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voice phishing, but it's a life reversal RAW novel - Chapter 316
정면에 붙은 모니터에서 애니메이션 ‘폭풍전야’가 재생되고 있었다. 간단한 오디오 체크 겸 작품의 후반 작업이 끝나면 늘 해오던 테스트 시사였고.
“ ······ ”
지금 강주혁은 그저 놀라고 있었다.
‘ 퀄리티가 좋다. 아니, 이걸 좋다고 말해도 될 수준인가? ’
애니메이션의 완성도가 너무 높았다. 퀄리티가 높음은 물론이고.
“ 그쪽은 안 돼!! 정민아!! ”
지금 외치는 강하진의 목소리가 삽입된 캐릭터 포함, 애니메이션 내의 캐릭터들 한명 한명 살아 숨 쉬는 듯한, 작품의 생동감이 넘쳤다.
그것뿐인가?
전쟁 씬의 박진감, 필요한 부분에 들어간 3D, 속도감,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흔히 나오는 작붕(작화붕개)없는 깔끔한 작화까지.
‘당연히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유명한 최상희 감독이니까······ 기대는 했지만. ’
솔직히 주혁도 이 정도 퀄리티는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강주혁도 애니메이션에 익숙지 않았지만, 지금 재생되는 ‘폭풍전야’는 누가 봐도 엄지를 치켜세울 만했다.
이어 1시간 뒤.
-탁, 탁!
‘폭풍전야’ 시사 테스트가 끝나고, 김진구 프로듀서가 편집실의 불을 켰다. 그러자 최상희 감독이 검은 뿔테안경을 빼냈다가 다시 쓰며 강주혁에게 물었다.
“ 어떠셨습니까? ”
그의 질문에 파란색 패딩을 입은 김진구 프로듀서 역시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 뭐할까?
다리 꼬고 있던 주혁은 사장으로서, 투자자로서가 아닌, 한 명의 관객으로서 ‘폭풍전야’를 감상했고, 짧은 감상평을 남길 뿐이었다.
“ 대단했습니다. ”
같은 시각, ‘대등한 법조인’ 세트 촬영장.
안숙희 작가의 드라마 ‘대등한 법조인’은 현재 8화 분량의 촬영을 마친 상태였다. 초반에 비해 분명하게 속도를 늦췄다. 이유야 간단했다.
“ 자!! 20분만 쉬었다가, 지금 찍는 씬 다시 가겠습니다!! ”
‘대등한 법조인’은 ‘없어졌던 남자’처럼 사전제작이 아닌, 생라이브 제작이기 때문. 따라서 드라마 ‘대등한 법조인’은 촬영과 시청자 피드백을 보며 대본 수정이 들어가야 하기에 빨리 찍어봐야 의미가 없었다.
즉, 방영분과 여유분 대본은 7~9부 정도가 딱 적당했다.
그쯤.
“ 아, 또 늦지. 또. ”
‘대등한 법조인’의 방영일이 다가옴에 따라, 최근 촬영 현장에 출근하듯, 거의 매일 방문하는 MV e&m의 제작이사 오희연이 세트 촬영장 한쪽에서 시간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흰색 롱패딩을 입은 오희연의 미간이 펴진 것은 그로부터 5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 이사님. ”
그녀의 등 뒤에서 남자 목소리가 침투했다. 덕분에 고개를 빠르게 돌린 제작이사 오희연이 다가오는 남자를 보자마자 외쳤다.
“ 왜 당신은 이렇게 매일 늦어요? 나는 뭐 시간이 남아돌아서 기다리나? ”
“ 미안해요. 차가 막혀서. ”
“ 흥! 막히긴 개뿔. 내가 올 땐 뻥뻥 뚫려 있드만. ”
“ 미안하다고 사과드렸잖아요. ”
검은색 싱글코트 펄럭이며 지금 아이 같은 웃음을 뱉은 남자는 이강수 사장이었다. 어느새 제작이사 오희연의 옆에 선 이강수 사장이 촬영장을 쳐다보며 읊조렸고.
“ 현장에 별문제는 없어요? ”
오희연이 펄쩍 뛰었다.
“ 문제? 문제요? 지금 문제는 ‘없어졌던 남자’를 공격하겠다던 당신이 조용하다는 게 진짜 문제거든요? ”
“ 그래요? 그게 문제였군. ”
장난식으로 받아들이는 이강수 사장이 못 미더웠는지, 오희연이 더욱 썽을 냈다.
“ 뭐야? 내가 지금 당신이랑 장난이나 하자고 여기 나와 있는 줄 알아요? ”
“ 아니요. ”
“ 그런데 왜 그래? 왜 아무 액션이 없냐고요. ”
끝까지 따라붙는 오희연을 쳐다보던 이강수 사장이 피곤한지, 양쪽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 난들 액션을 안 취하고 싶어서 이러고 있겠어요? ······조금 기다려봐요. 확인해야 할 게 있으니까. 그거 확인 안 하면 못 움직여요. ”
“ 하 참! 그렇게 호언장담을 하더니. 내 이럴 줄 알았지! ”
말을 마친 제작이사 오희연이 씩씩거리며 시선을 다시금 촬영장으로 돌렸다. 그 틈에 이강수 사장이 추가로 말을 뱉었다.
“ 그나저나. 보이스프로덕션이 준비하는 극장판 애니메이션에 따라붙는다는 건 어찌 됐어요? ”
“ 내가 당신처럼 느릿느릿 움직이는 줄 알아요? ”
“ 따라붙을 애니메이션. 구했나 보죠? ”
“ 당연하지! 난 강주혁 쪽 개봉 일만 확인하면 끝이에요. ”
“ 그렇군요. ”
이어 이강수의 시선도 ‘대등한 법조인’ 촬영장으로 향했다. 과거 현봉그룹의 박만욱 사장의 애인이었던 탑여배우 이민정이 자리에 앉아 미친 듯이 대사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 쪽에 시선을 둔 이강수 사장이 읊조렸다.
“ 일단. 혹시 모르니, 드라마 전쟁에 더 신경 쓰죠. 뒷구멍으로 공격하기보다 현재는 철저하게 준비해두는 게 좋겠어요. ”
“ 이미 하고 있거든요? KBC 측에 사람도 심어 놨고, 할 수 있는 건 다하고 있어요! ”
제작이사 오희연의 외침을 들은 이강수 사장이 제안 하나를 추가했다.
“ ······개인적으론 ‘대등한 법조인’에 들어간 PPL 50% 이상 좀 빼고 싶은데. 어때요? ”
이강수 사장의 말은 과도한 PPL로 극의 분위기를 해치는 것을 방지하고, 퀄리티를 높여 채널이 돌아가는 것을 방지하고자 뱉은 말이었겠지만, 오희연의 얼굴은 극명하게 구겨졌고.
“ 이 남자가 미쳤나. 그럼 제작사는 뭘 먹고. ”
이강수 사장이 담담하게 그녀의 말을 잘라냈다.
“ 부족한 만큼. 내 돈으로 메꿀 테니까. 빼자고요. PPL. ”
다음 날 아침, 2월 24일 수요일. VIP 픽쳐스.
강주혁이 출근 전 배급사 VIP 픽쳐스를 들렀다. 한 손에 더블코트 든 강주혁이 사장실에 들어오자마자, 자리에 앉았던 회색 정장 오상훈 사장이 벌떡 일어났다.
“ 강주혁 사장님. 기다리고 있었어요. 앉으세요. 혹시 마실 건? ”
“ 커피 한잔 부탁드려도 됩니까? 아침에 커피를 못 마셔서. ”
“ 물론이죠. 사장님이 부탁하면 커피 회사라도 뽑아다 드려야지. 하하하. ”
“ 그래요? 그럼 커피 브랜드 회사 하나 뽑아다 주세요. ”
강주혁의 농담에 오상훈 사장이 흰 머리가 살짝 섞인 머리를 긁으며 커피머신기에 시동을 걸었다.
곧, 굉음과 함께 머신기가 깨어났고.
“ 애니메이션 건입니까? ”
“ 맞아요. 그리고 추가로 하나 더. ”
방금 받은 뜨끈한 커피를 강주혁에게 내밀며 반대편에 앉은 오상훈 사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 하나 더요? ”
“ 네. 일단, 애니메이션부터. ”
“ 예예. 말씀하세요. ”
이어 주혁이 어젯밤 테스트 시사에서 봤던 애니메이션 ‘폭풍전야’를 떠올렸다.
“ 실은 어젯밤 ‘폭풍전야’ 테스트 시사가 있었는데. ”
“ 어이구! 말씀하시지. 그럼 달려갔을 텐데요! ”
“ 늦은 밤에 해서. 하여튼 봤는데요. 대단했습니다. 애니메이션 쪽으로 까막눈인 제가 봐도. ”
강주혁이 호언장담하자, 오상훈 사장이 살짝 풀어진 넥타이를 바로잡으며 답했다.
“ 기대됩니다. 그래서 애니메이션 ‘폭풍전야’의 배급은 저희가 맡아도. ”
“ 네. 해외 쪽 배급은 따로 보고, 국내 배급은 VIP가 맡아주세요. ”
“ 감사합니다! 저희가 애니메이션 경험이 많이 부족하지만,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
오상훈 사장은 이미 강주혁을 마치 신처럼 떠받드는 중이었다. 반면, 주혁은 꼰 다리 방향을 바꾸며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 ‘폭풍전야’의 개봉은 3월 24일 수요일에 할 생각입니다. ”
대충 남은 시간은 3주.
그래서인지, 오상훈 사장이 살짝 눈을 크게 떴다.
“ 그렇게 급하게요? ”
“ 급한 건 아닙니다. 꽤 오랫동안 준비해온 작품이고, 사실 꼭 그때쯤 걸려야 할 이유가 있거든요. ”
“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마케팅 준비하겠습니다. ”
“ 그리고 아마 개봉일이 발표되면 MV e&m 쪽도 비슷하거나 아니면 똑같은 날에 애니메이션 하나를 올릴 겁니다. ”
주혁은 MV e&m의 이름을 아주 가볍게 꺼냈으나, 오상훈 사장은 가볍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 MV e&m이 말입니까?! 이런 미친것들이! 관객을 나눠 먹겠다는 거네요. 그쪽이 사장님을 견제하는 겁니까?! 그렇다면 더더욱 개봉 시기를 늦추는 게. ”
“ 아니요. 그냥 MV e&m 쪽은 무시하시고, 3월 24일 개봉에 맞춰 진행해주세요. MV e&m은 제가 알아서 처리할 거니까. ”
“ 음. 알겠습니다. ”
가까스로 진정한 오상훈 사장의 대답을 들은 주혁이 어느새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커피를 들어 올렸고.
“ 추가로 이번 베를린 국제 영화제서 은곰상을 탄 ‘상품을 소개합니다’ 영화판. 이것도 사장님이 맡아서 진행해주세요. ”
‘상품을 소개합니다’ 영화판이 꺼내지자, 오상훈 사장이 날름 집어먹었다.
“ 그렇죠! 한창 물 들어오는데, 지금 개봉시켜야 반응이 폭발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
“ 네. 그건 은곰상 스토리 추가해서, 마케팅을 벌이고. 음- 그래요. ‘폭풍전야’ 바로 다음 주에 걸죠. 3월 31일에. ”
“ 아, 그럼 ‘폭풍전야’와 개봉일이 비슷하게 겹쳐지는데. ”
“ 그러니까요. ”
이어 강주혁이 픽 웃으며 간단히 답했다.
“ 겹치게 개봉시키자 이겁니다. ”
2시간 뒤, 보이스프로덕션 본사. 삼성동 사옥.
장소는 2층에 있는 대형 연습실. 시간은 아침 11시쯤. 연습실 중앙엔 하나같이 몸에 착 달라붙은 레깅스나 편한 후드정도를 입은 마니또 멤버들이 둥그렇게 앉아, 무릎 껴안고 있었고.
“ 부장님. 사장님은 언제쯤. ”
“ 지금 주차장 도착하셨다고 했으니까, 금방 오실 거예요. ”
셔츠에 네이비 조끼를 입은 김수열 팀장과 버건디 니트를 입은 홍혜수 부장이 앉은 마니또 뒤쪽에 서 있었다.
-스윽.
그쯤, 뒤쪽의 홍혜수 부장과 김수열 팀장의 대화를 얼핏 들은 마니또의 글래머 몸매 서진이 긴 머리를 질끈 묶은 수현에게 작게 말했다.
“ 뭐지? 수현아. 너 최근에 우리 사장님 뵌 적 있어? ”
“ 아니······나 진짜 오랜만에 뵙는 건데. ”
“ 혹시. 해외 진출 못 한다고 말씀하시는 건. ”
이때 마니또의 리더 효진이 검지로 입술을 막았다.
“ 쉿. 오셨어. ”
그와 동시에 연습실의 문이 열렸고, 더블코트의 단추를 풀며 강주혁이 들어왔다.
-뚜벅, 뚜벅.
주혁은 연습실에 들어오자마자, 둥그렇게 앉은 마니또에게 직행했고.
“ 다들 오랜만이죠? 활동하는데, 문제나 불편한 건 없어요? ”
그의 질문에 마니또 멤버 전체가 발딱 일어나며 군인처럼 각 잡힌 대답을 크게 외쳤다.
“ 없습니다!! ”
그 모습에 주혁이 피식할 때쯤, 홍혜수 부장이나 김수열 팀장 역시, 앞으로 나와 인사했다.
“ 어머. 사장님. 코트 예쁘다. 어디 거야? ”
“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
하지만 강주혁이 대뜸 본론을 꺼내 들었다.
“ 마니또 해외 진출 시작점은 콘서트 말고, 음반으로 가자. ”
주혁의 선언에 열중쉬어하고 있는 마니또 멤버들의 눈이 반짝였고, 홍혜수 부장 고개를 끄덕였다.
“ 알았어요. 그럼 먼저, 음반 활동 동선부터. ”
“ 아니. ”
“ 응? ”
“ 음반은 내되, 오프라인 활동은 안 했으면 싶어. ”
“ 예?! ”
마지막 놀란 목소리는 홍혜수 부장이 아닌, 김수열 팀장이었고, 강주혁이 그를 보며 결론을 던졌다.
“ 오프라인 활동 없이, 오직 온라인 활동에만 치중하자는 얘깁니다. ”
“ 그, 그게 무슨. ”
“ 한마디로 케이제이 작곡가님의 노래 3곡과 최화진 작곡가님 노래까지 포함해서 음반을 내되. 너튜브, 기타 영상 플랫폼, SNS 채널, 광고, 마케팅 등 모든 활동은 오직 온라인에서만 진행하자는 겁니다. 거기에 뮤비도 하나의 버전말고, 3~4개 버전을 만들어서 진행해봐요. ”
강주혁의 설명에 가장 빠른 반응을 보인 것은 홍혜수 부장이었다.
“ 그러니까 사장님 말은. 오직 온라인만으로 해외를 공략하자- 이거야? 무슨 생각이 있구나? ”
“ 맞아. 물론, 오프라인 활동이 없는 만큼 온라인에 매일, 매시간, 매분. 끊임없고 공격적인 움직임이 있어야 되고, 그동안 마니또는 공식적인 정규 앨범을 준비하고 있으면 돼. 아무리 생각해봐도 해외에 홍보하기엔 온라인밖에 길이 없어. ”
이어 주혁이 홍혜수 부장과 김수열 팀장을 번갈아 쳐다봤고.
“ 그리고 마니또 멤버들 한명 한명의 캐릭터를 좀 더 확실하게 부각시켰으면 좋겠는데. ”
그가 한가지 지시를 더 추가했다.
“ 대충 지금보다 5배는 더 강렬했으면 싶어. ”
며칠 뒤, 27일 토요일. 늦은 밤.
보이스프로덕션 광주 사옥의 한 편집실. 시간이 벌써 밤 11시가 넘어감에도 문짝에 ‘없어졌던 남자’라 박힌, 메케한 공기가 감도는 편집실 내부는 밝았다.
“ 으윽! ”
그때 수많은 모니터 앞에 앉아있던 김태우 PD가 길게 기지개를 쭉 켰고, 덕분에 입었던 회색 맨투맨이 올라가며 그의 배가 살짝 보였다.
그 상태로 김태우 PD가 신음을 뱉었다.
“ 후- 진짜 뒤지는 거 아닌가 이거. 아! ”
그러다 번뜩 무언가 떠오른 김태우 PD가 고개를 빠르게 뒤쪽으로 휙 돌렸다. 뒤쪽 사람 키만 한 소파에는 안경이 이마까지 올라간 정작가가 담요를 덮고 색색 잠에 빠져 있다.
쥐죽은 듯이 잠든 정작가를 보며 김태우 PD가 미소 지었고.
“ 응원하러 온 건지, 자러 온 건지. ”
혼잣말을 뱉은 그가 정작가의 팔뚝을 흔들었다.
“ 정작가님. 어이! 정작가!! ”
그러자 색색 잠들었던 정작가가 발딱 일어났다. 덕분에 이마에 걸쳐진 동그란 안경이 눈에 안착되며 제자리를 찾았고, 놀란 정작가가 랩 하듯 변명을 뱉었다.
“ 나 안 잤어요! 진짜! 저 밑에 뭐가 떨어져 있길래 뭔가 확인해 보려고. ”
“ 끝났어요. ”
“ 진짜라고요! 진짜 안잤······예? 방금 뭐라고? ”
정작가가 입 주변 침을 닦으며 되묻자, 김태우 PD가 정작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답했다.
“ ‘없어졌던 남자’ 시즌1 편집. 다 했다고. ”
끝
ⓒ 장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