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87
87화 ep29. 사막에서 살아남는 법 (3)
홀스터에 고정되어 있는 총을 만지작거렸다.
총 다섯 발. 한 발 썼으니 이제 네 발.
총알이 많으면 도움이 되겠지만, OWIC도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을 테니 이해하기로 했다. 애초에 없어도 상관없는 물건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리고, 총알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계 소재로.”
그럼 오히려 더 좋아지는 거 아니야? 예전에 유튜브에서 DIY로 총알 만드는 걸 본 적이 있다. 종이를 사용하던데.
그런 생각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리리가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당신.”
“어.”
“그거 총이야? 아까 전에 깜짝 놀랐어.”
“총을 알아보네? 모를 줄 알았는데.”
“대포도 있는데 총이 없을 리가. 그런 식으로 생기진 않았었지만.”
리리가 슬쩍 바라보는 쪽에는 이 배에 달려 있는 대포가 있었다. 좌우 4문씩 총 8문. 배의 크기에 비해서는 좀 많아 보이기도 했다.
“어인들은 이걸 처음 보는 것처럼 굴던데.”
“대륙 각지는 문화 격차가 커. 장벽 때문에 교류를 아예 못하는 곳들도 있으니까.”
쉽게 말하면, 어디는 석기 시대인데 바로 옆 동네는 산업 시대일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이 사막이 특유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 걸 내가 이제까지 모른 이유도 그래서일 거고.”
리리의 말에는 나도 동감했다. 이번에 지나쳐 온 장벽은 왕의 언어가 아니었다면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을 정도였으니까.
우리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분주히 움직이는 바두헨들을 구경하는 중이었다.
“로렌스, 조타 상태는 어때.”
“조금 빡빡하긴 한데, 이 정도면 괜찮습니다. 엄청 오랫동안 안 굴린 배 같은데 별문제가 없네요.”
“돛은 시타예 형제가 책임져 주세요. 견습생 실습시키기에는 좋은 때가 아니니까요.”
“아이, 아이!”
“그게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해적이 하고 싶었지 말입니다!”
“……어디 가서 그런 말 하면, 부족령에서 잡아갈지도 모릅니다.”
이 상단은 애초에 자신의 배를 가지고 있었던 이들이었다. 서른 명이나 되는 사람이 올라오니 손이 노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이니 내가 굳이 뭔가를 할 필요는 없었지.
나는 내가 잘하는 걸 하면 된다.
분주하게 움직이던 사람들이 각자 자리를 잡고 대기했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걸 의미했다.
허리춤의 램프에 연결된 채, 내 옆에 둥실둥실 떠 있는 에드워드가 굉장히 굉장히 진지한 표정으로 외쳤다.
「조타를 놓지 마라. 최대 속도에 도달하기까지는 배의 방향이 제멋대로일 테니까! 술병을 다루듯 터프하면서도 진지하게! 시야는 멀리 두되! 배 밑에 뭐가 있을지를 끊임없이 생각해라! 알겠나!」
“아이, 아이!”
「출항한다!」
“출항!”
숙련된 선원들이 명령에 따르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즐거움이었다. 돛이 펼쳐짐과 동시에 조타수가 액셀처럼 보이는 발판을 꾹 누르자, 이 무거운 배가 모래를 가르고 앞으로 쭉 나아가기 시작했다.
“오…….”
확실히, 모래 위의 항해는 내 상식과는 많이 달랐다. 보통은 바람을 이용하거나 노를 저을 텐데, 현대의 운송 수단처럼 뭔가 보조 엔진이 존재하는 느낌이었다.
돛은 사막을 휘젓는 열풍을 잔뜩 품었다. 그 꼭대기에 달려 있는 프로펠러가 돌아갔고, 그건 배를 앞으로 밈과 동시에 아래쪽의 엔진에 동력을 전달했다.
배 외갑에 부딪힌 모래가 쓸려 올라와 순식간에 갑판을 더럽혔다. 빗자루를 들고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과하게 쌓인 모래를 빠르게 훑어 냈다.
이게 사막을 여행하는 배의 항해 방식이었다.
나는 내가 잘하는 걸 하기로 했다.
“마르카마 투 마르크 데 모스marlkaama to marlk de mohs.”
불씨가 떠오르며 일렬로 정렬된다.
저 끝에는 우리의 목적지, 도적들의 소굴이 있겠지.
조타수는 그 방향으로 뱃머리를 꺾었다. 배는 곧이어 최대 속도에 도달했다.
항해가 안정권에 도달하자 사람들은 각자의 일을 시작했다.
무기를 점검하고, 누군가는 돛 위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주변을 탐조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리리를 바라보았다. 리리는 눈을 감고 바람을 느끼고 있었다.
반나절이 넘는 시간 동안 항해는 이어졌다.
* * *
베두헨은 씨족사회를 형성한다. 부족을 이루고 상단의 형태로 평생 일정 영역을 떠돈다.
그중 약소한 한 상단의 상단주를 맡은 젊은 베두헨, 하무디라는 이름을 가진 상단장은 갑판을 감독하다가 위를 올려다보았다.
뱀파이어가 인상을 쓰고 입 안에 있는 모래를 뱉어내고 있었다.
“퉤, 퉤. 으, 다 좋은데 모래가 너무 많이 들어와.”
검은 머리 인간이 품속에서 천 두 개를 꺼내서, 뱀파이어의 입을 가려 주었다. 뱀파이어는 그걸 만지작거리다가 고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은 다시 파도치는 지평선으로 시선을 두며 말했다.
“신경 쓰이면 안쪽으로 들어가 있어. 조만간 밤 될 거 같은데.”
“다들 일하는 하는데 쉬고 싶진 않아.”
뱀파이어는 고풍을 따지는 종족이었다. 명예가 걸려 있지 않다면 현장에 나와 몸을 굴리기를 피했다.
하무디는 훌륭한 상인이었고, 그렇기에 사람을 볼 줄 알았다. 그래서 저 뱀파이어는 특히 고귀한 출신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궂은 모험을 마다하지 않았다.
인간과 뱀파이어라니. 높은 곳에 있는 종족과 가장 낮은 종족의 만남이라니.
이상한 일이었다.
하무디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조타 쪽으로 올라가 인간에게 말을 걸었다
“경황이 없어서 말씀을 제대로 못 드렸는데.”
하무디는 가슴에 손바닥을 얹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기꺼이 도움을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덕분에 목숨을 건졌는데, 배까지 찾아주기로 하신다니, 어떻게 보답해 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보답이요?”
“저희는 상인입니다. 받은 만큼 드리는 건 원칙입니다.”
그 말을 듣고 인간은 생각에 잠겼다가 미소를 지었다.
“보답은 괜찮고, 조건이 있어요.”
“조건 말입니까? 얼마든지, 해 드릴 수 있는 거라면 뭐든 해 드리겠습니다.”
“그, 크라켄을 잡을 수 있다는 무기요. 저한테 양도해 주세요.”
그 말을 들은 하무디는 당황스러워했다.
“이유가 뭔지 들어 볼 수 있겠습니까? 저희는 그 크라켄을 반드시 잡아야 하는 터라.”
“저도 잡을 생각이라서요. 우리 목표가 같으니, 대화가 짧아져서 좋지 않나요?”
하무디는 이 시점에서 강선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크라켄과 싸우겠다는 뜻입니까?”
“네.”
“그쪽이 어째서……? 혹시 이 사막의 주민이십니까? 그건 아닌 거 같습니다만…….”
“아니죠.”
“그렇다면 왜 위험을 감수하려고 하십니까? 그냥 지나가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 크라켄이 산다는 나락에 볼일이 있거든요.”
어디서부터 물어봐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인간은 지금 자신의 목적을 명확하게 밝혔고, 그래서 더 물을 수 있는 게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의문은 쌓여 갔다. 인간의 눈빛에서는 활기가 느껴졌다.
“……당신은 기사단장 이야기와 닮은 거 같습니다.”
인간은 하무디를 바라보았다.
“기사단장이요?”
“백 년 전에 서쪽에서 찾아온 기사가 있습니다. 그는 정의로운 행동으로 사막의 전사들을 감화시켜 자신을 따르게 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그와 닮은 점이 있습니다.”
인간의 눈빛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그 기사, 지금은 뭘 하고 있어요?”
“……자신의 검을 나락 아래로 던져 버리고, 설산에 은거한 상태라고 합니다.”
“무슨 일 있었나요?”
하무디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기사단원들이 계속해서 그를 설득하고는 있다는데…….”
그 순간이었다.
“빛이 보입니다! 3시 방향!”
그 말을 듣고 강선후는 갑판으로 뛰어 내려갔다. 일거리가 없는 사람들이 탐조 선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일제히 달려 나갔다.
거대한 모래산이 하나 있었는데, 그 산은 다른 모래와는 달리 파도치거나 일렁이지 않았다.
그저 고정된 형태로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조금씩 나아감에 따라 모래산 뒤에 가려져 있었던 게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확실히, 바다랑 같구나.”
“섬인가 봐.”
리리와 강선후가 짧게 감상을 표했다. 그곳에는 거대하고 평평한 바위가 솟아 있었으며, 그 위에 있는 것들이 출렁이는 모래에 가라앉는 걸 막아주고 있었다.
이 사막에 유일하게 몸을 누일 수 있는 공간, 섬이었다.
강선후는 품속에서 고성능 접이식 망원경을 꺼내서 그쪽을 바라보았다. 이 사막의 부족들은 없는 것이었다.
“……뭐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잠시만.”
그리고 룬 언어를 일제히 나열하여 다시 불씨를 불러내었다.
그건 저 섬을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었다.
“여기가 맞는 거 같은데.”
배가 나아갈수록 모래산에 가려졌던 입구가 정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위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해가 졌고, 하늘이 어두웠지만 그 사실 자체는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강선후는 망원경으로 한동안 그 입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모두가 왜 이제까지 이곳을 찾을 수 없었는지 깨달았다.
“이건…….”
“거울?”
“거울이 입구를 막고 있습니다.”
지금 이 배의 모습이 일그러진 채 저 앞에서 반사되고 있었다.
“……그래서 당신들이 이제까지 도적소굴을 몰랐던 거네요.”
“저게 뭔지 아십니까?”
“리리.”
“응.”
“저거, 황금 유적이야.”
“응. 그런 거 같아.”
“황금 유적을 거처로 삼았구나. 들어가는 방법은 어떻게 알았지?”
“어떻게든 찾아내지 않았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뱀파이어와 인간은 저게 뭔지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저 벽을 뚫어낼 방법이 있소?”
배 아래의 인원을 감독하던 덩치 큰 베두헨이 물었다.
강선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건, 아마 폭탄을 터트려도 안 뚫릴 거예요. 고대의 방호벽이니까.”
“……그럼 헛걸음이구만.”
“글쎄요.”
강선후는 자신의 왼쪽 손등을 바라보았다.
“선장님.”
「왜!」
“최고 속력으로, 방향은 저 거울을 향해서.”
「건방진 녀석! 내가 선장이고 너가 일등 항해사다! 명령 하달은 네가 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며 에드워드는 껄껄 웃었다. 그러고는 외쳤다.
「하지만 그 건방짐이 맘에 든다! 굼벵이 녀석들아 뭐 하냐! 못 들었냐! 키를 돌려라! 방향은 저 거울로! 전속력이다! 조범수는 모든 돛을 펼쳐라! 바람의 숙녀가 우리를 도와주는구나!」
“……네?”
하무디를 포함한 모든 선원들이 당황했다.
방금 전 저 벽을 부술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인간은 난간 위로 올라가, 뾰족하게 튀어나온 뱃머리 장식 위에 위태롭게 섰다.
그러고는, 당장이라도 앞으로 손을 뻗을 준비를 했다.
“다들 배 찾고 싶죠?”
“……그렇긴 합니다만.”
“그러려면 위험을 감수해야지! 내가 알기로, 뱃사람들은 그렇게 쫄보가 아닐 텐데? 안 그래요? 에드워드?”
「쪽팔려 뒤지겠네! 당장 명령 안 들어! 남자로 태어났으면 배짱을 보이란 말이다! 당장 움직여!」
“……밧줄을 잡으세요. 키에로는 지금 당장 아래로 내려가서 포탄을 장전하고, 닻 담당 한 명 할당해요.”
「해적은 그딴 사사로운 말 하지 않는다!」
램프에서 튀어나온 해적 선장, 에드워드는 전방으로 칼을 휘두르며 말했다.
「무계획이야말로 해적다운 법이지! 해적답게 돌진한다! 실시!」
“실시!”
「다시!」
“아이, 아이!”
강선후가 한 말에 자존심이 긁힌 걸까? 방금 전까지 조금 주저했던 상단원들은 어차피 배를 되찾지 못하면 뒤가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고는, 이 이방인을 믿어 보기로 했다.
그 믿음의 근거는 이 이방인이 절대 장벽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왔다는 사실에 있었다.
그리고, 조심스러운 뱀파이어가 이 인간을 믿는 태도도 신뢰에 한몫하고 있었다.
뱃머리가 급하게 돌아가 황금의 유적, 그 방호벽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 * *
두목이 죽었다는 소식은 사막 서부의 최흉 도적단 전체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더군다나, 전쟁이 아니라 노예 수급 중에, 지나가던 이방인에게?
“이게, 씨발 말이 되는 거야?”
“……거품이었나 보지. 정치질로 대가리 먹은 놈이잖아.”
상어 머리를 한 어인이 그 말을 듣고 낄낄거렸다. 그 삼각형의 이빨이 흉흉하게 빛났다.
“그래도 서부 어인들을 융합한 건 발루르 능력이 맞긴 했지. 이제 어쩔 거요?”
발루르 가순의 동생, 자연스럽게 두목 자리를 이어받은 발칸 가순은 팔짱을 낀 채 조금 떨어져 있는 해안가를 바라보았다.
파도치는 모래. 이제 떠오르기 시작한 큰 달.
그리고, 그 모래를 항해하고 있는 하나의 배.
이곳을 지나가는 배는 많았지만, 이곳의 정체에 대해서 아는 이들은 없었다.
서부 어인들은 황금 유적을 찾아냈고, 그곳의 방호벽을 조작하는 데에 성공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지금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이 어인, 차기 두목인 발칸 가순이 지배자의 상을 타고났기에 가능했다.
헐벗은 그의 넓은 등판에서 문신이 희미하게 빛났다가 사라졌다.
“포식자의 상이여, 드디어 그쪽이 우리의 두목이 되었네요. 그렇죠?”
“지배자의 자리는 지배자의 상이 먹는 게 역시 맞지.”
“그, 발루르를 죽였다는 인간은 어떻게 할까요? 그냥 보냅니까?”
발칸은 눈을 감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찾아. 죽여. 팔, 뽑아.”
“아무렴요. 내일 애들을 보내겠…….”
그 순간, 경계병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발루…… 아니, 발칸 님! 그, 해변가에서 갑자기 어떤 배가 우리 쪽으로 돌진하고 있는데요!”
“뭐?”
그 밑에서 알랑거리던 어인 하나가 콧웃음을 쳤다.
“방호벽이 열려 있나?”
“아닙니다.”
여기저기에서 음습한 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럼 뭐, 자살행위잖아? 침몰하는 거 구경하라고?”
“우선, 저는 보고할 의무가 있어서…….”
“두목님, 구경이나 하러 가실까요?”
발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항구는 이곳에서 멀지 않았다. 배 세 척이 정박되어 있는 항구. 양쪽으로는 거대한 모래산이 지키고 있어, 들어오는 입구는 하나뿐이었다.
방어에 좋은 환경이었으나, 방어에 신경 쓸 필요조차 없었다. 이곳은 황금의 유적이었고, 고대의 기술로 만들어진 절대적인 방패가 씌워져 있었으니까.
그들은 항구 끝에 서서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배 한 척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 씨. 이거 육포라도 뜯으면서 봐야 하는데. 노예 하나 지금이라도 잡을까요?”
“됐어. 금방 끝나겠는데.”
어인들이 낄낄대며 이야기하는 동안, 발칸은 그저 진중한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배는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너무 빠른 속도였다. 벽으로 달려든다는 걸 잘 알 텐데? 안에서 밖을 바라볼 때는 투명했으나, 저 배 입장에서는 거울에 달려드는 셈이나 다름이 없었다.
배는 방호벽과 지척의 거리까지 가까워졌고, 그 순간 발칸은 보았다.
뱃머리 장식에 누군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가 방호벽에 손을 뻗은 순간, 이유를 알 수 없는 위기감을 느꼈다.
그리고 위기감의 이유는 금방 드러났다.
촤르르르르르륵—
빠른 속도로 해체되는 방호벽.
“뭐, 뭐야!”
숨을 멈출 정도로 놀라는 어인 도적들.
먼 거리였으나, 발칸은 보았다. 뱃머리 위에 있는 인간의 손등에서 주홍빛 광채를 발하는 송곳니 문신을.
눈앞이 하얘지는 그 순간, 그는 냉정함을 간신히 되찾았다.
저 배는 지금 빠른 속도로 접근하고 있다. 그리고 배는 한 번에 속도를 줄이지 못한다.
그렇다면 저대로 항구에 처박힐 거고 그 피해는 무시할 수 없을 터.
그 사이에 우리가 반격을 준비하면 된다.
다행히 도적들 중에서는 빠르게 대처를 준비하는 이들이 있었다.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발칸이 그렇게 결론 내린 순간.
“닻을 내려요!”
「닻을 내려라!」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 배 위에 울려 퍼졌고, 쇠사슬이 거칠게 흘러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대한 닻이 모래 아래로 빠르게 잠겨 들어가기 시작했다.
촤르르르르륵—!
그리고.
쿵—!
닻이 바닥의 바위를 때린 그 순간, 전속력으로 달린 배는 그 자리에 강제로 고정되었다.
속도는 곧 원심력이 되었고, 닻을 중심으로 배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촤아아악—!
“저, 무슨 미친 짓을…….”
바쁘게 움직이던 어인 도적들 중 몇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머리가 하얘진 탓이었다.
빠르게 정면 돌진하던 배가 닻을 중심으로 크게 회전했다. 전복되듯 기울다가도 끝까지 중심을 유지했다. 모래가 거칠게 튀어 항구까지 덮칠 정도였고, 먼지가 자욱하게 솟아올랐다.
촤아아아—
끝내 배의 측면이 이곳으로 향한 그 순간.
어인들은 네 개의 화포가 이곳을 정조준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퍼부어!”
쾅쾅쾅 쾅!
어떤 판단을 하기도 전에, 그 포구가 불을 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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