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89
89화 ep29. 사막에서 살아남는 법 (5)
리리는 강선후가 가진 영혼의 상이 다시 발현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그와 여행을 하며, 그의 내면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강선후는, 자신이 품은 명백한 포악성을 끊임없이 억제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어인이 사람을 먹는다는 증거를 발견한 순간, 인내를 놓았다.
그 순간부터 강선후의 분위기는 달라져 있었고, 베두헨 상단원, 심지어 에드워드까지 그 변화를 느끼고 조금은 숨을 죽였다.
강선후는 고개를 들어 발칸 가순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네가 포식자라고?”
발칸은 여전히 팔짱을 낀 채 입을 열지 않고 있었고, 더 이상 기세를 밀리면 안 된다고 생각한 그 옆 어인이 오히려 앞으로 나섰다.
“그래. 네놈도 그 종이 울리는 소리를 들었겠지?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네놈도 지배자인 모양인데, 이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끼리 이렇게 싸울 이유가 전혀 없는…….”
푸욱—!
어인은 말을 잇지 못했다. 쓰러지며 피로 땅을 적셨다.
그 이마에는 투척용 검이 깊숙하게 꽂혀 있었다.
어인들은 큰 혼란을 느꼈다. 공격을 받았으니 달려들어야 하는 건가?
그래야 할 거 같은데도 주저해 버렸다. 그리고 한번 주저하니 기세를 수그러들었고, 누군가 대표해서 용기를 내 달려들 이도 없었다.
격정적인 상황이 벌어졌는데도, 오히려 분위기는 차분하게 내려앉았다.
“내가 물어본 놈이 대답해.”
강선후는 검을 손에 쥐며 다가갔다. 그 혼자 다가가면 위험할 수 있기에, 리리와 하무디는 그를 엄호하며 발걸음을 맞춰 앞으로 나아갔다.
어인들은 자신의 두목, 지배자의 상을 타고난 군웅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정말로 나설 때였다. 팔짱을 끼고 여유를 부리는 건 그 품격을 드러내는 듯했지만, 아무리 품격이 있는 자여도 행동할 때는 행동해야 하는 법이었다.
그렇게 어인들이 자신들의 지배자를 바라본 그때, 발칸 가순은 드디어 팔짱을 풀었다.
그리고.
“젠장!”
옆에 있는 어인을 앞으로 밀쳐 고꾸라지게 하더니, 뒤로 달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
어인들은 자신들의 지배자가 한 행동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제까지, 발칸은 제대로 입을 연 적도 없을 정도로 진중한 사람이었다.
그 진중함과 등에 있는 지배자의 문신.
그 모든 게 이 어인을 도적단의 두목 위치까지 올려 줬다.
그렇게 군웅 취급을 받았던 어인이 지금 자신의 동료를 장애물 삼아 도주하기 시작했다.
어인들도, 베두헨들도 그 모습에 잠시 얼어붙었다. 침착함을 유지하는 건 인간뿐이었다.
“역시.”
“뭔가 알겠어?”
“저거, 어인 아니야. 폐호흡을 하더라고. 내가 착각하는 줄 알았는데…….”
“그럼?”
리리는 조금 당황했다.
“변장을 했겠지. 리리, 에드워드.”
잠시 대화를 듣고 있었던 에드워드가 검을 치켜들었다.
“여기에 남아 있는 놈들을 처리해 주세요.”
「방식은?」
강선후는 램프를 리리에게 넘기고, 앞으로 달려 나가며 말했다.
“저항하면 죽여요. 안 해도 상관없고.”
리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램프를 허리춤에 매달고 나이프를 쥐었다. 에드워드는 듬성듬성한 앞니를 드러내며 씨익 웃고는, 무기를 치켜들며 고함을 쳤다.
저항하면 죽인다는 말을 남겼지만, 어인들은 무기를 치켜들며 직감적으로 느꼈다. 여기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임을.
* * *
근육질의 백상아리 어인은 헐레벌떡 뒤쪽으로 달려 나갔다. 작게만 느껴졌던 이 성의 복도가 지금은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지.
어인들은 땀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속력으로 달려나가는 그는 지금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이전까지 보여 주던 그 무표정함은 온데간데없이, 공포를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물갈퀴가 달려 있었던 손은 날카로운 손톱이 자라난 네 개의 손가락으로 변했다.
겨드랑이에는 거대한 날개막이 만들어졌으며, 특유의 거칠거리는 가죽에서는 검은 털이 자라났고, 뾰족한 코와 작은 입, 작은 이빨, 그리고 작은 눈이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귀는 크게 확장되었다.
그는 이족보행을 하는 거대한 박쥐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뱃킨, 변장하는 능력을 가진 희귀 종족 중 하나였다.
발칸 가순.
이건 그가 진짜 가순을 독살한 후 뒤집어쓴 가명이었다.
그의 진짜 종족은 뱃킨, 남쪽 먼 곳에서 핍박받은 사기꾼의 종족이었다.
그가 이곳에서 했던 말 중 유일하게 거짓말이 아니었던 건 자신이 지배자의 상을 타고났다는 사실이었다.
기만자의 상.
그는 자신이 타고난 상의 이름이 그렇다고 배웠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자신이 어떤 문신을 타고났고, 그 문신을 이용하면 사람을 부릴 수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남쪽에서 하염없이 올라오다 이 사막까지 도달한 한 뱃킨은, 자신의 입지를 이용하여 서부를 호령하려는 도적단의 관리직에 올라섰다.
그렇게 한몫 잡은 뒤, 나락에 있다는 보물을 얻고는 밤에 몰래 도망칠 생각이었다. 그런데.
“젠장, 젠장 그 새낀 뭐야!”
기나긴 복도를 지났다. 그 끝에는 뒤편으로 개방되어 있는 테라스가 있었다.
그곳에 도착한 뱃킨은 난간에 선 채, 뛰어내려 날갯짓을 시작했다.
착지하면 모래 아래로 가라앉아 버리는 끔찍한 사막이었지만, 어떻게든 날아가면 몸을 쉬게 할 곳 정도는 찾을 수 있겠지.
어디로 가든 지금 여기에 있는 것보다는 낫다고 느껴졌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저 인간이 누구든, 하늘에 떠 있는 내게 뭘 할 순 없으리라.
라고 생각한 그 순간.
푸욱—
“……어?”
무언가 자신의 배를 관통했다.
‘화살?’
그 인간은 분명 활을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뾰족한 화살촉이 배를 관통해 있었다.
철컥-!
화살촉이 날개를 펼치듯, 펼쳐졌으며.
“아아아악—!”
날아가는 그를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니, 화살의 꽁지에는 줄이 달려 있었고, 그 줄을 붙잡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아까 그 인간이었다.
“끄아아악!”
푸욱—!
균형을 잃고 꼬꾸라졌다. 파도치는 모래가 빠르게 가까워졌고, 뱃킨은 속수무책으로 처박혔다. 날개가 부러졌다. 격통이 느껴졌다.
모래 아래로 잠겨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죽는다.’
그런 생각이 드는 그 순간, 인간이 밧줄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2층 높이의 테라스로 끌려 올라갔다. 관통된 화살의 압박감에 몸부림쳤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희망이 느껴졌다.
이 인간이 내 목숨을 살려 주려는 건가? 법적으로 정당한 처벌을 선호하는, 그런 딱딱한 녀석인가?
그럼 아직 기회가 있는 셈이었다. 우선 살기만 하면, 도망치는 건 얼마든지 자신이 있었으니.
“아아아악—!”
하지만 지금은 정신을 놓고 싶을 정도의 통증만이 그를 덮칠 뿐이었다.
인간은, 마치 사냥한 동물을 거처로 끌고 가듯, 그를 관통한 밧줄을 붙잡고 기나긴 복도를 걸을 뿐이었다.
그대로 항구까지 뱃킨을 끌고 갔다. 계단에서 굴러떨어지고 난간에서 머리로 착지했다.
그것만으로도 뱃킨은 거의 빈사 상태에 놓였다.
그렇게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이곳의 노예로 잡혀 있었던 베두헨들이 해방되어 모여 있었다. 어인들 중 일부는 포박당한 채 무릎 꿇려 있었고, 나머지들은 변사체가 되어 땅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곳 중앙으로, 강선후는 이 박쥐 인간을 끌고 왔다.
사정을 설명들은 하무디는 경악했다.
“그럼, 이 뱃킨이라는 희소 종족이 발칸 가순의 진짜 정체였던 겁니까?”
“진짜는 죽고, 이놈이 그 자리를 차지했겠죠.”
강선후는 그렇게 말하며 뱃킨을 바라보았다. 뱃킨은 마치 죽은 것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하지만 강선후는 그것마저 기만이라는 사실을 이미 간파한 상황이었다.
그가 발로 차자 뱃킨은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그러고는 빠르게, 사정하듯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내 말 들어 봐. 너, 너 그 종소리 들었지? 내가 아무리 허풍쟁이여도, 지배자의 상을 타고난 건 사실이거든? 이거 문신 보이지?”
뱃킨은 자신의 등에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문신을 보였다.
어떤 깃발 모양의 문신이었다.
“나는 사람들을 모으는 재능을 타고났어. 봐, 이 물고기 대가리들이 이제까지 내 말을 따르고 집단을 형성했잖아. 내가 오기 전까지, 이 녀석들은 야만인이나 다름이 없었다고.”
강선후는 부상을 입고 묶여 있는 어인들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지배자의 상이야. 이런 놈들이랑은 궤가 다르다고. 우리는, 우리는 왕좌의 자격을 가지고 있잖아? 내가 알아. 내가 아는 걸 이용하면 우리는 그곳에 도달할 수 있어. 왕좌는 너 줄게. 나는 그냥 보직 하나만 주면…….”
“지배자의 상을 타고났다고, 사람들을 노예로 부리고, 속이고…….”
강선후는 더 들을 가치가 없다는 듯 검을 들어 올렸다.
뱃킨은 턱을 떨며 어버버거리다가 악에 받친 듯 소리쳤다.
“뺏긴 놈들이 약한 거야! 나는 내 능력을 이용해서 강자의 위치에 올라간 거고. 이 병신아! 강자가 약자에게 빼앗는 게 뭐가 잘못된 건데! 너도 지배자라면, 너도 강자라면 그 원리를 잘 거 아냐!”
“강자가 약자에게 빼앗는 게 당연하다고?”
“그딴 마음가짐으로 살면 너도 언젠가 약자로 몰락할 거라고! 정신 차리고 지금 상황에서 기회를 잡으란 말이야! 내가, 내가 너한테 도움이 될 거라는 걸 모르겠어?”
강선후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너는 진짜 강자들이 어떻게 살았었는지 몰라.”
그러고는 리리를 바라보았다.
“그렇지? 리리.”
리리는 생각했다. 진짜 강자.
용, 성좌.
황금의 왕.
이들이 약자에게서 무언가를 빼앗는 삶을 살아왔는가?
리리는 이제까지 엿봐 온 그들의 삶을 상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오히려 신념을 위해서 모든 걸 기꺼이 바쳤다.
그렇기에 그들은 진정한 지배자였다.
강선후는 밧줄을 잡은 손을 거칠게 휘저었다.
“아아악—!”
뱃킨은 볼품없이 땅을 구르며 날아갔다.
그는 한 무리의 사람 사이로 떨어졌다.
“으으…….”
고개를 올려 보고 알았다.
이제까지 노예 취급하고, 핍박하던 베두헨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었다.
베두헨 포로들은 악기에 찬 눈으로 강선후를 간절하게 바라보았고, 강선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성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강자가 되어 보세요.”
그 말만을 남겼다. 리리는 그 둘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종종걸음으로 강선후의 뒤를 따랐다.
베두헨은 쓰러져 있는 벳킨에게 다가갔고, 벳킨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애원했다.
“살려…… 주세요…….”
* * *
리리는 그 뒤를 따라가면서 보았다. 거친 야수의 형태를 하고 있는 포식자의 상이 사라져 가는 모습을.
영혼의 상은 그 영혼이 가지고 있는 성질을 상징한다.
아무리 웃는 얼굴로 만인을 대하는 사람이라도, 리리는 그자가 숨기고 있는 악의를 상을 통해서 보고는 했다.
아무리 본성을 자제하더라도, 영혼의 상까지 사라지게 만드는 이는 이제까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흑성이 된 성좌마저도 그랬는데.
그런데, 이 인간은 자신의 본성을, 영혼의 영역에서마저 억누르고 있었다.
대체 어떤 과거를 겪었던 걸까.
그 자신마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 어쩌면 기억할 생각 자체가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리리는 그게 간혹 궁금했다.
강선후는 성의 복도를 가로질러 뒤편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는 거야?”
“아까 봤어. 얘들이 약탈했던 물건들이 이 뒤쪽 항구에 쌓여 있더라고.”
“그렇구나.”
그러고는 잠시, 정적이 시작되었다.
“저 박쥐 인간. 지배자의 상이 뭔지 알 거 같아.”
“뭔데?”
“노바니 아노novany ano.”
“……전략가의 상?”
“응.”
“쟤는 자신을 기만자의 상이라고 소개하던데.”
리리는 착잡한 감정을 느꼈다. 이 시대의 지배자들이 변질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 볼수록 그랬다.
하지만, 그 감정은 금방 사라졌다. 눈앞, 자신이 선택한 지배자는 전혀 그러지 않았으니.
아니, 이 남자는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 줄지도.
어쩌면, 진짜로 이 기나긴 시대에 종지부를 찍을지도.
그런 생각이 들자 오히려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각자 생각에 잠긴 채 성을 가로질러 섬의 뒤편으로 이동했다.
다시 2층 테라스에 도달하자 아래쪽의 작은 간이 항구가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산더미처럼 쌓인 약탈품이 있었다.
식량, 물, 술. 뭐가 들었는지 모를 금속 상자들.
나무가 아니라 금속인 건 아마 이 사막의 특성 때문이겠지.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존재감을 드러내는 물건이 하나 있었다.
“……저게 그거겠지?”
리리는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아니, 생각보다 너무 무식한 거 아냐?”
끝내 내놓은 감상도 이거 하나뿐이었다. 오히려 강선후는 그 어마어마한 투박함이 맘에 든 듯 흥분한 목소리로 웃었다.
“하긴, 저 정도는 되어야 거대 괴수를 사냥하는 물건이라고 할 수 있잖아.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발상이 너무 맘에 들어.”
그건 발리스타였다. 활과 마찬가지로 탄성을 추진력 삼아 투사체를 쏘아내는 무기.
하지만 이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는 그 크기에 있었다.
강선후가 타고 온 배와 버금간다고 느낄 정도의 압도적인 크기.
나무가 아니라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이 거리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문자가 여기저기에 잔뜩 적혀 있었다.
그곳에 장전되는 건 화살도, 볼트도, 포탄도 아니었다. 고작 그런 걸 쏘기 위해서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었다.
“우리는 저걸 ‘마수를 멸하는 창’이라고 부릅니다.”
어느새 따라온 상단장, 하무디가 뒤에서 말했다.
백전불태의 성벽마저 꿰뚫어 버릴 것 같은 압도적인 금속 창이 햇빛에 과열되어 아지랑이를 피워내고 있었다.
크라켄을 사냥할 결전 병기, 마수를 멸하는 창.
강선후는 그 투박하고 거친 자태를 마음에 들어 했고, 리리는 보기만 해도 황당한 그 무기를 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옮기죠. 손이 많이 필요하겠네.”
“하아…….”
고생길이 열렸다는 생각이 먼저 들 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