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voice phishing, but it's a life reversal RAW novel - Chapter 335
구단 (6)
이른 아침임에도 ‘폭풍’ 촬영 세트장은 분주했다.
그럼에도 스탭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았다. 당연했다. 이제 해봐야 남은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씬들만 남아 있었기 때문.
확실히 힘든 씬을 앞쪽에서 전부 찍으니까, 후반부 촬영이 수월하네.
“내 말이. 초반엔 뒤지는 줄 알았는데, 김삼봉 감독님 스타일이 매번 이렇다고 하더라.”
“은근 적응하니까 좀 괜찮지 않냐?”
지금 조명팀 스탭들이 조명을 세우며 나누는 얘기처럼 촬영 스케쥴 중 대체로 소화하기 힘든 씬은 이미 끝났고, 남은 장면은 해봐야 이 세트장에서 인물 간의 대화를 하는 씬이 전부였다.
“자자! 221 씬 준비하겠습니다!! 배우님들 모여주세요!!”
그렇기에 오늘 촬영장에는 ‘폭풍’ 출연 배우들 전부가 출근하여 스탠바이 중이었다. 어쨌든 조감독의 외침에 여기저기 흩어졌던 배우들이 촬영 장비가 세워진 장소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씬은 남주 하정훈이 군인으로서, 시민들에게 도망갈 루트를 알려주는 장면. 어느새 배우들과 단역들은 학교에서 아침조회를 하는 모양새로 둥그렇게 모였다.
“음-”
그쯤 자주색 통치마를 입은 여배우 한 명이 정면에 서서 메이크업을 고치는, 세상 심각한 얼굴의 하정훈을 보다가, 옆에 앉은 강하진에게 말을 걸었다.
“하진아.”
“……”
“하진아!”
“……네? 아, 네네.선배님.”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니요. 괜찮아요. 좀 배고프다 싶어서.”
얼굴 여기저기 상처 분장이 빼곡한, 그럼에도 예쁜 얼굴이 가려지지 않은 강하진을 보던 여배우가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가, 이내 하정훈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정훈 선배님. 뭔 일 있어? 너는 선배님이랑 얘기 좀 하잖아? 어제부터 분위기가 너무 시베리아 같아. 무서워 죽겠어.”
“아~ 잘 모르겠는데. 저도 요 며칠 얘기 못 해봤어요.”
답한 강하진이 정면, 어느새 촬영 대본을 보는 하정훈에게 시선을 던졌다가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
“그런데 보통 선배님 느낌이 저렇지 않아요? 처음 됐을 때부터 저러셨는데.”
“알지. 나도 너무 잘 알지. 정훈 선배님 괴팍한 거. 근데 최근에 뭐라 그래야 되지? 음~ 그래. 최근 좀 봄 같았는데, 지금은 완전 한겨울이잖아.”
“그런가? 하긴 어제하고 오늘 인사를 안 받아주시긴 했어요. 그래도 눈인사까진 해주셨는데.”
“그게 눈인사야? 째려보는 거지.”
자신도 오늘 아침 하정훈의 눈인사에 찔렸는지, 무서움에 살짝 몸을 떨던 여배우가 손거울을 꺼내, 얼굴 상태를 확인하다 대뜸 양손을 부딪쳤다.
“참! 하진아. 너 그거 어떻게 됐어?”
“네? 어떤 거요?”
“얘 봐라? 벌써 팀에 소문 쫙 퍼졌는데, 모른 척이네. 저번에 촬영장 왔던 외국인들 해외 영화사에서 너 보러 온 거라며? 뭐야? 너 헐리웃 영화 들어가는 거야? 부럽다! 그 나이에 헐리웃 진출!”
“아.”
그런데 난데없이 강하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더니, 이내 그녀가 무릎을 끌어 않았다. 마치 좋아하는 인형을 끌어안은 모습이었다.
곧, 작게 웃으며 무릎을 끌어안은 강하진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이제 반쯤 온 것 같아요.”
그 순간.
“리허설 가겠습니다!!!”
김삼봉 감독에게 지시를 받은 조감독이 크게 외쳤다.
잠시 뒤.
221씬 촬영이 끝나고, 현장에 잠시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덕분에 모였던 배우들이 자신의 차로 뿔뿔이 흩어졌고,하정훈 역시 마찬가지였다.
“후-”
자신의 밴으로 이동하는 하정훈은 길게 한숨을 뱉으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평소 강주혁과는 다른 의미로 고민을 길게 끌지 않았던 그였지만, 어째선지 지금 표정에는 근심이 가득한 모습.
어쨌든 자신의 밴 앞에 도착한 그가 들고 있던 촬영 대본을 의자에 대충 던지며 매니저를 찾았다.
“형. 나 물 좀.”
“여기요.”
곧, 의자에 몸을 파묻은 하정훈의 손에 물이 들렸다. 이어 뚜껑을 따던 하정훈이 매니저가 평소 하지도 않던 존댓말을 해서인지, 입에 물 한 모금을 머금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푸봅!!!”
하정훈이 대뜸 마시던 물을 뱉어냈다. 곧, 손등으로 입가를 닦던 하정훈이 물을 건네준 남자에게 외쳤다.
“뭐야!당신이 여기 왜 있습니까?!!”
외치는 하정훈의 뒤에는 며칠 전 그와 비밀리에 미팅했던 TOM엔터의 늙은 이사가 웃으며 서 있었고.
“하하. 정훈씨 연락이 없으셔서, 급한 마음에 직접 찾아왔습니다.”
늙은 이사 뒤에는 그의 직원 몇 명과 어색한 웃음을 뱉으며 하정훈의 눈치를 살피는 매니저가 서 있었다.
그런 매니저에게 하정훈이 으르렁거렸다.
“형. 뭐하자는 건데.”
“어쩌냐 그럼. 자꾸 연락 주시는데.”
다시 매니저가 눈을 피하자, 하정훈의 시선이 늙은 이사에게 닿았다.
“왜 여기까지 찾아와서 이러십니까?”
“왜냐니요. 정훈씨 욕심나니까 이러죠. 하하하. 우리 투자사에서 자꾸 연락이 와요. 정훈씨 꼭 모셔야 된다고.”
늙은 이사의 주름진 웃음에 하정훈이 혀를 찼다.
“쯧. 뭔 대스타라고 이렇게 물고 늘어지시는지 모르겠네.”
“어이구- 정훈씨 대스타시죠. 국내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자~ 어차피 쉬는 시간인데, 잠깐 얘기를 좀 하시죠.”
“그때 다 들었잖습니까.”
“조건이 마음에 안 드시나 싶어서, 업그레이드해서 왔습니다. 하하하.”
하정훈의 눈을 피하던 매니저가 이어 내내 끼어들었고,
“그래. 임마. 나도 조건 살짝 들었는데, 미쳤. 아니, 엄청나. 들어나 봐라.”
늙은 이사가 허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들으시면 만족하실 겁니다. 일단, 저쪽에서.”
그때였다.
“너 중국 진출 생각 있었냐? 말을 하지.”
어디선가 중저음 남자 목소리가 침투했다. 덕분에 늙은 이사나 하정훈 포함, 모두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하정훈의 차 오른쪽에서 길쭉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 남자를 단숨에 알아본 하정훈이 자리서 벌떡 일어났다.
“너!!”
그러거나 말거나 검은색 목티에 갈색 롱코트를 펄럭이는 남자의 걸음은 거침이 없었고.
“죄송한데, 걔 내가 진작에 침 발라놨는데.”
어느새 남자는 하정훈의 앞에 섰다. 곧, 늙은 이사가 남자와 눈을 마주쳤고,
“……강주혁씨.처음 뵙네요.”
대뜸 나타난 것은 강주혁이었다. 주혁은 늙은 이사를 살짝 흘겨보다가, 다시금 하정훈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딜 튀려고. 미쳤냐?”
“뭐라는 거야 미친 새끼가.”
“일단 대기.”
“뭠마?”
-스윽.
미간을 찌푸린 하정훈을 뒤로하고 주혁이 늙은 이사에게 손을 내밀었고,
“강주혁입니다. TOM엔터 쪽 이사님이시죠?”
살짝 얼굴이 굳은 늙은 이사가 강주혁의 손을 맞잡았다.
“반가워요. 장석태라고 해요. 우리는 정훈씨랑 잠깐 얘기만 하고 빠질.”
“아니요. 그건 좀 곤란한데요.”
“……곤란하다?”
잡았던 손을 놓으며 늙은 이사가 되묻자, 주혁이 양손을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답했다.
“말했을 텐데요. 쟤 내가 침 발라 놨다고. 새치기 오지시네?”
10분 뒤, 하정훈의 밴 앞.
강주혁의 등장으로 상황이 얼추 정리됐다. TOM엔터의 늙은 이사와 직원들은 작전상 후퇴인지, 아니면 후일을 도모하기 위함인지 어쨌든 후퇴했다.
그리고 지금 자리에 앉은 하정훈을 강주혁이 내려보고 있다.
“성격 급한 새끼. 그새를 못 참고 딴 데랑 계약하려고 했냐?”
“개소리하고 자빠졌네. 내가 쟤네랑 계약한다고 했냐?”
“그래. 그래도 아마 놔뒀으면 저기랑 계약하는 게 제일 가능성이 컸겠지. 넌 예전부터 해외 욕심이 있었으니까.”
“……”
틀린 소리는 아니었는지, 하정훈이 다리를 꼬며 주혁의 눈을 피했다. 그런 그를 보며 주혁이 말을 툭 던졌다.
“너 지금 주연급으로 해외 진출하면 망해.”
“뭐? 이 새끼가 근데.”
“하정훈, 네 문제점은 신인 때나 지금이나 같다. 캐릭터 파생 능력. 연기를 잘한다는 것과 캐릭터를 파생시키는 건 다른 문제야.”
“……갑자기 뭔 소리를 씨불이는.”
이어 주혁이 시선을 촬영장 방향으로 돌리며 말을 이었다.
“연기는 잘하지만, 캐릭터가 모두 비슷해 보이는 배우. 그게 너야. 과거에도 내가 한번 말해줬을 텐데? 헐리웃은 가뜩이나 캐릭터 위주의 작품이 많다. 그런데 대뜸 캐릭터 소화 능력이 부족한 네가 헐리웃 주연을 맡아? 운이 좋아 영화 자체가 흥행할지는 모르지만, 차기작은 안 들어올 거다.”
“너 아까부터 무슨 소릴 지껄이는 거냐?”
“그렇기에. 그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난 너를 여러 작품에 넣은 거다. 짧은 기간에 다양한 캐릭터를 경험시키기 위해서.”
곧, 하정훈이 강주혁과 엮이며 출연했던 모든 작품을 떠올렸다. ‘척살’부터 지금의 ‘폭풍’까지. 하나같이 특이한 캐릭터들뿐이었다.
냉철한 킬러, 반쯤 미친 비리 형사, 사이코 탑배우, 그리고 지금은 애국심 가득한 군인.
“강주혁. 너 지금.”
이쯤 무언가 파악한 하정훈이 눈을 끔뻑였고, 강주혁의 뒷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동안 내 단점들을 보완하고 있었다고 말하는 거냐?”
“얼추? 아, 근데 ‘척살’에 넣을 때는 그냥 네가 다루기가 제일 쉬워서 픽하긴 했다.”
“시발. 야. 지금 나랑 장난.”
“근데. 지금은 좀 달라.”
하정훈의 말을 자른 주혁이 몸을 돌렸고, 그에게 준비해온 종이 몇 장을 내밀었다.
“시놉이다. 최명훈 감독님 거고, 헐리웃 진출 작으로 보고 있다. 수정해야 될 부분도 많아.”
“………그런데?”
“너 밑바닥부터 할 수 있겠냐?”
“뭐?”
“그 작품의 킬러3. 조·단역이고 대사 두 줄. 국내 커리어 다 버리고 그거 할 수 있겠냐고.”
강주혁의 말을 들은 하정훈의 시선이 받은 시놉으로 내려갔다. 그런 그에게 주혁이 설명을 추가했다.
“나 믿고, 쯧! 아니다. 믿고 말고 그런 어색한 말은 됐고, 우리답게 가자. 날 이용해. 그럼 네 필모가 내 필모보다 예쁘게 뽑힐 거야.”
“……”
“내 회사 와서, 배우들 중심 좀 잡아. 건욱이가 있긴 한데, 걔 성격 알잖아.”
픽 웃으며 강주혁이 말을 마쳤으나, 후로 몇 초간 하정훈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그저 손에 들린 시놉을 내려볼 뿐. 그의 입이 열린 것은 촬영장 쪽에서 조감독이 스탠바이를 외칠 때쯤이었다.
” 나불거리지 말고,계약서나 들고 와.”
몇 시간 뒤.보이스프로덕션 본사 대회의실. 인천공항에서 곧바로 삼성동 사옥으로 넘어온 최상희 감독이 강주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어 그가 쓰고 있던 검은 뿔테 안경을 빼내, 닦을 때였다.
-끼익.
대회의실 문이 열렸고,
“감독님. 죄송합니다. 점심시간이라 길이 막혔어요.”
갈색 코트와 투명파일을 오른손에 든 주혁이 들어왔다. 덕분에 안경을 닦던 최상희 감독이 자리서 일어나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저도 방금 도착했습니다.”
역시나 대답마저도 교수를 방불케 하는 최상희 감독에게 간단한 인사를 던진 주혁이,30명은 넘게 앉을 수 있는 커다란 책상 상석에 앉았다.
“‘폭풍전야’ 해외 개봉 건은 어떻게 됐습니까?”
“미국 쪽 배급사들 만나고 왔습니다. 예전부터 저랑 일하던 곳이라 반응 자체는 긍정적이었어요. 다만. 개봉시켜달라고 말한들 대뜸 뛰어들진 않겠죠.”
“맞습니다. 우리도 도전이고, 그쪽도 우리 ‘폭풍전야’를 맡으면 사실 도전에 가깝죠.”
그의 답변에 이미 예상하였는지, 주혁의 반응은 담담했다.
“계속 두드려야겠죠. 해외 배급사 결정은 하셨습니까?”
“예. 두 곳 정도로 좁혔습니다. 가장 반응이 좋고, 저와 많이 일한 곳입니다. 계속 소통하면서 길을 모색해보겠습니다.”
“네. 뭐, 그쪽도 이번 건만 잘되면 바로 반응 올 겁니다.”
“예? 이번 건이라면.”
그때였다.
“사장님~ 나 왔어요. 어머. 감독님 벌써 오셨네?”
“안녕하세요!!”
열린 대회의실 문을 통해, 홍혜수 부장과 마니또 멤버들이 입장했다. 이어 모두에게 간단한 인사를 던졌고, 약 5분 뒤 홍혜수 부장이나 마니또 멤버들이 자리에 앉았다.
“효진씨.”
“네?!”
마니또 멤버들이 자리에 앉자마자, 주혁이 멤버 한명 한명을 부르기 시작했다.
“서진씨.”
“네!”
“수현씨.”
“네네.”
“엘리야씨.”
“네-”
마니또 멤버 모두의 이름이 불렸을 땐, 이미 강주혁이 앞에 그녀들의 프로필사진을 나란히 올려둔 상태였고,
“여기에.”
그녀들의 사진 위에 따로 뽑아둔, 척 봐도 게임 캐릭터처럼 보이는 사진들을 주혁이 한 장씩 차례로 겹치게 올렸다. 캐릭터 사진을 전부 올린 뒤에야 강주혁이 홍혜수 부장을 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 뮤비 제작하는 거 있잖아? 거기에 얹어서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 그리고 그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의 실사판 해서. 두 가지 버전을 추가로 제작했으면 싶은데.”
제일 빠른 반응을 보인 것은 최상희 감독이었고.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요?!”
그런 그에게 시선을 맞춘 주혁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 물론, 이건 온라인 공개용이 아니고, 음~ 일단 이력서라고 보면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