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96
96화 ep31. 사냥, 거인 (4)
크라켄 토벌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사막 서부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만 하루 만에 그 소식을 들은 모든 베두헨들이 붉은 매 기사단의 기지로 모여들었다.
그중 끝까지 믿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서쪽 장벽을 넘어온 인간이 천공의 기사와 함께 크라켄을 토벌했다고?”
“믿기에는 조금 허황된 이야기 아니오? 게다가 하루아침에?”
기사단이 그들을 데리고 손수 서쪽 나락까지 간 다음에야, 의심하는 사람들은 사라졌다.
그렇게 이야기가 퍼져 나가자, 서부는 순식간에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각지에 널려 있었던 베두헨 상단들은 한자리에 모였고, 배 수십 척이 동원된 연회가 열리는 지경이 되었다.
그 중심은 단연 기사단의 기지, 인간과 뱀파이어가 초청된 바로 그 자리였다.
베두헨들은 사막의 전사이자, 선원이었다.
선원과 사막, 거친 느낌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두 단어. 이들의 연회가 얼마나 시끌벅적한지 묘사하는 데에는 이걸로도 충분했다.
처음 만난 상단장, 하무디가 술잔을 들고 다가와 예를 표했다. 그리고 나는 항상 이런 대접은 부담스럽다.
이제 슬슬 적응될 법 한데, 내 천성이 아예 이런 걸 거부하는 모양이었다.
“선지자께서 정말로 우리를 구원하실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예지가 있었다면서요?”
“예지란, 기우제와 같기 마련이니까요. 그 순간이 바로 지금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 예지를 내려 준 사람이 혹시 풍선…… 이었어요?”
“풍선이요? 제가 예지를 받은 사람이 아니긴 하지만…….”
하무디는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영원히 하늘을 떠도는 천공의 부유자, 구름 위, 신 아래의 영토를 모험하는 부유자. 고대에서부터 비롯된 그 성좌가 예지의 주체라는 것까지만 들었습니다. 나머지는 모르겠군요.”
“……에휴.”
“혹시 예상가는 바가 있습니까? 천공의 부유자는 꽤 인지도가 높은 성좌입니다.”
“인지도가 높다고요?”
“특히 남부 접경지대와 동방의 연합 쪽에서 그렇습니다. 근데, 그러면서 동시에 가장 알려진 게 없는 성좌기도 합니다. 일각에서는 천공의 부유자의 행보를 추적하는 학회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각지에 교역을 다니기 때문에 이런저런 뜬소문을 많이 접하는 편입니다.”
“…….”
할 말이 없네.
“에휴.”
한숨만 나온다. 하무디는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그저 웃었다.
“어쨌든, 정말 놀랐습니다. 우리가 헤어진 지 몇 주도 되지 않아 이런 일을 벌이시다니.”
“운이 좋았죠.”
“단순한 행운만으로 이런 일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당신은 이 사막의 영웅입니다.”
영웅이라.
나쁜 느낌은 아니다. 내 행동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면, 좋은 게 좋은 거다.
그래도, 누군가 내 면전에서 띄워 주는 자리가 부담스러운 건 항상 그렇다. 나는 왜 이런 상황에 끝까지 적응하지 못하는 걸까?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리리는 술잔을 든 채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당신은 확실히, 사람 사이보다는 나무 사이에 있는 걸 더 편하게 여기는구나.”
“그렇게 보여?”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이 정도 같이 지냈으면 알아야지.”
그것도 그렇다.
리리랑 같이 다니는 게 이제 몇 달째지? 네 달은 넘은 거 같은데.
그런 생각이나 하면서 술을 홀짝였다. 동물의 젖으로 만든 술이라는데, 한 번 증류를 거쳤다고 한다. 은은하게 단맛이 돌고 보기와는 다르게 독한 맛이 나는 술. 처음 먹어 보는 맛이었다.
술잔을 한 손에 세 개 들고 들이붓는 에드워드의 묘기에 베두헨들은 입을 떡 벌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특이한 모습이었다. 나이가 좀 있는 베두헨들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 술을 들이부었는데, 좀 어려 보이는 베두헨들은 마치 처음 본다는 듯 어색한 태도를 숨기지 못했다.
하무디에게 물었다.
“술을 잘 안 마시나요?”
하무디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식료품이 부족해서인가요? 아무래도 술은 식량을 소모해서 만들어야 하니까?”
“그것도 맞습니다만, 크라켄으로 인해 교역이 막히기 전에는 이 사막의 식량 부족이 심각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베두헨이 평소에 술을 금지하는 이유는 일교차 때문입니다. 낮에는 두 개의 태양이 모래를 달구지만, 밤에는 운데라와 라 시마의 차가운 기운이 세상을 잠재웁니다. 가끔 수통에 서리가 내릴 정도니, 자칫 잘못하면 얼어 죽는 경우가 생기거든요.”
평소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전통은 단순히 종교적 이유나 관습 때문은 아니었다.
비과학적 미신과 전설로 가득 찬 삶이지만, 그들의 풍습에는 나름 대로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셈이었다.
그러니, 열등과 우열을 가리는 건 말도 안 되는 짓이다.
문화의 사이에 틀림은 없다. 다름만 있을 뿐이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모래같이 거친 피부를 가진 베두헨이 나를 불렀다.
“한 말씀해 주시죠! 광인님!”
“우리의 영웅!”
“광인이시여! 이 무식한 뱃놈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시지요!”
“뭐라고! 네놈을 기준으로 우리를 소개하지 마라, 쪽팔리게!”
그 소란 속에서, 나는 멋쩍게 웃으며 손을 절레절레 저었다. 거대한 선상 연회장에 모인 수백의 베두헨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광인께서는 이런 것에 익숙하지 못하시오?”
“지붕 아래보다 하늘 아래에서 지낸 기간이 더 길어서요.”
“그거, 굉장히 낭만 있는 한 마디였소!”
그러면서 저들끼리 깔깔거리며 웃는다. 이 사람들에게 축사 같은 형식적인 행위는 사실 크게 의미가 없는 모양이었다.
왁자지껄한 웃음소리를 듣다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내 옆에 앉아 있는 리리는 베두헨이 제공한 편한 복장을 입고 있었다.
지구 중동의 복장과 고대 선원의 복장을 섞어 놓은 느낌인데, 리리에게는 그렇게 어울리진 않았다. 그런데 그 갭에서 또 멋이 느껴지기도 한다. 신기한 기분이네.
리리는 한 손에 거친 술잔을 든 채 웃고 있었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이번에 사막에 와서 확실히 고생을 하긴 했다. 티를 내진 않지만, 리리는 나를 따라다니면서 고생을 많이 하긴 한단 말이지.
솔직히 연회가 조금 무르익으면 자리를 뜨고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리리를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내가 자리를 뜬다고 해 버리면 잘 놀다가도 벌떡 일어나 내 뒤를 따라올 게 분명하니까.
조금은 휴식을 취하게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서, 나도 술잔을 들어 올렸다.
* * *
“으어어어…….”
“괜찮아?”
리리가 걱정 반, 황당함 반이 섞인 표정으로 내 옆에 앉아 있었다.
나는 지금 침대에 누워서 강령술에 당한 시체처럼 몸을 비틀고 있었고.
“머리 아파.”
“당신, 얼마나 마셨어?”
“알면서 물어보는 거지?”
“아니, 나 몰래 뒤에서 병나발이라도 분 줄 알고.”
그렇게 말하며, 리리는 옆에서 물을 끓이고 있었다.
“그게 아니면, 설명이 안 되잖아.”
“나는 인간이야. 이 상도덕도 없는 아인종들 같으니.”
리리도 그렇고, 베두헨도 그렇고. 그렇게 술을 잘 마시는 건 내 생각에 태생빨이 분명했다.
리리는 술이 몇 잔 들어가면 금방 표정이 풀어진다. 그것만 보면 술이 약하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 상태에서 무슨 말술을 들이켜도 그대로 유지된단 말이지.
태도가 풀어지지만, 숙취에 시달리지도 술병이 나지도 않는다.
개부럽네. 진짜.
「이놈이 잘나가다가, 이렇게 나를 실망시키냐! 어!」
램프에서 튀어나온 선장이 옆에서 빽빽거리니, 안 그래도 아픈 골이 흔들렸다.
「벌떡 일어나! 당장 위대한 약탈을 실행해야지! 눈앞에 목표가 있는데, 한 발자국을 놔두고 디비 누워 자고 있어? 당장 이놈을 밧줄로 속박해라!」
“으어, 어차피 급한 건 다 해결했잖아요. 움직이기만 하면 도착인데, 좀 여유 챙깁시다. 네?”
「아이고 속 터져라!」
그렇게 에드워드가 날뛰는 동안, 리리는 불에 올려 두었던 주전자의 내용물을 따라 내게 건넸다.
“자.”
“뭔데?”
“내 피를 섞은 물.”
“…….”
생각도 못 했던 걸 내밀길래 잠깐 멍하니 있자니, 리리는 아니꼽다는 듯 말을 이었다.
“무슨 더러운 거 본 것처럼 반응이 그래? 당신은 뱀파이어 특성을 가지고 있잖아. 로열 블러드의 피는 해독 효과가 있어.”
“……그래도 적응은 안 되네.”
“한 방울 들어갔어. 한 방울. 모처럼 챙겨 주는데 그러고 있을 거야?”
자리에서 일어나며 잔을 받아 들었다. 들여다보니 티도 나지 않는 수준이었다.
마셔 보니 조금 나아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살겠네…….”
“앞으로 당신 먹을 음식에는 요리주도 빼야겠어.”
“그 정도는 아니야.”
술 못 마시는 건 진짜 서러운 일이다.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리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려가 볼 거야? 나락 아래.”
“가야지.”
「가야지! 그럼! 이 건방진 뱀파이어 꼬마야 괜히 물 끼얹지 마라!」
“꼬마 아니거든요. 늙다리 유령.”
「뭐!」
유치한 싸움이 시작될 거 같아서 어서 말을 잘랐다.
“리리, 내가 그 밑에서 뭘 들었는지 알아?”
“나는 몰라.”
내가 잠시 과거를 회상하자, 리리는 조금 불안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혹시 거인이 아직 살아 있다든가, 그 안에 뭔가 거인이 지키던 새끼가 있다든가. 그런 말을 하려는 건 아니지?”
“너도 상상력이 좋아졌네.”
물론 이런 이야기는 아니다. 내 생각에, 거인은 확실히 죽었다.
중요한 건, 그 거인이 떨어지면서 낸 소리였다.
나는 일부러 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풍덩.”
“……풍덩?”
“응. 풍덩.”
리리는 잠시, 내가 한 말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뜸을 들였다.
그리고 곧, 표정이 바뀌었다.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저 아래 물이 있다고?”
나락에 걸쳐 있었던 거인이 죽어 떨어진 그 순간.
저 아래에서 나는 분명 그런 소리를 들었다.
“베두헨들이 ‘바닥이 없는 나락’이라고 부른 이유가 있었던 거 같아. 뭘 떨어트려도 아무런 소리가 안 나서 그랬겠지.”
“그럼, 저기는…….”
거인 정도로 거대한 물체가 떨어져야 소리가 울릴 수 있을 만큼 깊은 그곳.
그 아래에는 깊은 물, 그리고 넓은 공간이 있었다.
안 그래도 이상했었다. 거인에게 근접했을 때 그 피부에서 분명 물기가 느껴졌었으니까.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지.
“……어떻게 내려갈 거야?”
리리는 내게 물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가방 속에서 거대한 모포 같은 걸 꺼냈다.
이번에 베이스캠프로 돌아갔을 때, 장태식 씨에게 부탁했던 물건을 받았었다.
“이건…… 기생체 가죽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말하면, 기생체의 번데기 외피를 구성하는 가죽.
비현실적으로 충격을 흡수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지금 내가 손에 들고 있는 건, 그 외피를 가공한 거대한 망토였다.
리리와 나를 동시에 감쌀 수 있는 망토.
“이거라면, 그 높이에서 물로 떨어지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
리리와 에드워드는 처음으로, 같은 감정을 가진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당장 하자!」
“미쳤어. 둘 다 미쳤어. 미친놈들아.”
그런데 감정의 이유는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을 때 웬만하면 가만히 기다리지 않는 편이지.
그렇게, 우리는 베두헨의 도움을 받아 다시 나락으로 다가갔고.
“미친놈, 미친놈, 미친놈아. 미친놈아!”
리리는 떨어지는 동안 품속에서 그렇게 외쳤다.
나도 모르는 효과가 있었는데, 두 겹으로 된 망토의 윗부분이 낙하산의 역할을 해 주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보단 안정적인 속도로 떨어질 수 있었다.
“이게 뭐가 안정적인 속도야 미친놈아!”
“스카이다이빙 해 봤어? 이거보다 세 배는 빨라.”
리리는 내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는 듯했다.
순간적으로 태양빛이 사라질 정도의 깊이.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다시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빛은 저 아래에서 시작했고, 나는 거대하게 펼쳐진 물을 보고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감기 직전, 눈치챘다.
그 물이 파도치고 있다는 사실을.
— 쏴아아아아
이건 위에서 지긋지긋하게 들었던 모래의 소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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