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voice phishing, but it's a life reversal RAW novel - Chapter 351
뮤비 (9)
대뜸 난입하여 대사를 읊어대는 강하진의 표정은 아까 전, 미팅 때와는 사뭇 다른 얼굴이었다. 미팅 때는 20대 초반의 여린 소녀가 앉아 있었다면 대사를 읊고 있는 지금은 표독함이 섞인 괴팍한 여자가 보였다.
“그 아이와 난 아무 문제가 없어. 거래였다니까? 난 그 아이가 원하는 것을 줬을 뿐이고, 그 아이는 나에게 대가를 치렀을 뿐인데. 왜 문제가 되지?”
여기까지 대사를 치던 강하진이 꼬았던 다리 방향을 바꾸면서, 흰 수염 빌 에반스 감독에게 뒀던 시선을 갈색 머리 남자에게 옮겼고.
“그런데 왜 내가 나쁜 년이라고 불려야 하는지 말해줘.”
그에게 대놓고 대사를 치자, 여드름이 자욱한 갈색 머리 남자 직원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까부터 뭘 하는 거야. 왜 거기서.”
디즈니 픽쳐스의 갈색 머리 남자 직원이 당황함에 입을 열었지만, 이마저도 강하진은 웃으며 대사로서 받아쳤다.
“내가 왜 여기에 왔냐고? 받을 걸 받으러 왔을 뿐인데? 그 아이. 어디에 숨겼지?”
-드륵.
더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갈색 머리 남자나 미팅룸에 모인 디즈니 픽쳐스 직원들이 강하진을 말리기 위해, 자리서 일어났다.
흰 수염이 덥수룩한 빌 에반스 감독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잠깐.
그가 강하진을 말리려던 직원들에게 손을 올려 움직임을 멈추게 했고, 앞에 앉은 여린 소녀의 연기에 빠져들었다.
“지금 하진은 내 전작의 캐릭터 대사를 치고 있는 거야.”
“……전작이라면?”
“‘마법에 걸린 소녀’ 미할라의 대사 같아.”
강하진이 지금 홀로 던지는 대사들은 빌 에반스 감독이 연출했던 애니메이션 영화 ‘마법에 걸린 소녀’ 중 미할라 역할의 대사였고,
-쾅!!
한창 미할라 역할에 빠져들었던 강하진이 책상을 내려치며 빌 에반스 감독을 노려봤다. 그녀의 표정에는 아주 괴기스러운 웃음이 걸려 있었다.
“왜? 너희들도 필요한 게 있어? 말만 해. 대가만 치른다면 뭐든 이룰 수 있어.”
“……”
딱 여기까지 연기를 펼치던 강하진이 책상을 내려쳤던 손을 회수하며 꼬았던 다리를 풀었고, 자세를 똑바르게 앉았다. 어느새 그녀의 표정은 평상시 그녀의, 얼음공주라 불리는 담담한 얼굴로 180도 변해 있었다.
그런 그녀가 꽤 유창한 영어를 뱉었고,
“감독님 작품의 다른 캐릭터 대사도 할 수 있어요. 해볼까요?”
강하진의 얼굴을 똑바로 보던 빌 에반스 감독이 턱에 난 흰 수염을 쓸었다.
“‘마법에 걸린 소녀’에 미할라 말고, 다른 것도 된다? 내 전작을 전부 봤나?”
“네. ‘마법에 걸린 소녀’ 말고 감독님이 연출하신 모든 작품을 봤어요.”
“왜지?”
“제 버릇인데. 사장님이 작품에 들어가기에 앞서, 감독의 성향을 파악해두면 좋다고 해서요.”
“사장님?”
“네. 강주혁 사장님. 제 소속사 사장님이요.”
“……그렇군.”
간단히 대답한 빌 에반스 감독이 수염을 만지작거리다. 팔짱을 꼈고,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강하진을 흥미롭게 쳐다봤다.
“푸하하!”
곧, 웃음을 터트린 빌 에반스 감독이 옆자리 갈색 머리 남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존. 당장 나가서 이 배우님 직원들 다시 모셔와. 처음부터 다시 얘기해야겠어. 하녀2 역이 아닌, 헤델 역으로.”
“예?! 감독. 그, 그렇게 갑자기.”
“위쪽에는 내가 얘기할 테니까, 어서.”
“아……네.”
이어 여드름 자욱한 갈색 머리 남자가 일어날 때 강하진이 손을 번쩍 들었고.
“제가. 제가 다녀올게요.”
빌 에반스 감독이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렇게 해요.”
어느새 미팅룸을 빠져나온 강하진은 복도에 있던 송사장을 부르며 주머니에 들었던 핸드폰을 꺼냈다.
“송이사님! 다시 들어오시래요. 아, 언니한테 톡 왔었네.”
“엉? 다시?!”
복도에서 기다리던 송이사가 외쳤지만, 왜인지 강하진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
톡 내용이 퍽 충격적이었는지, 강하진이 대뜸 자리에 멈춰서는 눈이 커졌다.
“어어어??!”
이어 커진 눈으로 강하진이 언니인 강하영에게서 도착한 톡을 다시 확인했다.
-하진!! 대박사건!! 사장님 없어졌던 남자’ 까메오로 출연하신대!!
다시, ‘스톤맨1’ 촬영 현장.
촬영장은 이미 난장판이었다. 시작은 박찬규 부사장의 급발진부터였고.
“이딴 게 헐리웃 영화 촬영장이야?!!! 시발. 아주 지랄났구만?!! 이따위 취급이면 우린 영화 못 찍지!!!!”
현장으로 난입한 박찬규 부사장은 불특정 다수의 스탭들에게 고래고래 악을 질렀다. 그 모습에 당황하던 ‘스톤맨1’ 외국인 스탭들이 수군거렸고,
“뭐야? 저 남자 왜 저래?”
“몰라. 갑자기 튀어나왔어.”
“다들 뭐해! 일단 말리자고!”
어렵사리 박찬규 부사장을 뜯어말리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박찬규 부사장의 발광은 심해졌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정장과는 정반대의 모습.
“이거 놔!! 안 놔? 이딴 더러운 촬영장에 우리 배우 안 둬! 재은씨!!! 나와요. 집에 갑시다!!”
“부, 부사장님?”
“나와요 나와!! 야!! 진주야 시동 걸어!!!”
순식간에 도떼기시장처럼 변한 촬영장 모습에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기자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야야. 박기자야. 저거……박찬규 부사장 아니야?””
“맞어, 맞네. 화가…났나? 왜 저래?”
“그러게. 저 매너 좋기로 소문난 양반이 왜 저렇게 오바를.”
곧, 기자들 사이에서 답이 나왔다.
“뭔 일 났다. 저거.”
멀긴 했지만,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들어 올린 기자들이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그쯤 유재은을 끌어낸 박찬규 부사장은 이제 아예 대놓고 쌍둥이 제니와 메니를 노려보며 외쳤다.
“뭐? 아시아인이라도 내 말은 알아듣지??! 싸가지를 밥 말아 먹었냐?!!”
화가 잔뜩 난 짐승처럼 외친 박찬규 부사장이었으나, 어느새 연두색 머리인 제니와 회색 머리 메니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정확하게 따지면.
연기에 돌입했다.
곧, 제니와 메니의 소속사 스탭들이 그녀들 주변을 감싸며 박찬규 부사장을 견제했고, 그 모습에 콧방귀를 낀 박찬규 부사장이더욱 크게 소리를 질렀다.
“지랄. 애들 교육부터 잘못됐는데, 보호는 해주고 자빠졌네!!”
이어 유재은의 손목을 잡은 그가 페이튼 더글라스 감독 방향 쪽으로 시선을 던지며 말을 이었고.
“우린 갑니다? 이딴 차별이 만연한 촬영장에서 있을 필요가 없어!!”
화산이 폭발한 듯 괴성을 질러대는 박찬규 부사장을 지켜보던 주혁이 입꼬리를 올렸다.
“하면 또 잘하시네. 나보다 더 잘하시는 것 같은데?”
말을 마친 주혁이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멍청하게 눈을 끔뻑이고 있는 오디오 팀 방향으로, 박찬규 부사장의 어시스트를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띠리리 띠리리링 띠리리 띠리리링!!
움직이던 강주혁의 속 주머니에서 벨소리가 울렸고.
“허- 이타이밍에?”
*070-1004-1009
전화는 보이스피싱이었다. 덕분에 오디오 팀으로 이동하며 주혁이 전화를 받았다.
[‘블랙’ 단계의 주인이신 강주혁님 안녕하세요!] [강주혁님의 VIP 유료서비스 ‘블랙’의 남은 횟수는 총 15번입니다!!’] [VIP 유료 서비스인 ‘블랙’ 단계를 통해 인생역전에 더욱 가까워지길 기원합니다! ] [계속 진행을 원하시면 1번을 눌러주세요!]이어 1번을 누름과 동시에 민머리에 선글라스를 낀 오디오 팀 스탭의 어깨를 툭툭 친 주혁이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30분 이내에 녹음된 내용을 찾아봐요.
그럼 지금 상황이 이해될 테니까, 찾은 다음에 감독에게도 전해줘요.
주혁에게 말을 전해 들은 오디오 팀 스탭이 선글라스 낀 눈으로 강주혁을 잠시간 쳐다보다, 옆에 선 동료들에게 뭐라고 외치자, 스탭들이 오디오 장비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강주혁의 핸드폰에선 보이스피싱 키워드가 들렸고,
[들으실 항목의 키워드를 선택해주세요! ] [1번 ‘2021년 월드 챔피언십’, 2번 ‘하루에 몽땅 공개, 3번 ‘7월 8일이 시발점인’, 4번 ‘최대 5천만 명, 5번 ‘Zombie attack’, 6번 ‘가정부로 20년을 산’, 7번 ……’] [다시 듣기는 #버튼을 눌러주세요. ]오디오 장비를 확인하는 스탭들을 보던 주혁이 키워드를 듣자마자, 읊조렸다.
“월드 챔피언십? 이거 설마.”
키워드를 듣자마자, 뭔가가 떠오른 주혁이 빠르게 1번 ‘2021년 월드 챔피언십’을 터치했다. 곧, 그의 핸드폰에 경쾌한 여자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미래정보를 전부 들은 주혁이 짧게 읊조렸다.
“이러면 곤란한데.”
읊조리며 살짝 미간을 찌푸린 주혁이 방금 들은 미래정보를 수첩에 적은 뒤, 한창 작업하고 있을 최상희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 신호는 짧았고, 주혁의 핸드폰에 최상희 감독의 피곤한 목소리가 들렸다.
“네. 사장님.”
“최상희 감독님, 지금 애니메이션 뮤비. 얼마나 진행됐습니까?”
“80% 완성도를 목표로 잡고, 지금 한- 60% 정도.”
“그쯤 마무리하죠.”
“예?”
주혁이 꽤 다급하게 최상희 감독에게 말을 전했다.
“제가 지금 ‘스톤맨1’ 촬영장 나와 있는데, 여기 정리하고 바로 감독님 작업실로 넘어가겠습니다.
“아, 예예. 그런데 여기서 마무리하라는 말씀은.”
최상희 감독이 의아함에 되물었지만, 강주혁은 오디오 팀 외국인 스탭들에 시선을 던지며 꽤 짧게 답했다.
“말 그대롭니다. 상황이 변했으니, 그쯤 마무리하세요.”
“……일단. 알겠습니다.”
-뚝.
그렇게 전화가 끊겼고, 민머리에 선글라스 낀 오디오 스탭과 눈이 마주친 주혁이 입을 열었다.
“확인했죠?”
선글라스 낀 스탭이 무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을 확인했다는 뜻이었다. 그런 그에게 주혁이 검지로 난동을 피우는 박찬규 부사장 쪽을 찍었고.
“쟤네가 말하는 걸 나와 저분은 전부 들었고, 나는 그냥 못 넘어가겠는데.”
박찬규 부사장을 찍던 검지를, 가가멜처럼 머리 벗겨진 페이튼 더글라스 감독 쪽으로 옮긴 주혁이 말을 이었다.
“뭐해요? 어서 감독에게 가서 전해요. 있는 그대로.”
“……예.”
곧, 오디오 팀 스탭 몇 명이 모니터 앞에 서 있는 페이튼 더글라스에게 뛰었다. 그 뒤를 강주혁이 천천히 따랐고, 다급하게 뛰어온 오디오 팀에게 상황을 전달받은 페이튼 더글라스 감독이 벗겨진 이마를 짚었다.
“오 – 이런.”
그때 때마침 도착한 주혁이 페이튼 더글라스 감독 앞에 섰다.
“아무 조치가 없다면. 우리 보이스프로덕션은 배우를 뺄 것은 물론이고, 회사 차원으로 강경하게 대응할 생각입니다. 가장 먼저 저쪽에 포진된 한국 기자들에게 인터뷰부터 시작하면 되겠네요.”
강주혁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던, 가가멜 모습의 페이튼 더글라스 감독이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물론, 조치는 취할 생각이고, 내가 책임지는 촬영장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에 나도 화가 나는군.”
사실, 페이튼 더글라스 감독 역시 아직도 헐리웃 판에 만연한 차별적인 모습에 환멸을 느끼는 감독 중 하나였다.
어쨌든 페이튼 더글라스 감독이 스탭 중 제작팀 스탭을 크게 불렀다.
“케이시!!”
그쯤 여전히 촬영장 중앙에서 유재은을 붙잡고, 난동을 피우던 박찬규 부사장이 감독과 강주혁이 얘기 중인 것을 보곤 순식간에 흥분을 가라앉혔다.
“후-”
이어 앞쪽에 여전히 멀뚱히 서 있는 쌍둥이 헐리웃 여배우 제니, 메니와 그녀들을 보호하는 소속사 스탭들을 보며 박찬규 부사장이 픽 웃었다.
“너희 이게 두 번째 작품이라던데. 신인 주제에간이 아주 배 밖으로 나왔구나?”
그러나 한국어여서 그런지, 제니 메니 쌍둥이들은 미간을 찌푸렸다.
“저 남자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나도 모르겠어. 어쨌든 화가 난 것은 확실해.”
소속사 스탭들의 소매를 붙잡고 떠들어 대는 제니, 메니를 쏘아보던 박찬규 부사장이 약간은 비릿한 웃음을 지었고.
” 시끄럽고, 좋다 이거야. 텃세고 나발이고 어디나 있으니까, 다 좋은데. 너희는 사람 잘못 건드렸어.”
그녀들에게 그가 한 걸음 다가섰다.
“너희 지금 누구 배우를 건드렸는지 아냐?”
바로 그때,
가가멜과 흡사하게 머리가 벗겨진 페이튼 더글라스 감독, 라면 면발처럼 구불거리는 머리의 남자 그리고 짙은 보라색 머리 여자가 박찬규 사장 옆으로 다가왔다.
그들 중 입을 먼저 연 것은 뒷짐 진 페이튼 더글라스 감독이었고.
“제니, 메니. 그리고 그녀들의 소속사 스탭들.”
그가 대뜸 현장에서 사형선고를 내렸다.
“당신들 내 영화에서 꺼져버려. 지금 당장.”
몇 시간 뒤, 새벽녘.
‘스톤맨1’ 촬영 현장에서 곧장 서울로 움직인 주혁이 애니메이션 팀 최상희 감독 작업실의 문을 열었다. 최상희 감독은 모니터 앞, 의자에 걸터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스윽.
그때 인기척에 눈을 번쩍 뜬 최상희 감독이 흘러내린 검은 뿔테 안경을 추켜올리며 고개를 들었다.
“아! 사장님. 제가 깜빡 졸았네요.”
“죄송합니다. 감독님. 많이 피곤하시죠?”
“하하. 애니메이션 하는 놈이 피곤함이야 늘 달고 살아야죠.”
“팀원들은?”
“전부 보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주혁이 가까운 곳에 있는 의자를 끌어와, 최상희 감독 반대편에 앉았다.
“볼까요.”
“네.”
곧, 최상희 감독의 조작으로 정면 모니터에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가 재생됐다. 분명, 저번 테스트 버전보다 퀄리티와 디테일이 높아져 있었다.
이어 5분 뒤.
뮤직비디오 재생을 멈춘 모니터를 보던 주혁이 다리를 꼬며 핸드폰을 꺼냈고.
“간을 좀 봐보죠. 어- 일단은.”
최상희 감독의 핸드폰에 어떤 메일주소를 전송한 강주혁이 결론을 던졌다.
“그 메일주소로 뮤비 바로 던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