 멈춰 설 뻔했다. 그의 검 끝이 흔들렸다. 휘두르긴 했으나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그리고, 그 실책의 결과는 죽음이었다.
촤아악—!
인간은 맨 앞의 어인을 베어 냈다. 그리고 그 옆에 있었던 뱀파이어가 쓰러지는 어인의 혈관을 섬세하게 끊으며 마무리했다. 마치 미리 정해 둔 것처럼 연속적인 합이었다.
당황했던 그 한순간, 선두가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차르르르—
그리고, 뚫릴 리 없는 장벽에 다시 구멍이 생겼다. 마치, 명령을 받은 장벽이 그를 위해 문을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남자는 그곳으로 나갔다. 장벽이 닫혔고, 다시 거울이 되었다.
그 건너를 볼 순 없었다. 넘어갈 수도 없었다.
어인들이 엉거주춤 서 있던 그때,
“—.”
다시 문이 열렸다. 어인들은 일시에 그곳을 바라보았다. 검을 치켜들었으나 인간은 들어오지 않았다.
저 인간이 활을 가지고 있던가?
활은 본디 부피가 큰 무기였다. 게다가, 저렇게 화려하기까지 한 활을 보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그런 활의 시위를 당긴 채 인간은 이쪽을 겨누고 있었다.
“다들 숙…….”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화살이 덮쳤다. 화살은 세 갈래로 갈라지며 장벽 가까이에 서 있던 어인 셋의 숨을 끊었다.
반격하기도 전에 장벽은 다시 닫혔다.
어인들은 떨리는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었다.
스물 남짓한 도적 중 넷이 순식간에 죽었다. 우려했던 즉살 마법은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상황은 점점 더 안 좋아지기만 했다.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들 중 몇은 품속에서 슬링과 날카로운 돌을 꺼내 들었다.
다음 장벽이 열리면 일시에 돌팔매질한다. 그럼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이것까진 예상하지 못하겠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촤르르륵—
장벽이 열린 순간, 모두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 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건 새까만 흑마였다.
갈기가 푸르게 불타고, 붉은 눈을 한 말이었다.
그것은 낮게 울리는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 울음소리는 말의 것이 아니었다.
말은 이빨을 드러냈다. 말다운 행동이 아니었다.
멍하니 지켜보던 어인 중 하나가 돌팔매질을 했다.
말은 겁이 많은 동물이니, 어찌 되었든 이걸로 쫓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흑마는 날카롭게 다듬어진 돌이 정면으로 날아오는데도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 돌을 정확하게 입으로 낚아채 그대로 깨물어 부숴 버렸다.
콰득—!
조각이 거칠게 흩날렸다.
“무슨 저런 괴물이…….”
어인들은 뒷걸음쳤지만 이미 늦었다.
“크르르릉—!”
말은 이빨을 내밀며 달려들었다. 피가 튀고, 살점이 튀어 올랐다.
* * *
나는 어떤 짐승의 눈을 보면, 그 짐승이 품고 있는 열망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가늠할 수 있다.
말은 거창하지만 사실 별 건 없다. 굶주린 사자의 눈빛에 흉흉한 기운이 담겨 있다는 건 평범한 사람들도 쉽게 알 수 있잖아?
그 감각이 조금 더 발전한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평소에 조금 느끼고 있었다. 렐릭시나가 포악한 본능을 억누르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이번에 그걸 좀 해소하게 두고 싶었다. 와일드 헌트의 사냥마가 그 몸체였으니 쉽게 죽을 리 없을 테니까. 어떻게 움직이는지 조금 보고 싶었다.
그런데.
“으…….”
리리가 살짝 인상을 쓰며 다시 사막으로 넘어왔다. 쇠구슬 굴러가는 소리와 함께 다시 장벽이 닫혔다.
“렐릭시나.”
“크릉…….”
“그거 지지야. 뱉자.”
“크흥!”
“어허!”
렐릭시나는 끝내 입에 물었던 걸 내려 두며 으르렁댔다. 이곳의 참사는 입에 담기에는 퍽 유쾌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약탈꾼들이 타고 다니는 보드가 널브러져 있었다. 살펴보니, 서핑 보드처럼 생겼는데 뭔가 특별한 장치가 있는 듯했다.
가만히 바라보다가 가방 속에 쑤셔 넣었다.
“챙기게?”
“재밌어 보이더라고. 네 것도 하나 챙길까?”
“됐어.”
살아남아 도망친 녀석들이 향한 방향을 잠시 바라보다가, 약탈당하고 있었던 무리에게 다가갔다.
햇빛에 그을린 피부는 지구의 사막에 사는 사람과 비슷한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좀 많이 작은 체구와 손등에 난 가시가 이들이 인간이 아닌 아인종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사막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볼일은 끝났으니까.
품속에서 황금 지침을 꺼낸 뒤, 그게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까 구해 준 사람들도 계속해서 내 뒤를 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대략 삼십 명 정도 되어 보이는데, 갈 곳이 없는 걸까?
말동무로는 꽤 괜찮은 거 같아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물었더니,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우리는 북쪽의 영지와 교역해서 먹고 사는 작은 상단 부족입니다. 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상단이라기에는 가지고 있는 게 별로 없으신데, 전부 빼앗긴 거예요?”
상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침통한 표정이었다.
“그렇습니다. 아주 중요한 물건을 운송 중이었는데, 지옥 구덩이에 사는 도적단에 그 정보가 흐른 듯합니다.”
아주 중요한 물건?
여기에서 흥미가 동했다.
“그게 뭔데요?”
“크라켄을 사냥하는 데에 쓰일 무기였는데, 남동쪽의 연금술사들이 만들어 낸 물건이었습니다.”
“크라켄을 잡으려고 했어요?”
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잡지 못하면, 우리가 죽습니다. 크라켄은 지금도 계속해서 이 사막의 영토를 늘려 가고 있어요. 나락에서 태어난 그 괴물이 완전히 지상으로 올라오는 순간, 베두헨은 시대 뒤편으로 사라질 겁니다.”
“그 무기가 있으면 잡을 수 있어요?”
“시도는…… 해 볼 수 있었습니다. 가능성은 희박했겠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장은 비통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약탈꾼들에게 물건도, 배도 뺏겼습니다. 이제는…… 아무런 희망도 없습니다.”
나락. 다음 유물이 있는 곳이다.
그곳에 어떻게 가야 하는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나락이라니 그 아래로 내려갈 방법도 생각해야 하고, 그곳에서 버티고 있는 크라켄을 해결할 방법도 생각해 봐야 했다.
잠시 생각에 잠긴 채 걸었다.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충분히 시간을 두고 고민해야 한다. 시간이 내 편일 때, 그걸 적극적으로 이용하면 생각보다 많은 문제가 쉽게 해결되거든.
그렇게 계속 걸었는데, 갑자기 발이 쑥 빠졌다. 나는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리리가 한발 늦게 내 팔을 잡아 뒤로 끌었다.
“오, 씨. 깜짝이야.”
“땅이 일렁이고 있어.”
너무 생각에 잠겨 있느라 풍경의 변화를 미처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쏴아아—
지구 사람들은 알까? 파도치는 바다와 파도치는 ‘모래’에서는 의외로 비슷한 소리가 난다는 사실을.
출렁이는 모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잘 느끼지 못하는 바다의 특징은, 그 광택이다. 물은 햇빛을 강렬하게 반사하고, 이는 바다에 강한 캐릭터성을 부여한다.
그래서, 광택이 나지 않는 출렁임이 이토록이나 이질적인 느낌을 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노란색의 모래알 하나하나가 반짝이며 이리저리 움직인다. 저들끼리 부딪치며 쌀알 같은 빛을 무수하게 만들어 낸다.
나와 리리는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현실로 돌아오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발을 조금 들이밀자 쑤욱 하고 천천히 들어갔다. 여기서는 아직 걸을 만했다. 밀물이 밀려오는 해변과 같은 셈이다.
하지만 안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지겠지.
“이곳부터는 맨발로 갈 수 없습니다. 반드시 배를 타고 가거나, 약탈꾼들이 사용하는 보드를 타야 합니다.”
파도치는 사막을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생각 정리를 끝낸 참이었다.
“이름이 뭡니까?”
“하무디, 하무디입니다. 우리는 하무디 상단이고 그게 제 이름이기로 합니다.”
“하무디. 배를 되찾고 싶죠?”
“네?”
“앞으로도 살아가야 하잖아요.”
“……네. 그렇습니다.”
“되찾으러 가죠? 무기하고 배.”
가만히 듣고 있었던 상단원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베두헨치고는 덩치가 꽤 크고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인물이었다.
“우리는 약탈꾼들의 본거지가 어딘지 전혀 모르오. 그런데 어딘 줄 알고 간단 말이오?”
“그래서 일부러 풀어 줬잖아요. 몇 마리 도망치는 거 못 봤어요?”
“……일부러 풀어 줬다는 말이오?”
“도망치는 벌의 뒤를 따라가면 벌집을 찾을 수 있으니까.”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이미 놓친 거 아니오?”
“마르카마 투 마르크 데 모스marlkaama to marlk de mohs.”
불씨가 피어난다. 일렬로 정렬된다.
도망친 어인들이 존재하는 방향을 가리킨다.
내가 그놈들에게 달아 놓는 추적기를 가리키는 룬 문장이었다.
“이 불씨를 따라가면 그 끝에 벌집이 있을 거예요.”
상단원들이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는 시간을 줘야만 했다.
“룬 언어……. 실제로는 처음 보는구만. 정말이지 기묘한 요술이오. 하무디. 너는 왕국에서 여러 번 본 적이 있다고 했지?”
오히려 본 적이 있다는 하무디의 표정이 더욱 심각했다.
“본 적은 있지만, 한 번에 이렇게 길게 구사하는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하무디가 초짜 마법사들만 봤구만.”
“제가 최근에 거래한 사람은 궁정 마법사였습니다. 늙은 궁정 마법사도 단어 두 개를 간신히 연결하는 수준인데…….”
어느 정도 예상은 했는데, 분위기가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부러 말을 돌렸다.
“거리가 얼마나 멀지는 모르지만. 가다 보면 있겠죠?”
“하지만 배가 없지 않습니까. 배가 없다면 방향을 알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무슨 배가 없다는 말이냐 머저리 굼뱅이들아! 야 하하하!」
나올 줄 알고 있었다.
왜 가만히 듣고 있나 했지.
퍼엉—
“으아아악!”
상단원들이 놀라서 뒤로 넘어갔다.
허리춤에 매달아 뒀던 램프에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연기는 곧 형체를 갖추고, 그 형체는 항상 보던 검은 수염이 덥수룩한 해적. 에드워드가 되었다.
그는 반투명한 곡검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튀어나와 사람들을 위협했다.
이제까지 대화를 듣고 있었겠지?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그 기대에 찬 표정에 다 드러나 있었으니까.
나는 에드워드를 보다가 실소를 터트렸다.
「왜 웃냐! 선장이 웃겨! 네놈을 당장 배에 매달아 모래를 처먹게 할 테다!」
“에드워드.”
「용건을 말해라! 근질거리게 하지 말고!」
“하죠? 약탈.”
「약! 탈! 이! 다아아!」
퍼어어엉—!
에드워드의 외침과 동시에 거대한 배가 허공에서 소환되어 모래에 떨어졌다.
베이스캠프 때와 달랐다. 그때는 볼품없이 땅에 처박혔지만, 지금은 출렁이는 모래 위에 안정적으로 떠 있었다. OWIC의 협조로 보수까지 완벽하게 되어 있는 배는 정말 말 그대로 완벽한 해적선이었다.
「승선하라! 식량과 물을 확인해라! 럼주도! 없어도 괜찮다! 빼앗으면 되니까!」
“…….”
에드워드의 호기와는 달리, 당황스러움이 한계치까지 오른 사람들은 멀뚱멀뚱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내가 한마디 거들었다.
“적당히 맞춰 주세요. 여러분들 배 찾으러 가는 거잖아요?”
상단장은 납득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아직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에드워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하냐 굼벵이 버러지들아! 당장 움직이지 않으면 반나절을 돛에 매달아 둘 테다! 당장 승선한다!」
“…….”
「승! 선한다!」
“시, 실시.”
「대답은 해적의 위대한 언어, Aye, Aye로 통일한다! 채찍 처맞고 싶으냐!」
“아, 아이아이!”
그 기세에 압도된 사람들이 하나씩 배에 오르기 시작했고,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에드워드는 밧줄 사다리를 타고 하나둘 오르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 내게 말했다.
「네놈을 일등 항해사로 임명한다! 영광으로 알아라!」
“아이고, 영광입니다.”
「거기, 얼굴 허여멀건 꼬마애! 원래 배 위에는 여자를 태우지 않지만, 나는 진보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해적이니 그런 거 신경 쓰지 않는다! 너는…… 이등 항해사 겸 전투원이다! 칼질 좀 하더구만!」
“…….”
「대답-!」
“……네.”
「해적은 아이아이로 대답한다!」
“……아이아이.”
날 바라보는 리리의 눈빛이 어떨지 예상이 가서 일부러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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