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voice phishing, but it's a life reversal RAW novel - Chapter 236
늦은 점심 무렵. 보이스타워 3층 미팅룸에선 여전히 제작 회의가 한창이었다. 그런데 미팅룸 안에 강주혁이 안 보였다.
MBS 이동남 국장과 정혜인 둘뿐.
그런 상황에 정혜인이 꼬았던 다리 방향을 바꾸며 비어있는 강주혁의 자리를 쳐다봤고.
“ 밤 새겠네. ”
이동남 국장이 시선은 기획안에 둔 채, 웃으며 답했다.
“ 지금 국내서 제일 바쁘신 분이니까요. ”
“ 아주- 세상일을 혼자 다 하려고. 그나저나 국장님. ”
“ 네? ”
“ 뭐가 먼저예요? 편성. 시트콤? 아침드라마? ”
“ 시트콤이 먼접니다. ”
그때였다.
-끼익.
닫혔던 미팅룸의 문이 열리며 은은한 미소를 지은 강주혁이 들어왔다. 그 모습에 정혜인이 픽 웃었다.
“ 너 그렇게 웃기도 해? 처음 봤네. 뭐가 그렇게 좋아? ”
“ 뭐, 그냥. 진행하는 일이 잘 풀려서. ”
짧게 답한 주혁이 자리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 죄송합니다. 계속하시죠. 어디까지 했죠? ”
“ 캐스팅. ”
“ 아아- 맞아. ”
그때 이동남 국장이 설명을 풀었다.
“ 편성대로 보자면 급한 건 시트콤입니다. 바로 들어가야 됩니다. 아침드라마는 지금 하는 거 ‘현진이네 가족’ 끝나고 들어가는 편성이고요. 오늘 43부 나갔으니까, 적어도 3달 뒤가 되겠습니다. ”
즉, 시트콤부터 결착을 내야 한다는 뜻이었다. 대충 상황을 이해한 주혁의 고개가 정혜인 쪽으로 돌아갔다.
“ 그럼 시트콤부터 간다 쳐도, 문제 될 것 없잖아? 캐스팅에 네가 참석을 못 하니까, 그냥 주요 배역 빼고는 오디션 영상 받아서 진행해. 주·조연은 대본 돌리고. ”
강주혁의 간단한 답변에 이동남 국장도 고개를 끄덕였고.
“ 같은 생각입니다. 주·조연급은 직접 대본을 돌리고, 나머진 오디션 영상 받아서 픽스하는 방향밖엔 없겠죠. ”
국장의 말을 들은 주혁이 정혜인에게 물었다.
“ 맞아요. 그래서. 작가님은 어떤데? 생각하는 배우들 있나? ”
“ 음- ”
강주혁의 물음에 정혜인이 여러 종류의 과자 중 뭘 먹을지 고민하는 얼굴로 팔짱을 꼈다. 그 모습에 주혁이 짧게 말을 붙였다.
“ 뭐가 됐든. 너는 출연 해야 돼. ”
“ 맞아. 나도······ 어?! 나도?!! ”
고뇌에 빠졌던 정혜인이 긴 생머리를 찰랑대며 깜짝 놀랐고, 주혁이 피식했다.
“ 뭘 또 그렇게 놀라. 작가 정혜인은 비밀로 가져가도, 배우 정혜인으로서는 당연히 참여해야지. ”
마케팅으로 보자면 정혜인은 배우로서 이 시트콤에 당연히 참여해야 했다. 가뜩이나 최근 비주류로 밀린 시트콤이기에 초반 관심도는 중요했다.
이 같은 생각은 이동남 국장도 동의하는 듯 보였다.
“ 그······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
사실, 본인이 쓴 작품에 본인이 출연하는 일이 전혀 없는 일은 아니었다. 영화 쪽만 보자면 시나리오를 직접 쓴 감독이 까메오로 출연하기도 하며 독립영화에서는 감독이 직접 주연을 맡은 일도 종종 있다.
물론, 드라마 판에선 보기 드물지만.
어쨌든 정혜인이 펄쩍 뛰었다.
“ 아니!! 나 그럼 글을 언제 쓰라고? ‘없어졌던 남자’도 하라며? 나 말라 죽으라는 거야?! ”
“ ‘없어졌던 남자’요? 그건 무슨. ”
정혜인의 외침에 이동남 국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상황에 주혁이 턱을 쓸었다.
‘ 하긴. 시트콤 대본은 30부 분량이 있다고 했으니, 방영 중에도 집필하긴 해야 될 거야. 시트콤이 잘되면 화 수를 계속 늘려야 할 테니. ’
정혜인의 개인 스케쥴은 최근 확정한 ‘없어졌던 남자’ 출연 말고도 광고라든지, 화보 등 자잘한 것도 있다. 여기에 시트콤 출연과 집필까지 얹으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것이 틀림없었다.
“ 흠. ”
주혁이 짧은 침음을 뱉으며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고, 이동남 국장은 정혜인에게서 상황설명을 듣고 있었다.
“ 상황이 그렇게 됐군요. ”
“ 그렇다니까요!! 나 진짜 죽이려고 그래요? ”
방방 뛰며 외치는 정혜인을 보며 이동남 국장이 ‘하하. 그럴 리가요’ 정도의 말을 뱉으며 현 상황을 되짚었다.
“ 지금까지 나온 대본이 30부. 보통 시트콤 러닝타임이 3~40분. 즉, 한 부를 두 화로 나누게 될 테니, 60부가 있다고 봐도 무방해요. ”
“ 그래 봤자 시트콤은 주 5일 방영이잖아요? 60부면 3달이면 다 털고도 남아요! ”
“ 그······렇죠. ”
상황이 이도 저도 못하게 됐다. 정혜인은 쉬익쉬익거렸고, 이동남 국장은 묘안을 짜내려 머리를 감쌌다.
그 순간.
강주혁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
“ 10분. ”
내내 말없이 머리를 굴리던 주혁이 고개를 들며 짧게 말하자, 정혜인이 눈물점 찍힌 눈을 깜빡이며 되물었고.
“ 10분? 무슨 10분? ”
꼬았던 다리 방향을 바꾸며 주혁이 결론을 내렸다.
“ 시트콤. 10분 편성 내자고. ”
삼성동 사옥으로 이동 중, 강주혁의 차 안.
강주혁이 운전 중에 마침 신호가 걸려, 브레이크를 밟았다. 덕분에 그의 차 안 은은한 배기음만이 들렸다.
“ ······ ”
그 순간에 주혁이 약 1시간 전 이동남 국장, 정혜인과 나눴던 미팅을 떠올리며 혼잣말을 뱉었다.
“ 이례적이긴 하겠지만, 러닝타임 10분이 부담 없이 딱 좋아. 그럼 대본 한 부로 1주일 넘게 소화할 수 있기도 하고. ”
혼잣말을 마친 주혁이 검지로 운전대를 때렸다. 또 무언가 기발한 생각을 떠올리듯.
-톡, 톡, 톡.
운전대를 대략 20번가량 쳤을 때쯤 주혁의 입이 다시 열렸다.
“ 시트콤 전용 너튜브 채널을 따로 파도 재밌겠어. 러닝타임 10분이면 따로 편집 없이 올려도 되니까. 재방송처럼. ”
그때였다.
♬띠리리 띠리리링 띠리리 띠리리링!!
주혁의 핸드폰이 울렸고.
-추민재 부장.
전화는 추민재 부장이었다.
“ 어- 형. ”
“ 사장님 지금 어디? ”
“ 나 지금 회사 복귀 중. ”
“ 아아- 그럼 와서 들을래? ”
“ 아냐. 지금 말해도 돼. ”
때마침 켜진 초록 불에 주혁이 액셀을 밟자, 추민재 부장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 일단, ‘없어졌던 남자’ 리허설 리딩. 일정 확정됐다. ”
“ 언제야. ”
“ 7월 3일 금요일. 아침 10시. ”
오늘은 28일. 정확히 5일 뒤였다.
“ 그래? 알았어. 그날 참석할 인원 추려줘. ”
“ 어어- 그리고. 하나 더. ”
“ 뭔데? ”
“ 그······일전에 사장님이 말한 거 있잖아? 준비하라던 내부파티. ”
“ 아. 그거? ”
공식적인 보이스프로덕션의 제1회 내부파티. 그런데 추민재 부장의 목소리가 어째 조금 작아졌다.
“ 있잖아. 사장님. 흥분하지 말고 들어. 내가 홍보팀장이랑 얘기하면서 진행했는데, 오늘 홍보팀장한테 들어보니까. 이게 좀 이상해졌어. ”
“ 이상해졌다니? ”
곧, 추민재 부장이 어색한 웃음과 함께 대답이 들려왔다.
“ 홍보팀장이 판을 너무 키웠어. ”
한 시간 뒤, 보이스프로덕션 삼성동 사옥.
방금 직원에게 5층 회의실을 안내받은 최상희 감독이 입고 있던 야상재킷을 벗으며 회의실의 문을 열었다.
“ 아. ”
그런데 최상희 감독이 넓은 회의실 내부에 홀로 앉아있는 퍼석한 남자를 보고 눈이 커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 김삼봉 감독······ ”
홀로 앉은 남자가 김삼봉 감독이었기 때문. 고개 숙인 김삼봉 감독은 기다리다 지쳤는지 어쨌는지, 팔짱을 낀 채 졸고 있었다.
인터넷에서나 보던 거장 김삼봉 감독이 졸고 있는 모습에 최상희 감독이 살짝 몸이 굳었다.
그 순간.
“ 안 앉나? ”
김삼봉 감독이 눈을 감은 모습 그대로 짧게 말했다. 덕분에 최상희 감독이 어정쩡하게 몸을 움직였다.
“ 아, 예. ”
-스윽.
그때야 눈을 감고 있던 김삼봉 감독이 고개를 들어 최상희 감독과 눈을 맞췄고.
“ ······ ”
“ ······ ”
약 5초간 최상희 감독의 얼굴을 묵묵히 바라보던 김삼봉 감독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 자네가 애니메이션 감독이겠군. ”
“ 어- 맞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최상흽니다. ”
“ 그래. 김삼봉이네. 해외서 괜찮다면서? ”
“ 예. 그럭저럭 먹고살고 있습니다. ”
“ 음. ”
“ ······ ”
순식간에 대화가 끊겼다.
김삼봉 감독은 다시금 고개를 숙이며 눈을 감았고, 최상희 감독은 침을 삼키며 살짝 불편하게 회의실 내부를 훑었다.
이 같은 내부상황을 기웃거리던 제작1팀 여자 직원과 남자직원이 복도에서 속삭였다.
“ 방금 들어간 남자가 최상희 감독이야? ”
“ 어어- 아까 회의실 안내하면서 봤는데, 생각보다 젊더라. ”
“ 안에 있던 분은 김삼봉 감독님이고? ”
“ 맞아. 김삼봉 감독님은 벌써 한 시간 째 기다리는 중. ”
여자 직원의 대답에 남자직원이 커피 한 모금을 넘기면서 말을 이었다.
“ 그 거장 김삼봉 감독이 우리 회사 회의실에서 졸고 있다니. 나 제작 일하면서 김삼봉 감독 처음 봤다. ”
바로 그때.
“ 야야! 쉿! ”
여자 직원이 무심코 뒤쪽으로 쳐다봤다가, 남자직원의 옆구리를 쳤고.
“ 왜? 뭔데 그- 아. ”
고개를 갸웃한 남자직원도 뒤쪽을 바라봤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고, 허리를 숙였다.
“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
“ 사장님.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
“ 네. ”
강주혁이 미소를 머금은 대답을 하며 직원들을 스쳤다. 큐애니스튜디오의 김진구와 고진아 작가도 함께였다.
5분 뒤, 대회의실 내부.
강주혁이 자리에 앉자마자, 김삼봉 감독에게 깍듯하게 축하를 전했다.
“ ‘도적패’ 편집 끝났다고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좀 쉬셔도 괜찮은데. ”
“ 시간이 아깝잖나. 욕심이 나기도 하고. ”
“ 감사합니다. ”
방금 감사를 받고 작게 고개를 끄덕인 김삼봉 감독의 시선이 잔뜩 얼어있는 고진아 작가에게 박혔다.
“ 자넨가? 작가가. ”
덕분에 단발보단 조금 긴 머리카락을 질끈 묶은 고진아 작가가 움찔했다.
“ ······예?! ”
“ 자네가 이 글을 썼냐고. ”
“ 아! 네! 제가! ”
“ 생각보다 어리군. 그런데도 글은 잘 썼어. ”
“ 감사합···네? ”
생각지도 못한 칭찬에 멍한 표정을 짓는 고진아 작가. 반면, 김진구는 이미 최상희 감독의 손을 붙잡은 채, 찬양하고 있었다.
“ 조, 존경합니다! 감독님! ”
“ 아······예. 고마워요. ”
“ 죄송한데, 회의 끝나면 사진 한 장만. ”
“ 어- 그래요. ”
그런 모습들을 지켜보던 주혁이 슬쩍 웃으며 속으로 읊조렸다.
‘ 이제 주연은 모두 모였어. ’
즉, 이제 애니메이션 ‘폭풍전야’와 영화 ‘폭풍’은 출항하는 일만 남았다. 이어 주혁이 기대감 서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 김삼봉 감독님. 최상희 감독님이 오늘 모여주신 건 이 프로젝트에 동참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
주혁의 물음에 김삼봉 감독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최상희 감독도 마찬가지.
그대로 강주혁의 말이 이어졌다.
“ 감사합니다. 자, 그럼. 시작 전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전 이 ‘폭풍전야’와 ‘폭풍’ 두 작품 모두 해외에 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순간, 김진구가 외쳤고.
“ 예?!! 해외요?!! ”
그러거나 말거나 주혁은 말을 이었다.
“ 대략 ‘폭풍전야’부터 개봉시키고, 후에 ‘폭풍’까지 바로 개봉시킬 계획입니다. ”
한마디로 ‘폭풍전야’가 스크린에서 내려오면 곧바로 ‘폭풍’을 걸겠다는 뜻. 잠시의 텀도 두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곧, 김삼봉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 제작 자체는 같이 들어가는 게 맞겠구만. ”
“ 맞습니다. 다만, 김삼봉 감독님은 이제 영화 ‘도적패’의 제작발표회나 여기저기 마케팅 행사에 참여하셔야 하죠. 거기다 애니메이션 쪽도 제작사나 배급사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니, 전부 쳐낸 뒤면 얼추 제작 시기는 같을 겁니다. ”
그때 최상희 감독이 끼었고.
“ 제작사라면 제 제작팀이 따로 있습니다. 배급사도 해외 배급사는 저랑 전문으로 하는 해외 배급사가 따로 있고요. 국내 배급사만 구하면 될 겁니다. ”
김삼봉 감독도 거들었다.
“ 나도 뭐, 제작발표회만 참석하면 돼. 나머지 행사야 배우들이 주인공이지, 내가 가서 뭐하나. 나도 제작부는 따로 있어. ”
감독들의 대답을 들은 주혁이 미소지었다.
“ 그렇다면 속도가 붙겠군요. ”
이어 강주혁의 손이 잔뜩 얼어붙은 김진구의 어깨에 올려졌다.
“ 그리고 모든 실무진행은 여기 김진구 프로듀서님이 조율하겠습니다. 앞으로 김진구 프로듀서님의 조율 아래, 감독님들, 고진아 작가님까지 서로 소통하면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 자,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김진구가 넙죽 허리를 숙이며 외치자, 김삼봉 감독이 주혁에게 물었다.
“ 그런데 스핀오프로 한 작품. 본편으로 하나. 총 두 작품을 동시에 간다는 소린데.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을 거야. 파이낸싱(투자자를 찾는 일)은? 모험에 가까워서, 투자자들 쉽사리 참여하지 않을 텐데? 투자는 어디서. ”
그러나 주혁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고.
“ 아니요. ”
꽤 가볍게 답했다.
“ 모든 자금은 100% 제가 댑니다. ”
이후, 시간이 빠르게 사라졌다. 일요일이 지나, 월요일의 해가 뜨고, 지고, 뜨고, 지고를 반복했다. 그리고 정확하게 5일 뒤.
7월 3일 금요일의 해가 떴다.
장소는 KBC 드라마국 대회의실.
척 봐도 100명은 거뜬히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마련된 드라마국 대회의실 구석, 8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기자들과 리포터들이 잡담 중이었다.
그중 기자 한 명이 손에 쥔 명단을 보며 옆 기자에게 물었고.
“ 진짜 오늘 이 배우들이 전부 온다는 건가? ”
옆 기자가 검지로 명단을 쓸며 답했다.
“ 다 온다더라. 정진훈, 정혜인, 최류, 김건욱. 이 밑으로 주르륵 싹-다. ”
“ 허- 하정훈도 오는 건가? 까메오라 굳이 참여할 필욘 없잖아. ”
“ 글쎄. 그나저나 대본리딩도 아니고, 리허설 리딩이라니. 듣도 보도 못해봤다. ”
“ 누가 아니래. 그냥 보면 오디션이랑 다를 게 없는데. ”
“ 에이- 아무리 강주혁이 괴짜라도 이만한 배우들 모아놓고, 현장에서 까내는 미친 짓은 안 하겠지. ”
바로 그때.
-덜컥!
닫혔던 대회의실 문이 열리며 KBC 드라마국 국장과 직원들이 뛰어들어왔다. 과자나 음료수를 바리바리 싸 들고.
이어 국장이 직원들에게 외쳤다.
“ 빨리 세팅해!! 다들 곧 도착한다니까! ”
‘없어졌던 남자’ 리허설 리딩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끝
ⓒ 장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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