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voice phishing, but it's a life reversal RAW novel - Chapter 298
늦은 밤. 추워진 날씨 탓에 더블코트를 입은 강주혁이 SBC 방송국의 문을 열었다. 그가 밤 10시가 넘은 시각에 SBC 방송국에 들른 이유는 ‘버스킹’ PD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 밤 10시가 넘었는데도, 사람이 꽤 있네. ”
시간이 늦은 밤인 이유 역시, PD의 요청사항이었다. 어쨌든 늦은 시간임에도 SBC 방송국 로비에는 아직도 사람이 얼추 있었고, 강주혁을 알아보는 인원도 꽤 있었다.
“ 뭔 일이기에 이 시간에. ”
이어 짧게 읊조린 주혁이 엘리베이터로 이동할 때.
“ 사장님! ”
엘리베이터 방향에서 턱이 정사각형인 ‘버스킹’의 윤석현 PD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는 어째선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 네. PD님. 나와계셨네요? ”
“ 예? 아! ”
곧, 자신이 슬리퍼를 신고 있음을 인지한 윤석현 PD가 머리를 슬슬 긁었다.
“ 아, 죄송합니다. 편집실에서 바로 나와서, 차림이. ”
“ 괜찮아요. 차림이 뭐 중요한가요. 그보다. 제가 봐야 할 게 뭡니까? ”
강주혁이 대뜸 묻자, 머리 긁던 PD가 엘리베이터를 가리켰다.
“ 일단, 올라가시죠. ”
잠시 뒤.
윤석현 PD가 안내한 곳은 작은 방이 따닥따닥 붙은 편집실이었다. 그중 문짝에 ‘버스킹’이라 적힌 편집실 문을 연 윤석현 PD가 어색하게 웃었다.
“ 아실지 모르겠지만, 편집실이 보통 더럽습니다. 예능국 편집실은 특히나 더. ”
반면, 주혁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네. 알아요. 본적도 있고. ”
“ 뭐 마실 거라도. ”
“ 아니요. 괜찮습니다. ”
“ 옙! 그럼 들어오세요. ”
윤석현 PD가 당차게 편집실 문을 열었다. 편집실 내부에는 뒤쪽 작은 소파와 그 위에 대충 올려진 작은 담요, 예능 소품들, 구겨진 종이들 등등.
PD의 말대로 상당히 어질러진 편집실이었다.
그런데.
“ 우움- ”
소파에서 여자의 작은 목소리가 세어 나왔다. 살짝 놀란 주혁이 고개를 돌렸다. 곧, 그의 눈에 담요 밖으로 삐져나온, 발톱에 빨간 색깔이 칠해진 것이 돋보이는 여자의 발이 보였다.
그러자 윤석현 PD가 웃었다.
“ 아아- 애가 편집하다가. 하하하. 괜찮습니다. 안 죽었어요. ”
여자의 얼굴은 가려졌으나, 담요 밖으로 튀어나온 갈색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산발인 것을 봐선, 상당히 오랜 시간 잠들어있는 느낌이었고.
“ 사장님. ”
와중에 윤석현 PD가 컴퓨터가 놓인 책상 쪽에서 무언가를 집어, 주혁에게 건넸다.
“ ‘버스킹’ 포스텁니다. 2안까지 좁혔는데, 한번 보세요. ”
-스윽.
기절한 여자를 보다, 고개를 돌린 주혁의 손에 건네진 종이는 포스터였다. 4절 크기의 포스터 두 장. 곧, 주혁이 두 장중 한 장은 옆구리에 끼곤 첫 번째 장을 펼쳤다.
“ 이건. ”
“ 예. 맞습니다. ‘버스킹’ 준비하는 모습이죠. ”
첫 번째 포스터는 파일럿 예능 ‘버스킹’에 출연하는 가수들이 버스킹을 준비하는 컷.
“ 음. ”
포스터를 훑던 주혁이 침음을 뱉음과 함께, 껴놨던 두 번째 포스터를 올렸고, 바로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 당연히 이쪽으로 가야 되지 않나요? ”
“ 그렇죠? 아아- 그래도 혹시나 해서 보여드렸습니다. ”
두 번째 포스터에는 가수들이 본격적으로 버스킹을 진행 중인 컷이었다. 포커스는 가수들에 맞추고, 포커스 바깥으로는 외국인들이 잔뜩 보이는.
누가 봐도 포스터는 이쪽이 나았고.
“ 포스터 결정되면 공식 소개페이지나 너튜브, 티저 등등 전부 그 포스터로 돌리기 때문에, 투자자님께 당연히 픽스를 받을까 해서요. 하하하. ”
“ 헤나씨나 아리씨가 예쁘게 찍혔네요. ”
“ 드론으로 찍은 것도 있는데, 역시 스테디캠이 생동감은 좋아서 그걸로 갔습니다. ”
그런데 말을 마친 윤석현 PD의 눈빛이 뭔가 요상했다. 뭐랄까. 칭찬을 바라는 눈빛이랄까? 곧, 그의 입에서 이유가 뱉어졌다.
“ 저······사장님. ”
“ 예. PD님. ”
“ 그- 혹시. 보이스프로덕션에는 예능 연출은 안 필요하시나 해서요. ”
그의 고백에 주혁이 픽 웃었다.
“ 글쎄요. 요즘 연말이다 뭐다 바빠서. ”
“ 하하하. 그렇죠? 나중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
이어 윤석현 PD가 모니터와 키보드가 놓인 책상에 앉았다. 본격적으로 무언가 보여줄 모양.
-탁, 탁!
그가 뭔가 조작하더니, 모니터에 영상이 떴다. 대충 보니 ‘버스킹’ 편집 전 영상 같았고, 윤석현 PD가 필요한 장면까지 스킵하며 장면을 슉슉 넘겼다.
순간.
“ 아, 여깁니다. 여기서부터 봐주시면 됩니다. ”
그가 멈춘 장면은 목 쪽에 동물타투가 새겨진 외국인 남자가 비추는 장면부터였고, 영상 속 헤나와 서아리는 방금 버스킹이 끝났는지, 외국인들에게 악수하거나 사인, 사진을 찍고 있었다.
“ 외국인들 반응이 좋네요. ”
“ 예! 장난 아니었습니다! 제작진이 투입돼서 말릴 지경이었. ”
그때.
공연이 끝나고 정신없는 영상 속, 동물타투가 새겨진 외국인 남자가 제작진에게 말을 걸었다.
같은 시각.
네이비 야상 재킷을 입은 최명훈 감독이 음식점 룸 안으로 보이는 방안에 홀로 앉아있었다.
“ 후- ”
피곤함과 긴장한 모습이 섞인 최명훈 감독이 앉은 곳은 바로 강주혁이 김재황 사장과 자주 만나는 강남 쪽 횟집이었고.
“ 너무······일찍 왔나. ”
지금 최명훈 감독은 김재황 사장의 독대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이후, 약 5분 뒤.
-드르륵.
내내 침묵하던 룸의 문이 열리며 정장을 풀세트로 입은 김재황 사장이 등장했고.
“ 내가 늦었나? ”
최명훈 감독은 마치 김재황 사장이 군대 선임이라도 된 듯 각 잡힌 목소리로 외쳤다.
“ 아닙니다! 저도 방금 왔습니다!! ”
“ 허허. 그렇게 안 해도 돼요. 연달아 900만을 넘긴 영화를 만든 사람이 그러면 쓰나. ”
“ 가, 감사합니다. ”
“ 편하게 해요. 그러면 내가 더 불편해. 어째 좀 피곤해 보이는데? ”
“ 아. ”
“ 그렇지. 강주혁 그 친구와 일하면 피곤할 만하지. ”
꽤 인자한 웃음을 지은 김재황 사장이 최명훈 감독 반대편에 앉았다.
“ 그래서. 이젠 좀 시간이 되나? ”
“ 예. 영화제도 다 끝났고, ‘간 큰 여자들’ 마케팅 스케쥴도 얼추 끝나서. ”
“ 음? 방송 쪽 연말 시상식은···아, 자네는 상관없나? ”
“ 예. 방송 쪽은 저랑은 전혀. ”
“ 그렇군. ”
곧, 룸에 침묵이 흘렀다. 사실, 대화가 이어지는 것이 더 이상하긴 했다. 둘은 이제 해봐야 두 번째 만남이었으니.
덕분인지 최명훈 감독이 바로 본론을 꺼냈다.
“ 그······혹시, 작성하신 스토리를 제가 읽어봐야. ”
“ 아, 일기 말이지. 참- 민망하군. ”
-스윽.
김재황 사장이 어색한 웃음을 뱉으며 챙겨온 공책 2권을 최명훈 감독에게 내밀었다.
“ 쓴다고 썼는데, 좀 어색한 부분도 있을 거예요. 워낙에 옛날 일이라. ”
“ 괜찮습니다. ”
고개를 끄덕인 최명훈 감독이 두 권의 일기장을 읽기 시작했다.
약 1시간 뒤.
쓰는 건 오래 걸렸지만, 최명훈 감독이 일기를 전부 읽는 것은 금방이었고, 방금 공책을 덮은 최명훈 감독이 읊조렸다.
“ 재욱군에게 이런 스토리가······ ”
말을 마친 최명훈 감독이 엄지로 공책 표지를 닦다가, 밑에서 머리통만 한 다이어리와 볼펜을 올렸다.
“ 먼저, 말씀드리자면. 이 스토리를 영화로 각색하면 당연히 그림은 영화스럽게 뽑힐 겁니다. ”
“ 그렇겠지. ”
“ 미장센. 아, 그러니까 연출적인 부분도 변화가 많을 겁니다. 제가 꼭 이 영화로 헐리웃을 가야 돼서요. ”
“ 그래요. 강사장 그 친구도 그랬지. ”
“ 그러면서도 꽤 사실적으로 표현할 예정입니다. 재벌가 이야기라거나, 반대의 이야기 모두. 현실적이지만 자극적일 겁니다. ”
“ ······음. ”
김재황 사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최명훈 감독이 볼펜을 집어 들며 눈빛이 짐짓 진지하게 변했다. 이어 그의 질문 폭격을 시작으로.
“ 그럼. 이 일기 첫 부분부터 질문드리겠습니다. ”
김재황 사장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될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이 본격적으로 스타트를 끊었다.
한 시간 뒤. 강주혁의 차 안.
그의 목적지는 오피스텔이었다. 고요한 차 안. 주혁은 운전하면서도, 한 시간 전 ‘버스킹’ 편집실에서 윤석현 PD가 보여준 영상을 떠올리고 있었다.
시작은 윤석현 PD부터.
“ 지금 저 외국인. 확인해보니까, 엄청 유명한 노래 커버 너튜버라고 하더라고요. ”
“ 너튜버요? ”
“ 예. 구독자가 무려 2800만이 넘는다고. ”
살짝 놀란 주혁의 시선이 윤석현 PD에서 다시금 모니터에 닿았다. 영상 속 외국인 남자는 제작진에게 다가가 무언가 말을 하고 있었다.
그쯤 윤석현 PD가 다시금 설명을 붙였다.
“ 지금 저 남자가 뭐라고 하는 거냐면요. 무슨 프로냐고 물은 뒤에, 헤나씨나 아리씨와 듀엣을 해보고 싶다고 제안했습니다. ”
“ 듀엣? ”
“ 예. 저 외국인 너튜버를 우리 애들이 알더라고요. 해외서는 꽤 유명한 너튜버랍니다. 해외 유명가수들을 부스로 초대해서, 듀엣도 많이 부르고, 커버도 많이 한다고. ”
“ 그래요? ”
“ 예. ”
주혁은 영상 속 외국인 남자를 유심히 관찰했다. 큰 키에 목 옆쪽에 동물타투가 눈에 띄었다. 그런데 제작진에게 부탁하는 눈빛은 진지했다.
그쯤 윤석현 PD가 재생하던 영상을 멈췄다.
“ 사장님. 여기서 허락이 필요합니다. ”
“ 허락이 필요하다? ”
“ 예. 이 외국인 너튜버가 등장하는 장면을 티저에 잘 말면 꽤 재밌게 연출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
“ 자연스럽게 차후 듀엣 진행이나 커버를 보여줘야 되겠네요. ”
“ 맞습니다. ”
즉, 방송에 이 장면이 나가면 뭐가 됐든 진행이 돼야 했다. 아니면 티저로 시청자들을 속된말로 낚은 게 되니까.
그런데 강주혁의 대답은 꽤 빨랐다.
“ 좋네요. 잘 말아보세요. 최대한 관심을 끌어낼 수 있게. 기대 하겠습니다. ”
여기서 강주혁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끼익.
때마침 신호도 빨간불에 걸렸기에, 주혁이 차를 세웠다. 바로 그때.
-띠링!
그의 핸드폰에 문자가 도착했다. 보낸 이는 윤석현 PD였고.
-사장님! 요청하신 그 외국인 너튜버 정보 보내드립니다! 참고로 이 너튜버 연락처는 이미 헤나씨나 아리씨 매니저에게 전달했습니다.
문자를 확인한 주혁이 피식했다.
“ 이런 것을 기대하고 내보내긴 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물었는데? ”
다음 날 이른 아침. 보이스프로덕션 사장실.
오늘도 역시, 강주혁의 출근은 빨랐다. 그런데 그가 출근해, 코트를 의자에 걸자마자 주혁의 핸드폰에 문자가 도착했다.
-띠링!
곧, 코트를 의자에 걸던 주혁이 속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
-최혁 팀장.
발신자는 VIP픽쳐스의 최혁 팀장이었다.
살짝 이른 아침에 보내온 문자에 주혁이 고개를 갸웃하며 내용을 확인했다.
-사장님! 축하드립니다!! 어제 저녁 부로 ‘간 큰 여자들’이 ‘도적패’ 성적도 넘었습니다!
문자 내용만으로도 최혁 팀장이 지금 얼마나 신나있는지 느껴질 정도였고.
-스윽.
주혁이 문자에 첨부된 사진을 터치했다.
1. 간 큰 여자들/ 개봉일: 11월 12일/ 관객수: 221,537/ 스크린수 : 1098 / 누적관객수: 11,733,911
관객수 1,170만.
영화 ‘도적패’가 관객수 1,150만으로 마무리가 된 것에 비하면 ‘간 큰 여자들’은 개봉 한 달 만에 ‘도적패’를 넘은 것이었다.
이어 관객수를 보던 주혁이 미소지었다.
“ 600만에서 1,170만이라······ ”
‘간 큰 여자들’의 보이스피싱 정보인 600만에서 약 2배가 뛴 성적. 한마디로 결과 자체를 강주혁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스윽.
어쨌든 주혁이 답장을 눌러, ‘팀장님도 고생’까지 치던 순간.
♬띠리리 띠리리링 띠리리 띠리리링!!
그의 핸드폰에서 벨소리를 토해냈다. 강주혁이 화면을 보고 있던지라, 발신자는 바로 확인할 수 있었고.
*070-1004-1009
전화는 보이스피싱이었다.
“ 왔다. ”
주혁은 꽤 기대하고 있었다. 이제 ‘실버’ 단계의 남은 횟수가 한 번밖에 남지 않았었기에.
어쨌든 주혁이 빠르게 전화를 받았다. 곧, 그의 핸드폰에 반가운 여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실버’단계의 주인이신 강주혁님 안녕하세요!] [강주혁님의 유료서비스 ‘실버’의 남은 횟수를 모두 사용하셨습니다.] [유료 서비스인 ‘실버’단계를 통해 인생역전에 더욱 가까워지길 기원합니다! ] [계속 진행을 원하시면 1번을 눌러주세요. ]이어 주혁이 1번을 눌렀고.
-띠익.
보이스피싱에서 키워드가 들려왔다.
[들으실 항목의 키워드를 ‘선택’해주세요! ] [ 1번 ‘심사’, ] [ 다시 듣기는 #버튼을 눌러주세요. ]단출해진 키워드. 심사. 굉장히 익숙한 키워드였다. 주혁은 이미 경험해본지라, 꽤 초연하게 1번 ‘심사’ 키워드를 눌렀다.
[ 탁월한 선택! 강주혁 님이 선택한 키워드는 ‘심사’입니다! ] [ 실버단계의 주인이신 강주혁님 안녕하세요? 다음 단계의 주인이 되기 위해선 소량의 ‘심사’비용을 지불해야 ‘심사’를 진행하실 수 있습니다. ‘심사’를 신청하시겠습니까? 신청하시려면 1번, 신청을 거부하시려면 2번을 눌러주세요.]여기까지 들은 주혁이 읊조렸고.
“ 이번엔 심사비용이 얼마냐? ”
곧바로 1번을 눌렀다.
끝
ⓒ 장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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