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voice phishing, but it's a life reversal RAW novel - Chapter 39
이윽고 학생은 지하 보도로 사라졌다. 곧바로 주혁이 주변을 둘러본다. 당장에 눈에 띄는 사람은 없었다. 잠시간의 침묵. 강주혁의 옆에 앉아있던 남자도 분위기를 눈치채고는 더욱 웅크렸다.
‘ 너무 조용한데. ’
학생이 지하 보도도 들어간 지 1분여가 지나도록 아무도 나타날 기미가 없다.
‘ 모르겠다. 일단, 가보자 ’
-덜컥.
갑작스레 주혁이 차 문을 열고 지하 보도로 뛰었다. 혹시 모르니까. 지하 보도로 내려간 학생은 계단을 끝쯤에 있었다.
“ 저기! ”
일단, 주혁은 내려가던 학생을 무턱대고 불렀다. 한창 계단을 내려가던 학생은 영혼이 없는 눈빛으로 강주혁을 올려다본다.
“ ······네? ”
그리고 곧장 강주혁의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 물어볼까? 잠시 생각을 하던 주혁이 이내 묻는다.
“ 혹시 이름이 어떻게 돼요? ”
“ 이름이요? 그건 왜요? ”
당연한 반응이었다. 갑자기 이름을 묻는다고 답해줄 리 없지. 입을 다물어 버린 강주혁이 뭐든 떠올리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느닷없이 뒤쪽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 학생. 우리 지금 이 주변 조사하고 있는데. 이름 좀 알려줄 수 있어요? ”
‘무엇이든 도와드립니다’에서 나온 남자였다. 언제 챙겼는지 손에는 수첩을 들고 적는 시늉을 하며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누가 봐도 형사 포스. 연기 잘하네.
“ 아······. 저 김지웅이요. ”
이에 질세라 강주혁도 품속에서 미래정보를 적어두는 수첩을 꺼내 들어 형사 연기에 동참해, 자연스럽게 질문을 받았다.
“ 어디서 오는 길이예요? ”
“ 아, 학원이요. ”
‘이름이 틀린 데.’
더 꼬치꼬치 캐묻고 싶었지만, 이미 김지웅이라는 학생은 강주혁을 이상하게 쳐다보며 슬금슬금 피하고 있었다. 별수 없이 강주혁이 마무리를 지었다.
“ 요즘 지하 보도에서 퍽치기 사건이 자주 일어나니까, 이쪽으로 다니지 말아요. 알았죠. ”
“ ······네. ”
-터벅터벅
대충 귀찮은 듯 대답한 학생은 다시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주혁은 학생의 모습이 사라져서야 다시 차로 발길을 돌렸고, 그 뒤를 남자가 뒤따랐다.
돌아온 차 안. 다시 잠복이 시작됐다. 방금 그 학생은 이름이 틀렸다. 강주혁은 주변을 다시 둘러보기 시작했다.
움직임이 보인 건 바로 그때였다.
-터벅터벅
지하 보도 옆 어둠 속에서 검은색 야구점퍼에 모자를 깊게 눌러쓴 남자가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고 천천히 지하 보도로 걸어 나온다.
그에 따라 강주혁은 다시 몸을 웅크렸고, ‘무엇이든 도와드립니다’에서 나온 남자도 몸을 숙인다.
검은색 야구점퍼를 입은 남자는 지하 보도 입구에서 딱 멈춰 서더니,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한번 확인한다. 이어서 뭐라 뭐라 중얼거리는데, 잘 들리지 않았다.
시간을 확인하던 야구점퍼 남자는 한참을 그 자리에서 서성거린다.
‘ 뭐야 저 새끼. ’
시계를 보기도 하고, 지하 보도 입구를 멍하니 쳐다보기, 주변을 둘러보기도 하면서 시간을 죽이는 야구점퍼 남자.
‘ 무기도 없는 거 같은데. ’
만약 저 사람이 퍽치기범이라면 손에 무엇이든 들고 있어야 했다. 그게 야구방망이든, 쇠파이프든 뭐든 간에 하다못해 짱돌이라도 들고 있어야 하는데, 가만 보니 저 남자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는 게 없었다.
이윽고.
-터벅터벅
야구점퍼 남자는 한참을 서성거리다 이내 나타났던 어둠 속으로 다시 사라진다.
시간은 9시 50분.
야구점퍼 남자가 머물렀던 시간이 대충 20분이 넘는다. 대체 뭘 한 걸까?
“ 후- ”
주변이 다시 한산해지자, 주혁은 한숨을 내쉬며 웅크렸던 몸을 풀었다. 옆에 남자도 마찬가지고.
‘ 오늘이 아닌가. ’
어느새 시간은 10시를 넘기고 있었다. 시간이 깊어질수록 지하 보도 주변은 더욱 인적이 드물어졌고, 바람까지 쌀쌀하게 부니 귀신이 나온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시간은 정처 없이 흘렀다. 30분, 1시간
주변에 사람은 안 보였지만, 그래도 주혁은 오늘 새벽이 넘는 시간까지는 기다려볼 참이었다. 확실한 게 좋으니까.
그렇게 좌석에 몸을 파묻고 있던 주혁이 살짝 지루했는지, 옆자리 파트너에게 말을 건넨다.
“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
“ 그냥 황실장이라 부르시면 됩니다. ”
“ 황실장이요? ”
“ 예. 황실장. ”
성이 황씨? 뭐 여튼 중요한 건 아니었다.
“ 황실장님은 대체로 어떤 일을 하십니까? ”
“ 전부 다 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범법행위 빼고는 무엇을 찾거나, 무엇을 조사하거나, 짐을 옮기거나, 밤길이 무서워 동행해달라는 사람들도 있고. 뭐든 합니다. ”
황실장의 대답을 들은 강주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러니까 잡식이네. ’
범법행위를 제외한 모든 일이라. 순간 얘기를 듣고 보니 호기심이 동한 주혁이 다시 묻는다.
“ 어쩌다 이런 흥미로운 일을 시작하셨습니까? ”
말없이 그저 앞을 응시하던 황실장은 감정 없는 어투로 입을 열었다.
“ 원랜 형사였습니다. ”
“ 아아. 그렇. 예?! ”
갑자기 형사가 튀어나왔다. 어쩐지 아까 연기치곤 너무 자연스럽더라니.
“ 다 예전 일이죠. 어쩌다 일이 틀어지고, 형사 때려치우니 딱히 할 일이 없었습니다. 결혼한 것도 아니었으니 부양가족도 없었고, 뭐 이래저래 사람 찾는 일을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
“ 아아. 그렇군요. ”
“ 강주혁 씨는 요즘 뭐 하고 지내십니까? ”
“ 저야 뭐······ 예?! ”
마스크를 쓰고 있음에도 자신을 알아봐, 흠칫 놀라는 강주혁. 그 모습을 바라보던 황실장이 담담하게 답한다.
“ 출연하신 ‘청년 형사’를 한 스무 번은 봤습니다. 아무리 마스크를 쓰고 계셔도 목소리나 키, 말투, 눈매 정도로 바로 알겠던데요. ”
역시 형사 출신. 어차피 들킨 김에 주혁은 갑갑하게 얼굴을 감싸고 있던 마스크를 풀어낸다.
“ 걱정하지 마세요. 이일은 비밀이 생명입니다. ”
이후로는 다시 말이 끊겼다. 황실장은 워낙에 과묵한 스타일이었고, 주혁도 자신의 정체가 확인된 다음부터는 말을 아꼈다.
결국, 시간이 흘러 새벽 2시.
범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 이번 주가 아니었나. ’
결론은 내린 주혁이 차에 시동을 걸었다. 느닷없이 시동이 걸리자, 황실장이 휙 하니 강주혁을 쳐다봤다.
“ 이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가까운 곳까지 태워드리겠습니다. ”
“ 아니요. 전 그럼 여기서 내리겠습니다. ”
차 문을 열고 내리는 황실장의 등에 대고 주혁이 말을 던졌다.
“ 돈은 계좌로 바로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 금요일. 똑같은 시간, 똑같은 장소에서 뵙겠습니다. ”
“ ······알겠습니다. ”
-텅!
대답을 마친 황실장이 차 문을 닫았고, 그대로 주혁은 차를 몰기 시작했다.
이어진 주말부터 강주혁의 스케쥴은 매우 빡빡했다. 토요일 일정으로 척살팀의 총 워크샵에 들러야 했고, 이어서 경북 상주에서 다큐 독립영화 팀과 그 영화의 주인공 할머님은 만나 뵙기로 한 것.
가장 먼저 워크샵 장소인 양평에 도착한 주혁은 이미 부어라 마셔라, 상태인 전 스텝들에게 고기와 술을 보충시켜줬다.
“ 와아! ”
득달같이 몰려드는 스텝들. 그들은 이미 오늘 자신을 포기한 듯, 살짝 주춤했던 고기파티에 다시금 불을 지폈다.
이어서 송사장.
시간이 점심을 왔다 갔다 한 상태임에도 얼굴이 벌게진 상태로 주혁에게 다가왔다.
“ 왔냐? ”
“ 송사장님. 벌써 이러면 곤란합니다. ”
“ 나도 오늘은 휴무야. 쉴 거라고. ”
송사장과 강주혁이 주거니 받거니 하며 농담을 던지고 있을 때, 조용히 최명훈 감독이 옆으로 붙었다.
“ 오셨어요? ”
“ 아, 감독님. 스텝들이 아주 친해졌나 보네요. ”
“ 하하하. 네. 뭐. 이제 쭉 같이 가야 하니까요.”
“ 그렇죠. 쭉 가야죠. ”
얼굴에 살짝 미소를 띤 최명훈 감독이 고기 판이 벌어지는 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정말 감사드립니다. 제 생전 상업영화를 찍어볼 날이 올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
“ 뭘요. 감독님이 쓴 작품인데. ”
“ 이 바닥이 본인이 썼다고, 본인이 찍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앞으로 열심히 찍겠습니다. ”
“ 그러셔야죠. ”
그렇게 최명훈 감독, 송사장과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던 주혁의 눈에 스텝들 사이에 앉아있는 강하진이 보였다.
배우가 전부 참석한 건 아니었지만, 강하진은 참석했던 모양이다.
주혁은 송사장과 최명훈 감독에게 손을 올리며 양해를 구한 후, 앉아서 고기를 먹고 있는 강하진에게 말을 걸었다.
“ 하진씨. ”
“ 응? 아, 오셨어요? ”
강하진이 주혁을 발견하곤 바로 발딱 일어난다.
“ 잠시 얘기 좀 할까요? ”
“ 네. 괜찮아요. ”
고기 판이 벌어지는 곳에서 살짝 떨어진 곳까지 강하진은 주혁의 뒤를 졸졸졸 따라왔다. 어느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강주혁의 입이 열렸다.
“ 하나만 물어볼게요. ”
“ 네. 말씀하세요. ”
“ 연기. 계속하고 싶어요? ”
“ ······ ”
살짝 고민하는 듯, 아니면 원래 생각을 해왔던 건가? 강하진은 그렇게 잠시간 침묵을 지키다 이내 강주혁을 올려다보며 답했다.
“ 솔···직히. 말씀드려도 돼요? ”
“ 그럼요. ”
그녀의 작은 얼굴이 움직였고, 이내 숨을 들이마시더니 말을 뱉어낸다.
“ 전 언니가 연기하는 거나 몇 번 받아봤지, 연기에 관심이 없었어요. 며칠 전까지도 그랬고. 저는 주변에서 표정이 없다는 소릴 많이 들어서, 연기한다는 상상도 못 해봤고. ”
“ 네. ”
“ 근데 저 그날 오디션장에서 사장님한테 연기 잘했다는 소리 듣고, 생각해봤어요. ”
“ 생각? ”
야무지게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가 다시금 말을 이었다.
“ 짧은··· 칭찬이었는데, 너무 좋길래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까. 제가 칭찬을 받은 적이 없더라구요. 언니야 저 응원한다고 매일 칭찬해주는데, 그거랑은 다르게 사장님이 해준 칭찬이 뭔가 동기부여가 됐어요. ”
뭔가 찡했다. 이게 동정심이건 동질감이건 뭐든 간에.
“ 그래서요? ”
“ 사장님은 대단하신 분이고, 그런 분이 칭찬해준 거니까. 제가 연기를 해도 괜찮겠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저도 진주 선배님처럼 매일 연기 잘한다는 칭찬 듣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
‘ 얘 방금 배우라고 했나? ’
여배우가 아닌 배우.
이 바닥에서 여배우는 특별하다. 그냥 연기만 하는 배우가 아닌 말로 설명 못 할 그 어떤 빛이 있다. 연습생은 모두 그런 빛나는,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여배우를 선망의 대상으로 삼고 열심히 달려나간다.
그런데 이 아이는 배우가 되고 싶단다.
그저 단순하게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뜻에서 저런 결론이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강주혁은 순간 강하진이 정말 크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강주혁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알겠어요. 가서 얼른 먹어요. 다 없어지겠네. ”
“ 어······ 네. ”
우물쭈물 대답한 강하진이 타박타박 앉았던 곳으로 걷다가 갑작스레 다시 뒤돌며 대뜸 인사한다.
“ 감사합니다. 신경 써주셔서. ”
느닷없는 인사를 끝마친 강하진은 고기 때문인지 살짝 다급하게 자리로 걸어간다. 강주혁은 그녀의 뒷모습을 그저 묘한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이어진 강행군. 강주혁은 양평 워크샵, 아니 고기파티가 벌어지던 곳을 벗어나 곧장 상주로 차를 몰았다. 거리는 약 두 시간 정도.
이것저것 생각할 것이 많았던 탓인지, 여러 가지를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상주에 도착한 주혁이었다. 차를 대충 갓길에 대고 류성원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 아! 사장님! 저희가 주소를 문자로 보내드리겠습니다! ”
문자로 류감독에게 주소를 받은 주혁은 주소를 따라 차를 몰았고, 얼추 도착한 지점에는 류성원 감독과 최철수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이후부턴 어려울 작업이 없었기에 일사천리였다.
가장 먼저 주인공인 김점숙 할머님께 인사를 드리고, 다큐 독립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전달해 드렸다. 얘기를 듣던 할머님이 대뜸.
“ 식사했슈? ”
“ 아, ”
“ 안했으믄 같이 혀. ”
식사를 권하는 바람에, 류성원 감독과 최철수 그리고 강주혁은 나란히 앉아 할머님과 저녁을 먹었고, 이후 커피까지 깔쌈하게 타주신 할머님은 마지막에 또 오라는 씩씩한 인사를 던지셨다.
할머님의 배웅이 끝난 후, 다시 차에 오르기 전 주혁은 최철수에게 진행 상황과 동시에 간단한 브리핑을 들었다.
“ 이렇게 직접 오실 필욘 없었는데. ”
“ 그래도 할머님은 직접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어차피 한번 보는 게 좋으니까요. ”
다큐 촬영은 일주일에 4번 정도. 매일같이 촬영을 진행하면 할머님이 불편하실 수 있고, 리얼리티가 떨어질 것을 생각해 조절하고 있다고 한다.
“ 스텝은요? ”
“ 지금은 딱히 필요 없습니다. 이게 극영화랑 다르게 크게 스텝이 많이 필요 없거든요. 하하하. ”
머쓱하게 웃는 최철수에게 미소를 지으며 주혁이 강하영에 관해 물었다.
“ 아! 하영씨. 목소리도 좋고, 밝고, 딱 좋던데요. 마스크도 정말 좋던데. 이런 영화가 아니라 상업에 가셔야 할 정도던 데요. ”
강하영이 촬영에 합류하는 건 한 달 뒤였다. 그때도 도우미역을 찍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같이 작업하고, 후반부 나레이션 작업을 중점으로 보고 있다고 최철수가 열변을 토했다.
“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 예. 조심히 올라가세요. ”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는 말도 잊지 않고 던진 주혁이 다시금 차에 올랐고, 사무실로 목적지를 잡았다.
늦은 시간, 강주혁이 사무실.
새벽녘이 돼서야 주혁은 사무실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주혁은 머릿속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강하진, 강하영. 잘만 키우면 대박일 것 같긴 한데. ”
현재 강주혁이 손대고 있는 사항은 제작과 투자. 두 영역 모두 배우 캐스팅에 따라 굉장히 좌지우지되는 영역이다.
“ 내가 크게 키워서 돈 벌어봐? ”
매니지먼트는 분명 초기에 돈이 많이 들어간다. 반면 키우는 연기자가 대박이 터진다면 초기 자본에 5배. 아니 10배도 땡길 수 있다. 그리고 여배우라면 그 시장이 더 넓다.
누구보다 강주혁이 잘 알고 있었다.
거기다 그 아이들은 분명 무한한 가능성을 보였다. 어쩌면 강주혁이 끝내 이루지 못했던 진짜 정상에 올라갈지도 모를 일. 당연히 강주혁의 도움이 필요하겠지만.
“ 한 번쯤 가보고 싶긴 했어. ”
배우로서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꾼다는 그곳. 강주혁이 닿고 싶었던, 그러나 가보지 못했던 곳.
순간 강주혁의 눈이 빛났다. 그리고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런 주혁이 손바닥을 사삭사삭 비비더니 이내 노트북을 열어 서류작업을 시작했다.
“ ······이거랑, ······이거. ”
혼잣말을 뱉으며 열정적이게 무언가를 작성하는 강주혁. 그렇게 서류작업을 한 시간이 넘게 만지던 주혁이 이내 작업이 끝났는지, 기지개를 길쭉하게 켠다.
“ 끄으! 끝났다. ”
그리고 인쇄기가 종이를 뱉어내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다시 주혁의 사무실.
오피스텔로 돌아가지 않았는지, 강주혁이 소파에 널브러져 있다.
사무실의 문이 열린 건 그때였다.
-벌컥!
“ 아! ”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연 강하영이 소파에 누워있는 강주혁을 보고 놀란 것. 순간 얼음처럼 굳어버린 강하영이 숨소리 하나 없이 조용히 뒤돌아서려는 찰나에.
“ 들어와요. ”
문 여는 소리에 깬 건지 강주혁이 부스스 일어났다.
“ 죄송해요! 주무시는 줄 모르고. ”
“ 아니야. 내가 너무 잤네. 앉아요. 나 잠깐 화장실 좀. ”
잠시 뒤.
화장실을 다녀온 주혁이 강하영에게 둥굴레차를 건네며 자리에 앉는다.
“ 류성원 감독이나 최철수씨 만나봤어요? ”
“ 네. 두 분 다 좋으셨어요! ”
아침 일찍 인데도 강하영은 힘이 넘쳤다. 그 모습에 주혁은 살짝 웃음을 뱉으며 말을 이었다.
“ 물어볼 게 있어서 불렀어요. 얼굴 보고 말해야 할 거 같아서. ”
“ 아아! 말씀하세요. ”
“ 하영씨는 연기 계속하고 싶어요? ”
강하진과 똑같은 질문은 강하영에게도 던지는 주혁이었다. 그런데.
“ 네! 계속하고 싶습니다! ”
강하영의 대답은 강하진에 비해 매우 짧고 간결했다. 순간 실소가 터진 강주혁을 대신해 강하영이 한마디를 추가한다.
“ 그 사건 때문에 포기할까도 했는데, 사장님이면 믿고 연기연습 열심히 하겠습니다! ”
무슨 군대도 아니고, 뜬금없이 박력 넘치게 대답하는 강하영.
‘ 이건 뭐 더 물어볼 것도 없겠네. ’
그리고 이어서.
-벌컥.
강하진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 안녕하세······어? 언니. ”
“ 하진! ”
시간차를 두고 부르긴 했는데 강하진이 일찍 도착했다. 그래도 강하영과의 시간이 나름 짧게 단축돼서 상관없었다. 강주혁이 방금 들어온 강하진에게 자리에 앉으라는 손짓을 던졌다.
“ 앉아요. 하진씨. ”
우물쭈물 강하영의 옆자리에 강하진이 앉자마자, 주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어제 밤새 작업하던 서류 두 묶음을 그녀들 앞 탁자에 내려놓는다.
“ 읽어봐요. ”
강자매 모두 고개를 갸웃하며 서류를 집어 든다. 그렇게 몇 분 뒤. 내용을 파악한 강자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주혁을 쳐다본다. 슬쩍 웃으며 답하는 주혁이었다.
“ 계약서. 아, 하영씨는 한번 봤겠네요. ”
“ 어······ 그럼 저희 사장님 회사에서. ”
“ 진짜요?! ”
“ 맞아요. ”
‘우와!’, ‘아!’ 같은 탄성 음이 들렸다. 난리 치는 강자매를 잠시간 쳐다보던 주혁이 손을 내밀어 계약서 한 부를 다시 받아서 설명을 시작했다.
“ 계약서 자체는 이 바닥에서 쓰는 아주 흔한 표준 계약서. 대신 내용 하나를 내가 바꿨어요. ”
“ 아······ 어떤? ”
대답은 강하진이 했고, 강하영은 강하진의 어깨를 붙잡고 탁자에 놓인 계약서를 내려다본다. 그때 강주혁이 계약서의 중간쯤을 손가락을 찌른다.
“ 이 부분. ”
-제13조 (계약 기간)
강주혁이 찌른 부분은 계약 기간을 적어넣을 수 있는 항목이었다.
“ 보통 소속사에서 배우 계약을 5년을 잡아요. 길면 7년도 잡는데, 보통은 5년이야. 아 물론 더 짧게도 잡아요. 3년도 있고. ”
“ 아, 네! 알아요. ”
“ 근데 난 이 계약 기간을 1년으로 잡을 겁니다. ”
“ 네?! ”
“ 어? 왜요? ”
강자매가 한마디씩 따라붙는다. 궁금하기도 하겠지.
“ 그 대신 특별조항을 하나 넣었어요. 마지막에. ”
주혁의 말을 들은 강자매가 마치 짠 듯이 빠르게 계약서를 넘긴다. 그리고 강주혁이 말을 이었다.
“ 계약 기간을 1년으로 정한다. 계약 기간 만료 1개월 전까지 상호 간에 해지 의사가 없을 시 자동으로 1년씩 연장된다. 그러나 연기자 측, 소속사 측 둘 중 어디라도 해지 의사가 있으면 계약은 종료된다. ”
한 템포 쉬고. 다시 말을 잇는 강주혁.
“ 단, 계약 기간이 초과되었더라도, 계약 기간 중 진행하게 된 활동에 관하여는 활동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상호 간 신의성실을 다해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
물론, 계약서에 적힌 내용은 더욱 복잡하게 적혀있었지만, 강주혁이 간추려서 정리했다. 그 말을 들은 강자매는 계약서를 한번 보고, 주혁의 얼굴을 다시 쳐다본다.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이다.
그 모습에 강주혁의 입이 열렸다.
“ 쉽게 말해, 여러분들은 내가 1년동안 일을 잘못하면 나를 버리고 다른 회사로 가도 된다는 말이에요. ”
“ 아······ ”
말을 잇지 못하는 강자매를 보며 강주혁이 다음 설명을 추가한다.
“ 반대로 내가 1년동안 하영씨, 하진씨의 발전이 멈췄다고 느낀다면 역시 여러분들을 버릴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하고. ”
끝
ⓒ 장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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