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9
9화
***
“소희 씨.”
탕비실을 정리하고 있던 차소희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연구 본부에서 출장을 나온 김서진이었다. 평소에도 엮일 일이 많아 얼굴을 튼 사이였다.
“네?”
“이번에 이계 탐사에서 가지고 온 샘플 3종 있잖아요.”
“아, 네.”
“대박이에요.”
차소희가 맡았던 업무는 무사히 끝났다. 연구 부서의 직원은 이번에 그 샘플의 분석을 담당한 팀원이었다.
“하나 같이 알짜배기들뿐이더라고요?”
“그래요?”
“네. 열을 가하면 물을 뿜어내는 나뭇가지 있잖아요. 그 발견이 특히 결정적이었어요. 우리 회사 모토 알죠? 이계의 것을 현대 생활에 접목. 딱 거기에 부합하는 거라 위에서도 되게 주목하고 있거든요. 자연 친화적 스프링클러잖아요?”
“아하···.”
“그것도 그렇고, 붉은 열매하고 스캐븐 울프 이빨도요. 대체 어떻게 얻어오신 건지 궁금할 정도라니까요?”
“보고서에 다 적어 놨는데요.”
물론 조작한 보고서였다.
모든 물건은 강선후가 제공해준 거니까.
연구 부서 직원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가, 다가와서 속삭였다.
“혹시··· 알고 계시는 하운드가 있나요?”
“네?”
“처음에는 경영팀에서 의심하더라고요. 하운드한테 의뢰 맡기고 시치미 떼는 게 아닐까? 하고요. 사칙 위반이니까요. 근데··· 거래 데이터베이스 다 뒤져봐도 내역이 없으니 의심을 접었대요. 하운드들은 우리 사정에 맞춰주는 사람들 아니잖아요? 피도 눈물도 없으니까.”
“그렇죠?”
“그래서, 혹시 친분 있는 하운드가 있으실까 싶어서요. 어디 뒷골목에서 주고받았다든가?”
“에이.”
차소희는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럴 리가. 아시잖아요.”
“그쵸. 하운드는 1촌도 믿지 말라는 말이 있으니. 그냥 해본 말이에요. 게다가, 일주일 만에 이 정도 일을 해내는 하운드는 국내에는 애초에 없잖아요?”
사실은 차소희조차 비슷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버뮤다 숲은 외곽이어도 위험했다. 심지어 그 내부를 제대로 조사한 공식적인 사례는 이제까지 단 한 개도 없었다. 워낙 변칙성이 심한 터라 함부로 발을 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강선후가 호언장담했을 때, 그를 믿기는 했으나 마음 한편의 불안감을 없애지는 못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근데, 그런 차소희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강선후는 모든 물건을 하루 만에 가져다줬다. 보고도 믿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계에서 6년이 훌쩍 넘도록 생존한 인간.
듣기만 해도 대단했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더욱 거대한 업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소희야!”
“네!”
“너 오늘 이계 출장인 거 알지? 지금쯤 출발해야 할 거야. 오늘 입장 인구 많아서 좀 밀린대.”
“아,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엉, 수고해라. 복귀하지 말고 출장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가.”
“네! 감사합니다! 오예!”
“너무 티 나게 좋아하면 안 된다. 인마.”
“오예···.”
“아니, 장난 치지 말고 빨랑 안 가?”
“다녀오겠습니다!”
차소희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는 선임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서둘러 사무실을 나섰다.
이번에도 이계 파견 업무였으나, 이전보다는 훨씬 발걸음이 가벼웠다. 목적지는 오지가 아닌 그저 이계 쪽 베이스캠프일 뿐이었으니까.
그래서 걱정 없이 택시를 탔다. 이동하는 동안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나: 야] 1 [나: ? 또 폰 꺼놨음?] 1 [나: 야야야야야야야야야] 1 [나: 인센 더 나왔어. 술 살게.] 1 [나: 삭제된 메세지입니다.] 1 [나: 사진] 1 [나: 동영상] 1 [나: 소희님이 선물과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지금···] 1“에이씨···.”
강선후에게 물건을 건네받고 약 일주일이 흐른 지금까지, 강선후는 카톡 메세지를 읽지 않고 있었다. 전화도 연결되지 않았다. 평소의 버릇처럼 폰을 꺼두고 있는 걸까?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역마살이 제대로 낀 녀석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 방랑벽 탓에 실종 전에도 이런 식으로 자주 연락이 안 되고는 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러려니 했다. 왠지 싸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도착했습니다.”
“아, 네.”
어느새, 기차역처럼 구성된 차원문 광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계 파견 가세요?”
“네.”
“고생하시는구만. 제 딸내미도 그런 데에서 일하는데, 이거 뭐 신생이라 그런지 법도 제대로 안 만들어져 있고···. 고생 많이 하더라고요. 제대로 된 회사는 맞는지···.”
제대로 된 회사인가에 대한 의문.
신생 업계의 초기에는 어디든 듣는 소리였다. 차소희가 생각하기에도 저런 말을 들을 만한 곳들이 꽤 많았다.
“수고하세요. 힘 내시구요.”
“기사님도 화이팅이에요!”
방긋 웃고는 짐을 챙겨서 내렸다. 서둘러 수속을 밟은 뒤 차원문 안으로 들어갔다. 차원간 이동 충격에 속을 한껏 게워내고는 누구나 그렇듯 비틀거리며 시설에서 나왔다.
이계 베이스캠프가 한눈에 들어왔다. 꽤 넓은 부지의 마을 전체가 통째로 컨셉에 빠져있는 곳.
누군가에게는 이색 관광 코스였으나, 차소희 입장에서는 그저 일터일 뿐이었다.
“에효.”
강선후에 대한 생각은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녀의 이번 업무는 거래처 방문. 하운드 협회에서 거점으로 사용하는 어떤 여관을 들르는 것이었다.
그 폐쇄적이고 묘하게 불량한 태도의 하운드를 상대할 생각에 벌써부터 한숨이 나왔다.
그렇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분위기가 평소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거 물자 어디로 가는 거야? 이야기 못 들었는데?”
“그··· 있잖아요. 외곽에 이번에 텐트 친 사람이요.”
“텐트? 캠핑이야?”
“몰라요. 보니까 무슨 사무실이라고 하는 거 같은데?”
용역업자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수레로 짐을 날랐다. 딱 봐도 건축 자재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베이스캠프에 건물이 올라가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보통 OWIC에서 건축을 주도하고는 했으니까.
하지만, 저 반응은 뭔가 이상했다.
“뭐가 새로 올라가나?”
호기심이 동했다. 시간 여유는 충분했다. 어느새 차소희는 그 뒤를 따라가 보고 있었다.
수레는 마을의 길을 따라가더니 기어코 울타리까지 넘었다. 생각보다 먼 거리를 가다가 마을과 야생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곳에 다다라서야 멈췄다.
“······?”
수레가 짐을 내려놓고 떠날 때까지, 차소희는 움직일 수도 입을 열 수도 없었다.
제대로 세우지도 않은 높이 2.5미터짜리 임시 텐트. 그리고 그 앞 얼기설기 만든 의자에 기대 누워, 자재가 도착한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한 남자.
그 태연함만으로 충분히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강선후?”
그가 게으르게 모자를 치켜 올렸다.
“의뢰하러 오셨어요?”
“···의뢰?”
그제야 한편에 꽂혀 있는 조잡한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탐험가 길드 사무소>
“···뭐야? 뭔··· 길드?”
“의뢰비는 상담 내용에 따라 변동되니 참고해주세요~.”
“야!”
“아, 졸려.”
강선후는 다시 모자를 툭 덮었다.
***
일주일 안에 이게 될 줄은 몰랐다.
이런저런 사소한 일들을 다 제하면, 경비대장의 도움이 굉장히 컸다.
“이계에서 사무실을 차리고 싶으신 겁니까? 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경비대장은 빠르게 서류 문제를 해결해줬다. 지난번에 내가 한 행동이 꽤나 인상 깊은 모양이었다. 이렇게나 손을 써주다니.
“그런데, 왜 서울이 아니라 이계에······.”
“서울은 임대료가 비싸잖아요.”
“아.”
경비대장은 금방 수긍했다. 이계는 널린 게 땅이다. 애초에 소유권을 주장하기가 묘하니 마을 내부는 정부에서 관리 중이었다. 그나마도 울타리 바깥은 그냥 차지한 사람이 임자였지.
그럼, 거기를 내 거점으로 삼으면 되잖아?
“이계에 사무실이 있으면··· 의뢰량은 좀 줄더라도 일거리가 없진 않을 거고, 이계에 내 거점이 하나 생기는 거니까.”
사실 마을의 분위기도 꽤 마음에 들었다. 어디 한적한 시골로 귀농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던 게 컸다.
이곳에 있으면, 적당히 돈도 벌면서 이계 탐험도 계속해서 진행할 수 있겠지.
생존을 위해 싸웠을 때와는 다르게 편안하고 안전하게.
대충 사정을 들은 차소희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역시 아직 포기 못 했구나? 탐험.”
“······.”
이 시점에서 깔끔하게 인정하기로 했다. 내 천성이 이렇다는 사실을.
내가 쉬면서, 인생을 즐기면서 하고 싶은 건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탐험이었다.
“솔직히 이계라는 곳이 지긋지긋하긴 했어. 근데 나는 그 생각이 사라질 정도로 이계에 오래 살았거든.”
이계가 지긋지긋하다는 생각도 희미해지고, 어느 새부터 익숙함이 더 크게 자리 잡았던 거다.
“근데 안전하게 돌아다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나니까···.”
“마음이 바뀌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면 엄청 두근거리지 않아?”
여전히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기에 차소희가 어떤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존마저 지도가 완성된 시점이야. 지구에는 의외로 두근거리는 곳이 남아 있지 않거든. 이제 우리가 아직 모르는 곳은, 어차피 맨몸으로는 엄두도 못 낼 정도로 위험한 곳뿐이니까.”
인류가 오지에 첫발을 들인 그 순간의 벅참을 내 몸뚱어리 하나만 들고 21세기에 다시금 느낄 기회였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으니 참을 수가 없었지.
“······.”
차소희는 말이 없었다. 왠지 신경이 쓰여서 모자를 슬쩍 들어보았더니 녀석은 방긋 웃고 있었다.
“너답네.”
“그런가?”
“솔직히 그럴 줄 알았어. 너 제대로 미친놈이잖아.”
“하.”
그러면서 시선을 내 뒤쪽으로 옮겼다.
“흠.”
“나 이제 자도 돼?”
“바보야? 아니, 아무리 그래도 구색은 갖추든가. 이렇게 해두면 오던 손님도 도망치겠다. 그리고, 마케팅은 생각 해봤어? 홍보는?”
“어떻게든 되겠지. 전단지 정도는 돌릴까?”
“······.”
진심이었다. 애초에 열정적인 스타트업 기업인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까. 날씨도 좋고. 여기는 이계 주제에 볕도 좋고 공기도 제법 건조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전하다. 근처에 마을도 있으니 식료품 같은 것도 문제없고, 마음만 먹으면 서울 중심가까지 걸어서 갈 수 있다.
“헐, 생각해보니까 여기 혹시··· 천국 아냐?”
“천국은 무슨. 천국 일찍 가기는 딱 좋겠네.”
그러면서 정장 재킷을 벗어 나무에 걸고 팔을 걷어붙이는 차소희.
“내가 좀 거들어줄게.”
“왜 사서 고생?”
“받은 게 있잖아. 그리고···.”
그러면서 텐트를 올려다본다.
“내가 단골 되지 않을까 싶어서. 사장한테 점수 따두면 뭐 하나 떨어지지 않을까?”
내가 생각한 주요 고객은 차소희 같은 사람들이 맞긴 했다. 애초에 발상도 얘 일 도와주면서 떠올리게 된 거니까.
이전에 조잡한 기계를 만들어준 솜씨를 십분 발휘하면서, 차소희는 뚝딱뚝딱 텐트를 만지기 시작했다.
“넌 오히려 이런 일이 더 체질에 맞는 거 아냐?”
아무리 생각해도 차소희는 몸을 움직이는 쪽을 더 좋아했다. 지금도 비슷한 일을 하는 것 같긴 하지만 그 궤가 좀 달랐다.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한다고 해야 하나?
“글쎄. 하고 싶은 거랑 할 수 있는 건 다르잖아?”
역시 돈 때문인 모양이었다. 하고 싶은 거로 벌어 먹고사는 게 쉽지 않은 일이긴 하지. 내가 없는 2년간 어떤 활동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결론적으로 지금 차소희는 이계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겸사겸사 움직일 겸 나도 좀 거들었고, 텐트 보수 공사는 순식간에 끝났다.
건설에 필요한 자재는 뒤쪽 안 보이는 곳으로 옮겨졌고, 비딱하던 텐트도 바로 세워졌고, 울퉁불퉁한 흙투성이인 바닥을 쓸어 말끔하게 만들었다.
“장사를 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흠.”
재킷을 다시 들고, 잠시 텐트를 올려다보던 차소희가 넌지시 말했다.
“···재밌겠네.”
그 시선에는 부러움이 담겨 있었다. 직장인들은 누구나 자유에 대해 동경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었다. 현실에 부딪힐 뿐.
“나도 기회 되면 내 가게나 차릴까 봐.”
“원래 기승전치킨이래잖아. 대한민국은.”
“···튀김기나 사야겠네. 나는 이제 일하러 가볼게. 나중에 화환이나 좀 보내줄까?”
“그럴 돈 있으면 튀김기에 보태.”
차소희가 나무 뒤로 사라져가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어떠한 가구도 들여오지 않은 텅 빈 텐트 한가운데.
두꺼운 천을 통과하는 희미한 빛에만 의지한 채, 나는 흙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설명하기 힘든 도형을 그려갔다.
‘문자’ 형태의 룬 언어.
처음에는 매번 보고 그려야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눈 감고도 그릴 수 있게 된 유일한 문장.
흡사 마법진이라고 볼 수도 있는 하나의 문장을 완성한 뒤, 조용히 외쳤다.
“카츠kaahz.”
직역하자면 ‘시동’이라는 단어.
그와 동시에, 모래가 파도치듯 출렁이더니 작은 도시 형태를 구성했다.
그리고는 각양각색의 빛 구슬 열두 개가 원의 형태로 모래 도시를 감쌌다.
이어서 검의 형상 하나가 도시 상공을 향해 수직으로 떠오른 뒤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
이계에서 생존하던 시절, 내 심장을 멈추지 않게 만들어줬던 문장.
조금 전 땅에 쓴 룬 문자의 의미는 이러했다.
『신에게 버림받은 황금의 왕국, 나는 그곳에 왕의 검을 묻었도다.』
『왕의 검을 손에 쥔 자.』
『영원한 왕좌에 앉으리라.』
책상 너비 정도의 신비로운 구조물을 잠시 바라보다가 왼쪽 손등을 들어 보였다.
손등에서는 날카로운 송곳니 형태의 문신이 발현되어 주홍색 빛을 내뿜고 있었다.
이 룬 문장을 발동할 때만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문신.
새긴 기억은 전혀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손등의 문신과 도시를 둘러싼 빛의 구슬의 관계였다.
그 구슬 중 하나가 문신과 동일한 주홍색으로 빛나고 있었으니까.
“······.”
문신과 해당 구슬은 서로 공명하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힘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계의 신비, 룬 언어의 정체.
그리고 대체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룬 언어에 반응하는 손등의 문신.
그 궁금증의 답이 되어줄 단서가 바로 ‘황금의 왕국’에 있었다.
심장이 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이계 탐험을 포기하지 못했던 결정적인 이유였으니까.
“···고대 왕의 보물을 찾기 위해서 만들어진 탐험가 길드라.”
뜨거운 울림이 있는 시작이었다.
···물론 길드원은 나 혼자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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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 포식자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