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98
98화 ep32. 바다의 도시, 해적의 꿈 (2)
내가 먼저 대표로 등대 안쪽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굉장히 어두울 거라고 생각했다.
“모스mohs.”
그래서 일부러 광원을 준비해서 들어갔는데, 이럴 필요가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
“어때?”
뒤에서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던 리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잠시 아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투명한데.”
“투명하다고?”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는지, 잠시 뒤에서 말이 없었던 리리가 다가왔다.
“나 들어가도 되는 거지?”
고개를 끄덕이자 리리가 들어왔다. 그동안, 나는 아래쪽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곧 내가 한 말의 의미를 깨달았는지, 리리도 멍하니 아래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대 왕국의 유적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원통형 테두리를 따라 내려가는 계단 구조의 높은 탑 형태. 탑의 가운데는 텅 비어 있는 그런 구조.
이 등대의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건 이게 다였다. 그만큼 단순한 형태였다.
하지만, 그 재질은 전혀 단순하지 않았다.
“……투명하네.”
리리도 내 말을 이해하고, 아래쪽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 등대는 겉으로 보기에는 다른 유적처럼 재질을 알 수 없는 석재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안쪽, 물에 잠긴 아래쪽부터는 그 벽면이 투명했다.
안에서 외부가 깔끔하게 다 보였고, 바다의 아래에서 올라오는 광원이 안쪽을 여과 없이 밝히고 있었다.
그래서 불꽃을 집어넣었다. 빛을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러고는 안쪽을 빤히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해?”
“음…….”
“당신이 고민할 때도 있네.”
리리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아래쪽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위험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
“그럼?”
“이거, 맨 아래로 도착하려면 얼마나 걸릴까?”
그제야 내 고민의 정체를 눈치챈 모양이었다.
이건 단순하게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니다. 비교적 완만한 한국 바다의 깊이도 내가 알기로 평균 2km 정도는 된다. 가장 깊은 곳은 5km 정도 된다지? 해구를 생각해 보면 10km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내려가다가는 앞으로 더 가지도, 다시 돌아갈 힘도 남아 있지 않는 상황에 처할 위험이 있다. 이건 진짜 끔찍한 상황이거든.
“이건 고민해야 할 문제야.”
“그러네.”
리리도 고개를 끄덕이더니 안쪽을 바라보다가 주머니에서 돌을 하나 꺼내 아래로 떨어트렸다.
역시,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좋아. 정했다.”
그동안 나는 생각을 정리했다.
“우선, 딱 하루.”
“하루?”
“응. 하루 동안 내려가 보고, 정말 아무것도 없으면 우선 올라가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단계적으로 진행하는 거야.”
하루 동안 내려가 보고 뭘 발견하냐에 따라 다음 계획을 정하기로 했다. 만약에 그때도 확실한 게 아무것도 없다면, 미련 없이 다시 올라오기로 했다.
탐험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원이 어느 정도인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지금, 리리와 내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황이라는 걸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지.
급할 것도 없고, 식료품이 부족한 상황도 아니니 장기전을 염두에 두기로 했다.
식량을 챙기고, 온도 변화를 대비해서 여벌 옷도 좀 챙기고, 당장 절대 쓸 일이 없을 것 같은 짐은 모조리 빼서 배 위에 올려 두었다.
이 배를 두고 가는 게 조금 위험할 수도 있지만, 이 지저 바다에 빈 배 노략질할 놈들이 있을 거 같지도 않고, 만에 하나 있더라도 렐릭시나의 밥이 되기 마련이겠지.
“가자.”
「가자!」
“선장님은 안 걸어서 좋겠네요. 나도 누가 이렇게 업어 줬으면 좋겠네.”
그렇게 말하면서 가방을 둘러메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오지 탐험용 부츠가 바닥을 밟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원통형으로 길게 늘어진 등대는 그 자체로 큰 울림통이 되었다.
10분 정도 내려가자 벽이 투명한 부분을 만날 수 있었다.
벽에 손을 대보았다. 나는 이게 유리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순수한 유리로 이 거대한 구조물을 받친다는 게 상상이 되진 않지만, 다른 재질을 생각하기는 힘들었으니까.
하지만, 만지고 나서 이상하다는 사실을 금방 깨달았다.
“이거, 느낌이 물렁물렁한데.”
단단한 재질이 아니었다. 말랑말랑한 느낌이었는데, 말로 차마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기분이었다.
차가운 느낌에 손을 떼보자, 장갑이 물기로 흠뻑 젖어 있었다.
“이거, 물이야?”
입에 넣어 봤다.
“바닷물이야.”
짠맛과, 쓴맛. 바닷물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맛이 그대로 느껴졌다.
이건 이 바다를 이루는 물이 벽의 형태로 이루어진 구조물이었다.
고대 왕국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결과물.
벽에는 희미하게 룬 문자가 적혀 있었는데 완성형이 아니라 그냥 구성 요소를 길게 풀어 놓은 모습이라 읽을 수 있는 형태는 아니었다.
그 룬 문자의 나열은 이 계단을 따라, 아래쪽으로 쭉 이어지고 있었다.
“음…….”
자신을 잊지 말아 달라고 적혀 있었던 등대의 입구.
그리고, 바닷속으로 ‘잠긴’ 뒤 억지로 만든 듯한 등대와 그 외벽.
구체적인 증거는 없지만, 머릿속에서는 이런 이미지가 그려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아래 있는 도시의 사람들은 누군가 자신을 찾아주길 바랐던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내려가 보자.”
리리도 내 뒤를 따랐다. 계단의 폭이 넓었기 때문에 내려가는 데에 피로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계단조차 어떤 에너지로 인해 물이 뭉쳐져 만들어져 있었고, 그 푹신푹신함이 발을 타고 올라와서 걷는 게 즐거울 정도였다.
리리는 내려가는 내내 힘든 줄도 모르고 벽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저거 봐 봐!”
리리가 내 옷깃을 잡아당기며, 바깥을 가리켰다.
“그, 투명한 천 같은 게 흐느적거려. 촉수도 달려 있고……. 뭐지?”
사람 정도의 크기를 가진 해파리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해파리처럼 생긴 군집 생명체였는데, 우산 같은 머리를 아래로 넓게 펼친 채 해류를 따라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우산을 든 사람들이 단체로 하늘을 날고 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광합성 하나 본데?”
“광합성?”
“식물이 태양빛을 먹고 자라잖아? 그거랑 비슷하다고 보면 돼.”
“……그럼 쟤들은 식물이야?”
“동물이라고 그렇게 살지 않으리란 법은 없으니까.”
실제로 식물일 수도 있지.
척박하고 독립된 환경일수록, 식물과 동물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 이계는 더 그랬고.
그 순간, 돌고래 한 마리가 다가와 우리를 빤히 바라보더니 함께 내려가기 시작했다.
리리는 이때부터 흥분감을 숨기지 못했다.
“……귀엽게 생겼어.”
리리는 내려가는 내내 불평 한 마디 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투명한 벽 건너편의 풍경은 평범한 바다조차 가 본 적 없다는 리리에게는 큰 자극인 모양이었다.
리리에게 이런 면모가 있나 싶을 정도로, 리리는 눈앞의 신비한 풍경에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저게 고래야? 자는 거야? 쟤네들은 세로로 서서 자?”
“물고기가 맹수의 이빨을 하고 있어. 비늘이 없네.”
“거북이!”
아쿠아리움에 초등학생 데리고 온 기분마저 들었다.
피곤한 일을 제대로 된 휴식 없이 연속적으로 사건을 해결한 탓에 많이 피곤할 텐데, 이렇게 즐길 수 있다면 나쁠 게 전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좋았지.
그렇게 내려가다가.
삐빅- 삐빅- 삐빅-
미리 타이머를 맞춰 놓은 손목시계가 울렸다. 2시간이 지났다는 뜻이었다.
“잠깐 쉬자.”
리리와 나는 그 자리에 앉아 각자 식량을 까먹었다. 리리는 여전히 벽 바깥을 구경하는 데에 여념이 없었고, 나는 계획을 다시 한번 다듬었다.
풍경을 구경하는 건 좋았다. 그리고 계단이 생각보다 편해서, 꽤 많이 내려온 거 같기도 했다.
……아니, 꽤 내려온 정도가 아니다. 계산해 보니까, 좀 쉬엄쉬엄 내려왔는데도 빌딩으로 치면 300층은 넘게 내려온 거 같았다.
못해도 1km는 넘는 깊이를 내려온 거다.
난간으로 고개를 내밀어 아래쪽을 슬쩍 바라보았다. 여전히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이.
이쯤 되면 어디까지 내려가야 하나 감이 오지 않는 수준이었다.
“이거, 끝이 있긴 한 거야?”
「지긋지긋한 계단이구만!」
아직 두 시간밖에 되지 않았지만 다들 이상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나도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이 등대를 만들어 낸 누군가가 타인의 방문을 원했다면, 이렇게 대책 없이 계단을 만들어 뒀을까?
「이럴 거면, 계단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거냐? 이런 계단을 누가 이용한다고!」
에드워드의 말이 맞았다.
계단도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때 계단으로써의 의미가 있는 법이다.
이 정도로 거대하고 높은 계단을 정상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내가 놓친, 뭔가 다른 수단이 숨겨져 있는 게 아닐까?
그러던 중 이제까지 우리를 따라다니던 돌고래와 우연히 눈을 마주쳤다.
녀석은 주변을 맴돌며 신기한 생물이라도 본다는 듯 호기심 어린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다가, 그 부리로 벽을 톡톡 건드렸다.
나는 처음에 이곳에 사는 생물의 습성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다시 보면서 기억을 더듬어 보니, 뭔가 이상한 점이 느껴졌다.
“이 돌고래 말이야.”
페미컨을 먹던 리리도 고개를 돌려 돌고래를 바라보았다.
“왜?”
“뭔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지 않아?”
내 말에 리리는 잠시 돌고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겠어. 내가 동물이랑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나는 최소한 동물의 감각을 빌릴 수는 있잖아?
손으로 눈을 가린 뒤 심호흡을 하고 룬을 읊었다.
“탐-탓사Tham-tatha.”
돌고래의 시야가 내 시야가 된다.
돌고래는 내가 자신의 감각을 빌렸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 룬 언어는 일방적인 게 아니었으니까.
그러더니 돌고래는 시선을 한 군데에 고정했다.
마치, 내게 무언가를 보여 주고 싶어 하는 것처럼.
그제야 깨달았다.
안에서 바깥쪽을 바라보는 것과, 바깥에서 안쪽을 바라볼 때 보이는 게 달랐다는 사실을.
돌고래는 그저 호기심 때문에 나를 따라다니는 게 아니었다.
“…….”
리리는 나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숨소리마저 죽이고 나를 기다렸다.
나는 돌고래의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이 거대한 탑 외벽에 그려져 있는, 거대한 룬 문자의 나열을.
안쪽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 문자의 흐름을.
나는 그 룬의 나열을,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었다.
“비프로스트.”
이계인들이 썼던 차원문.
그 표면에 적혀 있던 룬의 나열.
그것이 이 탑을 따라, 나선형으로 끊임없이 적혀 있었다.
이건 명확한 하나의 사실을 의미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와 가능성, 그리고 리스크가 머릿속을 휘저었다가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뭘 본 거야?”
“에드워드. 선장님 말이 맞았어요.”
「뭐?」
“여기는 애초에 계단이 아니었어요. 발로 걸어서 내려가라고 만들어 둔 게 아니었던 거예요.”
「……그럼?」
이곳은 하나의 거대한 비프로스트였다.
계단 난간 너머, 뻥 뚫린 탑의 가운데 쪽으로 고개를 내밀어 아래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었다.
하지만 그런 건 이제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이 낭떠러지처럼 보이는 통로.
이건 하나의 거대한 문이었으니까.
“리리.”
“응…… 응?”
나는 리리를 꽉 끌어안았다. 리리는 놀라서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저 나를 올려다보았다. 대체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다는 혼란스러운 눈빛이었다.
말해 주지 않는 게 낫겠지.
이 밑으로 뛰어내릴 거라는 사실은, 차라리 모르는 게 마음이 편할 테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밧줄을 묶어서 안전장치를 만들고.
“뭐야? 뭘 하려고? 우선 설명부터 좀…….”
조금씩 불안해하는 리리를 안은 채 그대로 아래로 뛰어내렸다.
“으아앗! 흐읍!”
리리는 너무 놀라서 헛웃음마저 들이켰다. 내 옷깃을 대책 없이 붙잡는 그 손아귀 힘이 느껴졌다.
나는 그 상태로 아래를 정확히 바라보고 손바닥을 뻗었다.
성녀가 건네준 손바닥의 기도문이 희미한 빛을 발했고.
저 아래, 무지개가 모여드는 모습을 보자니 미소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비프로스트 너머,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도시를 향해 떨어졌다.
* * *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은 모양이었다. 눈을 뜨자, 온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리리는 아직 눈을 감고 있었다.
그 머리카락이 넘실거리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넘실거린다고?
그제야 물속에 잠겨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보라색 빛을 산란하는 물속. 나는 순간적으로 숨을 들이켜며, 볼을 부풀리고 입을 꽉 다물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심호흡을 했는데?
그제야 숨을 쉴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길게 자란 해초가 넘실거리고, 물고기의 무리가 바로 옆을 지나갔다.
몸 길이가 수십 미터는 되어 보이는 향유고래 십수 마리가 머리 위에 수직으로 선 채 죽은 듯 가만히 있었다.
고래들은 저런 식으로 잔다는 걸 들어 본 적 있었는데.
고래들이 잠에 들 정도로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공간.
이 바다의 바닥.
순간적으로 이 주변은 이끼 낀 바위와 해구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시야가 적응하고 보니, 알 수 있었다.
너무 찬란한 보랏빛 탓에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곳은 도시였다.
‘잊지 말아 주세요.’라고 말하는, 그럼에도 잊혀 버린 그 도시.
거대한 도시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끼 낀 바위들, 바닥을 쓸고 지나가는 청소부 물고기, 끊임없이 거품을 뿜어내는 열수분출공들.
그것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심해의 도시.
심해임에도 따뜻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보았다.
순간적으로 도시의 중앙, 성이라고 생각했던 물체.
“……거인이야?”
어느새 안정을 찾은 리리가 다가오며 말했다.
한 여인이 왕좌에 앉아 잠들어 있었다. 복장에서 기풍이 느껴졌다.
그저 사람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내가 처음에 성이라고 착각할 만큼 거대했다.
그 귀 대신에 지느러미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긴 금발을 가진, 고대에서부터 비롯된 거인.
평온하게 눈을 감고 있는 그녀는 품속에 고래를 껴안은 채 잠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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