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94
94화 ep31. 사냥, 거인 (2)
붉은 기사단의 임시 단장, 쉬라힐은 전날 밤을 떠올렸다.
밤새 사냥을 준비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그 인간은 지금.
콰아앙—!
이 사막에서 아마 최초로 크라켄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이 되었다.
드넓은 사막, 넘실거리는 모래.
머리 위로 내려치는 괴물의 촉수.
선두에 달리다가 부서져 버리는 배.
거대한 폭발, 크게 손상되는 촉수.
한 리듬 늦게 화약 냄새가 코끝을 스쳐 뒤쪽으로 지나갔다.
「으하하하! 네놈의 전략이 먹혀들어 갔구나!」
아무도 타고 있지 않은 배, 폭탄만 가득 실은 그 가짜 함선을 크라켄은 아무것도 모르고 내려쳤다.
이건 저 인간만 행할 수 있는 전략이었다. 저 정도로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는 물질은 듣도 보도 못했으니까.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저 상처가 크라켄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주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모두가 그렇게 확신했다.
촤아아아악—!
크라켄은 분노했다. 나락 아래에서 촉수가 튀어나왔다. 해일만큼이나 높게 솟아올라 흐느적거리는 그 거대한 촉수. 먹구름이 낀 것처럼 그림자가 드리웠다. 압도적이었다.
모두가 두려움에 떨었다.
검은 머리 인간을 제외하고.
가우르 쉬라힐은 고개를 돌려 인간을 바라보았다. 인간은 입을 꾹 다문 채 날카로운 시선으로 크라켄의 촉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바로 어제까지 보여 준, 그 조금은 가벼웠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었다. 마치 두 명의 영혼이 서로 번갈아가며 몸의 주도권을 교체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피해!”
“키를 돌려! 아니, 돛을 전부 펴!”
콰아앙!
크라켄이 촉수를 내리쳤다. 그저 몸을 지탱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땅이 흔들렸다. 높은 파도가 배를 덮쳤다. 갑판 위는 모래로 뒤덮였다.
쉬라힐은 난간을 잡고 간신히 버텼다.
강선후는 그 와중에 신호용 뿔피리를 들었다.
뿌우우우——
미리 정해 둔 전략.
뿔피리의 소리를 듣자마자, 크라켄을 향해 직선으로 다가가고 있었던 함대가 양쪽으로 갈라져 크라켄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쉰 뒤, 다시.
뿌우우—
그와 동시에 크라켄을 둘러싼 여섯 개의 함대가 동시에 불을 뿜었다.
콰가가강—!
기사단은 크라켄에게 포탄 사격을 수백 번은 가해 본 적 있었다.
하지만 저 어마어마한 거체는 고속으로 날아오는 쇳덩어리 따위 그저 모래알처럼 취급할 뿐이었다.
그저, 쇳덩어리일 뿐이라면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을 것.
하지만, 이건 강선후가 손으로 직접 만들어 낸 화합물 포탄이었다.
푹- 푹- 푹-
수십의 포탄이 크라켄의 몸으로 파고들었고. 강선후는 반지를 낀 손가락으로 그곳을 가리켰다.
쩌어엉—!
그 손에서 빠르게 발사되는 룬 문자는 크라켄 몸에 새겨진다.
키이이잉—
무언가 달궈지는 소리와 함께 크라켄 몸속으로 파고들었던 포탄이 일제히 폭발했다.
리리조차 그 원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연금술과 룬 문자, 그리고 황금의 유물이 연쇄적으로 작용한 결과.
구오오오—
크라켄의 거대한 촉수가 꿈틀거렸다. 생전 처음 느껴 본 위협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나락 아래에서 촉수 한 개가 더 올라왔다.
총 네 개의 촉수가, 나락 아래에서 솟아올라 격하게 흐느적거렸다.
보기만 해도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질 지경이었으나.
「다들 어서 움직여! 해적의 시작! 해적의 전설! 위대한 약탈을 드디어 시작한다! 뭣들 하느냐 굼벵이 같은 놈들아! 움직이라고!」
램프의 해적은 곡도를 휘두르며 고함을 칠 뿐이었다.
크라켄의 거대한 촉수가 모래사장을 일제히 내려치기 시작했다.
쿠우웅—!
콰직—!
좌측으로 돌고 있었던 다른 함선의 후미가 산산조각이 났다. 침몰하진 않았으나, 완전히 전투력을 상실했다.
쉬라힐은 당황했다.
결국 크라켄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입히진 못하지 않았는가?
이건 너무 무모했다.
“첫 번째 공격에 성공했으니, 잠시 진영을 갖추어 다음 교전을 준비하는 게 낫지 않겠소!”
이건 사막에서 주요 전략이었다. 승리를 가져온 많은 전투가 이런 식으로 싸움을 풀어나가곤 했으니까.
“그런 전략을 써서 크라켄에게 이긴 적이 있나요?”
“…….”
“같은 방식으로 시도하면 같은 결과만 나올 뿐이잖아요?”
인간은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리고 외었다.
“탐-탓사Tham-tatha.”
삐이익—
머리 위에서 수리 한 마리가 용맹하게 울었다.
마치, 인간의 룬에 화답하는 듯한 소리였다.
인간은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다가 조용히 말했다.
“아직 아니야.”
“잠깐.”
쉬라힐은 인간의 행동에 의문을 품었다.
“뭐가 아니라는 말이오?”
“크라켄의 다리는 총 여덟 개예요.”
“무슨 뜻이오?”
“지금 크라켄이 공격에 사용하고 있는 다리는 네 개예요. 그럼 나머지 네 개는요?”
“…….”
쉬라힐은 대답할 수 없었다.
애초에 크라켄에 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었으니까.
인간은 눈을 떴다. 수리는 저 멀리 날아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머지 네 개는 아직 심장을 지키고 있어요.”
“그렇다면…….”
“더 몰아붙여야죠.”
모든 다리가 우리를 죽이기 위해 날뛸 때까지.
그래서, 약점이 완전히 노출될 때까지.
인간은 그렇게 이야기하며 함교의 난간을 휙 넘어 갑판 1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그렇게 창고에서 가지고 온 건 어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서핑 보드.
허리에 밧줄을 묶은 뒤, 파도치는 모래 위로 뛰어내렸다.
서핑 보드를 타고 배들과 촉수 사이를 이리저리 질주하는 인간.
그가 도착한 곳은 폭탄이 가득 실린 주인 없는 배였다.
키를 잡은 뒤 그대로 나락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겁에 질린 베두헨들을 타박이라도 하듯, 인간은 그렇게 몸소 나서서 선두로 달려 나갔다.
크라켄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이 거인이 공격을 소극적으로 한 이유는 폭발 때문이었다. 멋모르고 공격한 결과 큰 상처를 입었으니, 그 미지의 반격이 크라켄의 마음속에 주저함을 심은 탓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 배에는 확실히 인간이 타 있었으니, 공격하여 그를 죽여 버리는 게 맞았다.
크라켄은 최소한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었다.
쾅—! 쾅—!
인간이 탄 배는 크라켄에게 몇 번 위협 사격을 가했고, 크라켄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콰직—!
그 촉수가 내려쳤다. 인간이 탄 배는 부서졌다.
그리고.
콰아앙!
다시 일어나는 거대한 폭발. 크라켄의 촉수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다시 솟아올랐다.
뱀파이어는 갑판 아래로 달려갔다. 인간이 허리에 맨 줄은 아직 이 갑판 위에 연결되어 있었다.
“당겨요!”
「뭣들 하느냐! 당기라 하지 않았나! 뱃놈들이란 녀석이 이렇게 느려서야!」
리리의 지시에 엉거주춤하던 선원들이 순식간에 달라붙어 밧줄을 당겼다.
“더 세게! 당겨요!”
뱀파이어 귀족이라고 무시하던 뱃사람들은 지금 리리가 보여 주는 용맹한 모습에 하나둘 감화되고 있었다.
그 끝에는 인간이 매달려 올라왔다.
인간은 새하얀 망토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그 거대한 폭발 속에서도 작은 화상 하나 입지 않은 이유는 이 망토 덕분이었다.
“후…….”
끌려 올라온 인간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리리는 강선후의 손에 금속 줄이 쥐어져 있다는 걸 느꼈다.
그건 방금전 내려친 크라켄의 촉수와 이어져 있었다.
“테르마tterma.”
파지지직—
금속 줄이 찢어지기 전에 강한 전류가 촉수를 강타했다. 촉수의 신경을 파고든 전류.
목숨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크라켄에게는 강한 위협이 되었다.
크라켄의 촉수 하나가 더 나락에서 올라왔다.
크라켄은 당황하고 있었다.
이 거인이 살아왔던 셀 수 없는 시간선 안에서, 불멸자를 제외하고는 위협이 되는 존재는 없었다.
그렇기에 거인은 더욱더 당황했다.
자신을 위협하는 이 존재의 정체를 알 수 없었으니.
함부로 배를 공격할 수도 없었다. 공격할 때마다 강한 폭발이 오히려 크라켄에게 상처를 더했다.
“다들 밀어붙여!”
「밀어붙여라!」
“생각할 틈을 주지 마요!”
「니들도 생각 같은 거 하지 마라! 해적의 계획이란 무계획뿐이니까! 으하하!」
우리가 크라켄에 대해서 모른 만큼 크라켄도 우리를 모르게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거체를 일으켜, 자신의 위협을 없애려 할 것이다.
바로 그때가 기회니.
베두헨들은 고개를 들었다.
크라켄이 몸을 일으켰다.
거꾸로 뒤집힌 거대한 문어.
그건 ‘크라켄’이라는 거인을 이루는 신체의 일부분일 뿐이었다.
그건, 그저 크라켄의 머리였다.
쿠우우우웅—!
나락에서 솟아오른 거대한 손바닥이 모래 바다를 짚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어깨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라켄은 생각하기를 그만뒀다.
자신을 지배하는 감정이 공포와 당황스러움이라는 사실에 분노했다.
베두헨들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다.
자신들이 어떤 것과 싸우고 있는가.
그것을 인지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 쪽팔린 새끼들아! 당장 안 움직여! 니들이 그러고도 뱃놈들이냐!」
에드워드의 호령에도 소용이 없었다.
크라켄은 주먹을 들어 올렸다.
강선후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천천히 내려오는 그 주먹을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얼어붙은 걸까?
리리는 뒤를 돌아보았다.
이 배에 장착되어 있는 마수를 멸하는 창이 눈에 들어왔다.
“배를 돌려요! 어떻게든 저걸 지켜야 해!”
그렇게 외치는 리리를 보고 강선후는 웃었다.
“이 와중에 무기를 먼저 생각한 거야?”
“저게 크라켄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무기…….”
리리는 말을 하다가 다시 강선후를 바라보았다.
내가 언제부터 내 숙명 말고 이런 걸 생각하게 되었지?
강선후는 그런 리리의 변화를 보고 뿌듯하다는 듯 웃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한 크라켄의 주먹을 다시 바라보았다.
“리리.”
“…….”
“내가 옛날에 거인을 어떻게 이겼는지 알아?”
“……몰라. 당신이 그렇게 강하진 않을 텐데.”
“혼자 싸우지 않았거든.”
휘이이잉—
그 순간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리리는 강선후가 그저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강선후는 누군가를 믿고 있었다.
애초에 이 전략에는 그를 향한 믿음이 포함되어 있었다.
“내가 말했지? 올 거라고.”
쿠우웅—
누군가 배 위에 착지했다.
베두헨들을 포함한, 이 갑판 위의 모두가 그 자리에 멈춰 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이를 바라보았다.
사막의 태양빛을 찬란하게 반사하는 은빛 갑옷.
부러졌지만, 아직 제 역할을 해내는 금속의 날개.
쉬라힐은 턱을 덜덜 떨었다.
“……기사님.”
천공의 기사는 몸을 일으켜 강선후를 바라보았다.
강선후는 그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쿠구구구구—
검은 그림자가 배 위에 드리웠다.
크라켄의 회색빛 주먹이 바람을 가르며 쇄도했다.
천공의 기사는 그저 강선후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제까지 봐 온 이 인간의 무모한 용기를 생각했다.
그건 기사의 마음속에는 없던 것이라, 그는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무모함과 용기는 같은 것인가?
천공의 기사는 시험해 보고 싶었다.
천공의 기사는 몸을 낮췄다. 무릎을 살짝 굽혔고, 한쪽 어깨를 뒤로 뺐다.
허리쯤 위치한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온다!”
크라켄의 주먹이 지척까지 다가온 그 순간.
천공의 기사는 그곳으로 주먹을 뻗었다.
쿠우우웅—!
충격에 해적선이 반쯤 모래 밑으로 파고들었다.
“으아아악!”
베두헨 몇 명이 떨어질 뻔하다가 난간을 잡고 간신히 버텼다.
밑으로 파고 들어간 배는 모래 바다의 부력 때문에 위로 강하게 튀어 오르며 미끄러지듯 뒤로 크게 밀려났다.
천공의 기사의 반쪽이 완전히 부서졌다. 갑옷을 이루던 은빛 금속이 산개했고, 기사는 무릎을 꿇었다.
크라켄의 뭉개져 버린 주먹은 다시 위로 솟구쳤다.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크라켄은 비틀거리다가 나락을 다시 간신히 붙잡고 버텼다.
“와. 미친.”
여유롭게 감탄사를 내뱉는 건 오직 강선후뿐이었다.
“개멋있네.”
하지만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고작 그 주먹이 조금 뭉개졌을 뿐이었다. 완전히 이성을 잃은 크라켄은 여덟 개의 촉수를 이리저리 휘저었다.
그게 지나간 곳에 거대한 흉터가 생겨났다가, 격한 모래의 파도로 이어졌다. 그 움직임은 자체로 재앙이었다.
“배를 버려라!”
“뛰어내려!”
“어머니……!”
순식간에 격침당한 배들의 선원들은 서핑 보드와 탈출용 보트를 타고 간신히 도망치는 중이었다.
강선후는 반파된 기사를 바라보다가 렐릭시나의 등에 올라탔다.
“크르르…….”
그리고 기사를 내려다보았다.
“기사님.”
기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죽은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처참하게 파괴된 모습이었다. 한쪽 어깨를 포함한 상반신의 절반이 완전히 날아가 있었고, 그 안에 고여 있었던 마력도 불안정하게 흩날리고 있었다.
“기사님의 힘이 필요해요.”
“……내겐 힘이 없는데, 어째서 이런 짓을 해 버렸는가.”
“믿으니까?”
“나는 검이 없다.”
조금씩 흐려져 가는 의식 속에서, 기사는 자신과 같은 곳에 살았던 용을 떠올렸다.
그 용의 말년을 기억했다.
날개는 찢어지고, 피부는 회색빛으로 바랜 처참한 모습이었다.
황금의 시대, 그 영광을 품었던 이들의 종말은 항상 이런 식이구나.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기도 했다.
“……키호테는.”
그 순간, 인간의 입에서 나온 이름을 기사는 믿을 수 없었다.
“키호테는 전성기의 날개를 되찾고 하늘로 날아갔어요.”
키호테에게 하늘이 무슨 의미인지, 기사는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자유를 찾아 떠났어요. 용의 귀환을 실현하기 위해서.”
그 키호테가?
회색빛으로 바래, 잊히기만을 기다렸던 그 용이, 하늘로, 자신의 자유를 찾아서 떠났다.
이 인간이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가.
“……하지만.”
잠시나마 떠오른 충격은 다시 마음속 검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나는 검이 없다.”
그 순간, 램프 속 에드워드가 멋대로 튀어나왔다.
「이 멍청한 버러지 새끼야. 너 같은 놈에게는 버러지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는구나.」
그의 인상은 험악하게 구겨져 있었으며, 칼을 든 손은 당장 휘두를 듯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네놈이 구하려고 했던 그 꼬마! 그 꼬마가 내게 소원을 빈 녀석이다! 날 만든 녀석이라고!」
“그 아이는 죽었다. 내가 구하지 못했다.”
「그 애새끼는 네놈에게 목숨을 구걸한 적이 없어!」
천공의 기사는 고개를 들어, 램프의 정령을 바라보았다.
「그 꼬마가 네놈을 믿고 크라켄에게 달려든 줄 아냐? 그 꼬마가 살고 싶어서 크라켄에게 달려든 줄 아냐! 그 꼬마는! 자신의 꿈을 위해서 크라켄에게 달려들었다! 그 아래에 있는 도시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
에드워드는 과거를 회상했다.
과거, 자신이 태어나기 전, 천진난만했던 한 해적선의 청소부 꼬마가 빌었던 소원을 기억했다.
「그게 이뤄지지 못할 꿈이라는 걸 알지 못했을 정도로 멍청한 새끼였지!」
“…….”
천공의 기사는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꼬마의 표정을 떠올려 보았다.
돌이켜보니, 그 표정에서 공포를 읽어 낸 적은 없었던 것 같았다.
「그 어린 녀석도 마지막까지 용맹하게 싸웠다! 근데 넌 고작 마음이 다쳤다는 이유로 겁쟁이처럼 도망쳐서 틀어박히는 걸 택해?」
「꿈을 가진 꼬마의 미래보다 더 귀한 게 세상에 뭐가 있냐! 그 애는 그것마저 기꺼이 바쳤다고! 네놈의 그 잘난 마음이란 게 그 꼬마의 미래보다 소중해? 이 멍청한 겁쟁이 새끼야! 넌 그렇게 누워서 영원히 살아라!」
그러고는 강선후에게 말했다.
「나는 내가 태어난 이유를 위해서 기꺼이 죽겠다! 그 꼬마가 원한 미래를 따라갈 거다! 그게 해적다운 거니까! 넌 어떻게 할 거냐! 인간 놈아!」
강선후는 미소를 지으며 끄덕였다.
그러고는 잠시 천공의 기사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에 담긴 건 경멸이었을까.
아니었다. 믿음이었다.
“가자! 렐릭시나!”
“크르르릉—!”
「전설적인 약탈을 시작한다!」
강선후는 난간을 넘어 모래 위를 달려 나갔다.
크라켄의 나락을 향해서 달려 나갔다.
리리는 그런 강선후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천공의 기사를 마주 보고 무릎을 굽혔다.
“제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이거뿐이에요.”
천공의 기사의 이마에 그려져 있는 룬 문자의 손상된 부분을 리리는 신중하게 이어 나갔다.
그 뒤 2층 갑판으로 올라갔다.
“마수를 멸하는 창, 장전 시작합니다!”
“언제 쏘려고요?”
“분명 기회가 있을 거예요! 저 사람이 그 기회를 만들 거니깐!”
이 뱀파이어는 강선후를 믿고 있었다.
천공의 기사는 생각했다. 나는 어째서 나 자신마저 믿지 못했는가?
지금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건 무엇이었을까.
정령의 일갈이었을까? 인간의 눈빛이었을까?
그는 가만히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마음속 삼각형은 여전히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그걸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게 어떤 상처를 남기는지 직시했다.
그리고.
철컥—!
천공의 기사는 팔을 앞으로 뻗었다. 손바닥을 펼쳤다.
언젠가 스스로 버렸던, 자신의 일부를 기다렸다.
이마에 그려진 리빙 메탈 룬 문자가 희미한 빛을 발했다.
* * *
강선후는 품속 황금 지침의 흔들림을 느끼고, 그것을 꺼내 바라보았다.
지침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락 아래에 잠들어 있을 다음 황금 유물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강선후는 미소를 지으며, 이제는 지척까지 가까워진 나락을 향해 빠르게 달려 나가며 손을 뻗었다.
그 손가락에는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 * *
리빙 메탈.
리빙 메탈을 이루는 물건은, 그것이 어디에 있든 한 자리로 모이기 위해 달려온다.
그 사이에 모래가 있든, 불멸하는 거인의 신체가 가로막고 있든 신경 쓰지 않는다.
리리는 보았다.
저 멀리 나락에서 솟아올라 빠르게 날아오는, 찬란하게 빛나는 성스러운 물체를.
쩌엉—
그건 빠르게 날아와 천공의 기사 손에 쥐어졌다.
부서진 갑옷 조각들이 기사의 상처를 메꿨다.
기사는 자신이 버렸던 검을 손에 쥔 채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자세를 잡았다.
리리는 그 모습을 본 적 있었다.
과거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집행자의 검술, 그 첫 번째 태세였다.
그 순간.
쿠구구—
크라켄의 바로 옆에서 모래로 이루어진 거대한 골렘이 몸을 일으켰고.
콰아앙—!
그것은 크라켄의 목덜미를 잡아 강하게 눌렀다. 크라켄은 거칠게 촉수를 휘두르며 저항했다.
모래 거인은 이리저리 갈라지면서도, 끝까지 크라켄을 제압하고 있었다.
“사격 준비! 기회는 한 번뿐이에요!”
기리리릭—! 텅!
도르레가 돌아가는 소리, 마수를 멸하는 창이 거칠게 돌아가며 크라켄을 정조준했다.
기기기긱—!
그리고 강하게 당겨지는 시위.
철컥.
장전되는 창.
달아오르며 붉게 물드는 창. 그곳에서 울리기 시작하는, 유령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
“기회는, 기회는 한 번뿐이야!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
쿠웅—!
거대한 모래 골렘은 최후의 힘을 짜내 크라켄의 자세를 무너트렸고.
천공의 기사는 유성과 같은 속도로 날아올라 크라켄에게 쇄도했다.
“사격!”
“사겨어어억!”
마수를 멸하는 창, 그것이 모래 먼지를 가르고 심장을 향해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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