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93
93화 ep31. 사냥, 거인 (1)
“정말 크라켄을 토벌할 생각이오?”
“하루만 주시오. 기사단의 의견을 모아야 할 것 같으니. 진지하게 생각해 보겠소.”
그날은 기사단에서 제공한 빈 방에서 숙박을 해결하기로 했다.
밤이 깊어 갔다. 사막의 밤은 추웠고, 뱀파이어는 그게 마음에 들었다.
두 개의 태양이 차례대로 지평선을 넘어갔고, 파란 베일에 가려졌던 하늘의 진짜 모습이 드러났다.
리리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검보라색의 침대보 위에는 성좌들이 촘촘하게 제자리에 누워 있었다.
쏴아아아—
눈을 감고 파도 소리에 집중했다. 피부를 스치고 지나가는 모래 섞인 바람.
리리의 약한 피부가 견디기에는 너무 건조하고 거친 바람이었으나, 이런 경험이 나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강선후가 그랬다. 웃을 수 있다면 그건 고생이 아니라 경험이라고.
강선후를 만나기 전, 가문이 멸망하고 세상을 떠돌던 시절을 떠올렸다.
사람을 만나기 싫어서 산맥을 타고 이동하고는 했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고생이 맞았었지. 리리는 그렇게 생각하며, 목에 걸어 뒀던 커다란 황동 열쇠를 꺼내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서지아에게 부탁하여, 자신에게 전달한 가문 지하실의 열쇠.
「네가 인도할 지배자를 정한다면, 그와 함께 가문의 지하실을 찾아가라.」
“……대체 뭐가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다가, 고개를 가로젓고는 다시 옷 안쪽으로 열쇠를 집어넣었다.
언젠가, 그와 함께 직접 찾아가 보면 될 일이었다. 그 역시 싫지 않은 여행이 될 테니까.
“뭐 해?”
뒤를 돌아보았다. 뒤를 돌아보니, 강선후가 다가와 난간 기대어 옆에 나란히 섰다.
“모래 구경.”
“모래를 처음 보나?”
“사막은 처음이었어. 내가 혼자 돌아다닐 때는 장벽을 마음대로 넘어 다닐 수가 없었으니까.”
강선후도 파도치는 모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리리는 그런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까 전, 접시에 떠오른 강선후의 성좌들을 기억해 냈다.
두 개의 강렬한 성좌는 강선후를 직접 가호하는 성좌들이었다. 주신의 뜻을 거스르고서라도 강선후를 가호하는 성좌들.
그리고 그 주변에 떠오른 수천 개의 별은, 가호는 하지 않지만 강선후의 존재를 인지하고 지켜보는 성좌들을 뜻했다.
“성좌들이 당신의 여정을 지켜보고 있대.”
“아마, 흑성을 승천시킬 때 썼던 룬 때문 아닐까? 그건 성좌들의 시선을 끌어들이는 효과였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
필멸자가 감당하기에는 퍽 부담스러울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강선후는 아무렇지 않게 판단하기만 했다.
강선후는 소지품에서 네모난 단말기를 하나 꺼내, 전원을 올렸다.
그리고 두껍고 무거운 어떤 기계 장치에 선으로 연결했다.
스마트폰과 보조 배터리. 리리는 본 적도 없고,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처음에는 고대 유적에서 찾아낸 유물이라고 생각했다. 강선후가 취급하는 장비와 고대 유적 간에는 어느 정도 비슷한 면이 있었으니까.
강선후는 화면을 계속 바라보다가 넌지시 말했다.
“리리.”
“응.”
“내 고향 마을이 뭔가 이상하다는 거, 이제 너도 눈치챘지?”
리리는 조금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른 세상 출신이야. 이계의 어떤 차원문이 우리 세상이랑 연결된 상황이고.”
“……응. 우리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는 느끼고 있었어.”
“생각보단 무덤덤하네.”
“두 달 전에 그 이야기를 들었다면 진짜 놀랐을 거야. 지금은 나도 어느 정도 추측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리리는 강선후를 바라보았다.
“전설 속에서, 다른 세상의 누군가가 영웅이 되는 이야기는 가끔 있었거든. 거기는 어떤 세상이야?”
“나중에 기회가 되면 알려 줄 수 있을지도. 나름 재밌을 거야.”
강선후는 그렇게 말하며 크라켄이 드론을 부수는 그 순간을 계속해서 반복 재생했다.
그곳에서 어떤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크라켄이 이 사막을 위협하는 게 3년 전이고, 이 영상을 촬영한 것도 딱 3년 전이야.”
강선후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렇다면, 어쩌면 크라켄을 자극한 게 우리 세상이 아닐까?”
“죄책감을 느끼는 거야?”
“죄책감까진 아니고.”
리리는 강선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표정에는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어떤 생각에 잠겨 있다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부채 의식은 조금 있네.”
강선후가 크라켄을 잡으려고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세계가 만들어 낸 재앙에 대한 책임감이었을까?
거기까지는 알 수 없었다. 강선후가 말을 하려 하지 않았으니까.
강선후는 크라켄이 나오는 영상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재생하다가, 가방에서 일지를 세 권 모두 꺼냈다.
“이게, 분명…… 기억날 거 같은데.”
강선후는 일지를 뒤적였다. 본인도 내용의 위치를 모르는지, 첫 권과 세 번째 권을 번갈아 가면서 한참을 뒤적였다.
그러기를 10분 정도, 강선후는 한 페이지에 곧 시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뭐 찾기라도 한 거야?”
리리도 관심을 가지고 일지를 바라보았지만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이들의 말은 조금 배웠으나, 문자를 배울 기회는 없었으니까.
강선후는 한참을 그곳에 시선을 고정하다 말했다.
“리리.”
리리는 대답하지 않고, 강선후와 스마트폰 화면, 그리고 뭐가 적혀 있는지 모를 일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나, 저 크라켄. 뭔지 알 거 같아.”
“뭔가 알아낸 게 있어?”
“알아낸 게 아니야.”
강선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억하는 거야.”
강선후는 황금 지침 뒤에서 하얀 보석을 꺼내 들었다.
그의 손안에서 빛을 발하더니, 한 권의 두꺼운 책으로 변하는 보석.
강선후의 일지와 굉장히 흡사한 디자인의 책. 키호테가 살았던 천공섬에서 얻은 황금의 유물.
“예언자의 서…….”
강선후는 예언자의 서를 꺼냈다.
이 유물은 그 이야기가 적힌 시점의 어떤 이야기를 현실에 투영하여 재생하는 물건이었다.
강선후의 말마따나, 홀로그램 영상 재생기.
이걸 갑자기 어디에 쓰려고 이러는 걸까?
강선후는 예언자의 서와 자신의 일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거 너무 이상해. 왜 당신의 일지하고 황금의 유물이 같은 디자인인 거야?”
“그러게.”
그냥 지나갈 수 없는 문제였으나, 답은 찾기에는 아는 게 너무 없었다.
강선후는 그걸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리리.”
“응.”
“황금의 유물은 사용자의 의도를 배려한다고 했지?”
리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선후가 밧줄 화살을 처음 쓴 후 화살이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했을 때, 리리가 그를 독려하기 위해 한 말이었다.
“황금의 유물은 융통성이 있어. 자신의 능력 선 안에서, 사용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존중해. 실제로 밧줄 화살은 안 사라졌잖아?”
“……예언자의 서는, 글이 쓰인 시점을 재현하는 물건이야.”
“맞아. 일지의 내용을 여기에 써 볼 생각이야?”
리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될 거야. 그 시절의 내용이더라도, 지금 똑같이 베껴 쓴다고 발동할 리가 없…….”
강선후는 일지의 어느 한 페이지를 손으로 부여잡았다.
그리고.
부우욱—
찢어 냈다. 리리는 하던 말을 멈추고 강선후가 하는 행동을 그저 지켜보았다.
강선후는 찢은 페이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건, 내가 도시에서 쫓겨난 당일 날 쓴 내용이야.”
“뭐라고 적었는데?”
강선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몰라. 제정신이 아니라 횡설수설하는 내용뿐이라서. 기억도 안 나고. 그런데.”
그러면서, 예언자의 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얘는 이걸 쓴 날 내가 뭘 했는지 알지 않을까?”
“어떻게…….”
강선후는 찢은 페이지를 예언자의 서에 책갈피처럼 꽂았다.
그러자.
“……붙었어.”
그건 예언자의 서 속 한 페이지가 되었다.
강선후는 예언자의 서를 바라보며 웃었다.
“발동 조건을 완수했네.”
강선후는 해당 페이지를 크게 펼쳐 앞에 세워두었다.
그러자 예언자의 서가 발동했다. 강선후가 이걸 쓴 시절의 풍경을 홀로그램으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리리도, 강선후도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짝거리는 반투명의 산맥이 이 갑판 위를 가득 채웠다.
산맥으로 둘러싸인 어떤 공터, 그곳에 한 인간의 형상이 떠올랐다.
인간 형태를 형상은 땅을 향해서 주먹질을 하는 자세로 서 있었다.
이게 강선후일까? 아무런 특징 없이 사람이라는 사실만 알 수 있을 정도로 부정확했기에, 나머지는 추측으로 알아내야만 했다.
리리는 어느새, 자신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형상을 살펴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건…….”
리리와 강선후는 땅을 향해 주먹을 뻗는 인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금방 깨달았다.
“이건 당신이 아니야.”
강선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무릎을 굽혔다.
“나는 여기에 있네.”
리리도 강선후를 따라 몸을 낮췄다.
인간 형상의 발가락 정도 되는 크기. 개미처럼 작은 어떤 인간이 대치하고 있었다.
“이 작은 인간이 나야.”
“그럼, 이건…….”
이 형상은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거대했다.
“거인.”
리리도 전설 속에서만 들었던 거대한 존재들. 거인이었다.
그 가슴에 번쩍이는 어떤 구체가 있었다.
딱 봐도 거인의 심장으로 보이는 무언가가, 밖으로 노출되어 번쩍이고 있었다.
이 일지가 적힌 날, 강선후는 거인과 싸웠었다.
그 장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강선후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그 입이 벌어져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강선후는 다시 스마트폰을 꺼내, 크라켄이 나오는 영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상에서 1초도 안 되는 구간, 아주 잠깐 보였다가 사라진 거대한 구체. 그건 크라켄의 품속에서 붉은빛을 발하고 있었다.
“크라켄의 정체를 알았어.”
“나락에 사는 크라켄은 고대에서부터 살아남은 거인.”
리리도 감을 잡았다는 듯, 그 말에 맞장구쳤다.
하지만 문제는 이게 아니었다.
“당신.”
“왜?”
“당신이 이 상황을 겪었다는 거야?”
“그렇지? 내 일지에 적혀 있었던 내용이니까.”
“그런 당신이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건…….”
고대의 존재, 거인과 싸워서 승리했다.
이 의미 말고는 되지 않았다.
리리는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아주 오래전 일어났다는, 거인과 불멸자 간의 전쟁을.
그 전쟁의 끝에서 완전한 승리를 가져간 진영은 없다고 했다.
불멸자마저 완전히 이기지 못한 존재와, 필멸자가 싸워 이겼다.
강선후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걸 강조하지 않았다.
강선후가 신경 쓰는 건 이거 하나뿐이었다.
“한 번 이긴 건, 두 번도 이길 수 있다는 뜻이겠지?”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거야?”
“여행을 하다 보면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리리는 강선후가 그저, 신난다는 듯 미소 짓기만 하는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들어가자. 준비할 게 있어.”
그래서 그저 강선후의 말에 따라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 * *
기사단 간부 간의 회의가 끝나고, 쉬라힐은 간부들과 함께 회의실에 남아 있었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으나, 모두가 같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인간의 의도를 따라 크라켄 토벌을 시도하는 쪽으로 결정했다. 고작 인간을 가호하는 성좌가 둘이나 된다는 사실이 의견 결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쉬라힐은 끝까지 고민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건 어쩌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남은 배는 세 척. 무리한다면 파손된 세 척을 추가할 수 있었으나, 그 역시 크라켄을 토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당장 제대로 된 무기도 부족한 상황이었으니까.
그때, 낯선 목소리가 문을 열고 들이닥쳤다.
바로 어제 우리를 설득하러 찾아온 인간이었다. 이 무슨 무례한 태도인가.
하지만 쉬라힐은 그에게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자그마치 둘의 성좌에게 가호를 받은 인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단장님?”
“무슨 일이오?”
“크라켄이랑 싸워 본 적 있으세요?”
“……있소. 우리가 지금 이 상황인 이유가, 그때의 피해를 아직도 복구하지 못했기 때문이오.”
인간은 그 테이블의 건너편에 앉았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거지? 불과 하룻밤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더 할 말이 있을 수가 있나?
강선후는 큰 종이 한 장을 펼쳤다.
그걸 바라보는 쉬라힐의 표정이 달라졌다.
“…….”
그건 크라켄을 정확하게 묘사한 그림이었다.
“크라켄을 본 적이 있소?”
“아니요.”
그렇겠지.
그런데, 어떻게 이걸 다 알고 있는 거지?
“우리 뱀파이어가 그림을 참 잘 그리더라고요. 어쨌든, 여기를 보세요.”
강선후는 크라켄 중앙에 있는 구형의 구조물을 가리켰다.
“이게 뭐요?”
“크라켄의 약점.”
그건, 여덟 갈래로 갈라진 크라켄의 촉수의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었다.
“크라켄은 지금, 거꾸로 뒤집힌 채 이곳으로 올라오고 있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약점이 외부에 노출된 상황인 거예요.”
“잠깐, 그걸 어떻게 다 알고 있소?”
“크라켄은, 거인이에요.”
거인?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인간의 주장에 쉬라힐은 혼란스러운 머리를 간신히 진정시켰다.
“당신이 왜 그렇게 주장하는지, 그 이유가 없다면 나는 납득할 수 없소. 당연한 거 아니오?”
인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크라켄의 근처에 어떤 냄새가 나지 않았나요?”
쉬라힐은 기억을 떠올렸다.
“……났소.”
“유황 냄새였죠?”
“…….”
“그리고, 그 촉수에서는 열기가 느껴졌고요.”
“잠깐…….”
“혹시, 나락에서요.”
예언자의 상이라도 되는 건가?
크라켄을 직접 본 적도 없는 인간의 입에서 나오는 쪽집게 같은 추측에, 쉬라힐은 다시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인간은 그럼에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모래가, 나락으로 흘러 들어가는 게 아니라 나락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나요?”
“……그렇다만, 당신이 그걸 어떻게 다 알고 있죠?”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었던 여성 베두헨이 쉬라힐 대신 입을 열었다.
“거인이랑, 싸워 본 적 있으니까.”
강선후는 리리에게 주었던, 헌팅 나이프를 뽑았다. 그 돌발 행동에 기사단 간부들은 깜짝 놀랐다.
강선후는 그 헌팅 나이프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게 뭐요?”
리리도 헌팅 나이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버뮤다 숲에서 쿠크리 만든 뒤, 강선후가 리리에게 건네준 나이프였다.
하지만 리리도 이 나이프를 사용하면서 깨달았다.
이것 역시 보통의 물건은 아니라고.
당장, 첫 번째 기생체의 금속 부식 효과가 통하지 않던 물건이었다. 날에서는 희미한 온기도 느껴졌다.
리리도 궁금했었다. 이걸 이루는 소재가 대체 뭐지?
“거인의 뼈로 만든 나이프입니다.”
인간이 나열하는 지식에 웅성거리던 간부들이 일제히 침묵했다.
인간의 주장이 거짓말일 수 있기에,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나이프를 이리저리 만지며 확인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이들 모두는 알고 있었다.
그게 거짓말일 리 없다는 걸.
거짓말이라고 하기에는 이 인간은 알고 있는 게 너무 많았다.
인간은 간부들이 생각할 시간을 준 뒤,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한 시간 뒤부터, 크라켄을 사냥할 준비를 시작합니다. 준비가 끝나는 대로 출발할 거예요.”
* * *
천공의 기사는 파도치는 사막의 모래 위를 걷고 있었다.
고대 왕국의 기술로 만들어진 그의 몸체는, 모래의 바다 아래로 가라앉지 않을 권능을 가지고 있었다.
날 수는 있었으나, 볼품없이 비틀거리고 싶지 않았다. 천공의 기사는 부러진 날개 한쪽을 잠시 바라보다가는, 사막을 그저 걸었다.
그는 지금 나락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자신이 왜 이렇게 움직이는지 알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저 궁금했을 뿐이었다.
그 인간이 정말 크라켄의 토벌을 도전할 것인가?
천공의 기사마저 이기지 못한 괴물을 인간이 싸워 이길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걷고 또 걸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저 멀리 나락을 상징하는 모래 먼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락에서 솟아오르는 막대한 규모의 모래 탓에 만들어진, 자연스러운 연기 지대.
바로 저곳이 천공의 기사의 마음을 부순 존재가 서식하는 곳이었다.
마음속 삼각형이 다시 거칠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멋모르고 나락으로 다가가던, 꼬마애가 타고 있었던 작은 해적선이 기억에 떠올랐다.
천공의 기사는 눈을 감고 싶었으나, 눈이 있는 존재가 아니었기에 그럴 수 없었다.
나락으로 다가가는 작은 배 하나가 보이는 환각에 시달릴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게 환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별 볼 일 없는 작은 배가, 저 멀리에서 모래를 가르며, 나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천공의 기사는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모래 먼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배들이 눈에 들어왔다.
셋, 아니 다섯.
아니, 일곱. 어쩌면 여덟. 아직 끝나지 않았다.
천공의 기사는 생각했다. 인간이 지상으로 내려간 뒤 며칠이나 지났는가?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는 함대를 결성했다.
아주 먼 거리에서 다가오는 함대.
나락의 거인은 그 위협에 즉각 반응했다.
나락의 모래 먼지를 뚫고, 거대한 촉수 하나가 수직으로 솟아올랐다.
그리고, 선두에 달려오던 배를 내리쳤다.
구구구구우웅—
아주 먼 거리임에도 그 진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선두의 배는 촉수에 깔려 볼품없이 부서졌다.
치기 어린 인간의 마지막은 저런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드는 그 순간.
콰아아아아앙—!
배에서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났다. 무슨 짓을 해야 만들 수 있는 폭발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천공의 기사는 어느새 가만히 서서 그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순식간에, 크라켄의 촉수에 큰 구멍이 뚫리는 걸 똑똑히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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