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99
99화 ep32. 바다의 도시, 해적의 꿈 (3)
우리가 있는 곳은 도시의 외곽이었다.
거인이 앉아 있는 왕좌의 위치는 이 도시의 중앙일 거라고 생각했다. 정확한 근거는 없지만, 왠지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즉, 우리가 있는 곳과 거인 사이의 거리는 사실 굉장히 멀었다.
그럼에도 거인의 모습이 먼저 들어온 이유는 그만큼 거대했기 때문이었다.
크라켄의 본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압도적인 위엄을 저 거인 역시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호흡에 집중해 보았다. 물속인데도 숨을 쉬는 데에 문제가 없었다. 해저 바닥면이 통째로 보라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
어느새 내 손가락을 쥐고 있던 리리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니, 리리는 고개를 조금 숙인 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어깨의 움직임으로 호흡이 불규칙하다는 사실을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불안증으로 인한 가벼운 발작 증세가 일어난 모양인데. 나는 리리를 똑바로 바라보고 몸을 낮췄다. 손가락을 잡고 있는 손을 놓으려고 하지 않길래, 나도 꼭 잡아 주었다.
“리리.”
리리는 고개를 살짝 들어 나를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눈 감아.”
“응…….”
“눈으로 뭔가를 쫓으려고 하지 말고, 그냥 눈을 감고 까만색에 집중해. 심호흡 세 번. 나 따라 해.”
리리는 천천히, 내 호흡을 따라 했다.
“나 여기 있으니까 안심하고. 손발 끝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감각에 집중해 봐. 온몸 구석구석을 체크하는 느낌으로. 심호흡 유지하고.”
리리의 호흡이 안정을 찾아가는 걸 느꼈다.
“……미안해.”
“진정됐어?”
리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존심이 상한 듯한 표정이었다. ‘인도자의 의무’ 어쩌고 하는 데에 마음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내가 진정하는 방법을 어떻게 알았겠어? 나도 자주 그런 적 있으니까 아는 거야. 원래 탐험하다 보면 한 번 이상 그렇게 돼.”
“당신도 이런 적이 있었어?”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였다.
“탐험은 아무리 즐겨도 스트레스가 누적되는 일이야. 정신적으로 아무리 버텨 봤자 몸은 솔직하다고. 해결 방법을 아는 게 더 현명한 거야. 그냥 무작정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건 바보들이나 하는 거고.”
스트레스와 피로가 누적된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혼란이 몰아닥치면 누구나 저렇게 될 수 있다. 나도 요즘에는 잘 안 그러지만, 그런 경험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것 같았다.
리리는 물을 싫어한다고 했었지?
“……리리.”
“…….”
“리리?”
“아, 응. 미안.”
“너 물 싫어하는 게 아니라 무서워하는 거야?”
“무섭기는 뭐가 무섭……!”
리리는 그렇게 말하다가, 자신의 입에서 공기 방울이 보글보글하고 올라오는 모습을 보고 ‘흡’ 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응.”
“진짜 뭐…… 그거 같네.”
“그거 무슨 의미야?”
알게 모르게 고양이 같은 습성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몇 번 했는데, 이번에도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것도 뱀파이어라는 종족의 특성일까?
그래도 이제는 괜찮은 모양이었다. 내 손가락을 잡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는지, 리리는 그 손을 멀뚱히 바라보다가 놓았다.
“가자.”
“응.”
이 도시의 중앙에 거대하게 위치한 거인을 올려다보았다.
솔직히 고작 이런 목소리에 깰 거 같지도 않고, 무엇보다 어떤 힘에 강제로 봉인되어 있는 느낌도 받았으니까.
우리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이 도시는 대체 얼마나 된 걸까?”
수중인데도 불구하고 걸을 수 있고, 숨을 쉴 수 있다. 물의 저항감이 느껴지긴 하지만 움직임에 방해가 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마치 이곳을 걸어 다닐 누군가를 위해 인위적으로 조작되어 있는 기분마저 들었다.
각양각색의 산호로 뒤덮여 있는 거대한 바위인 줄만 알았던 이것은.
촤악- 촤악—!
“문이 있네.”
그걸 걷어 내고 나서야 지붕이 낮은 건물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도로 여기저기는 융기되거나 침식되어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는데, 열수분출공에서 끊임없이 방울을 뿜어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뜨거움이 느껴져 서둘러 몸을 피했다.
삐이이—
피이잉——
휘파람 소리가 간헐적으로 귓가를 맴돌았다.
“이게 무슨 소리야?”
“고래 울음소리.”
“울음소리? 물고기가 울기도 해?”
“노랫소리라고 해야 하나.”
위를 올려다보았다. 몸 길이만 수십 미터가 되어 보이는 거대한 고래들이 수직으로 선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저렇게 모여 있으니 스톤헨지 같은 바위 유적처럼 보였다. 그들 한가운데는 우리가 이제까지 내려왔던 등대의 아랫부분이 허공에서 끊겨 있었다.
아마 저걸 통과해서 이곳까지 내려온 거겠지.
돌아가는 데에 큰 문제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이곳은 고래의 안식처가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이상해.”
이제까지 만났던 고대 유적은 천공섬처럼 사연이 있는 게 아니라면 모든 부분이 여전히 정상적으로 작동할 만큼 유지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도시는 전혀 달랐다. 블록은 여기저기 침식되어 있었고, 해저 지면에 붙어서 살아가는 생명으로 가득했다.
위를 올려다보았다. 아직도 여전히 멀리 있는 거인이 앉아 있는 왕좌는 바위를 깎아 만들어져 있었는데, 그 손상 정도가 심했다.
하지만 그녀가 입고 있는 천 하나로 된 하얀 드레스는 여전히 깨끗했다.
거인은 우리가 이 도시를 들쑤시고 있는데도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죽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는데, 그 이마에 붙은 적색 보석, 거인의 붉은 심장이 희미한 빛을 내는 걸로 보아, 확실히 죽은 건 아니었다.
우리는 한동안 이 주변을 수색했다. 뭔가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뭘 꾸물거려! 움직여! 약탈이다!」
약탈무새는 이제 거의 이성을 잃은 거 같았다.
이 시점이 되니 이제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선장님. 여기에 대체 약탈할 게 뭐가 있다고 자꾸 그래요? 벽돌 하나 제대로 된 것도 없어 보이는데.”
「아, 몰라! 아무튼 약탈이다! 당장, 저 거인 놈을 속박해라. 무릎 꿇려!」
막무가내였다.
의외로 찾을 수 있는 건 없는 건가?
거인을 무작정 흔들어 깨울 수도 없는 일이잖아? 저 거인한테 나는 개미만도 못할 정도인데.
우우우웅—
리리와 나는 다시 위를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깨어난 고래들이 유유자적하게 우리 머리 위를 유영하고 있었다.
“평화로운 생물이네.”
“덩치 때문에 거의 천적이 없을 테니까.”
아무 생각 없이 지구 상식대로 대답하다가 문뜩 느꼈다.
이계에도 고래의 천적이 없으려나?
……왠지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 뒤로 여러 시도를 해 보았다. 고대 유적이니, 어떤 시동 장치가 있을 거라 생각해서 지하실을 뒤져 보기도, 아니면 어딘가에 단서가 적혀 있는 문헌이 있을까 해서 고문서 보관소를 찾아보기도 했다.
전부 허사였다. 물속에 잠겨 버린 책에서는 뭔가를 얻어 낼 수 없었고, 시동 장치를 찾는다고 하더라도 이 도시가 제대로 작동할 거라는 기대를 하기는 힘들었다.
“뭐지…….”
피이이이—
그동안, 머리 위에서 들리는 고래의 노랫소리 빈도가 높아졌다. 리리는 다시 한번 위를 올려다보았다. 아까 전부터 고래라는 생물이 꽤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삐이이이—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빈도가 너무 많아진 것 같았다. 고래가 그렇게 많았나?
그 시점에서 리리가 고개를 치켜들고 내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도 다시 한번 위를 바라보았다.
“…….”
철새가 머리 위로 지나가는 느낌이 들 정도로, 고래가 머리 위를 잔뜩 유영하고 있었다.
이곳의 광원은 하늘이 아니라 땅이었기에 고래의 모습이 정확하게 빛에 비춰 보였다.
삐이이이—
피이잉——
휘이이—
고래의 노랫소리. 저들끼리 의사소통을 위해서 낸다는 초음파 소리는 어느새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정말로 노래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등대를 내려오기 전에 이미 인지하고 있었던 사실이 하나 있었는데, 고래의 피부에 문신 같은 문양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 저게 그저 이곳 생물의 특징이라고만 생각했다. 날치 이마에 초롱이 달려 있는 곳이니 안될 게 뭐가 있냐고 생각하며 넘겼다.
그런데, 이 많은 고래들이 저렇게 모여 있으니 저건 또 다른 의미가 되었다.
“룬이야.”
리리가 먼저 말했다. 각 고래들이 가지고 있는 문양은 하나의 형태가 되어 있었다.
고래들이 하늘을 메울 것처럼 빽빽하게 있는 것도 아니라서 드문드문 중간이 비어 있었고, 이리저리 움직여서 흐느적거리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룬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하고, 또 복잡한 문양이었다.
나는 어느새 고래들이 묘사하는 룬 언어를 땅에 그리고 있었다. 마법진의 형태가 아니라 일종의 ‘메시지’의 형태에 더 가까웠다.
“뭔지 알겠어?”
리리는 어느새 공포를 잊었다.
에드워드도 더 이상 약탈에 집착하지 않고, 내가 모래 위에 정신없이 그리는 문양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곳에 사는 고래들. 그들은 경이롭고 위대한 생물체였으나 또한 미물이기도 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또다시, 지구의 방식으로 이계를 이해하려 들고 있었다.
이들은 이 도시의 일원이었다.
가라앉아 잊혀 버린 이 도시가 가진 슬픔을 품으며, 대를 잇고 살아가던 이들이었다.
나는 내가 적어 낸 룬 문자를 조심스럽게 읽었다.
— 우리를 기억하는 이가 언젠가 우리를 찾아오리라 믿습니다.
— 시대의 버림을 받았던 우리 종족의 친구가 되어 준 그 필멸자, 인간에게 나는 부서지지 않는 의지를 배웠습니다.
— 그러니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이곳에 도래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준 그때를 기다릴 터이니.
— 나, 바닷속에 가라앉아 영겁의 시간을 보낼지라도, 언젠가 황금이 돌아오리라 믿습니다.
— 그 믿음이 기꺼이 나를 희생할 수 있는 뜨거운 빛이니.
고개를 들었다.
이 메시지를 남긴 건 고래를 껴안고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 거인이었다.
삐이이잉—
피이이—
휘이이이—
그 시점에서 다시 깨달았다.
고래들은 정말로 노래를 하고 있다는 걸.
그 노래가 어떤 룬 단어의 ‘억양’을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룬 언어는 너무나 다채롭고 어려워서, 언어 내에서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억양이 존재한다.
나는 이 억양에 대응하는 단어가 뭔지 알 것 같았다.
뭔지 기억하고 있었다.
이건 내가 알고 있는 단어였다. 오래전, 내 기억 어딘가에 남은 그런 이름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키호테가 말했던 적이 있지.
불멸자의 이름은 그 자체로도 힘이 있다고.
거인이 불멸자인지는 모르지만, 그건 이제 와선 아무런 의미가 없는 사실이다.
나는 조용히 읊었다.
“디오네DIONE.”
내가 기억하고 있는 눈앞의 거인의 이름을.
거인은 눈을 뜨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우리는 한동안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았다.
나는 이 거인을 기억할 수 없었고, 이 거인 역시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다시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지만, 감정이란 가끔은 기억을 넘어서는 모양이었다.
* * *
거인, 아틀라스의 딸 디오네는 갈라지기 시작한 바다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바다 위의 도시가 가라앉고 있었다.
바다가 갈라지고 있었다.
이 바다가 통째로, 땅 아래로 들어가고 있었다.
추락하여 대지가 된 신, 그가 죽는 순간 내지른 단말마에서 태어난 악마,
콜브’랑데쥬가 결국 지상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황금의 영광이 사그라진 이 기회를 그 악마는 놓치지 않았다.
이 급격한 지각 변동은 그 악마의 몸부림 탓이었다.
너무 급격한 변화였다. 그녀가 지키던 어인들 대다수가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이 도시는 그녀의 존재 의미였다. 오랜 시대 속, 악의 상징이나 다름이 없었던 거인으로 태어났지만, 필사의 노력 끝에 태생적 악함을 극복하고 이 도시의 수호신이 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 도시는 그녀의 영혼 그 자체나 다름이 없었다.
그녀는 도시의 사람들을 구할 수 없었다. 불멸의 거인마저 죽은 신의 단말마에서 태어난 악마만큼은 극복할 수 없었다.
거인은 눈물을 흘렸다. 아마, 처음으로 흘리는 눈물이었다.
그리고 이게 마지막이 되리라 다짐했다.
갑작스럽게 이 세상을 떠난,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태생을 극복한 한 인간.
그는 의지를 가지고 있으면 태생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걸 가르쳐 줬다. 그게 악함과 변덕을 타고난 거인일지라도.
지키고 싶은 게 있다면, 그걸 목적으로 삼는다면, 가장 거대한 시련조차 극복할 수 있다고, 그는 행동으로 직접 보여 줬었다.
디오네가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게 무엇이었는가.
디오네가 목숨마저 기꺼이 바칠 수 있는 뜨거운 빛은 무엇인가.
그건 이 도시였다.
디오네는 기꺼이 도시와 함께 바다 아래에서 잠들었다.
자신의 믿음이 옳았기를 간절히 바라며.
먼 훗날, 끝내 꺼지지 않은 디오네의 의지는 사람을 이끄는 전설을 만들었고, 바다를 그리워하는 감정은 사막에 파도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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