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97
97화 ep32. 바다의 도시, 해적의 꿈 (1)
언젠가, 리리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물고기 인간이 사막에 사는 건 뭔가 이상한 일인데.”
리리는 처음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내가 이 말을 꺼내고 나서야 조금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바다는 물로 가득찬 곳이라며. 어쨌거나 여기는 사막이긴 해도 바다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배가 있는데 물고기가 있어도 이상할 건 없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의문은 남았다.
“대체 아가미가 왜 있을까?”
어인들은 분명 아가미를 가지고 있었다.
물속에서 지낼 리가 없는 이 환경에서, 대체 아가미는 어쩌다 가지게 된 걸까?
어떤 생물이 가지고 있는 기능은, 그게 퇴화되어 흔적만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이유가 있는 법이다. 꼬리뼈와 사랑니처럼 말이지.
세계 각지를 돌면서, 그리고 몇 년인지도 모를 이계 방랑 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이었다.
당시에는 여기까지 생각하고 넘어갔었다. 호기심이 동하긴 했지만 당장 중요한 사실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시 생각해 볼 기회가 온 것 같았다.
어쩌면, 이 드넓은 사막은 과거 언젠가 바다였던 적이 있는 게 아닐까?
“그, 우선은 지금 살아남는 것부터 생각하면 어떨까?”
딴생각에 잠긴 사이에 리리가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나도 이 상황에 조금은 당황하고 있었다. 그저, 거인이 빠질 정도로 깊은 물이 있다는 것 정도만 알았지 이 정도로 거대한 풍경이 눈앞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으니까.
금방 정신을 차리고, 램프를 비볐다.
“에드워드, 배!”
이제는 익숙한 배가 허공에서 튀어나와 거칠게 떨어졌다. 사방으로 튀는 물, 그 위에 넘실거리며 떠 있는 배.
이제야 제 위치를 찾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방랑자의 활을 꺼내서 배 위로 밧줄 화살을 쏘아 걸었다.
“으.”
갑판 위로 올라선 뒤, 흠뻑 젖은 리리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으으, 물 싫어.”
“물에 들어가는 걸 싫어해?”
“우리 종족은 다 그래.”
“이제 뭐만 하면 종족 탓으로 얼버무리는 거 같은데.”
몸이 굳은 채 엉거주춤 서 있는 걸 봐서는 최소한 물을 싫어한다는 건 맞는 모양이었다.
가방을 확인했다. 아공간 가방 안쪽에 있는 건 다행히 젖지 않았다. 스며들어 간 물은 신기하게도, 가방 안에 동그랗게 뭉쳐 있었다.
이것도 가방에 들어온 물건으로 인식한단 뜻이겠지.
나는 안쪽에 들어간 물을 잘 털어 낸 후, 리리에게 갈아입을 옷을 건넸다.
리리는 곧 내가 만들어 준 탐험복 차림으로 돌아왔다.
주변을 둘러볼 여유는 이제야 생겼다.
쏴아아아—
이건 파도가 바위에 부딪힐 때 나는 소리였다.
처음 떨어질 때, 우리는 당연히 나락의 끄트머리에서부터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낙하 과정에서 조금씩 멀어졌지만, 나락의 벽은 아직도 우리의 뒤편에 있었다.
파도는 그곳에 부딪치고 있었다.
반대쪽을 바라보았다. 이 나락의 폭이 무한한 것도 아니니 크레이터나 계곡 아래처럼 반대편 절벽이 있을 게 분명하겠지.
그런데, 자세히 보니 반대쪽은 뻥 뚫려 있었다.
파도도 반대쪽에서 이쪽으로 끊임없이 흘러오고 있었다. 그러니까 일종의 거대한 지저 동굴의 형태를 하고 있는 셈이었다.
동굴이라는 단어가 모욕이라고 느껴질 만큼 아주 거대한 공간.
이곳에는 지금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없는 물이 가득 차 있었다.
아니, 물이 아니다.
쏴아아아-.
첨벙.
바다라고 부르는 게 맞겠지.
리리와 나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리리의 얼굴은 보랏빛으로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대체 이 빛은 어디에서 나오는 거야?”
부담스러운 원색이 아니라 태양광에 자연스럽게 섞인 듯한 보라색.
우리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나락의 꼭대기, 태양에서부터 시작된 빛은 여전히 찾아볼 수 없다. 모래 먼지에 가려진, 하늘의 흔적만 간신히 보일 뿐이었다.
빛의 출처는 바다의 아래였다.
위가 아니라 아래에서 시작된 빛이 이 공간을 밝히는 광원이었다.
“바다 아래에 태양이 있는 거야?”
리리의 감상은 심플했다.
그 순간, 배 바로 옆을 지나가는 별빛의 무리.
자세히 보니 이마에 초롱을 달고 있는 물고기가 근처를 요란하게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날치 같은 그것들이 통통 튀며 배 근처를 스쳐 지나갔다. 갑판 위로 몇 마리가 안착하더니, 그 자리에서 펄떡펄떡 뛰었다.
「이게, 무엇?」
에드워드는 당황하고 있었다.
“물고기요.”
그리고 나는 당연하게 대답했다.
「거, 사막 가시고기랑 진짜 비슷하게 생겼구만, 그놈들도 무리 지어서 배 밑을 지나가는데.」
“그런 생물이 살아요? 한 번 보고 싶은데.”
「보고 싶기는. 모래를 가르면서 헤엄치는 놈들이 힘이 좀 세겠냐? 오죽하면 정력에 좋다고 베두헨 놈들이 엄청 잡아먹어. 그리고, 배 아래에 퍽하면 구멍 뚫는 놈들이다. 만나면 그냥 개고생하는 거야.」
리리는 쪼그려 앉아서 팔딱거리는 물고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전반적으로 생긴 건 날치에 가까웠다. 지느러미는 날개에 가까웠는데, 신체가 반투명하여 내장이 보일 정도였고, 그 머리에는 희미하게 빛나는 초롱이 달려 있었다.
생긴 건 날치인데, 심해어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왜 이렇게 생겼을까?”
“우선 색소의 필요성을 못 느껴서 몸이 투명해졌을 거고, 초롱은 먹이를 유인하거나 상위 포식자를 겁주기 위해서 달려 있을 거야.”
“겁줘? 오히려 숨어 있는 데에 방해만 되는 거 아냐?”
“생각해 봐. 이곳에 사는 동물들은 빛이 약하니까 시력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적겠지?”
“응.”
“그래서 시력이 좀 약할 거야. 그런 상황에서 이 물고기가 한데 뭉쳐 있으면 어떨까?”
“음…….”
리리는 잠시 물고기를 주시하다가 말했다.
“커다란 하나로 보이려나?”
“정답.”
지구의 생물군에서도 자주 쓰이는 방식이다. 많은 생물들이 생존을 위해 이런 식으로 진화하지.
물론 내 말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뭐 어때? 우리끼리 잡담하는 데 이야기의 신빙성은 큰 의미 없다. 가볍게 이런 추리를 해 보는 것도 즐거움이니까.
어쨌거나 내 대답이 인상 깊었는지, 리리는 고개를 돌려 동그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가끔 도시 대학의 자연철학자 같아.”
「오아시스 출신 한량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아는 게 많구나.」
“대체 나를 뭘로 보는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들었다.
쏴아아아—
파도 소리.
벽을 타고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막대한 양의 모래들. 지저에 펼쳐져 있는 거대한 바다.
그리고 바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는, 거꾸로 된 보라색 광원.
“심해로 내려갈수록 밝아지는 바다라니.”
실로 압도적인 풍경이었다. 가방 속에서 카메라를 꺼낸 이유는 그 탓이었다.
진서연의 부탁이 있었지. 잠시 잊고 있었지만, 이 풍경만큼은 도무지 말로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꼭 보여 주고 싶었다.
나는 이 카메라가 내 감상을 최대한 담을 수 있길 바라며 셔터를 눌렀다.
찰칵—
“으앗.”
플래시가 터지자 조금 멍하게 있던 리리가 놀랐다.
“경고 좀 하지.”
그렇게 툴툴거리는 걸 보고 잠깐 웃었다. 리리는 그런 나를, 언제나처럼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말했다.
“이제 뭐 할 거야?”
“밥 먹자.”
“응.”
이런 풍경을 두고 급하게 움직일 수는 없다. 계획도 조금 더 짜고, 구경도 조금 더 하고.
리리는 이런 대답을 예상했는지 벌써 자리를 깔고 아래층 창고에서 식료품을 몇 개 꺼내왔다.
허공에 불을 피워 날치를 구워 봤다.
뭔가 생선 맛이 나는 것 같으면서도 조금 곤약 같은 느낌이 나는 게, 못 먹을 건 아니어도 꽤 이상한 맛이었다.
우리는 한동안 갑판에 가만히 앉아 풍경을 감상했다. 물론, 배는 뒤쪽 벽에 가까이 붙인 뒤 닻을 내려 고정했다.
벽을 따라 올라가는 모래가 보였다. 아니, 벽 전체가 상승하는 모래로 이루어져 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궁금한 게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언급해야 할지 모르겠어.”
리리는 호롱 날치를 맛보면서 딴생각에 잠겨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이거 하나는 물어봐야겠어. 당신 다시 위로 올라갈 방법은 생각해 둔 거야?”
나는 대답 대신에 품속에서 씨앗을 하나 꺼내어 보여 줬고, 리리는 추가적인 질문 없이 바로 납득했다.
땅 아래면 어련히 정기가 지나가는 길이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건 숲의 씨앗. 정기만 있다면 거대한 콩나무로 발아시킬 수 있다.
“당신은 항상 대처를 생각해 두긴 하네.”
「빨랑빨랑 먹어라! 휴식은 끝이다! 당장 약탈의 도시로 떠난다!」
“그 약탈의 도시가 대체 뭐예요?”
「모든 해적들의 꿈! 모든 해적들의 최종 목적지! 그 도시를 약탈하는 해적은 영원히 세상에 이름을 남긴다!」
“당신에게 소원을 빈 꼬마애의 꿈이 그거였나요?”
「그래!」
에드워드는 겉으로 보면 막무가내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정령 역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숙명을 지키기 위해서 살아가는 셈이었다.
천공의 기사에게 일갈하는 모습을 본 이후, 나는 에드워드를 조금은 다르게 보게 되었다.
「그 꼬마는 소원을 빌고,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이는…… 램프 정령의 수치다! 나라도 그 도시를 찾아 꼬마 놈의 소원을 대신 이뤄야 한다! 그게 지금 이 바다 어딘가에 있다!」
나는 그저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드워드가 이렇게 조급하니 너무 앉아서 쉴 수도 없네.
힘을 합쳐 닻을 올린 뒤 키를 잡고 엑셀을 천천히 밟았다. 모래 위를 항해하던 배는 물 위에서도 문제없이 움직였다.
이 드넓은 공간은 진짜 바다와 다름이 없었다. 돛을 펼쳐서 바람을 타자, 배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기에, 황금 지침을 나침반 삼아 안쪽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곧, 망망대해가 펼쳐졌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세요?”
에드워드는 팔짱을 낀 채 함교에 우뚝 서 진짜 선장처럼 정면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몰라!」
“에휴.”
여기는 단순히 지저 동굴이라고 칠 수 없었다. 하나의 거대한 바다라고 인식하는 게 더 옳았는데,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차라리, 주변을 탐색하는 게 조금 더 낫다고 생각했다.
리리에게 망원경을 건넸다.
“리리, 이걸로 수평선 봐줄래? 섬이나, 아무튼 특이한 거 발견하면 무조건 말해 주고.”
“응.”
어둡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빛이 희미했지만, 또 그 희미한 빛이 바다 전체를 밝히고 있어 시야는 넓은 희한한 풍경이었다.
그렇게 반나절 정도를 항해했다. 이곳에서는 낮도 밤도 없었다.
그동안, 우리는 많은 걸 목격했다. 물 아래에서 무리 지어 다니는 빛나는 청어 무리.
뛰어오르는 돌고래의 피부에 문신처럼 새겨져 있는 빛나는 문양.
그리고…….
“뭐지?”
그 시점에서 나는 이상함을 발견했다.
정작 정찰을 맡긴 건 리리였지만, 그 이상함은 우리 모두가 동시에 발견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저 멀리에 있는 구조물을 우리는 이제까지 그저 섬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불이 켜지고 나서야 등대라는 사실을 깨달은 거다.
우리는 등대로 접근했다.
「작은 등대구나.」
에드워드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저 등대가 섬 위에 세워진 게 아니라, 해저 밑에서부터 시작된 거대한 탑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전에는.
“…….”
“…….”
우리는 그 사실을 깨달은 뒤, 등대 옆에 정박하고 그저 올려다보았다.
등대에는 작은 입구가 있었다.
“가 보자.”
“응.”
짐을 챙겨서 등대로 다가가자, 그 안쪽에는 아래로 내려가는 기나긴 원통형 계단이 있었다.
“선장님.”
에드워드는 말이 없었다.
우리 모두가 눈치챈 탓이었다.
이 계단의 끝에 뭘 만날 수 있을지, 우리 모두가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에드워드가 찾던 도시는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곳에 있는 게 아니었다.
“모스mohs.”
빛을 비춰 보니, 문에는 아주 작은 룬이 적혀 있었다.
“뭐라고 적혀 있어?”
내가 가만히 시간을 끌자, 리리가 조용히 물었다.
읽기 어려운 문자가 아니었다.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문자였지.
“‘잊지 마라.’라는 뜻의 룬 고유명사야.”
“고유명사라고?”
“단어인데, 여러 뜻이 있어. 맥락으로 ‘잊힌 자’라고 해석될 수도 있고, 명령문으로 ‘잊지 마라’, 혹은 ‘잊지 마세요’라고 해석될 수도 있고……. 어쩌면 사람 이름일 수도 있겠네. 간혹 보던 문자인데, 작별 인사용으로도 쓰는 거 같더라고.”
“무슨 언어인데?”
물론 룬이니까 평범한 발음으로 완벽히 묘사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대략적으로는 이런 느낌이다.
“아틀란티스Atlant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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