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90
90화 ep29. 사막에서 살아남는 법 (6)
「승리를 노래하네—」
「우리는 운데라를 가장 많이 바라보는 달의 양자이니, 밤의 사막은 친절한 아낙네처럼 우리를 감싸안는다네—」
두 개의 달이 모래 위를 비추는 밤, 오랜 기간 굶은 베두헨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다 보니 어느새 연회판 되었다. 사람들은 술병을 거칠게 기울였다.
재밌는 건, 베두헨들은 술과 음식을 즐기면서 겸사겸사 일도 하는 그런 습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마도 척방한 땅에서 살다 보니 시간을 절약하는 습성이 문화가 된 듯했다.
탕—! 탕—! 탕—!
노래 사이로 양손 망치가 거대한 못을 때리는 소리가 적하항에 울려 퍼졌다. 지금 이곳은 우리가 습격한 곳을 기준으로 섬의 반대편, 이름도 참 거창한 그 발리스타가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배를 이곳으로 끌어온 뒤, 발리스타를 배에 장착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다행히 어인에게 잡혀 왔었던 포로 중에 적합한 기술자가 있었고, 그는 기꺼이 우리에게 힘을 빌려 주었다.
「이렇게 또 배에 손을 대는 녀석들이 나왔구만!」
에드워드는 배에 못질을 한다는 게 못내 아쉬운 모양이었다.
“싫으세요?”
「당연히 내키지 않지! 해적에게! 배는 또 하나의 동료다! 동료를 건드는 걸 좋아하는 바다 사나이가 어디 있겠느냐!」
그 모습을 옆에 선 리리가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배를 위한다는 사람이 닻 내리라는 명령에 그렇게 신나 했나?”
「이 건방진 뱀파이어 같으니! 그 혀를 뽑아 버릴 테다!」
“하.”
「웃어? 웃었냐 지금!?」
리리와 해적은 은근히 합이 안 맞는단 말이지. 투닥거리는 걸 중재하기 위해 나도 끼어들었다.
“그러게요. 그래도 닻 내리라고 했을 때 거부하진 않으셨네요. 배도 소중한 동료라면서.”
「나는 용맹한 동료를 좋아하지!」
정말 제멋대로인 해적이었다. 정말 속 편한 정령이란 말이지.
셀피랑 비교해 보면, 같은 정령인데 이렇게나 성격이 다를 수 있나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대왕문어를 잡고 나락 아래로 가 위대한 약탈을 실행할 수 있다면, 이 정도쯤은 감당할 수 있지 않겠나!」
이 말을 하는 에드워드는 조금은 진지했다.
이 해적이 겉보기와는 다르게, 그 나락 아래에 있다는 도시를 대할 때는 꽤 진지했다.
「그곳에 갈 수 있다면, 더한 희생도 할 수 있지.」
“흠.”
램프의 정령은 소원의 정령이다. 누군가의 열망이 모여 만들어지고, 그 열망을 이루는 데에 자신의 목적을 둔다.
에드워드는 어떤 소원을 가지고 태어난 걸까?
내심 궁금해졌지만, 이런 건 들을 시간은 충분했다.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지평선 끝까지 나아가는 모래의 바다.
저 크기는 내게 주어진 시간을 의미하고, 이는 뭐든 촉박하게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의미가 된다.
캉—!
마지막 못이 박히는 소리와 함께, 배 위에서 작업을 하던 인부들이 내려왔다.
에드워드의 해적선 갑판은 2층 계단 구조였다. 배를 조종하는 조타가 2층에 달려 있는, 영화 같은 데에서 자주 본 그런 구조.
그런데 지금, 조타 뒤쪽의 빈 공간을 통째로 발리스타가 차지할 정도였다. 그나마도 공간이 충분치 않아서 앞에서 보면 T자 형태의 구조로 얹혀 있었다.
에드워드의 배가 작은 편이 아니었음에도 그랬다. 이는 저 ‘마수를 멸하는 창’이 얼마나 거대한 무기인지 다시금 체감할 수 있는 풍경이었다.
나는 위로 올라가서 물건을 고정한 기술자를 대면했다.
“고생하셨어요.”
“고생은. 고작 이런 것밖에 못해 드린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오. 은인 덕분에 제 아내와 자식새끼까지 모두 목숨을 구했으니.”
기술자는 땀을 닦아 내며 발리스타를 올려다보았다.
“괴물이 따로 없구만.”
“괴물을 잡으려고 만들어진 물건이니까요.”
이 물건의 재질은 나로서도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없었다. 문자로 추정되는 문양이 쭉 늘어져 적혀 있었는데, 형식이 완전히 파괴돼 있어 알아볼 수가 없는 형태였다.
단연 압도적인 건, 역방향 가시가 잔뜩 나 있는 거대한 금속 덩어리의 창이었다. 그건 거대하게 자란 나무 한 그루와 비견될 정도의 크기였고, 시위에 걸린 채 장전을 기다리고 있었다.
“크라켄을 잡을 생각이요?”
고개를 끄덕였다. 베두헨들은 외부인들이 자신의 적을 나서서 토벌해 주겠다는 말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는 했다.
“희한한 사람이군……. 어쨌든, 사용법은 간단하오. 이쪽에 도르레를 끝까지 돌리면 장전, 그 옆의 레버를 당기면 사격. 나머지 도르레들은 조준을 하는 데 쓰는 거고.”
사용법은 직관적이었다. 2차 세계대전 때 쓰는 무기의 조준 방식 같은 느낌도 강하게 들었다. 영화에서 몇 번 본 적 있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감사를 표했다.
“내가 감사하지. 이름이 뭔지 들어도 되겠소?”
“강선후.”
항상 이런 건 리리가 먼저 대답한다. 그 목소리에 자부심이 가득 차 있는 게 매번 이럴 때마다 낯이 조금 뜨거울 지경이었다.
다시 내려가 보니, 사람들이 이곳에 정박되어 있었던 배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물어보지 않아도 뭔지 알 수 있었다.
“우리 배를 되찾았다! 으하하하!”
“정말 다행입니다.”
배를 바라보던 하무디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야 좀 현실감이 드네요. 근데, 그 현실이 현실감이 없어서 더 이상합니다.”
“무슨 말이 그래요?”
“가진 모든 걸 빼앗겼습니다. 목숨만큼 소중한 배마저. 그리고 마지막에는 목숨까지 빼앗기기 직전이었습니다.”
하무디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바로 오늘 낮까지만 해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를 몇 년 동안이나 괴롭혔던 놈들의 본거지에서 모든 걸 되찾았네요. 이게 현실감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그런 식으로는 생각을 안 해 봐서. 좋은 게 좋은 거죠. 즐거우면 즐기면 되는 거예요.”
이곳에 있는 베두헨들, 그러니까 포로들과 하무디의 상단원들이 일제히 내게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고맙소! 그 옆에 뱀파이어 아낙네도! 멋지게 싸우더군!”
“……아직 아낙네는 아닌데.”
난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싫은 게 아니라, 선호하지 않는다. 대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거든. ‘그냥 바로 떠날 걸 그랬나?’ 하는 생각까지 들 지경이었다.
“기꺼이 여러분들의 것을 되찾게 되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오히려 리리는 이럴 때마다 귀족의 고풍을 드러내고는 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당신들은요?”
“이곳에 잡혀 있었던 동족들을 데리고 마을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베두헨들의 마을이라.
궁금하긴 한데, 그보다 먼저 찾아보고 싶은 게 있는 상황이었다.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이곳에서 기사단을 만들었다는 기사단장 이야기 말이에요.”
“아, 네. 백 년 전 서쪽에서 온 기사 이야기 말입니까?”
“그 기사가 무기를 나락에 버리고는 ‘존재해선 안 되는 설산’으로 은거했다고 했잖아요?”
“저도 들은 이야기긴 하지만, 우선은 그렇습니다.”
“그 설산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하무디는 동족들과 눈빛을 교환했다. 그들의 표정에는 대체로 난처함이 담겨 있었다.
뭔가 내가 해선 안 될 말을 한 건가?
대답을 들어 보니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기사단은 그 설산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알려 주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따로 아는 방법이 있나요?”
하무디는 주저했다. 그 눈빛에 담긴 고민을 찬찬히 읽어 보았다.
자신이 던진 정보가 잘못된 결과를 만드는 게 아닌지 고민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생각은 길지 않았다. 하무디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성좌의 인도를 받은 이들은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굉장히 오래전부터 전설 속에 있었던 산이라서.”
“그래요?”
반색하자 하무디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빠르게 말을 이었다.
“물론 동행하시는 뱀파이어 분은 귀족 같습니다. 로열 블러드는 성좌의 축복을 받은 이들이기에 동행한다면 그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곳은 위험합니다.”
“위험하다고요?”
“소문이 있소.”
뒤에서 가만히 듣고 있었던 덩치 큰 베두헨이 말했다.
“기사단이 그를 설득하기 위해 보낸 사람 중 돌아온 자가 한 명도 없다더군. 우리 베두헨은 종족의 성좌가 없소. 아마 그 때문이 아닌가 본데.”
그렇단 말이지.
이전의 그 숲처럼, 성좌의 축복이 없으면 몸이 조금은 위험해지는 바로 그런 건가.
“말할 수 있는 건 이 정도뿐입니다.”
“그 정도면 충분할 거 같아요.”
“어떻게 할 생각이오?”
“가야죠. 설산.”
이 대답을 듣고 베두헨들은 한 번 놀랐다. 그리고, 아무런 대꾸 없이 그저 짐을 챙기는 리리를 보고 한 번 더 놀랐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우물쭈물하다가는, 체념한 표정을 지었다.
“이걸 받으십시오.”
하무디가 유리구슬을 건넸다. 한 손에 꽉 찰 정도의 크기였는데, 그 안에는 아직도 살아 있는 벌이 하나 들어 있었다.
“지원군이 필요할 때, 그 유리를 깨서 벌을 날려 보내세요. 그러면, 우리가 당신을 도우러 가겠습니다.”
이 사막 사람들이 쓰는 연락통인 모양이었다.
나는 그걸 잠시 바라보다가, 안주머니에 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한번, 우리를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베두헨은 준 만큼 받고, 받은 만큼 줍니다. 반드시 갚겠습니다.”
그들은 이런 말과 함께 물과 식량을 넘쳐날 만큼 내게 제공했다.
작별 인사를 한 뒤, 베두헨 상단의 배가 먼저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도 배에 올라탔다.
리리가 불안한 듯 넌지시 말했다. 이제는 승무원이 없으니 키는 내가 잡은 상태였다. 나는 베두헨 조타수가 그랬듯 발판을 조심스럽게 밟았다. 배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진짜 갈 거야?”
“어쩔 거 같아?”
“가겠지. 내가 괜한 질문을 한 건데, 안 하고는 못 배기겠네.”
설산 올라간 사람들 중에 돌아오는 사람이 없다.
성좌의 가호가 있어야만 그곳의 위치를 찾아낼 수 있다.
그런 것들은 내게 별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
* * *
“허억…… 허억…….”
베두헨들은 사막의 민족이다.
그들의 고향도 사막이고, 마지막에 몸을 뉘이는 곳 역시 사막이다.
먼 변방으로 이주한 베두헨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대부분 베두헨들은 이런 믿음을 가슴속에 품고 살았다.
그들에게 사막이란 애증의 존재였다. 그들을 집어삼키는 악마가 되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그들을 안아 주는 다정한 밤의 어머니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베두헨들은 언제 어떻게 죽더라도, 사막 위, 모래 속에서 죽기를 원했다.
그래서 지금 이 베두헨은 생각했다.
아니야.
이건 아니야.
휘이이이잉—
하늘에서는 미세한 하얀색 쌀알들이 휘몰아쳤다. 땅에는 살을 뒤틀리게 만들 정도로 차가운 것들이 쌓여 있었다.
사막을 벗어난 적이 없는 베두헨들은 이게 눈이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뭐가 자신을 죽이고 있는지도 모른 채, 새파랗게 질린 피부를 감각이 남아 있지 않은 손으로 애써 비비며 이 설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설산 꼭대기로 가는 길을 찾아낸 기사는 10년 만이었다. 그는 살아서 이 산을 내려가, 꼭대기로 가는 길을 기사단에 알리는 의무를 가지고 있었다.
그 꼭대기에 은거하고 있는 우리의 단장이자 ‘집행자’를 타고난 그 남자를 반드시 설득해야만 했다.
하지만.
“아아…… 으으……. 아아악!”
얼마나 지났을까. 반나절? 아니, 사흘? 아무리 내려가도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사막에서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볼 수 있었던 태양도, 달도 이곳에서는 볼 수 없었다. 눈을 흩뿌리는 짙은 먹구름만 계속해서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이상한 곳이었다. 사막 한가운데 있는 설산은 그 자체로 이상했지만, 이곳으로 들어오자마자 지평선 끝까지 본 적 없는 구름이 펼쳐지는 것 역시 설명할 수 없었다.
그저, 이상한 곳이었다.
그저, 저주 받은 곳이었다.
사막의 모래가 그리웠다. 피부를 그을리는 그 뙤약볕이 그리웠다.
죽더라도, 그런 곳에서 죽고 싶었다.
어린 견습 기사의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그저 얼어붙어 눈꺼풀에 들러붙었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털썩—
그는 쓰러졌다.
그는 여기서 죽어야 했다. 올라가는 길을 찾았지만 끝내 내려가는 길을 찾진 못했다. 아무리 걸어도 같은 곳을 도는 느낌이었지만, 이 의미 없는 방랑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때.
따뜻함이 느껴졌다.
천국으로 온 걸까? 성좌 중 하나가 부족한 기사 하나를 어여쁘게 여긴 걸까?
시간이 흐르며 정신이 또렷해졌다. 확실한 건 죽어 이승을 떠난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통증이 사라지고, 온기가 혈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게 느껴졌다.
얼어붙었던 눈물은 뒤늦게 떨어졌다.
베두헨은 그제야 눈을 뜰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건 검은 머리의 인간이었다.
그리고 뱀파이어였다.
그는 주황색으로 희미하게 빛나는 달걀 형태의 돌을 자신에게 대고 있었다. 온기는 그곳에서 시작하여 온몸으로 퍼지고 있었다.
딱 봐도, 기적에 가까운 물건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인간은 신앙에 관련된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 뒤에 있는 뱀파이어는 동정심과 걱정이 담긴 시선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리리. 어때. 영혼의 상이 보여?”
“응. 다행히 늦지 않은 거 같아.”
뱀파이어 귀족과 검은 머리 인간.
기사는 마을에 퍼져 있는 전설에 대해서 떠올렸다.
이 사막의 오랜 숙적을 죽이고, 질서를 복구할 선지자.
“……광인.”
“아니, 또 광인이네 진짜 미치겠네. 정말루다가.”
“확실히, 당신을 지칭하는 단어는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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