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voice phishing, but it's a life reversal RAW novel - Chapter 310
숙소에서 보이스피싱을 받은 주혁이 하나의 키워드를 듣자마자, 읊조렸다.
“ 수표? ”
평소 무료에서 브론즈로 올라갈 때도 그랬고, 브론즈에서 실버단계로 올라갈 때도 심사가 끝나면 나왔던 키워드는 언제나 단계에 관한 키워드였다.
그런데 이번엔 수표라니.
잠시간 고개를 갸웃하던 주혁은 어쨌거나 키워드 1번 ‘수표’를 눌렀다. 그러자 익숙한 버튼음이 들렸고.
-띠익.
텐션높은 여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탁월한 선택! 강주혁 님이 선택한 키워드는 ‘수표’입니다! ] [ 실버단계의 주인이신 강주혁님의 VIP 유료서비스 심사가 방금 모두 완료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강주혁님의 키워드 결과 달성률에 관해, VIP 유료서비스 심사 결과는 합격입니다! 다만, VIP 유료서비스 단계 중 어느 단계의 주인이 되실지는 등급 변경비 100억을 ‘수표’로 지급하신 뒤, 결정될 예정입니다. 자세한 진행 상황은 귀국 후 집 앞 택배를 확인하세요!] [참고로 100억은 꼭 ‘수표’로 준비하셔야 합니다!]-뚝.
이어 자기 할 말만 뱉어낸 텐션 높은 여자 목소리가 끝나자, 역시나 보이스피싱은 뒤끝 없이 끊겼다.
보이스피싱이 끊기자마자, 주혁이 읊조렸다.
“ ······100억. ”
실버단계에선 심사비용 1억, 등급 변경비가 10억이었다. 즉, VIP 유료서비스가 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등급 변경비만 10배 뛰어 100억을 찍었다.
“ 준비 못 할 거야 없지만, 이번에 100억이면 다음은 얼마라는 소리야 대체. ”
새삼 무섭게 치솟는 보이스피싱의 단가에 주혁이 헛웃음을 지었다. 추가로 VIP 유료서비스 단계 중 어느 단계의 주인이 될지도 아직 정확하지 않았다.
지금은 실버단계지만, VIP 유료서비스 단계 중 과연 어느 단계의 주인이 될까?
“ 거기다 분명 귀국이라고 말했어. 얘네 지금 내가 독일에 있는 걸 아는 거지. ”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보이스피싱은 현재 강주혁이 독일 베를린에 있는 것도 아는 느낌이었다. 아니, 확실했다.
뭐가 됐든 답은 하나였다.
“ 뭐, 일단 귀국하자마자 은행부터 가야겠네. ”
100억을 ‘수표’로 준비해야 했다.
한국, 2월 16일 화요일. 영화 ‘폭풍’ 촬영세트장.
영화 ‘폭풍’은 벌써 약 30%의 촬영스케쥴을 쳐낸 상태였다.
이어 시간은 어느새 점심.
방금 씬 82의 촬영을 마치고, 모니터를 확인하던 김삼봉 감독이 대충 40대로 보이는 조감독에게 주름진 입을 열었다.
“ 점심 먹고, 1시간 뒤에 다시 시작하지. ”
“ 옙! ”
여기는 경남 합천. 촬영세트장은 대체로 전쟁 중인 건물을 표현한 듯이 무너져 내리거나 형체가 아예 없어진 느낌이었고, 그런 건물들이 적어도 15채는 보였다.
“ 지금 시간 12시 5분입니다!! 점심 먹고, 정확히 1시 10분까지 다시 모이겠습니다!! 점심 맛있게 드세요!! ”
어쨌든 조감독의 외침에 모인 모두가 김삼봉 감독의 점심시간 콜을 받고 촬영장 외곽, 커다란 5톤 트럭이 서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트럭 옆면에는 길쭉한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영화 ‘폭풍’ 파이팅!/ 보이스프로덕션]5톤 트럭은 보이스프로덕션이 보내온 밥차였다. 밥차에는 이미 뷔페를 연상케 하는 음식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밥차 주변으로 수많은 간이 플라스틱 탁자와 의자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 어우- 맛있겠다! ”
“ 자자! 빨리 와서 줄 서요! 줄!! ”
곧, 스텝들부터 배우들까지 한데 섞여들며 밥차 앞으로 기다란 줄이 형성됐다.
그쯤 밥차 주변에 놓인 탁자와 의자 중, 거의 끝쪽에 자리 잡은 여자 보조출연자 5명이 수다를 시작했다.
“ 부럽다. 부러워. ”
“ 그러게요. 하- 나는 언제 저런 거 받아보나. ”
“ 뭐야? 희정씨 이거 그냥 알바로 나온 거 아니에요? 배우가 목표야? ”
여자 보조출연자 5명은 의상으로 입은 저고리를 여미며 업체에서 받은 김밥이나 샌드위치를 탁자에 올렸다.
“ 네······저 배우 하고 싶은데, 단역도 맨날 떨어져서 보출(보조출연) 나오는 거예요. 열심히는 하는데, 잘 안되네요. ”
“ 그렇지. 뭐, 이 바닥이 쉬운 게 없다곤 하더라. ”
여자 중 대충 20대로 보이는 키 작은 여자가 밥차 앞에서 티격거리는 하정훈과 강하진을 바라봤다.
“ 하- 나도 강주혁 눈에 들고 싶다!! 그거 아세요? 요즘 제가 다니는 연기 아카데미 애들 죄다 강주혁 동선 파악해요. ”
“ 왜요?? ”
“ 혹시나 강주혁 눈에 들까 싶어서. 눈에 들기만 하면 신인이고 뭐고, 바로 뜨니까. ”
그녀의 말에 방금 김밥 꽁다리를 입에 넣은, 머리를 한 줄로 땋은 여자가 밥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하긴. 강하진 쟤도 강주혁이 데려가서 신인여우상에 작년 여우주연상 바로 탔으니까. 근데 강하진은 좀 차갑다고 하던데? ”
머리 땋은 여자가 물꼬를 틀자, 주변에 모인 여자들이 빠르게 탑승했다.
“ 맞아. 아까 누가 인사했는데, 찬바람 불더래요. 예쁘긴 겁나 예쁜데. ”
“ 그냥 말이 없는 거 아닌가? ”
“ 그런가? 잘 모르겠. ”
그 순간.
“ 아!! 밥을 여기서 먹으면 어떡합니까!! 빨리 자리 안 빼요?!! 미쳤나 진짜. ”
보조출연자를 대주는 업체 반장이 앉은 여자들에게 썽을 냈다.
“ 여긴 배우들이나 스텝들이 앉아 먹는 거고!! 님들은 저기!! 저기 건물 옆에 사람들 앉아서 먹는 거 보이죠? 저기서 먹어요! 빨리! ”
어찌나 썽을 내는지, 안 그래도 나온 업체 반장의 배가 출렁였고.
“ 아! 알았어요. 그냥 말로 하면 되지, 왜 화를 내요! ”
“ 맞아! 밥 먹다 얹히겠네. ”
“ 뭐야?! 하- 참나. 어이가 없으려니까. 어디 보출들이 배우들이랑 겸상을. ”
그때 낮은 여자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 저도 여기 껴도 돼요? ”
덕분에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접시에 음식을 담은, 의상으로 해진 저고리와 검은 통치마를 입은 강하진이 멀뚱히 서 있었다.
곧, 업체 반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 아, 아! 우리 보출(보조출연)은 저쪽에서 먹어야. ”
“ 어? 그래요? 그럼 저도 저기 가서 먹을래요. 가요. ”
대뜸 대답한 강하진이 앉은 5명의 여자를 이끌었다. 덕분에 여자들은 얼결에 강하진을 따랐고.
“ 아. 언니. 거기 뭐 묻었어요. ”
“ 네? 아, 어디. ”
“ 거기거기. ”
보조출연자가 모여 밥 먹는 곳까지 걷던 강하진은 옆에 선 여자의 입술에 묻은 김까지 때주기까지 했다.
그렇게 강하진이 보조출연자들과 합석했다.
여기서부터 재밌는 현상이 벌어졌다.
“ 야 너. 거기서 뭐 하냐? ”
“ 밥 먹는데요? ”
“ 그러니까 왜 거기서 먹냐고. ”
“ 그냥 수다 떨고 싶어서? ”
강하진이 합석한 뒤로 하정훈이 합석했고.
“ 어머. 정훈선배 왜 거기서 먹어요? ”
“ 수다 떨려고. ”
“ 진짜? 나도 낄래. ”
“ 먹던지. ”
멀쩡한 식탁과 자리를 놔두고도 영화 ‘폭풍’에 출연하는 주·조연 배우들 전부가 속속 강하진이 앉은 자리에 합석했다.
“ 왜 다 여기서 먹어요? 여기 뭐 있어? ”
“ 세희야. 너도 와서 먹어! ”
멀리서 본다면 소풍 나온 친구들이 바닥에 앉아, 도시락을 먹는 그림이었다.
그 모습을.
“ 허- ”
어느새 점심을 다 먹고 모니터 앞에서 턱을 괴고 있던 김삼봉 감독이 강하진을 보며 픽 웃었다.
“ 확실히 강주혁 애라 그런지, 잘 컸네. 배우는 저런 맛이 있어야 돼. ”
그렇게 약 30분간 이어지던 점심시간은 조감독의 외침에 의해 끝났다.
“ 자!! 10분 뒤 슛 들어가겠습니다!! ”
곧, 보조출연자들과 인사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강하진에게 뒤따르던 하정훈이 대뜸 물었다.
“ 야. 너 설마 이미지 관리하는 거냐? ”
반면, 강하진이 고개를 살짝 갸웃하더니 답했다.
“ 이미지 관리요? 아닌데. 우리 사장님이 보조출연자든 단역이든 뭐든 전부 같은 배우고, 배울 것도 많다고 해서. 그래서 같이 먹었어요. ”
그쯤 강하진의 눈에 통통한 업체 반장이 보였고, 대뜸 강하진이 자박자박 걸어 그의 앞에 서서는 말을 걸었다.
“ 반장님. ”
“ 에? 예?! ”
“ 오늘 저녁도 다 같이 먹었으면 좋겠는데. ‘겸상’해도 돼요? 돼죠? ”
곧, 얼굴이 벌게진 업체 반장이 ‘예예’라는 짧은 대답과 함께 어디론가 도망쳤다. 그 모습에 픽 웃은 하정훈이 강하진의 옆에 다시 섰다.
“ 야야. 다 좋은데 니네 사장 성격 더러운 건 배우지 마라. ”
그러나 이번에도 강하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 우리 사장님 어디가 성격이 더러워요? 좋은데. 난. ”
그런 강하진 옆을 빠르게 스친 조감독이 숨을 헐떡이며 김삼봉 감독 앞에 멈췄고.
“ 감독님! 준비 끝났습니다. ”
“ 그래. ”
짧게 대답한 김삼봉 감독이 커다란 밥차를 보고 있자, 조감독이 씨익 웃었다.
“ 확실히 투자사가 빵빵하니까, 대우가 다릅니다. 오늘 저 밥차 새벽까지 안 빠진답니다. ”
허나, 김삼봉 감독은 묘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 넌 저게 대우가 빵빵 한 거로 보이냐? ”
“ 예? 아, 예. ”
“ 그래? 난 강주혁 그 친구가 ‘영화 빨리 찍어라!’라고 눈치 주는 거로 보이는데. ”
“ 아······ ”
-스윽.
이어 감독 의자에서 일어난 김삼봉 감독이 허허 웃었다.
“ 빨리 찍으라니, 찍어드려야지. 속도 좀 높여보자. ”
이후, 강주혁이 베를린 국제 영화제 일정을 소화하는 동안 국내의 시간은 게눈 감추듯 사라졌다. 그만큼 진행되는 일도 많았다.
먼저, 드라마 ‘없어졌던 남자’.
저번 주 드라마 ‘없어졌던 남자’ 시즌 1 촬영을 모두 마친 김태우 PD는 당연하게도 편집실에 틀어박혔다.
“ 이 컷 밑으로 음악 하나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
영화와는 편집의 느낌이나 진행이 조금 다르겠지만, 편당 80분에 육박하는 드라마가 총 16개.
즉, 영화 16편을 편집하는 것과 같은 작업량.
“ 다른 거. 이 노랜 장면이랑 너무 튄다. ”
하지만 다행히도 촬영과 편집을 번갈아 가며 틈틈이 진행해왔기에 이미 8편의 편집은 끝나 있었고, 현재도 11부의 편집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 여기 폴리(효과) 오디오 이상해. 다시 따자. ”
한마디로 3월 초로 확정된 편성에 맞출 수 있다는 뜻이었고.
“ 그리고 1화랑 2화 다시 좀 보자. 그거 좀 수정해야 돼. ”
강주혁의 특별한 지시를 수행하는 데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이어 20일 토요일에 있을 ‘버스킹’x‘방구석친구들’의 신년 콘서트 역시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 죄송한데, 여기 리프트(무대 밑에서 올라오는 장치) 소리 나요!! 확인 좀 부탁드립니다!! ”
지금은 신년 콘서트 컨셉에 맞춰, 콘서트장인 올림픽 체조 경기장의 리모델링이 한창이었다.
한편, 막장 아침드라마 ‘여자의 복수’.
“ 컷! 좋았는데, 말숙씨. 그 파김치로 머리 때릴 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후려줬으면 좋겠는데! ”
“ 그냥요? ”
“ 네!! 앞에 종훈씨를 그냥 돌로 생각하면서, 그냥 팍!! 되죠?! ”
“ 종훈씨. 미안해서 어떡해요? ”
“ 하하. 그냥 후려주세요. 별수 있나요. PD님이 후리라면 후려야지. ”
강주혁의 초이스가 빛을 발하는 것인지.
“ 그리고 종훈씨도 파김치 맞은 다음에 얼굴에 흘러내린 국물 좀 먹어보면 그림 예쁠 것 같아요! ”
“ 먹어요? 국물을? ”
“ 네. 그러면 막장도도 높이고, 좀 불만 표출하는 그림이 예쁘게 나올 것 같은데. ”
촬영장은 최정아 PD로 인해 그야말로 막장으로 치닫는 중이었다.
“ 아, 예. 그럼 맛있게 먹어보겠습니다! ”
“ 하하하. 종훈씨 국물 좀 남으면 나눠줘! 오늘 점심으로 먹게! ”
“ 옙! 촬영 감독님 좀 이따 나눠 드릴게요! ”
“ 자! 종훈씨 얼굴 좀 닦고 다시 갈게요!! ”
그런데도 막장 아침드라마 ‘여자의 복수’ 촬영장의 분위기는 최고조였다.
며칠 뒤, 19일. 독일 베를린.
시간은 늦은 오후였다. 어느새 10일의 시간이 훌쩍 지나 오늘은 베를린 국제 영화제의 시상식이 있는 날.
“ 와······오프닝 날보다 더 몰렸네. ”
지금 백번 촬영팀의 연출 박덕훈의 말처럼 시상식인 오늘의 레드카펫은 오프닝보다 훨씬 많은 인원들이 몰려 있었다.
그런데 박덕훈의 말을 들은 주혁이 고개를 저었다.
“ 오늘 메인은 레드카펫이 아니라, 시상식장이랑 폐막식 그리고 세레머니하는 공간이라서, 여기 2~3배는 이미 그쪽에 몰렸을 거예요. ”
“ 힉! 진짜요?! 어, 어쨌든 저희는 다시 촬영 때문에 뒤로 빠지겠습니다! ”
‘병맛같은 체험’ 영상 촬영을 지금껏 충실히 이어온 박덕훈이 뒤로 빠지자, 미소짓던 강주혁이 레드카펫 초입에 선 독립감독들의 턱시도를 챙겼다.
“ 시상식 들어가기 전에 한 번 정리하세요. 들어가면 정리할 시간도 없을 겁니다. 황실장님도요. ”
“ 예. ”
“ 예, 옙! ”
“ 아오- 못 받을 거 빤히 아는데, 왜 떨리는지. ”
그쯤 쏟아진 최철수, 류성원 감독들의 감상에 주혁이 픽 웃었다.
“ 글쎄. 혹시 모르죠. 장내가 뒤집힐 결과가 나올지도. ”
바로 그때.
♬띠리리 띠리리링 띠리리 띠리리링!!
턱시도 품속 강주혁의 핸드폰이 울렸고.
-최상희 감독님.
상대는 애니메이션 ‘폭풍전야’의 사령탑을 맡은 최상희 감독이었다. 발신자를 확인한 주혁이 살짝 의아해하며 전화를 받았고.
“ 네. 감독님. ”
“ 베를린 국제 영화제로 바쁘실 텐데, 죄송합니다. 그런데 직접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 ”
이어 최상희 감독의 굵고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
“ ‘폭풍전야’ 개봉일 언제로 잡을까요? 최종 편집은 방금 전부 끝났습니다. ”
끝
ⓒ 장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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