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voice phishing, but it's a life reversal RAW novel - Chapter 313
무지박스 안에는 역시나 반으로 접힌 종이 한 장이 들어있었다.
“ 오랜만에 보네. ”
이미 브론즈, 실버단계에서도 본 적 있는 종이였고, 짧게 읊조린 주혁이 접힌 종이를 펼쳤다.
-해당 목적지로 이동하세요.
-밤 11시 이후, 경기도 오산시······
-100억 수표를 꼭 지참하시기 바랍니다.
종이에 적힌 내용은 꽤 짧았다. 가야 할 주소와 시간 그리고 100억 수표를 준비하라는 문구. 이번에 적힌 주소도 도로명 주소라 어딘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 이번엔 어디이려나······ ”
-스윽.
읊조린 주혁은 보던 종이를 몇 번 더 접어 주머니에 쑤셔 넣었고, 집 현관문을 열었다. 이어 문 앞에 쌓인 택배 박스들을 발로 차 넣으며 덩그러니 놓여있는 캐리어를 끌어온 뒤, 문을 닫았다.
곧, 신발장에 선 주혁이 혼잣말을 뱉었다.
“ 내일 움직여야겠네. ”
아쉽게도 오늘은 일요일. 은행이 문을 열지 않는 날이었다.
몇 시간 뒤, 미국 뉴욕.
한국은 늦은 밤이었지만, 뉴욕은 이른 아침이었다. 이 시각 미국의 중소 영화사 포커스무비 사장실에 외국 여자와 민머리 남자가 마주 앉아 있다.
바로 린다와 칼이었다.
중소 영화사 포커스무비는 2005년에 세워진 이들의 회사였고, 건물 중 한 층만을 쓰는, 영화사 중에서도 꽤 작은 축에 속하는 회사.
사실, 중소보단 소기업에 가까웠다.
주로 영화 배급, 제작 그리고 TV 프로그램 제작을 업으로 하지만, 최근 사장이었던 이안이 죽으면서, 모두 올스톱 된 상태.
이 영화사의 모토는 예술이었다.
지금까지 제작, 배급한 영화를 보면 단연 예술영화가 많았고, 그마저도 최근에는 단편이나 저예산 영화만을 제작했다.
그래도 작은 영화사치곤 실적이 괜찮았다.
제작한 영화 중 히트 친 작품이 몇 있어서, 그 영광으로 지금껏 버티는 중이었으나, 린다의 아버지이자, 사장이었던 이안이 죽으면서 삐걱거리는 중이었다.
어쨌든 린다의 반대편에 앉은 민머리 칼이 물꼬를 텄다.
“ 린다. 결정은 했어? ”
그의 질문에 아버지 자리였던 사장 자리에 앉은 린다가 앞머리마저 꼬불거리는 파마머리를 쓸어넘겼다.
“ 모르겠어요. 너무 벼락같이 나타난 남자라······ ”
말을 마친 린다가 이틀 전 베를린 국제 영화제의 뒤풀이 연회장에서 만난 동양인 남자를 떠올렸다.
시작은 동양인 남자부터였다.
“ 제가 그 얘길 좀 들어봐도 될까요? ”
대뜸 침투한 남자 목소리에 시련에 빠졌었던 린다와 칼의 고개가 빠르게 들렸다. 정면에는 한눈에 봐도 배우상인 길쭉한 동양인 남자와 다부진 남자가 서 있었다.
강주혁과 황실장이었다.
그런 두 남자를 멍청하게 바라보던 린다가 파란 눈에 고인 눈물을 닦으며 입을 열었고.
“ 누구세요? ”
민머리 칼은 린다의 뒤에서 앞으로 이동하며 약간 방어적으로 나왔다. 반면, 강주혁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린다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 아, 죄송해요. 대화를 본의 아니게 들었어요. 저는 한국에서 작은 기획사를 하는 강주혁이라고 해요. ”
린다와 칼에게 차례로 내밀어진 명함. 명함을 보자마자, 칼이 읊조렸다.
“ ······아, 이번 경쟁부문에서 은곰상을 탄 제작사. ”
“ 맞아요. ”
그런데 파마머리 린다는 대뜸 다른 소리를 꺼냈다.
“ 어?! 보이스프로덕션? 당신······혹시! 그 너튜브 영상! 한국 영화제에서 트로피를. ”
“ 네. 던졌습니다. 그게 저예요. ”
강주혁의 대답은 빨랐다. 당연했다. 이번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 와서 너무 많이 들은 소리였기 때문. 어쨌든 간단하게 통성명이 끝난 상황에 주혁이 다시금 얘기를 꺼냈다.
“ 그래서. 제가 얘기를 들어볼 수 있겠어요? ”
잠시 후.
이들은 건물 1층 로비 5인용 소파에 앉았다. 앉은 지는 이미 30분 정도 지나 있었고, 강주혁과 황실장은 린다와 칼의 상황을 모두 들은 뒤였다.
“ 그러니까. ”
이어 린다의 반대편에 앉아, 사정을 모두 들은 주혁이 다리를 꼬며 재차 확인했다.
“ 돌아가신 당신의 아버지 이안의 시나리오를 영화로 만들고 싶으나, 제작비가 없다? ”
사정은 길었으나, 주혁의 짧고 명료한 정리에 민머리 칼이 반질거리는 머리를 문지르며 헛기침했다.
“ 어험! 아예 없는 건 아니고, 그저 영화를 시작하기엔 부족하다 이건데. ”
“ 같은 말이죠? ”
“ ······예. ”
“ 흠. ”
칼에게서 대답을 들은 주혁이 린다에게서 받은 탁자 위, 저들의 명함을 다시 확인했다.
‘ 포커스무비라······확실히 처음 들어봐. ’
어지간한 해외 중대형 영화사·제작사라면 강주혁이 들어보기라도 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 포커스무비라는 영화사 이름은 너무 생소했다.
즉, 영세하다는 뜻.
그때 내내 강주혁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던 린다가 넌지시 말을 꺼냈다.
“ 저기······혹시 제가 당신을 만난 적이 있나요? ”
“ 너튜브 영상에서 절 봤다면서요? ”
“ 아니. 그거 말고. 처음부터 뭔가 낯설지 않은. ”
“ 글쎄요. ”
이상했다. 분명 난생처음 만난 동양인 남자였다. 그런데 어째서 익숙할까? 그렇게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생각에 빠졌던 린다가 대뜸 양손을 부딪쳤다.
“ 아!! ‘헌터맨’!! 당신 ‘헌터맨’에 나오지 않았어요?! ”
“ ······ ”
그녀가 외친 ‘헌터맨’이란 영화는 강주혁의 헐리웃 진출작. 즉,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만났던 헐리웃 배우 크리스 헴톤슨과 같이 작업한 영화였다.
린다가 ‘헌터맨’의 강주혁을 기억해낸 것.
“ 꽤 오래된 영환데. 기억하시네요. ”
“ 맞아! 그때 분명 당신이 맡은 역할이. ”
“ 윌리엄 역. ”
“ 그래. 윌리엄!! ”
흥분한 린다에 비해, 민머리 칼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고, 이런 상황이 익숙한 황실장은 커피를 호로롭 마실뿐이었다.
그쯤 강주혁이 어긋난 주제를 바로잡았다.
“ 어쨌든 린다. 당신이 말한 영화 내용은 K팝을 사랑하는 한국계 소녀가 뉴욕으로 상경해 가수로 성공하는 내용. 맞죠? ”
“ 네? 아! 네. 맞아요. ”
곧, 주혁이 민머리 칼이나 이국적 이목구비의 린다를 번갈아 쳐다보다, 턱을 쓸었다.
‘ 스토리라인은 진부한데, K팝을 사랑하는 한국계 소녀. 이게 흥미로운데? ’
뭔가 계획을 짜듯, 생각을 정리하던 주혁이 린다에게 말을 던졌다.
“ 먼저, 전체 시나리오를 좀 보고 싶은데. 있죠? ”
“ 있어요! ”
“ 내 명함에 메일주소 있으니, 거기로 시나리오를 좀 보내줘요. ”
대답은 칼 쪽에서 나왔다.
“ 보낸다면? ”
이후, 강주혁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답했다.
“ 검토해보고 괜찮으면 영화에 드는 모든 제작비를 제가 댈 수도 있어요. ”
여기서 린다는 다시 사장실. 즉, 공상에서 현실로 돌아왔고, 그녀의 시선이 앞에 놓인 노트북 화면으로 움직였다. 화면에는 강주혁이 영화제에서 트로피를 던지는 너튜브 영상이 띄워져 있었다.
그쯤 린다가 앞에 선 민머리 칼을 올려봤다.
“ 칼. 기억나요? 나 대학생 때 방에 붙어 있던 영화 포스터. 검은색 마스크 쓴 남자가 서 있는. ”
“ 그래. 기억나지. 그 괴팍하게 생긴 마스크 남자. 얼굴 나온 포스터도 있었잖아? ”
“ 맞아요. 그 남자가 ‘헌터맨’에 ‘윌리엄’이었어요. 세상에. 윌리엄을 맡았던 배우를 실제로 만나다니. ”
이어 추억이 떠오른 린다가 꽤 화사한 미소를 띠며 멈췄던 너튜브 영상을 다시 재생시켰다. 영상에선 강주혁이 트로피를 집어 던지고 있었고.
“ 칼. ”
딱 그 장면에서 린다가 결정을 내렸다.
“ 우리 그 남자에게 시나리오 보내봐요. 내 생각엔 우린 지금 그 남자에게 목숨을 걸어야 돼. ”
다음 날 늦은 밤. 한국.
시간은 11시 10분쯤. 오전 중으로 100억이 적힌 수표를 준비한 주혁이 검은색 롱패딩에 모자 그리고 마스크를 쓰곤 현관문을 열었다.
이어 엘리베이터에 탄 그가 읊조렸다.
“ 옛날 생각나네. ”
간만에 검은색 롱패딩을 입어서인지, 몇 년 전 반지하 월세방에 살던 때가 떠오른 주혁은 픽 웃으며 지하주차장에 세워진 차에 올랐다.
-팔락.
타자마자, 그가 보이스피싱에서 받았던 종이를 펼쳤고.
-밤 11시 이후, 경기도 오산시······
종이에 적힌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적었다. 곧, 내비게이션에서 길 안내를 시작한다는 여자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 안내를 따라 주혁의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불빛으로 밝기만 하던 주변에 인적이 드물어졌다. 촘촘히 박혔던 건물도 하나둘 사라지더니, 주변은 이내 풀냄새가 가득한 숲속 풍경으로 바뀌어 있었다. 캄캄했다.
-스윽.
이동하면서도 주혁은 속주머니에 100억짜리 수표가 잘 있는지 확인했다. 100억을 들고 다니려니 영 신경이 쓰여서였다.
그때.
“ 저긴가? ”
내비게이션이 표시하는 3분이라는 남은 시간을 확인한 주혁이 전방을 확인했다. 가로등을 빼면 온통 캄캄했지만, 그마저도 희미한 불빛이었지만, 덕택에 정면 작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은 작은 읍내 느낌의 장소가 주혁의 눈에 보였다.
그쯤.
“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
내비게이션에서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주혁은 안내 멘트를 듣자마자 작은 건물 앞 갓길에 차를 세웠고, 차에서 내려 주변을 확인했다.
“ 뭐야 여기. ”
사람의 냄새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읍내였다. 아니, 죽은 읍내였다. 읍내라고 부르기도 미안할 정도. 대충 작은 건물이 도로 양쪽으로 8채 정도 붙어 있는 모습이었지만, 건물 앞 유리에는 죄다 ‘폐업’, ‘임대’ 같은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 ······ ”
희미한 가로등 불빛은 있었지만, 차 전등이 꺼진다면 칠흑 같은 어둠이 덮칠만한 분위기. 여기서 누군가 갑자기 뛰쳐나와 강주혁을 습격한다 해도 아무도 알아챌 수 없는 곳이었다.
그만큼 스산했다.
날씨도 춥다 보니 등골이 더욱 서늘했고.
-스윽.
거기까지 확인한 주혁이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1시가 조금 안 되는 시간. 당연히 나다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여기서 강주혁이 살짝 혀를 찼다.
“ 어디로 가라는······음? ”
주혁이 혀를 차며 읊조릴 때, 유리문 너머 희미한 불빛을 비추는 건물이 그의 눈에 띄었다. 그 불빛을 잠시간 쳐다보던 주혁이 움직였다. 불빛이 비치는 건물을 가까이서 보니, 시골서 흔히 볼 수 있는 2금융권 은행이었다.
그리고 비추는 불빛은 ATM기의 화면 불빛.
총 4개의 ATM기가 붙어 있었는데, 그중 하나만 켜진 상태였다. 곧, 주혁이 살며시 은행 문을 열었다. 은행 안 내부는 폐업 정리 중인지 어쩐 건지 바닥에 쓰레기나 폐기물이 많았다.
“ 뭐 튀어나오는 거 아니야 이거? ”
은행 내부는 그야말로 ATM기 불빛 말곤 기댈 빛이 없었다. 어쨌든 주혁은 홀로 켜진 ATM기 앞에 섰다.
“ 종이. ”
ATM기 위에 종이가 올려져 있었고, 주혁은 그 종이를 펼쳤다.
-꼭 ATM기를 이용하여 입금 바랍니다.
-민국은행 계좌번호 070-1004-1009
-수표 10,000,000,000원.
-입금 후, 고진 잡화 A-7로 이동할 것.
“ 고진 잡화? ”
종이의 내용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지만, 강주혁은 이내 켜진 ATM기 메뉴 중 ‘입금’을 터치했고, 계좌번호를 적은 뒤, 이어 나온 현금과 수표 버튼 중 수표를 눌렀다.
-달캉!
곧, ATM기가 입을 벌렸다.
거기에 주혁이 100억짜리 수표를 넣었다. 약간 손이 떨리긴 했지만, 어쨌든 해냈다. ATM기는 ‘완료되었습니다’ 문구를 출력한 뒤, 바로 꺼졌다.
ATM기가 꺼지자마자, 주혁은 은행을 뛰쳐나왔다.
-끼익!
살짝 무서웠기 때문. 이어 밖으로 나온 주혁이 읊조렸다.
“ 고진 잡화가 어디······아, 바로 옆이었네. ”
종이에 적힌 고진 잡화라는 곳은 은행의 바로 옆에 붙어 있었다. 고진 잡화 역시 내부는 뼈대인 철제 진열장들 빼곤 아무것도 없었다.
잠시간 유리문을 통해 고진 잡화 내부를 훑던 주혁이 조심스레 문을 열었고.
“ A-7이라는 건 구역이었구나. ”
핸드폰 불빛으로 고진 잡화 천장에 붙은 팻말을 확인한 주혁이 A-7이라고 적힌 줄로 이동했다. 이동하면서도 바닥에는 거치적거리는 비닐이나 쓰레기가 많았다.
이어 A-7 진열장에 도착한 주혁이 텅텅 비어있는 진열장을 쭉 확인했다. 그런데.
“ 저건가? ”
진열장 끝쪽에 종이와 올려진 물건이 보였다. 보자마자 주혁이 빠른 걸음으로 움직여 종이를 먼저 펼쳤고.
-부착하세요.
“ 뭘? ”
이어 물건을 확인했다.
“ ······케이스? ”
물건은 핸드폰 케이스였다. 핸드폰을 처음 사면 들어있는, 카드 하나 넣을 수 있는 싸구려 젤리케이스. 곧, 주혁은 ‘이걸 왜 끼라는 거야’ 정도의 말을 뱉으며 포장된 젤리케이스를 꺼내, 핸드폰에 끼웠다.
그 순간.
♬띠리리 띠리리링 띠리리 띠리리링!!
강주혁이 케이스를 핸드폰에 끼우자마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벨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텅텅 비어있는 곳이라 벨소리가 더욱 크게 느껴졌다.
“ 깜짝이야. ”
워낙에 갑자기 울린 전화라 놀란 주혁이 발신자를 확인했고.
*070-1004-1009
전화는 보이스피싱이었다. 익숙한 발신자를 확인한 주혁이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며칠 전 들어봤던 경쾌한 여자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VIP 유료 서비스인 ‘블랙’단계 주인이 되신 강주혁님 환영합니다.] [강주혁님은 지금 이 순간부터 VIP 유료 서비스인 ‘블랙’단계를 총 20번 이용하게 되십니다!]“ ······블랙?? ”
짧게 읊조린 주혁이 귀에 대고 있던 핸드폰을 뒤집었다. 그런데 어째선지 강주혁이 대뜸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주혁이 방금 핸드폰에 끼운 싸구려 젤리 케이스.
“ 크큭. 아- 미치겠네. ”
그 케이스의 색깔이 검은색이었다.
“ 이래서 블랙? 100억짜리 핸드폰 케이스네 이거. ”
영락없이 보이스피싱에 걸려든 강주혁이었다.
끝
ⓒ 장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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