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voice phishing, but it's a life reversal RAW novel - Chapter 33
아침부터 강주혁이 사무실(보이스프로덕션)의 문을 열었다. 아직은 밖이 어두침침했기에 사무실의 분위기는 을씨년스럽다.
“ 후- ”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주혁이 옅은 한숨을 뱉는다.
-스윽
그 표정으로 주혁이 품속에서 수첩을 꺼내, 영화 척살을 제외한 미래정보를 곱씹는다.
-홍경연 미투 운동(진행 중)
-다큐 독립영화, 내 어머니 박점례 (진행중)
-한때 떠들썩했던 미투 운동. 신인 여배우의 폭로로 인해 다시 재점화. 원로배우 홍경연에게 연습생 시절 ‘3년’간 성희롱을 심하게 당했다고 발표. 이를 시작으로 많은 유명 원로배우들의 악행이 줄줄이 밝혀짐.
-다큐 독립영화로서 312만이라는 이례적인 관객 수를 동원한 영화 내 어머니 박점례. ‘할머니’역을 맡은 김점숙씨가 영화로 벌어들인 수익 전부를 결식아동을 위해 기부.
“ 일단 핵심은 저 신인 여배운데. ”
보나 마나 이 모든 일을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미투를 폭로하는 신인 여배우. 하지만 정보가 부족하기에 당장 누군지 알 수가 없다.
“ 가정을 해보자. ”
강주혁이 2가지의 미래정보로 스토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 자신을 괴롭히던 홍경연이 다큐 독립영화를 찍고, 그 영화가 잘돼서 복귀각이 잡히니까, 신인 여배우가 억울함에 3년간 성희롱당한 것을 폭로. 그래서 미투 운동이 재점화 된다? ”
물론, 보이스피싱에서는 미투 운동에 관한 미래정보를 먼저 알려줬고, 독립영화에 대한 정보를 뒤에 알려줬지만, 현실에서 발생하는 순서는 충분히 뒤바꿀 수 있다.
보이스피싱은 순전히 강주혁이 선택하는 키워드에 따라 미래정보를 알려줄 뿐이니까.
상황이 변했다. 조용히 존버타면서 홍경연의 추락을 기다리기엔 위험성이 너무 크다. 강주혁이 직접 움직여야 했다.
-끼익!
마음을 굳힌 강주혁이 자세를 바로 하며 노트북을 켠다. 기사를 확인할 생각이었다. 최근 것은 빼고, 2010년부터 작년까지.
확실히 영화판에서 잔뼈가 굵은 인간이라 기사는 홍수처럼 쏟아진다. 주혁은 천천히 1페이지부터 기사 제목을 읽어가며 넘어갔다.
1페이지, 2페이지, 3페이지, 이어서 4페이지.
별다른 게 없다.
기사를 보던 주혁이 짧게 혀를 차며 다음 페이지로 넘어간다.
5페이지, 6페이지······11페이지, 12페이지.
멈칫.
강주혁이 12페이지쯤 손이 멈춘다.
“ 허 ”
12페이지에 걸려있는 기사 제목을 본 주혁이 헛웃음을 뱉어낸다.
『MV e&m의 신생 매니지먼트를 살려라! 배우 홍경연부터 시작.』
『홍경연, MV e&m으로 이적.』
『MV e&m의 신생 매니지먼트로 이적한 홍경연 왜?, 알고 보니 부사장이 동생. 』
『MV e&m 부사장 홍필수, 배우 홍경연의 동생? 금수저 집안.』
“ 와. ”
짧은 탄성을 뱉는 강주혁.
“ 어쩐지 겁나 거드름을 피우더라니. ”
이런 든든한 뒷배가 있을 줄이야. 순간 주혁은 MV e&m과 미팅을 했을 때를 떠올린다. 어째서 그 미팅 자리에서 왕처럼 행동했는지, 왜 그렇게 여유만만이었는지가 단박에 이해가 갔다.
MV e&m의 부사장이 동생. MV e&m이 대배우 홍경연을 위해 투자까지 하며 복귀를 밀었던 게, 순전히 배우 한 명의 신분세탁이 아니라, 부사장 가족의 신분세탁을 하기 위함이었다.
“ 가만히 있었으면 MV e&m에 아주 박살이 났겠네. ”
그리고 그 순간.
♬띠리리 띠리리링 띠리리 띠리리링!!!
♬띠리리 띠리리링 띠리리 띠리리링!!!
주혁이 말이 끝내자마자 책상에 올려둔 전화가 울렸다.
*070-1004-1009
♬띠리리 띠리리링 띠리리 띠리리링!!!
♬띠리리 띠리리링 띠리리 띠리리링!!!
보이스피싱. 강주혁이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브론즈’단계의 주인이신 강주혁님 안녕하세요!] [강주혁님의 유료 서비스 ‘브론즈’의 남은 횟수는 총 19번입니다.] [‘유료 서비스’를 경험하며 인생역전에 더욱 가까워지길 기원합니다! ] [계속 진행을 원하시면 1번을 눌러주세요. ]곧바로 1번을 눌렀고.
-띠익
[들으실 항목의 키워드를 ‘선택’해주세요! ] [ 1번 ‘J’, 2번 ‘28’, 3번 ‘저녁 8시’, 4번 ‘새벽 5시’, 5번······ ] [ 다시 듣기는 #버튼을 눌러주세요. ]여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키워드들을 들은 주혁은 순간 고민한다.
그러다 시간 키워드들을 빨리 바꾸자는 생각에 4번을 누른다.
-띠익
[ 탁월한 선택! 강주혁 님이 선택한 키워드는 ‘새벽 5시’입니다! ] [ 강하영이 ‘새벽 5시’경 사망한 채로 가족들에게 발견됩니다. 가족들은 강하영이 미투 폭로 이후 심적으로 매우 고통받는 상태였으며 홍경연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원한다 말합니다. ]-뚝!
전화가 끊기자마자 강주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짧게 읊조린다.
“ 강하영. ”
막혔던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잠시간 핸드폰을 들고 있던 강주혁이 세상 빠른 몸짓으로 검색창에 강하영을 검색한다.
검색결과는 빨랐다. 가장 먼저 프로필이 눈에 띄었다. 사진은 걸려있지 않았고, 그저 이름과 기초적인 정보만이 나열돼있다.
“ 최근엔 쭉 쉬었네. ”
최근 작품은 없는 상태. 데뷔 자체가 얼마 되지 않았고, 대충 작년쯤 했나 싶었다. 주혁은 빠르게 프로필을 확인했다.
그리고 프로필 중간쯤.
-소속사 : FNF 엔터테인먼트
“ FNF? ”
잠시 잊고 지냈던 FNF 엔터테인먼트가 튀어나왔다. 강하영의 프로필을 보며 머리를 굴리던 주혁이 이내 핸드폰을 집어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뚜루~뚜루~ 뚝
신호는 두 번 만에 끊겼다.
“ 선배님? ”
“ 어. 류진주. 통화돼? ”
“ 아, 네? 어. 네네. ”
류진주가 살짝 놀란 말투로 답했다. 놀랄 만도 했다. 강주혁이 류진주에게 직접 전화한 건 처음이었으니까.
“ 너 혹시 강하영이라는 친구 알아? FNF에 있던데. ”
물어보면서도 강주혁은 살짝 긴장한다. 오랫동안 FNF에 몸담았던 류진주가 강하영을 모르면 일이 좀 귀찮아진다. 일일이 찾아야 하니까. 하지만.
“ 강하영? 하영이는 왜요? ”
다행히 류진주는 강하영을 아는 듯 보였고.
“ 아, 걔 번호 좀······아니다. 너 오늘 내 사무실 좀 올 수 있냐? 급한 일이다. ”
“ 네?! 지금요? 아. ”
고민하는지 어쨌는지 몇 초간 부스럭 소리가 들리더니 류진주가 답한다.
“ 주소, 주소 찍어주세요. 지금 바로 가요? ”
“ 어? 어어. 바로 오면 고맙긴 한데. 스케쥴 없어?”
“ 오늘 없어요. 쉬는 날. 톡으로 주소 지금 보내주세요. ”
-뚝!
그러더니 류진주가 전화를 끊어버린다.
“ 뭐지. ”
뭐가 됐든 강주혁은 류진주에게 사무실 주소를 보냈다. 류진주를 부른 이유는 간단했다.
“ 아무래도 같은 여자가 편하겠지. ”
만약 강하영을 만난다 해도, 강하영이 매우 방어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 거기다 강주혁을 믿어줄 가능성도 적었고.
하지만 류진주라면 같은 여자라 마음도 편할 테고 안면도 있으니 일이 한층 편하게 흘러갈 것이다.
류진주를 기다리는 동안 강주혁은 방금 보이스피싱에서 들은 키워드들과 강하영에 대한 미래정보를 메모했다.
1시간 30분쯤 지났을까? 류진주가 주혁의 사무실을 열었다. 통 넓은 후드에 모자, 마스크, 거기다 알이 큰 안경까지.
잠시 그녀를 쳐다보던 주혁이 무심하게 소파에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꾸물꾸물 소파에 앉은 류진주에게 주혁은 녹차 한잔을 건네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 홍경연 그 아저씨 아무래도 여배우들 건들고 있는 것 같아. 그것도 신인들만. ”
첫마디에 물꼬를 튼 주혁은 적당히 류진주가 이해할 수 있는 정도까지만 걸러서 말했다. 홍경연과 자신의 관계, 척살과 MV e&m의 상태, 해서 홍경연의 뒷조사를 했고 성희롱을 일삼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 그 과정에서 강하영을 알았다는 것까지.
물론, 살짝 거짓말을 붙였지만 상관없겠지.
“ 개새끼. ”
조용히 강주혁의 얘기를 듣던 류진주 반응은 쌈박했다.
“ 변태 새끼. 그럼 그 새끼 어떡하실건데요? ”
“ 매장 시켜야지. ”
“ 당한 게 하영이 혼자······ 아니 그런데 선배님은 어떻게 아셨어요? 저번에 저도······ ”
“ 뭐. 제보받는 곳이 있어. 여튼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 강하영 잘 알아? ”
“ ······알긴 알아요.”
“ 일단 불러. ”
강하영은 미투 폭로 이후 사망한다. 심적인 고통을 받았다고도 했고, 아마 일이 틀어지거나 그랬겠지. 보이스피싱에서는 강하영이 3년간 성희롱을 당했다고 발표한다 했지, 홍경연이 망했다는 말은 없었다.
힘이 없어서.
강하영은 무명에 가까운 신인 여배우. 그녀에게 든든한 뒷배가 있을 리가 없으니까.
사건을 발표했더라도 금방 묻혔을지 모른다. 심적인 고통, 우울증, 큰 결심을 했는데도 그 결과가 좋지 못했고, 나락으로 빠지는 게 홍경연이 아닌 자신이라는 것을 비관한 자살.
강주혁은 그 기분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 일단, 가볍게 할 말이 있다는 식으로 부르고, 너가 한번 얘기해봐. 나는 나가 있을 테니까. 얘기 나눌 때 힘이 돼준다는 말도 꼭하고. ”
고개를 끄덕이는 류진주는 이미 강하영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매우 의욕적인 모습. 아까부터 봤는데, 약간 넘치게 반응한다.
‘ 얘도 뭔가 있나. ’
“ 응. 하영아. 나야. ”
강주혁이 살짝 의문을 가질 때, 류진주와 강하영의 통화가 시작됐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
류진주가 강하영에게 주소를 알려준 뒤,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 강주혁은 류진주가 은근 배고프다 말하는 통에 점심을 같이해야 했다.
강하영이 사무실의 문을 노크한 것은 점심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문을 연 것은 강주혁.
-끼익
문을 열자, 강하영으로 보이는 여자가 강주혁을 보자마자 헉 소리를 낸다. 당황하는 기색이 확실하게 보였다. 강하영은 단발머리에 검은색 모자를 쓰고, 전체적으로 가벼운 외출복을 입었다.
그런 강하영이 강주혁을 보고 얼어붙었다. 당연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었을 테니까. 강주혁은 슬쩍 비켜나며 지나갈 공간을 만들어준다.
“ 류진주. 안에 있어요. ”
“ 네, 네?! 아. ”
우물쭈물 강하영이 문을 통과하자, 강주혁은 사무실을 나와 문을 닫았다. 이제부터는 밖에서 시간을 때워야 했다.
얼마 뒤.
류진주에게서 톡이 왔다.
-선배님. 얘기 끝났어요.
톡을 받자마자 주변을 배회하던 강주혁이 사무실로 발길을 돌린다.
사무실 분위기는 우중충했다. 강하영은 울고 있었고, 류진주는 그녀를 토닥여주고 있는 중. 그 모습에 강주혁이 순간 멈칫했지만, 류진주가 고개를 살짝 끄덕거렸기에 어렵사리 반대쪽 소파에 자리했다.
강주혁이 자리에 앉자, 울고있는 강하영을 대신해 류진주가 상황 설명을 대신한다.
“ 시작은 아카데미서부터였나 봐요. ”
강하영을 토닥이며 말을 잇는 류진주의 설명은 이랬다. 연기를 배우기 위해 강하영은 3년 전 홍경연이 운영하는 아카데미에 등록했고, 악연이 거기서부터 시작됐다는 것.
그때부터 최근 아카데미를 나올 때까지도 심하게 성희롱을 당해왔다고. 연기를 알려준다는 명목으로 몸을 만지는 것 이외도, 문자, 전화 등 수많은 방법으로 그녀를 괴롭혔다고 한다. 얘기를 끝낸 류진주가 마무리 멘트를 쳤다.
“ 진짜 개새끼. ”
가만히 강하영을 지켜보던 강주혁이 작게 말을 걸었다.
“ 강하영씨. ”
“ ······네. ”
강하영은 대화할 수 있는 정도로 진정이 된 상태였다.
“ 힘드셨을 텐데. 어떻게 참으셨어요. ”
강하영이 잠시 침묵한다. 하지만 이내.
“ 협박······ 당했어요. 앞으로 다시는 연기 못 할 거라고. 정말 터트리고 싶었는데, 세상 사람들에게 전부 터놓고 싶었는데······ 너무 무서웠어요. ”
“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홍경연 아주 나락으로, 다시는 얼굴 들고 다니지 못하게 해드릴게요. 한번 힘내주실 수 있겠어요? ”
강하영은 이미 류진주에게 비슷한 말을 들었는지 놀라는 기색 없이 눈물을 닦아내며 자세를 바로 한다. 코도 한번 훌쩍이면서.
“ 저 시간을 좀 주세요. 준비할 게 있어요. ”
그녀의 눈빛에는 어느새 의지가 가득해졌다.
무비트리 오디션 당일.
강주혁이 홍경연의 미투 사건을 파헤치고 있는 동안에 무비트리의 송사장도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가장 급한 것이 배우확정.
원래 같으면 조단역까지는 소속사에서 프로필을 받고, 얼추 연기된다 싶으면 감독과 얘기해서 픽스한다. 왜냐? 소속사에서 배우를 데리고 왔다는 건 얼추 기본기가 잡혀있다는 뜻과 같았다.
물론, 개중에 개판인 배우도 있긴 있지만.
시간이 돈인 바닥이다. 조단역까지 세세하게 캐스팅할 여력이 안 된다. 하지만 영화 척살은 메인투자자 겸 제작자로 참여한 강주혁이 핸들링을 하고 있다.
MV e&m까지 척진 마당에 강주혁까지 빠져나가면 척살은 엎어진다. 물론 그런 일이 없을 거란 걸 알지만, 누구보다 현 상황을 확실히 파악하고 있는 송사장이었다.
“ 시작하자. ”
송사장이 정팀장에게 오디션 시작을 알렸다. 이미 무명배우들의 프로필을 받아 일차적으로 걸러낸 상태. 현재는 1차 프로필에서 통과한 무명배우들의 2차 오디션.
그런데도 꽤 많은 인원이 남았다.
오늘 결정할 배역은 자잘한 조단역들과 비중이 적은 조연급.
“ 들어오시라고 해. ”
송사장이 캐스팅팀 직원에게 지시를 내렸다. 오디션을 진행하는 인원은 송사장, 정팀장, 박피디 그리고 최명훈 감독.
자신이 연출할 영화에 연기할 배우를 처음 보는 자리인 만큼 최명훈 감독의 눈빛이 이글이글 불탄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면서 5명의 인원이 뭉텅이로 들어온다. 진행직원이 각자 종이 한 장씩을 나눠준다.
오늘 오디션 종목은 지정연기.
종이에 적혀진 대사를 각자 역량에 맞게 치면 된다.
“ 최철진 씨부터 시작하세요. ”
시작은 가장 왼쪽부터.
“ 네놈이 결국 모든 것을 망쳤어! 너 이 개자식! 눈빛부터 쓰레기······ ”
“ 네 잘 봤습니다. 밖에서 꼭 차비 수령 하세요.”
10초 컷.
아쉽지만 사람이 너무 많았다. 첫 줄부터 배역과 동떨어진 연기를 펼친다면 빠르게 치고 넘어가야 했다.
대사 한 줄의 무거움.
그 무거움이 가장 절실하게 느껴지는 곳이 바로 오디션장이다.
그리고 차비 지급은 강주혁의 요청이었다. 어떤 직업이든 배고픈 법이지만, 배우로서 주혁은 그들을 존중하고 싶었다. 적은 돈이지만 척살에 대해 좋은 기억을 박아두고 싶다고나 할까?
“ 잘 봤습니다. ”
오디션은 빠르게 진행된다.
“ 네 잘 봤습니다. ”
한 팀이 끝나면 다음팀. 또 다음팀.
시간이 빠르게 흘렀고, 사람들도 분주하게 움직인다. 송사장을 비롯한 심사위원들은 각자 괜찮았던 배우의 프로필에 동그라미를 그린다. 괜찮았다는 표식.
“ 다음팀이 마지막인가? ”
“ 네. ”
“ 후- 빨리 진행하자 그럼. ”
송사장이 한숨을 크게 내뱉으며 직원을 재촉했다. 이윽고.
“ 끝났지? ”
“ 예! 끝났습니다. ”
복도에서 진행을 맡고 있던 직원이 소리친다. 드디어 마지막 팀까지 모두 끝났다.
그 소리에 수십 시간을 달려온 송사장과 최명훈 감독, 정팀장, 박피디가 짠 듯이 모두 기지개를 켠다. 송사장이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 자자 다음다음. ”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모두의 의견을 취합하여 최종적으로 배우를 정해야 했다. 송사장이 먼저 움직였고, 그를 따라 나머지 인원들이 줄줄이 회의실로 모여든다.
탈락자는 뺀 각자 합격자들의 프로필을 모두 모아 겹치는 프로필이 있는지, 또는 겹치지 않은 배우가 있다면 그 이유 등을 설명하며 밤을 지새운다.
오랜 상의 끝에 조단역 포함 최종 합격 6명이 나왔다. 그때 6명의 프로필을 보던 최명훈 감독이 모두에게 묻는다.
“ 다 검은색 펜으로 통일한 거 아닙니까? 이거 빨간색 동그라미는 누가? ”
대답은 캐스팅팀 정팀장이 한다.
“ 강주혁씨가 연극 쪽 돌면서 뽑은 배우들은 따로 제가 체크 해둔 겁니다. ”
“ 진짜요? ”
대답을 들은 최명훈 감독의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추가한다.
“ 이번 오디션에 몇 명이나 왔는데요? ”
“ 6명이요. ”
최명훈 감독이 빨간색 동그라미가 쳐진 프로필을 확인한다. 그러다 문득.
“ 지금 뽑힌 배우 프로필에 전부 빨간색 동그라미가 있네요? ”
“ 네. 그렇더라구요. ”
합격 프로필은 총 6개. 그 프로필에는 모두 빨간색 동그라미가 있었다. 프로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최명훈 감독이 다시 묻는다.
“ 그러니까 강주혁씨가 뽑은 배우가 전부 합격했다는 겁니까? 나는 누군지도 몰랐는데? ”
이번에도 대답은 정팀장이 한다.
“ 그러니까요. 그렇더라구요. ”
결과적으로 이번 오디션에는 서로 짠 듯, 강주혁이 소극장 쪽에서 뽑은 배우들이 모두 합격했다. 사정을 들은 최명훈 감독은 살짝 멍하니 합격자들의 프로필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후 무비트리 일정은 오디션의 연속이었다. 조단역과 다르게 조연은 짧으면 3차, 길면 5차까지도 오디션을 진행할 수 있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 잘 봤습니다. ”
이윽고 마지막 배우의 연기가 끝나면서 이어진 오디션이 끝났고, 모두 기다렸다는 듯이 한자리에 모여든다. 원래 같으면 3차 오디션까지 진행했어야 할 스케쥴이었지만 이번에는.
“ 이건 뭐 더 보고 할 것도 없겠네. ”
합격자 대부분 강주혁이 고른 배우들이었고, 나머지는 수준이 한참 미달이었다. 결국, 조단역부터 조연까지 강주혁이 캐스팅한 무명배우들이 확정됐다.
만약 강주혁이 소극장을 돌며 캐스팅 작업을 하지 않았다면 몇 번의 오디션을 통해 고르고 고른다고 많은 시간을 허비했겠지.
송사장이 자랑스럽게 말을 던진다.
“ 역시 투자자님. 감이 아직 살아있네. ”
“ 그러게요. 배우를 오래 해서 그런가? 보는 눈이 확실하신 거 같아요. ”
“ 주혁씨가 보낸 배우들만 뭔가 급이 다르니까 오디션 보기는 편하네요. ”
최명훈 감독부터 시작해서 모두 송사장의 말을 거들었다.
이제 남은 배역은 하나. ‘소희’
‘소희’역을 빼곤 배우 세팅이 완료됐기에 무비트리는 속도를 높였다. 먼저, 제작팀은 각종 계약을 진행했고, 연출팀과 협조하여 세부적인 예산을 책정했다.
연출팀은 감독이 짠 1차 콘티를 가지고 세부 디테일이나 기술적 자문 등을 받아 최종 콘티를 만들기 위해 박차를 가했다.
기본적으로 연출팀과 제작팀은 서로 합심해야 하기에 지속적인 제작 회의를 통해 기초단계를 탄탄하게 만들어간다.
이즈음 됐을 때, 강하영의 연락을 기다리던 주혁은 배급사도 생각해야 했다.
슬슬 제작발표 시기였다. 초반 보도자료를 뿌려 잠재적 관객을 확보해야 했다.
이후 지속적인 광고와 행사 등을 통해 영화 개봉까지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내야 하는데 이게 배급사가 초반에 하는 일.
걸리는 것 없이 배급사를 구하려면 빨리 홍경연을 치워야 했지만.
“ 슬슬 전화가 올 때가 됐는데. ”
강하영에게는 소식이 없었다.
하지만 그날 저녁.
♬띠리리 띠리리링 띠리리 띠리리링!!!
♬띠리리 띠리리링 띠리리 띠리리링!!!
전화가 울렸다.
“ 네. 하영씨. ”
“ 준비됐어요. ”
강하영이 결단을 내렸다.
끝
ⓒ 장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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