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voice phishing, but it's a life reversal RAW novel - Chapter 17
주혁은 하정훈의 반응을 보고 확신을 했다.
‘ 사진 속 남자가 하정훈이 맞네. ’
상황이 재미있게 흘러가자, 주혁은 하정훈을 몰아세운 데 더욱 박차를 가했다.
“ 놀랐구나? ”
“ 개소리하지 마라. 난 아니라고 했다. ”
“ 알아. 아닌 거. 근데 개소린지 아닌지는 박 기자가 판단할 문젠데. ”
“ ······ ”
하정훈은 대답 없이 이빨을 꽈드득 물었다. 그 소리가 반대편에 앉아있는 강주혁에게까지 들릴 정도였다.
상황이 역전됐다.
지금부터는 강주혁이 갑이였고, 하정훈은 을이었다. 주혁은 다 먹어버린 방울토마토 대신 멜론을 집어먹으면서 말을 잇는다.
“ 정훈아. 이렇게 하자. ”
“ ······ ”
“ 내가 말한 영화를 찍고, 문제없이 영화관에 걸리면 내가 가지고 있는 사진을 넘길게. ”
구라였다. 주혁이 사진을 가지고 있다는 건 대충 던진 떡밥. 하지만 하정훈은 놀라 자빠질뻔했다. 사진을 가지고 있다니? 일단 하정훈은 주혁을 찔러보기로 한다.
“ 내가 믿을 거 같냐?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믿을 거 같아? 어디서 개수작이야. ”
“ 하아- ”
주혁이 한심하다는 듯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던진다.
“ 야 너는 앞에 앉아있는 나를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냐? 이 바닥에 믿음 뭐 진실 그딴 게 어딨어. 그냥 현실만 있는 거지. 대중들은 자극을 원해. 거기다 너를 던지면? ”
“ ······ ”
“ 어떻게? 나랑 나란히 손잡고 퇴물배우 소리나 들으면서 살래? ”
하정훈은 혼란스러웠다. 배우 생활을 접어든 지 15년. 난생처음 겪은 일에 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리고 너무나 무서웠다.
상상이 아닌 실제 갈기갈기 찢겨서 망해버린 강주혁이 앞에 앉아있으니까, 자신도 저렇게 될까 생각하니 무서워 미칠 지경이었다. 그런데.
-스륵
머리를 감싸 쥔 채 고뇌에 빠진 하정훈을 뒤로하고 강주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걷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던진다.
“ 하루 줄게. ”
“ 뭐?! ”
룸의 문을 연 강주혁이 다시 말했다.
“ 야 나는 니가 유부녀랑 바람나도 신경 안 써. 맘대로 하고 살아. 대신에 이 영화는 니가 찍어줘야겠다. 영화만 찍으면 돼. 너는 손해 볼 거 없잖아? ”
“ 너······너! ”
“ 하루 준다. 지나면 그 사진은 기사에서 볼 거야. ”
말을 마친 주혁이 룸의 문을 닫았다. 천천히 복도를 따라 걷는 주혁의 입가에는 웃음이 걸려있었다.
‘신기하네.’
신기했다. 이 상황이 신기한 게 아니라, 이 상황을 만들어낸 자신이 너무나 신기했다. 그간 대화 한번 못하고 방에 처박혀 산 자신이 점점 변하는 게 확 느껴질 정도였다.
“ 대리 불러드릴까요? ”
직원의 질문에 천천히 복도를 걷던 주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카운터에서 발렛을 맡겼던 차 키를 받아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으로 가는 입구 철문을 열자, 주혁의 차는 바로 앞에 주차돼 있다.
-띠딕
차를 확인한 주혁은 스마트키의 버튼을 눌렀고 이어서 차 문을 열었다. 주혁은 운전석이 아닌 조수석에 올랐다.
그런데 그 순간.
♬띠리리 띠리리링 띠리리 띠리리링!!!
보이스피싱이 도착했다.
♬띠리리 띠리리링 띠리리 띠리리링!!!
♬띠리리 띠리리링 띠리리 띠리리링!!!
주혁은 일단 차에 타고선 전화를 받았다.
[‘브론즈’단계의 주인이신 강주혁님 안녕하세요!] [강주혁님의 유료 서비스 ‘브론즈’의 남은 횟수는 총 28번입니다.] [‘유료 서비스’를 경험하며 인생역전의 더욱 가까워지길 기원합니다! ] [계속 진행을 원하시면 1번을 눌러주세요. ]주혁은 한 손으로 벨트를 채우면서 1번을 눌렀다.
-띠익
[들으실 항목의 키워드를 ‘선택’해주세요! ] [ 1번 ‘저녁 9시’, 2번 ‘와인’, 3번 ‘새벽 1시’, 4번 ‘48 ’, 5번······ ] [ 다시 듣기는 #버튼을 눌러주세요. ]“ 와인? ”
처음으로 보이스피싱의 키워드에서 단어가 등장했다. 주혁은 차오르는 호기심에 2번을 곧장 눌렀다.
-띠익
터치 음을 끝으로 여자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 탁월한 선택! 강주혁 님이 선택한 키워드는 ‘와인’입니다! ] [ 탑 여배우 A양이 마약 스캔들에 휘말립니다. 강남에 있는 파티장 루프가든 주인에 제보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파티에 여러 유명인사가 있었으나, 오로지 A양이 마시던 ‘와인’에서만 마약 성분이 검출되어 사회적으로 큰 파문이 예상된다며 발표를 마칩니다. ]-뚝
“ 허- 이건 또 뭔. ”
이번에 들린 미래는 마약 스캔들 소식이었다.
여배우의 마약 스캔들. 흔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전혀 없는 일도 아니었다. 적어도 강주혁이 지낸 연예계에선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이슈였고, 실제로 강주혁의 동료 중에 몇몇이 조사를 받은 적도 있었다.
“ 탑 여배우 A양이라. ”
보이스피싱을 끊은 주혁은 일단, 주머니에서 미래 정보를 적어둔 수첩을 꺼냈다.
-영화 ‘척살’ (진행 중)
-신약개발 ‘성천바이오’ (진행 중)
수첩에는 여전히 두 가지 일에 대한 미래 정보가 적혀져 있었다. 주혁은 수첩에 끼워져있던 펜을 들어서 미래 정보를 추가한다.
-탑 여배우 A양, 마약 스캔들 (진행 미정)
-탑 여배우 A양의 마약 스캔들, 강남에 있는 파티장 루프가든 주인의 제보, 파티에 여러 유명인사가 있었으나, 오로지 A양이 마시던 ‘와인’에서만 마약 성분이 검출됨, 사회적으로 큰 파문이 예상.
이제 주혁의 수첩에는 총 3가지의 미래 정보가 적혔다. 메모를 마친 주혁이 갑자기 고개를 갸웃하며 혼잣말을 쏟아낸다.
“ 써먹을 수 있으려나? ”
사실 당장 이 여배우 마약 스캔들의 미래 정보를 어떻게 써먹을지 막막하긴 했다.
-영화 ‘척살’ (진행 중)
-신약개발 ‘성천바이오’ (진행 중)
-탑 여배우 A양, 마약 스캔들 (진행 미정)
수첩에 적힌 것처럼 영화 척살은 주혁의 전문 분야였고, 이익이 나는 구조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리고 성천바이오 같은 경우, 주혁이 주식은 잘 모르지만, 미래 정보에 따라 주식을 사고팔면 이익이 난다.
그런데 여배우 마약스캔들은 좀 막막했다.
“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
일단은 적어둔다. 까먹고 살다가 어느 날 TV 뉴스에서 접하는 지나가는 미래일지 모르나, 진짜 혹시 모르니까.
주혁이 꺼냈던 수첩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을 때, 누군가 차 창문을 두드렸다. 대리기사가 도착했다.
다음 날 아침, 강주혁의 월세방.
강주혁의 아침잠을 깨운 것은 시끄러운 벨 소리였다.
······♬띠리리 띠리리링
······♬띠리리 띠리리링 띠리리
♬띠리리 띠리리링 띠리리 띠리리링!!!
비몽사몽에 벨 소리가 짧게 울리다가, 어느새 번뜩 잠에서 깬 주혁의 귓가에 정확하게 꽂혔다.
♬띠리리 띠리리링 띠리리 띠리리링!!!
♬띠리리 띠리리링 띠리리 띠리리링!!!
핸드폰은 주혁의 등 뒤에 박혀있었다. 눈가를 비비며 강주혁이 핸드폰 화면을 확인했다.
*070-1004-1009
아침부터 주혁에게 걸려온 전화는 보이스피싱이었다. 여전히 보이스피싱은 중구난방으로 전화가 걸려온다
일단, 주혁은 시끄럽게 울려대는 핸드폰을 손에 쥐고는 패딩 주머니에 박혀있던 수첩을 꺼낸 후에 전화를 받았다.
[‘브론즈’단계의 주인이신 강주혁님 안녕하세요!] [강주혁님의 유료 서비스 ‘브론즈’의 남은 횟수는 총 27번입니다.] [‘유료 서비스’를 경험하며 인생역전의 더욱 가까워지길 기원합니다! ] [계속 진행을 원하시면 1번을 눌러주세요. ]이미 수첩을 펼쳐놓고, 필기 준비도 마친 주혁이 1번을 눌렀다.
-띠익
[들으실 항목의 키워드를 ‘선택’해주세요! ] [ 1번 ‘저녁 9시’, 2번 ‘1층’, 3번 ‘새벽 1시’, 4번 ‘48 ’, 5번······ ] [ 다시 듣기는 #버튼을 눌러주세요. ].어제저녁에 들은 2번 ‘와인’이라는 키워드가 ‘1층’으로 바뀐 것 빼고는 나머지 키워드들이 어제와 같았다.
“ 흠- ”
짧게 숨을 내쉰 주혁은 별 고민 없이 1번을 눌렀다. 이미 바뀐 2번 키워드를 빼고, 나머지 키워드들을 눌러 전부 새로운 키워드로 바꿀 생각에서였다.
-띠익
짧은 터치 음이 들렸고.
[ 탁월한 선택! 강주혁 님이 선택한 키워드는 ‘저녁 9시’입니다! ] [ 체감온도가 영하 22도까지 떨어지는 등 느닷없는 강추위가 몰려옵니다. 기상청은 3월 14일 ‘저녁 9시’를 기점으로 갑자기 추워진 한파에 다음날 전국에 한파주의보를 내립니다. ]-뚝
“ 예? ”
보이스피싱이 끊기자마자 주혁은 날짜를 확인한다. 오늘은 3월 15일.
“ 뭐 이딴 정보를······ ”
방금 보이스피싱이 알려준 미래 정보로 주혁이 써먹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현재 밖이 매우 춥다는 것. 그리고 곧 기상청이 한파주의보를 내린다는 것.
“ 이런 쓸데없는 정보도 섞여 있다는 거지? ”
하루하루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보이스피싱에 새삼스레 강주혁은 유료 서비스인 ‘브론즈’로 처음 넘어갔던 날에 들었던 멘트가 생각났다.
[강주혁님의 ‘브론즈’단계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일종의 연습, 튜토리얼 정도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주혁이 헛웃음을 지으며 핸드폰을 침대에 툭 던진다. 아무래도 강주혁에게 걸려오는 보이스피싱은 아직 보여줄 것이 많은 모양이다.
“ 푸후- ”
아침부터 쓸모없는 정보를 들은 주혁은 평소보다 훨씬 더 무심한 표정으로 노트북을 켠다. 노트북이 바탕화면을 토해내자마자 주혁은 HTS 프로그램을 실행시킨다. 그런데.
“ 뭐? ”
주식 현황을 확인한 주혁의 눈알이 터질 듯 커진다.
-성천바이오 14,825주
-매수 8,495 금액 125,938,375
-현재 14,400(+29.73%) 금액 213,480,000
-손익 87,541,625
“ 팔천?! ”
분명 어제 아침 확인했을 때만 해도 손익은 3천만 원을 넘는 수준이었다. 거기다 현재 성천바이오의 주가는 완벽한 상한가였다. 거의 꽉 찬 29%.
주혁은 노트북 화면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다급하게 인터넷에 접속했다. 처음 당장 봤을 때, 실시간 검색어에는 신약개발 관련 단어는 안 보이는 듯했으나, 주혁이 마우스를 가져다 대니 실시간 검색어 6위부터 ‘성천바이오’, 8위 ‘신약개발’, 11위 ‘ 성천바이오 개발’. 15위 ‘신약물질’.
성천바이오의 신약개발 소식은 실시간 검색어를 야금야금 치고 올라오고 있었다. 검색어를 확인한 주혁은 현재 시각을 확인한다.
-10시 10분.
시간은 아침 10시 10분. 시간을 확인한 주혁이 수첩을 열어 성천바이오 관련 정보가 적힌 것을 확인한다.
-성천바이오 신약개발 중, 췌장암 동물에 투여, 암 치료 과정에서 나타나는 대표적 부작용인 체중 감소 없이 암 조직이 사멸 수준까지 감소됨, 공식 입장 아침 9시 30분 시작, 기자들의 수많은 질문으로 인해 ‘아침 9시 56분’에 끝남.
“ 발표했구나. ”
보이스피싱에서 들린 대로라면 발표가 아침 9시 56분에 끝났고, 지금은 이미 발표된 직후라고 볼 수 있었다.
『성천바이오 상한가, “췌장암 환자들의 희망 열었다”』
『[특징주] 성천바이오, 췌장암 신약 물질 공식발표에 상한가』
『성천바이오, ‘신약 물질’ 췌장암 유효성 평가 공개 』
이미 기사는 폭발 직전이었다. 아침 주혁의 기분은 쓸모없는 보이스피싱의 정보 때문에 매우 침체했었으나, 지금 성천바이오 한방으로 말끔하게 좋아졌다.
-성천바이오 14,825주
-매수 8,495 금액 125,938,375
-현재 14,400(+29.73%) 금액 213,480,000
-손익 87,541,625
며칠간 성천바이오의 주가는 계속 상승한 상태로 장 마감을 이어갔었다. 그리고 오늘 제대로 터진 상한가 덕분에 성천바이오의 현재 주당 가격은 14,400.
흐뭇한 표정으로 주식 현황을 바라보던 주혁의 입이 열린다.
“ 얼마나 오를지 기대되네. ”
첫날 장 열린 지 1시간도 안 돼서 곧장 상한가다. 어쩌면 내일도, 다음날도 계속 상한가일지 몰랐다. 흔히들 말하는 2연상, 3연상.
그게 지금 주혁에게 현실로 벌어질지도 모른다.
주혁은 미련 없이 HTS 프로그램을 끄면서, 옆에 놓인 수첩에 단어 하나를 추가한다.
-영화 ‘척살’ (진행 중)
-신약개발 ‘성천바이오’ (진행 중, 공식발표 터짐.)
-탑 여배우 A양, 마약 스캔들 (진행 미정)
이제 성천바이오는 이대로 묻어두다가 타이밍 봐서 팔고, 수첩에서 지워내면 된다. 정리를 마친 주혁은 입가에 미소를 띠면서 주방으로 향했다.
아침부터 이것저것 터지다 보니 왠지 모를 허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냉장고 안에도 찬장에도 먹을 거라곤 즉석밥과 3분 카레가 전부였다.
“ 장을 보든가 해야지. ”
미련 없이 냉장고를 닫은 주혁은 침대에 놓인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아침은 배달로 해결한 모양이다.
그 순간.
♬띠리리 띠리리링 띠리리 띠리리링!!!
강주혁이 배달음식을 시키기 위해 핸드폰을 들어 올리는 순간 또 한 번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울린 터라 주혁이 깜짝 놀라 하마터면 핸드폰을 떨어트릴 뻔했다.
“ 안되지 이게 어떤 핸드폰인데. ”
가까스로 핸드폰을 다시 잡은 주혁은 핸드폰이 표시하는 번호를 확인했다.
-하정훈.
하정훈의 전화였다.
“ 크크. 아주 똥줄이 탔지. ”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주혁이 하정훈의 전화를 받았다.
끝
ⓒ 장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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