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voice phishing, but it's a life reversal RAW novel - Chapter 21
남자가 건물을 다시 나온 건 한참 뒤였다. 들고 들어갔던 흰 봉투 없이 양손 모두 자유로운 상태. 건물을 나오자마자, 남자는 다시금 차에 타고선 어디론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 또 어디가? ”
차 안에서 동태를 살피던 강주혁의 미간에 깊숙한 주름이 진다. 귀찮기는 하나 어쨌거나 지금은 쫓아야 했다. 남자의 차를 따라붙으면서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해본다.
“ 아, 쟤 누구였지. ”
개뿔. 생각이 깊어질수록 기억력이 나락으로 빠진다. 이쪽 업계 사람들만 천명은 넘게 만났을 강주혁이 저런 평범하게 실장이나 팀장같이 생겨먹은 사람을 기억할 리 만무.
“ 쯧! ”
강주혁이 짧게 혀를 찬다. 생각하기를 포기한다는 뜻. 빠른 포기를 선택한 그는 남자를 쫓는 데 집중했다. 대체 어디를 가는 걸까? 강주혁이 따라붙었는지도 모르고 남자의 검은색 세단은 우회전 좌회전을 반복하며 갈 길을 재촉한다.
10분 정도 달렸을까? 이윽고 남자의 세단이 우회전 깜빡이를 켰다. 속도가 천천히 줄어들고, 차단봉이 내려져 있는 건물 주차장으로 차의 앞부분을 밀어 넣는다.
남자의 세단이 멈췄기에, 강주혁은 20m 거리 정도 되는 곳에 차를 정차하고 상황을 지켜본다.
먼저, 주차장 차단봉에 막힌 남자는 전화를 걸면서 차에서 내린다. 그렇게 몇 분 정도 통화를 하는데, 건물에서 검은색 롱패딩을 입은 건장한 남자 2명이 등장해서 남자를 배웅했다.
서로 아는 사이인지 두런두런 인사까지 나눈다.
-찰칵
-찰칵
강주혁은 차를 정차한 순간부터 남자를 찍어내기 바빴다. 건물 주차장에서부터 건장한 남자들, 그래 가드라고 칭하자.
건장한 가드들과 대화하는 모습까지 모두 사진에 담아냈다. 이윽고 편안하게 몇 마디 나누던 남자는 가드들의 도움으로 주차장 차단봉을 넘어 건물 주차장에 주차를 마친다.
건물 주차장에 커다란 벤이 보였다. 흔히 연예인들이 탄다는 그 벤. 검은색 벤과 흰색벤이 나란히 주차돼있고 그 옆으로 남자의 차가 주차된 모습.
주차를 마친 남자는 건장한 가드들의 안내를 받으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빵빵, 빵!
남자가 건물로 들어가는 모습까지 주혁의 핸드폰에 담기는 그 순간에 뒤에서 경적이 크게 울렸다.
-지잉
한두 번 경험해본 게 아닌지, 주혁은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어 미안함을 표현한 뒤, 액셀을 천천히 밟았다. 그리고 주혁의 차가 방금 남자가 들어간 건물 앞을 스치는 순간에.
“ 저건 또 뭐야. ”
건물 입구에 선명하게 박혀있는 상호.
-FNF entertainment.
FNF 엔터테인먼트 건물이었다.
“ 어쩐지 벤이 많더라니. ”
FNF엔터의 건물을 지나고, U턴 구간에서 차를 돌린 주혁이 빅엔터테인먼트로 방향을 잡는다. 이유는 간단했다.
“ 뭐 하는 새끼지 ”
일단 저 남자의 정체를 확인하고 싶었다. 빅엔터에도 들어갔다가, FNF엔터에도 들어갔다. 거기다 류진주의 마약스캔들이 발생하는 루프가든에도 갔었고.
처음엔 솔직히 긴가민가 정도였는데, 지금은 좀 확신에 가까웠다.
“ 분명 관련 있다 저놈. ”
루프가든에 와인을 들고 들어간 것만으로 충분히 의심스러운데, 류진주의 현 소속사와 전 소속사를 모두 들렀다. 저놈을 파면 뭐가 나와도 나오겠지 싶었다.
문제는 강주혁이 저 남자의 이름조차 모른다는 것. 방금 저 남자가 들어갔으니 FNF에 가서 묻는 건 말이 안 되고, 남은 것은 빅엔터였다. 주혁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다시 도착한 빅엔터테인먼트.
이번에는 갓길에 주차하지 않고, 곧바로 빅엔터의 주차장에 당당하게 차를 댄 강주혁은 곧바로 건물에 들어섰다.
건물 크기에 비해 1층 로비는 좁아 보였다. 아, 물론 건물 크기에 비해 작다는 거지 결코 코딱지만하다는 뜻은 아니다.
10평짜리 원룸 4개를 붙여놓은 크기는 돼 보인다. 그 공간에 카페테리아, 대기룸 등 있을 건 다 있었다.
“ 흠. ”
로비를 둘러보던 강주혁을 불러 세운 건, 안내 직원의 물음이었다.
“ 어떻게 오셨나요? ”
등 뒤에서 들려온 청명한 목소리에 강주혁이 몸을 휙 하니 돌린다. 그런 강주혁을 보자마자 사무적인 미소를 짓고 있던 안내 여직원의 눈이 커진다. 아무래도 엔터쪽에서 종사하고 있으니 강주혁을 보자마자 알아본 것.
‘ 아, 마스크. ’
여직원에 반응을 보고 나서야 강주혁이 차에 두고 온 마스크를 떠올렸다.
‘ 쯧. 상관없나? ’
하지만 이젠 상관없었다. 어차피 마스크 쓰고 무언가를 물어보는 게 더 수상하게 보일 게 틀림없다. 생각을 마친 강주혁은 거침없이 안내 직원에게 다가갔다.
워낙에 당당하게 다가오는 바람에 안내 직원의 표정이 미묘하다. 웃는데 찡그리는 표정이랄까? 입은 웃는데 입 위로는 찡그린다는 표현이 적당하겠다.
어느새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로 가까워진 두 사람. 가까운 거리에서 입을 먼저 연 것은 강주혁이었다.
“ 저 죄송한데 뭐 좀 여쭤볼게요. ”
“ 네?! 아, 네 말씀하세요. ”
처음에야 살짝 당황한 듯 보였으나, 안내 직원은 곧장 프로다운 모습으로 응대를 시작했다. 그 모습에 강주혁이 핸드폰을 꺼내 들며 다시 묻는다.
“ 저 혹시 이 사람 여기서 일합니까? ”
남자의 사진 수십 장 중, 가장 선명한 사진을 골라 얼굴만 확대해서 안내 직원에게 내밀었다. 안내 직원은 무턱대고 들이미는 강주혁의 핸드폰에도 당황하지 않고, 미소를 유지한 채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일순 눈빛이 흔들린다. 그 찰나에 흔들림을 파악한 주혁이 다시 물었다.
“ 일합니까? ”
“ 아, 네. 홍보팀장님이시네요. ”
홍보팀장? 안내 직원이 앞에 있음에도 강주혁은 딱히 신경 쓰는 기색 없이 눈알을 굴리며 생각에 빠진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안내 직원이 다시 말을 던진다.
“ 약속은 잡으셨나요? 안내해드릴까요? ”
“ 아, 아니요. 괜찮습니다. 혹시 이분 이름 좀 알 수 있습니까? ”
주혁의 물음에 안내 직원은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아버린다. 왠지 말하기를 꺼리는 분위기였다. 아니면 강주혁이 의심스러울지도 모르지.
“ 죄송한데, 제가 말씀드릴 수는 없을 거 같네요. ”
안내 직원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인사를 90도로 한다. 강주혁은 괜찮다며 손사래를 친다. 중후한 목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 무슨 일이야. ”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강주혁이 고개를 돌렸다. 박찬규. 빅엔터의 사장이 서 있었다. 강주혁도 오래전 박찬규 사장과 몇 번 본적이 있어 얼굴은 얼핏 하는 정도였다.
50대 중후반, 적당한 키에 새치 하나 없는 진갈색 머리, 깔끔한 슈트. 누가 봐도 기업의 사장 같은 모습.
박찬규 사장은 강주혁을 보자마자, 살짝 표정 변화는 있었지만, 딱히 큰 리액션이 나오진 않았다. ‘우와 강주혁이네?’ 같은 느낌보다는 ‘강주혁이 여기 왜 있어?’ 같은.
딱 그 정도의 표정으로 박찬규 사장이 묻는다.
“ 강주혁씨 오랜만이죠? 근데 여긴 왜? ”
섣불리 대답이 나오지 않는 강주혁이었다. 그도 그럴게 아직 확실한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 현재로서 확실하다고 할 수 있는 건 류진주의 마약 스캔들이 터진다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 남자. 아, 지금 안내 직원에게 들어서는 빅엔터테인먼트에 홍보팀장이라는 남자. 그 홍보팀장은 무조건 류진주의 마약스캔들과 관련이 있을 것 같았다. 근데 그 남자가 사건의 주모자인가? 아닐 것이다.
한낱 운반책이나 아니면 뭐 사냥개에 포지션일지도 모를 일. 파헤친다면 지금부터가 시작일테고 얼마나 많은 배후가 있을지 알 수가 없다. 그건 강주혁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당해봤으니까.
혼자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다. 거기다 강주혁은 얼굴이 알려진 공인. 차라리 지금까지 알아낸 것과 강주혁이 보이스피싱을 통해 들은 미래 정보를 적당히 섞어서, 앞에 있는 박찬규 사장에게 던지는 게 더 확실한 해결이 날지도 모른다.
알아낸 것 해봐야 개뿔 없지만, 강주혁은 박찬규 사장을 보며 입을 열었다.
“ 얘기할 시간 좀 되십니까? ”
“ 누구? 나랑? ”
“ 네. ”
“ 허허. 나랑 무슨 얘기를 해요? ”
“ 들어보시면 아시겠죠? ”
둘 간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 긴장감을 먼저 깬 것은 박찬규 사장이었다. 그가 대답 없이 엘리베이터 쪽으로 움직였다. 그러면서.
“ 따라와요. ”
한다. 강주혁은 박찬규 사장을 따라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도착한 사장실.
박찬규 사장은 강주혁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손짓한다. 그러면서 사장실 한쪽에 있는 소형 냉장고에서 캔커피를 꺼내 주혁 앞에 내려놓고는 반대쪽 소파에 가 앉는다.
“ 그래서. 나한테 할 말이 뭔가요? ”
박찬규 사장은 굉장히 젠틀했다. 강주혁은 나름 속으로 감탄하며 답한다.
“ 류진주. 빅엔터 온 지 얼마나 됐습니까? ”
“ 진주는 왜······. 설마? 안돼! 당신은 우리 진주랑 안돼! ”
그 젠틀함을 유지하던 박찬규 사장이 한순간 무너졌다. 강주혁은 그저 이 미친 인간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같은 표정으로 무너진 박찬규 사장을 무심하게 쳐다본다.
그렇게 사무실은 5초간 정적이 흘렀다.
이내 분위기를 파악한 박찬규 사장이 ‘큼, 흠’ 거리더니 다시 말을 잇는다.
“ 우리 진주에 대해서는 왜 묻나? ”
우리 진주? 조금 전 류진주의 이름만 듣고 버럭하는 모습도 그렇고, 류진주를 우리 진주라고 표현하는 것도. 그리고 류진주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짓는 저 걱정이 가득 담긴 표정.
박찬규 사장이 얼마나 류진주를 아끼는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강주혁은 한결 마음이 편해진 상태로 박준규 사장 앞으로 핸드폰을 내밀었다.
“ 이분 아십니까? ”
난데없이 핸드폰을 받아든 박찬규 사장이 화면을 내려다보더니 작게 대답한다.
“ 알지? 우리 홍보팀장인데? 이 친구가 왜요? 이 친구 사진을 왜 찍었지? ”
“ 그분 사진 찍은 곳이 루프가든이라는 파티장인데. 혹시 아십니까? ”
“ 어디? ”
“ 루프가든 ”
루프가든이란 소릴 듣자마자 박찬규 사장이 핸드폰에 찍힌 사진을 빡 집중해서 보기 시작한다. 혼잣말도 내뱉는다.
“ 아니······ 이 친구가 여길 왜? ”
“ 거기 무슨 행사가 예정이 있습니까? ”
“ ······ ”
“ 사장님. ”
“ 어, 어? ”
“ 루프가든에서 앞으로 행사 예정이 있냐구요. ”
“ 아, 아니 며칠 뒤에 진주 생일이라, 겸사겸사 유지석씨 환영회도 한 번에 하려고 예약을······ ”
그렇군. 강주혁이 이제야 대충 이해가 된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하나 확실히 짚고 넘어갈 것도 있다.
“ 그 홍보실장이 루프가든 앞에서 사진이 찍힌 게 사장님이 그렇게 놀랄 정도로 이상한 일입니까? ”
“ 그렇지. 시킨 적이 없으니까. 얘가 거기에 갈 이유가 전혀 없어. ”
“ 그렇군요. 사장님 사진을 옆으로 넘기면서 쭉 한번 보세요. ”
박찬규 사장은 사진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이마 주름이 자글자글 생기기 시작한다.
“ 아니 이 친구 FNF엔터테인먼트는 왜 간 거야? ”
이윽고 마지막 사진까지 확인을 끝낸 박찬규 사장이 강주혁에게 이해를 도와달라는 듯 애원스레 쳐다본다.
그 모습에 강주혁이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물론 진실 80%, 사기 20%를 섞어서.
“ 홍보실장은 두 차례 루프가든을 출입했고, 그중에 한번은 그냥, 한번은 박스에 포장된 와인을 챙겨 들고 올라가더군요. 몇 분 뒤 루프가든에서 나온 다음 온 곳이 이곳 빅엔터테인먼트고, 여기서 나가자마자 FNF로 이동했습니다. ”
그리고 강주혁이 한 박자 쉬었다가 제일 중요한 문제를 던졌다.
“ 그리고 제 생각에는 홍보팀장이 들고 있던 와인에는 마약이 섞여 있었고, 타겟이 아마 류진주가 아닐까 합니다. ”
“ 뭐?! ”
“ 누군가 류진주를 사냥하고 있는 거죠. ”
“ 서, 설마······. ”
강주혁은 자신이 아직 확실히 파악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대답을 아꼈다. 대신.
“ 루프가든의 주인을 족치면 뭐가 나와도 나올 겁니다. ”
루프가든의 주인, 그 주인을 족칠 제안을 했다.
끝
ⓒ 장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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