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voice phishing, but it's a life reversal RAW novel - Chapter 10
노트북을 쳐다보고 있던 강주혁의 시선이 핸드폰으로 맞춰진다. 이제는 놀라는 표정도 없다. 벌써 며칠째 경험하다 보니 나름 담담해진 모양이다.
주혁은 핸드폰을 집어서 통화를 누른다.
[강주혁 님은 ‘무료 서비스’를 이용 중입니다! ] [남은 기간은 총 1일! ‘무료 서비스’ 기간을 만끽하세요!] [‘무료 서비스’ 중에는 미래 기간설정이 임의로 설정될 예정이니, 참고하세요!] [‘무료 서비스’를 경험하며 인생역전의 발판으로 삼으시길 기원합니다! ] [계속 들으시려면 1번, 수신 거부는 2번을 눌러주세요. ]보이스피싱의 여자 목소리는 여전히 경쾌했다. 그리고 남은 기간은 1일.
‘ 벌써 1일. ’
주혁의 엄지는 무심하게 1번을 누르러 출발한다. 그 짧은 순간에 주혁의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오간다.
‘ 이거 기간 끝나면 더는 안 오나? ’
라던지.
‘ 재미있었는데. ’
같은 상념들이 빠르게 그의 머릿속을 관통한다. 실제로도 주혁이 보이스피싱을 받은 날부터 지금까지 일주일이 게눈 감추듯 빠르게 흘렀다.
시간은 모두에게 평등하지만, 적어도 강주혁이 느끼기에 최근의 시간 속도가 가장 쏜살같았다. 잠시 자신의 처치가 잊힐 만큼.
-띠익
상념도 잠시, 강주혁의 엄지는 1번을 터치한다. 그러자 곧바로 경쾌한 여자 목소리가 이어진다.
[들으실 항목의 키워드를 ‘선택’해주세요! ] [1번 ‘새벽 2시 30분’, 2번 ‘저녁 11시 50분’, 3번 ‘저녁 7시 ’, 4번······ ] [ 다시 듣기는 #버튼을 눌러주세요. ]여자 목소리가 여지없이 키워드들을 토해낸다. 주혁이 무표정인 얼굴로 1번 키워드인 ‘새벽 2시 30분’을 검색해본다. 빠른 속도로 결과가 검색된다.
“ 있네. ”
주혁이 짧게 읊조린 이유. ‘새벽 2시 30분’에 예정돼있는 해외축구경기가 꽤 많이 잡혀있었다. 주혁은 경기결과를 알려줄 가능성이 있는 키워드는 거를 생각이었다.
검색을 끝낸 주혁은 선택을 기다리는 보이스피싱에 다시 듣기 #을 눌러 시간을 벌었다. 주혁이 #을 누르자 핸드폰에는 여자 목소리가 반복되어 흘러나왔지만, 이미 주혁은 듣고 있지 않았다.
다음 키워드를 검색 중이었다. 이번 키워드는 ‘저녁 11시 50분’. 딱히 나오는 게 없다.
– 속눈썹 드라이기 세트 30% 할인! /NY 홈쇼핑 내일 오전 11시 50분 오픈 예정!
이 같은 광고성 문구는 있었다. 저녁이 아니라 오전이기도 하지만, 설마하니 보이스피싱에서 홈쇼핑 할인 행사 따위의 정보를 주기도 할까?
“ 에이 설마······ ”
강주혁은 무표정의 표정에서 살짝 입꼬리만 올리며 실소한다. 잡념을 무덤덤한 실소로 치워버린 주혁은 검색창에 마지막 키워드를 입력한다.
– ‘저녁 7시 ’
이쪽도 결과적으로 딱히 눈에 띄는 정보는 없었는데, 거의 마지막 부분에 걸려있는 기사가 주혁의 눈길을 잡았다.
『울산 vs 제주, 내일 저녁 7시! 대격돌!』
기사 제목을 읽은 주혁이 짧게 혀를 찬다. ‘저녁 7시’도 거를 모양이다. 물론, 토토 관련이 아닌 다른 정보를 줄 수도 있지만, 현재로서 주혁이 키워드를 뽑는 방식은 매우 단순했다.
소거법.
작은 가능성이라도 있는 키워드들을 소거하고 남는 것을 선택한다. 어떤 키워드들을 선택하더라도 결국 미래를 듣긴 하겠지만.
가능한 토토 노가다를 피하고 싶은 주혁이었다.
이제 남은 키워드는 2번 ‘저녁 11시 50분’이었다. 결론이 나오니 주혁의 움직임은 빨라졌다. 바로 2번을 눌렀다.
-띠익
[ 탁월한 선택! 강주혁 님이 선택한 키워드는 ‘저녁 11시 50분’입니다! ]신난 여자 목소리가 나왔고, 그 목소리가 계속 이어진다.
[미금역에서 출발하는 15번 마을버스의 막차 시간은 ‘저녁 11시 50분’인데요? 버스 기사 박태수씨가 화장실에서 늦게 나오는 바람에 오늘 15번 버스 막차는 미금역에서 12시에 출발하게 됩니다!] [버스 출발시각이 다소 늦어진 덕분에 54분, 술에 잔뜩 취한 김세진씨가 버스에 타게 되고, 탑승한 취객 김세진씨가 버스 기사 박태수씨의 운전을 방해하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15번 마을버스는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승합차를 추돌해 2명이 숨지고 아이, 여학생을 포함한 5명이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합니다!]사고? 이게 끝인가? 싶었는데 끝이 아니었다.
[ 취객이 타지 않았다면 사고도 일어나지 않겠죠? ]-뚝
주혁은 보이스피싱이 끊긴 핸드폰을 조용히 침대에 내려놓는다.
“ 이게 무슨 미친 소리······ ”
야금야금 강주혁을 밖으로 내보내던 보이스피싱이 이젠 아예 임무를 던져버린다. 폭풍처럼 지나간 보이스피싱 덕에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주혁은 빠르게 노트북에 메모장을 켜서 정보를 적어 내려갔다. 미금역 출발, 막차, 15번, 취객. 이어서 보이스피싱이 마지막에 던진 임무를 다시금 떠올린다.
[ 취객이 타지 않았다면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겠죠? ]‘ 그러니까 나더러 사고를 막으라는 건가? ’
거기에다 그가 선택하는 키워드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졌다.
‘ 키워드 ‘저녁 11시 50분’. 이건 ‘저녁 11시 50분’에 일어날 일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저녁 11시 50분’이라는 키워드가 포함된 정보를 알려주는 건가? ‘
지금까지는 그저 키워드 시간대에 일어나는 미래의 일을 알려주는지 알았는데, 이번에 들은 정보로 봐서는 아닌 것 같았다. ‘저녁 11시 50분’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저녁 11시 50분’이라는 키워드가 포함된 미래를 알려주고 있다.
실제로 방금 보이스피싱에서 말해준 사고는 막을 방도는 알 수 있지만, 사고가 몇 시에 일어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 사고를 막는 게 내 인생역전과 무슨 상관이지? ’
보이스피싱을 받으면 언제나 나오는 멘트들. 주혁은 그 멘트들을 떠올린다.
[남은 기간은 총 1일! ‘무료 서비스’ 기간을 만끽하세요!] [‘무료 서비스’ 중에는 미래 기간설정이 임의로 설정될 예정이니, 참고하세요!] [‘무료 서비스’를 경험하며 인생역전의 발판으로 삼으시길 기원합니다! ]멘트들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무료 서비스 기간 동안 보이스피싱을 잘 써먹어서 인생역전의 발판으로 삼아라. 그런데 방금 보이스피싱에서는 느닷없이 사고에 대한 정보를 늘어놓고, 강주혁이 막으라는 식으로 말했다.
지금까지 보이스피싱은 강주혁을 은근히 밖으로 내몰긴 했어도, 이렇게 대놓고 한 적은 없었다. 거기다 장소도 미금역. 주혁이 사는 곳이다.
“ 왜 자꾸 나를 밖으로 내몰지? 그리고 이 사고가 내 인생이랑 무슨 연관이······ ”
무슨 이유가 있는 걸까? 주혁은 심각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다. 그렇게 3초간 가만히 허공을 응시하다 시간을 확인한다.
시간은 저녁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 푸후- ”
시간을 확인한 주혁이 숨을 길게 내쉰다. 어찌 됐건 사고는 분명 일어난다. 보이스피싱이 말한 것 중에 틀린 건 없었으니까.
이 사고가 주혁의 인생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보이스피싱이 주혁을 왜 자꾸 밖으로 내보내는지는 당장은 알 수 없었다.
다만, 이 사고를 막으면 뭔가 실마리가 잡힐 것 같았다. 그리고 일어날 안타까운 사고를 들었는데 충분히 막을 수 있음에도 막지 않는 건.
“ 개새끼지. ”
주혁은 끼고 있던 팔짱을 풀고, 마스크와 모자를 푹 눌러쓴다. 이어서 바닥에 널브러진 롱패딩을 대충 걸친다. 롱패딩을 대충 여민 주혁이 핸드폰과 지갑을 챙기면서 입이 열린다.
“ 그놈이 타는 게 54분이랬지? ”
짧게 읊조린 주혁은 이미 현관문을 열고 있었다.
미금역 버스정류장.
주혁은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주변을 한 바퀴 돌아야 했다. 정류장이 한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금역에 버스정류장은 두 곳이었다.
마을버스가 서는 곳, 그 외의 버스들이 서는 곳.
집에서 일찍 나와서 망정이지 조금만 늦게 나왔으면 큰일 날뻔했다. 어쨌든 마을버스가 서는 곳을 찾아낸 주혁은 정류장 벤치에 앉아, 분위기를 파악한다.
‘ 여기 정차했다가 5분 정도 있다 출발하네. ’
15번 버스 말고도 다른 번호의 마을버스들도 많았는데, 대부분 버스정류장에서 5분 정도 정차 후 수지 방향으로 출발했다.
그렇다면 사고가 일어날 15번 버스는 11시 45분경 도착하지 않을까 싶었다. 주혁은 자연스레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은 11시 38분.
대략 7분 정도 남은 것을 확인한 주혁은 차가운 입김을 내뿜으며 롱패딩 주머니에 양손을 쑤셔 넣는다. 날씨가 춥다 보니 자연스레 다리가 달달달 떨린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에는 정해둔 시뮬레이션을 계속 생각한다. 실수하면 안 되니까. 기분이 이상하게 묘했다.
사람을 구한다는 게 영화를 찍을 때나 해봤지, 이렇게 현실에서 해볼지 누가 알았겠는가.
바로 그때.
-우우웅
버스 한 대가 비어있는 정류장으로 웅장하게 들어선다.
-푸쉬이!
버스는 특유에 방귀 소리를 내뿜으며 버스정류장 앞에 멈춰선다.
-치이익!
이어서 앞쪽 문이 열린다. 그런데 문이 열리자마자 깔끔하게 기사 복장을 한 버스 기사가 얼굴이 사색이 되어 문에서 뛰쳐나와 어디론가 뛰어간다. 너무 빨라서 얼굴을 보지도 못했다.
“ 어지간히 급한가 보네. ”
우악스럽게 뛰어가는 버스 기사의 뒷모습을 아련하게 보던 강주혁은 이내 시선을 버스 정면으로 돌린다.
-15
버스 정면에 붙은 번호를 확인한 주혁은 다시 한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한다.
-11시 46분.
‘ 이 버스가 맞아. ’
시간과 장소, 버스번호 그리고 우악스럽게 뛰어간 버스 기사. 아마 화장실로 뛰었을 거다. 모든 정황을 봤을 때, 앞에 있는 15번 버스가 곧 사고가 날 버스라고 주혁은 판단했다.
“ 스읍 ”
강주혁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두 걸음 정도 떨어져서 버스를 주시한다.
주시하기를 몇 분. 시간이 흐를수록 비어있는 버스에는 사람들이 타기 시작했다. 아이 두 명의 손을 잡고 타는 아줌마, 가방을 멘 여학생, 손을 잡고 버스를 타는 커플.
다들 버스 기사의 자리는 비어있지만, 아무렇지 않게 카드기에 지갑이나 가방을 대고, 띠딕 소리가 들리면 자리로 가서 앉는다.
버스에 타는 승객들을 유심히 관찰하던 주혁은 보이스피싱이 말했던 정보를 떠올린다.
[······안타깝게도 15번 마을버스는 승합차를 추돌해 2명이 숨지고 아이, 여학생을 포함한 5명이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 총 7명이지? 하나, 둘, 셋······ ”
승객이 몇 명인지 세던 주혁의 입이 다시 열린다.
“ 6명. 아직 한 명이. ”
하는데 대학생처럼 보이는 남자가 주혁의 앞을 스쳐서 우다다 버스에 올라탄다.
“ 쟤까지 7명 ”
7명이 버스에 탄 것을 확인한 주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핸드폰이 출력하는 시간은 11시 53분.
시간을 확인한 주혁이 주변을 빠르게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제 1분 뒤면 취객이 나타날 거다. 그러나 주혁의 시야에는 취객이 보이지 않았다.
선 자리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몇 초간 보다가도 왼쪽으로 고개를 휙 돌려서 거리를 관찰했다. 딱히 술 취한 취객은 안 보였다.
“ 혹시 ”
주혁은 혹시나 해, 버스 창문으로 보이는 승객들을 관찰했는데 역시나 술 취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시간을 다시 확인한다. 시간은 11시 54분. 슬슬 나타나겠지.
바로 그때.
“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네~♬ ”
-지직지직
뒤쪽에서 신명 나는 트로트가 들렸다. 주혁은 노랫소리가 들리자마자 몸을 휙 하고 돌렸다. 어둠이 져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사람의 형체가 다리를 질질 끌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노래까지 부르면서.
“ 나타나셨구만. ”
언뜻 보면 좀비라고 착각이 들 정도였다.
-지익지익
좀비는 다리를 질질 끌면서 버스가 서 있는 방향으로 다가온다. 여전히 노래를 크게 부르면서. 좀비는 주혁을 지나, 문이 열려있는 버스에 올라타려 했다. 하지만 좀비는 버스에 타기도 전에 멈칫거린다.
주혁이 좀비의 팔을 잡았기 때문이다.
-턱
“ 으잉? ”
자신의 팔뚝이 누군가에게 잡혔다는 것을 인지한 좀비가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주혁을 돌아본다.
“ 너 므냐? ”
얼마나 술을 처먹었는지, 입을 열자마자 술 냄새가 진동한다. 말투도 꼬일 대로 꼬여있는 상태. 주혁은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그를 버스에서 끌어낸다.
“ 어어어? 야! 느 므냐고! ”
“ 입 좀 다무세요. 술 냄새나니까. ”
“ 뭐 인마! 이새끼! ”
버스에서 좀비를 떨어트린 주혁은 그의 팔뚝을 놓지 않았다. 그저 무심하게 좀비가 늘어놓는 욕설을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 보이스피싱이 말했던 좀비의 이름을 떠올린다.
[버스 출발시각이 다소 늦어진 덕분에 54분, 술에 잔뜩 취한 김세진씨가 버스에 타게 되고······]
주혁이 좀비에게 혹시나 해서 묻는다.
“ 당신 이름이 김세진 맞아? ”
“ 개새기야! 맞다! 왜, 느도 나 무시허냐! ”
실제로 주혁은 좀비의 말을 무시하면서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11시 59분. 아니, 주혁이 핸드폰을 보는 순간 12시로 바뀐다.
바로 그때.
-탁탁탁!
사라졌던 버스 기사가 바로 앞 상가건물에서 뛰쳐나온다. 그리곤 버스 앞에서 좀비를 꽉 잡고 있는 주혁과 눈을 한번 마주치고는 물 흐르듯 기사 석에 착석, 버스 문을 닫고 출발한다.
-부우우우웅
“ 후- ”
멀어지는 버스를 보며 주혁이 작은 한숨을 내쉰다. 그러면서 꽉 잡고 있던 좀비를 놓아준다. 풀린 좀비는 비틀거리다가 버스정류장의 벤치에 널브러진다.
“ 아주 지네 집이구만. ”
널브러진 좀비를 보며 주혁이 112의 신고를 하기 위해 핸드폰을 들어 올리는데.
그 순간.
♬띠리리링 띠리리링 띠리리링!!!
벨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띠리리링!!!
♬띠리리링 띠리리링 띠리리링!!!
좀비는 주혁의 손에서 시끄럽게 울려대는 벨 소리에 시끄럽다 칭얼거리기 시작했고, 주혁은 좀비를 무심하게 쳐다보다가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 강주혁님의 유료서비스 전환 조건이 방금 충족되었습니다. 곧 유료서비스 팀에서 연락드릴 예정이니 기다려 주세요!]“ 뭔 팀? ”
-뚝!
보이스피싱이 갑자기 끊겼다. 내용은 저게 끝이었다. 끊긴 핸드폰을 여전히 귀에 대고 있던 주혁의 입이 열렸다.
“ 유료서비스라고? ”
끝
ⓒ 장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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