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voice phishing, but it's a life reversal RAW novel - Chapter 393
등장 (4)
준비 시간으로 주어진 30분이 지난 뒤, 소극장에서 진행되는 오디션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형식은 오픈 오디션 방식, 즉, 심사위원은 물론이고, 오디션에 참가하는 배우들 모두 앞선 배우들의 연기를 볼 수 있는 것.
오디션 자체가 연극 무대형식과 같았다.
이런 연극과 같은 형식을 취한 것은 모두 존스필버그 감독의 생각이었다. 관객들이 들어산상황에서 배우의 진짜배기 연기를 보고 싶었던 취지.
어쨌든 준비 시간에 미래 뽑아놓은 순서표를 보며 진행을 맡은 주근깨 직원이 소리쳤다.
“라이언부터 시작하겠습니다! ”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배우 라이언이 자리서 일어났다. 라이언은 편한 회색 맨투맨을 입고 있었는데, 표정에는 꽤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오픈 형식의 오디션과 자신이 첫 번째 차례인 것에 짜증이 난 것.
“……쯧!”
그래도 차마 오디션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짧게 혀를 차며, 중대형 스크린이 걸린 무대로 올랐고,
“라이언. 오랜만?”
이미 무대서 대본을 쥔 채, 상대역 준비를 마친 여배우 엠마 메이가 갈색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배우 라이언에게 인사했다. 그러자 라이언이 짙은 눈썹을 추켜 올리며 작게 읊조렸다.
“메이. 잘해. 괜히 나댄다고 내 호흡 흐트러트리지 말고,”
“너는 그대로 구나?”
“시끄러워.”
이렇듯 배우끼리 짧지만, 꽤 거친 대화가 이어질 때쯤 주근깨 직원이 라이언에게 말을 던졌다.
“라이언, 대본은 보고 해도 상관없어요.”
“알았어요.”
“준비되면 언제든지 시작하세요.”
말을 마친 주근깨 직원이 무대에서 내려오자, 배우 라이언이 짧은 숨을 내뱉으며 감정을 잡았고, 뒤죽박죽 앉은 심사위원들의 시선 모두가 라이언에게 박혔다.
그러기를 10초.
“애나? 세상에 애나!”
짜증이 잔뜩 담겼던 라이언의 얼굴은 어느새, 헤어진 연인을 우연히 만난듯한 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런 그가 쪽대본을 보며 계속 대사를 쳤다.
“애나! 잠깐……빌어먹을! 몸이 안 움직여!! 애나!”
시작부터 격앙된 연기를 보이는 라이언. 곧, 그를 팔짱 낀 채 바라보던 존 스필버그 감독이 속으로 읊조렸고,
‘역시. 라이언은 호흡마다 힘이 너무 실려.’
그의 읊조림이 끝나자마자, 주변에 있던 민머리 남자가 마크 헤이스 사장에게 작게 말했다.
“여전히 라이언은 대사에 힘이 넘치네요.”
“음~ 라이언은 언제나 그랬지. 장단점이 있겠지만, 지금은 장점으로 보이는군.”
이어 라이언의 다음으로, 상대역의 여배우 엠마메이가 라이언의 호흡을 맞췄다.
“루이스, 잘 지내?”
“망할!! 애나! 당신 목소리가 잘 안 들려!! ”
‘망할’ 이라는 단어는 대본에 없었다. 라이언이 애드립으로 추가한 것. 어쨌든 라이언이 치는 대사로 소극장이 쩌렁쩌렁 울렸다. 후회와 절규가 섞인 라이언의 연기. 곧, 존 스필버그 감독이동그란 안경을 한번 들어 올렸다.
‘메이를 헤어진 연인으로 잡은 건가? 확실히 나쁘지 않아. 감정과 대사만으로 상대역을 특정되게 하는 스킬은 고급이지.’
그리고 이어지는 메이의 대사.
“루이스, 난 당신의 지금 삶이 궁금해. 어때? ”
받아치는 라이언의 독백.
“나, 나는! 내 삶은 지금 뒤죽박죽이야!! 줄곧 잔잔하다가도, 당신과 같이 자던 침대에 누우면 갑자기 폭풍이 불어!! 제발! ”
그가 치는 대사의 강세는 힘이 넘쳤다.
“마음에 바람 불고, 비도 내리고, 번개도 쳐! 에써 잔잔해진 내 마음에 술을 끼얹고! 노트북에 머리를 처박고 온종일 잠을 자도! 보이는 헛것과 들리는 헛소리는 늘어만…… 애나, 그런데도 난 살고 있어!! 그러니 제발……제발!! ”
사실, 지금 배우 라이언이 들고 있는 쪽대본은 영화 ‘Control’의 한 장면이었다. 주인공 루이스와 죽어버린 아내 애나의 모습. 환각이었다. 분명, 존스필버그 감독으로서는 이 장면에서 짜놓은 연출이 있겠지만, 그는 배우들만의 새로운 시각으로 펼치는 연기를 원했고,
“감사합니다.”
그런 새로운 시각으로 펼친 라이언의 연기가 방금 끝났다. 그와 동시에 라이언의 연기에 빠져들었던 심사위원들의 박수가 터졌고,
-짝짝짝짝짝짝!
초반과는 다르게, 배우 라이언은 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어 그의 프로필에 무언가를 적은 존 스필버그 감독.
‘라이언은 스킬이 좋아. 유력해,’
이어 자리에 앉아 있던, 주근깨 직원이 두 번째 배우 이름을 불렀다.
“다음 올랜도!”
그에 따라 살짝 키는 작지만, 얼굴 이목구비가 짙은 배우 올랜도가 무대로 올랐고, 연기를 시작했다.
“애나!! 세상에!”
올랜도의 연기는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을 만난듯한 연출이었다. 덕분인지, 올랜도의 호흡을 받아주는 상대역 엠마 메이 역시, 올랜도를 반갑게 안아주며 대사를 쳤다.
그런 올랜도의 연기에 마크 헤이스 사장이 픽웃었고,
“운이겠지만, ‘루이스’ 역의 평상시 성격과 잘 맞게 짯네.”
그러자 그의 앞에 앉은 단발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그렇죠? 좀 방정스럽긴 한데, 그런데도 딕션이 정확하네요. 괜히 연극 출신이 아니네. 어때요, 감독?”
여자의 되물음에도 존 스필버그 감독은 딱히 대답이 없었다. 대신 속으로 대답했다.
‘음~ 확실히 조금 전 라이언보다는 연기에 깊이가 있군. 연극에서 자연스레 다져진 거겠지.’
이번 배우 올랜도도 라이언과 마찬가지로 상대역의 처지가, 모습이 정확하게 그려지는 연기였다. 어쨌든 두 번째 차례였던 올랜도의 연기가 끝나고, 터지는 박수 소리는 라이언보다 조금 더 컸다.
-짝짝짝짝짝짝짝!!
거기다 심사위원들이 감탄사도 조금씩 뱉어냈다.
“오~ 좋았어요.”
“잘 봤어요, 올랜도.”
덕분에 앞 의자 등받이에 다리를 올린 라이언의 얼굴에 살짝 금이 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디션은 속행됐다.
세 번째인 배우 테일러는 주정뱅이.
“파하하하하.”
그의 연기는 심사위원들이나 모인 직원들의 배꼽을 잡게 했고, 네 번째 차례인 에반스는 그야말로 상대역 엠마 메이를 로맨틱 코미디의 여주인공을 만들어냈다.
당연하겠지만, 배우들의 연기 수준이 높았다.
어쨌든 네 번째였던 에반스의 연기를 끝으로, 코끝에 안경을 걸친 존 스필버그 감독이 손을 올려 오디션의 진행을 잠시 멈췄고.
“조금 쉬었다 가지.”
쉬는 시간을 요청했다. 당연했다. 지금까지 본 배우들의 연기에 존 스필버그 감독은 스스로 정리가 필요했기 때문.
“아- 그럼.”
곧, 넷플렉스 사장 마크 헤이스가 자리서 일어났다.
“10분만 쉬죠.”
약 1시간 뒤.
정신없이 진행되던 오디션의 마지막 주자인 배우가 연기를 마치고, 무대를 내려왔다. 즉, 공식적으로 정해졌던 8명의 배우의 연기가 전부 끝났음을 의미했고,
-짝짝짝짝짝짝!
쏟아지는 박수 소리와 함께.
“……”
작게 박수 치던 마크 헤이스 사장이 입구 쪽에 앉은 주근깨 직원을 쳐다봤다. 그러자 금방 뜻을 파악한 주근깨 직원이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살짝 고민이 든 듯, 마크 헤이스 사장이 턱을 긁었고,
“흠~ 역시, 안 오는 모양이군.”
배우 프로필을 마음에 드는 순서대로 정리하던 민머리 남자가 고개를 돌려, 작게 말했다.
“어차피 그 한국 쪽 배우는 써봤자 조단역이었잖아요. 왔어도 대충 보고 끝낼 거였는데, 이쯤 마무리 지으시죠.”
그의 말을 대각선에 앉은 단발 여자가 받아쳤다.
“같은 생각이에요. 더군다나 그 한국배우가 온다고 해서, 저 헐리웃 탑배우들 앞에서 연기나 제대로 하겠어요?”
“하하. 그렇지. 영화에서나 볼 법한 배우들이 닐려있는데, 대사나 똑바로 치려나?”
“나중에 연락 오면 작은 배역 하나 주면 얼추그림은 맞춰지겠죠.”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인원들의 생각은 대부분 ‘적당히 정리하자’ 였다. 반면, 마크 헤이스 사장은 그래도 투자사로 낀 보이스프로덕션에 예의는 지키고 싶었는지, 마지막으로 존 스필버그 감독의 생각까지 물었다.
“감독 생각은 어때요? ”
“…… 저 배우들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
그 순간.
복도가 웅성거렸고,
“응? 뭐지?”
진행을 맡은 주근깨 남자가 꽤 시끄러운 소리에 자리서 일어나, 입구 쪽으로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덜컹!
닫혔던 소극장의 문이 열렸고,
-뚜벅, 뚜벅.
키가 길쭉한 남자가 담담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곧, 소극장에 있던 존 스필버그 감독부터 심사위원들, 배우들, 직원들의 시선이 모두 남자에게 박혔다.
가장 먼저 입을 빌린 것은 마크 헤이스사장이었다.
“……저 남자.”
그러거나 말거나 등장한 남자는 소극장의 내부를 한번 쭉 훑더니, 마치 정해진 것처럼 여배우 엠마 메이가 서 있는 무대로 천천히 올랐다.
-뚜벅, 뚜벅.
곧, 그의 얼굴을 아는 심사위원들의 입이 열렸다.
“맞지? 그 남자. 직접 온 거야?”
“보낸다는 배우는? ”
“실제로 보니, 훨씬 키가 큰데?”
그들이 보는 남자의 모습은 검은색 슬랙스에 구두, 위로는 바지에 흰 셔츠를 넣었고 거기에 멜빵을 둘렀다. 추가로 어디서 구했는지, 테가 살짝 찌그러진 알 없는 안경까지.
덕분에 모였던 헐리웃 배우들 전체가 두 눈을 끔뻑였고,
“뭐야, 저 동양인, 갑자기 나타나서는 무대에 왜 올라?”
“잘생겼는데? 배운가? ”
“어이-라이언. 너는 뭐 얘기 들은 거 있어? ”
“너희들 오는 것도 몰랐는데, 내가 알겠냐?”
등등. 배우들 대부분 느닷없이 등장한 남자의 정체를 궁금해했다. 어쨌든 선명한 구둣발 소리를 내며, 천천히 무대 중앙으로 이동한 남자가 앞을 보며 자신을 소개했다.
“강주혁입니다.”
대뜸 나타난 동양인은 강주혁이었다.
그리고,
“어?”
무대 중앙에 선, 강주혁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엠마 메이의 파란 두 눈이 커졌다.
“왜……저 남자가 여길.”
눈치를 봐선, 엠마 메이가 강주혁을 아는 듯 보였고, 그쯤 자리에 앉아 있던 마크 헤이스사장이 대표로 일어났다.
“왜 당신이 직접 온 겁니까? 보낸다는 배우는?”
그의 물음에 주혁이 작게 웃으며 답했다.
“지금 당신의 눈앞에 서 있습니다. ”
“……설마.”
“예. 보낸다는 배우가 접니다. ”
그때,
뒤쪽에 앉은 배우 중,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배우 라이언이 시끄럽게 불만 섞인 고함을 질렀고,
“갑자기 나타나서 무슨 소리야! 누구야 너!”
그런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강주혁이 여유롭게 웃었다.
“네가 누군지부터 밝히는 게 순서 같은데.”
“뭐, 뭐야?!”
급작스럽게 흥분이 뒤섞인 소극장. 뒤쪽으론 방방 뛰는 라이언을 다른 배우들이 말렸고, 심사위원과 직원들은 여전히 얼이 빠져있었다.
그런 와중.
“1분. ”
내내 상황을 지켜보던 존 스필버그 감독이 어느새 무대 앞, 강주혁에게 다가가 무언가를 건네며 말했고,
“대본 볼 시간은 1분인데, 괜찮겠나?”
쪽대본을 건네받은 주혁이 존 스필버그 감독의 동그란 안경을 보며 쉽게 답했다.
“충분합니다.”
대답을 들은 존 스필버그 감독이 꽤 흥미로운 표정으로 자리로 돌아오며 심사위원들에게 말했다.
“약속했던 부분이니, 상관없겠지? ”
“……아, 뭐. 그렇죠. ”
“음.”
존 스필버그 감독의 행동으로 흥분이 섞인 소극장이 삽시간에 진정됐고,
-팔락..
받은 대본을 훑던 주혁에게 여배우 엠마 메이가 갈색 머리를 풀럭이며 다가왔다.
“강. 나를 기억해요?”
그런데 강주혁은 시선을 여전히 쪽대본에 둔 채,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미안한데, 오디션 끝나고 얘기하죠.”
말을 마친 그가 다시금 쪽대본에 적힌 대사들을 쭉 훑었다. 그렇게 그가 보낸 시간이 대충 30초.
대본에 뒀던 고개를 올린 주혁이 정면, 심사위원들에게 말했다.
“시작하겠습니다.”
곧, 존 스필버그 감독이 한쪽 눈썹을 추켜세우며 되물었고,
“벌써?”
“예. 문제가 됩니까?”
픽 웃은 존 스필버그 감독이 한 손으로 턱을 괴며 고개를 저었다.
“전혀. ”
대답을 들은 주혁이 곧장, 감정과 어떠한 인물을 꼬집어 올렸다. 캘리에게 받은, 이 영화의 시놉을 봤을 때부터 정해놓은 인물.
“후-”
메말랐고, 피폐했으며 여러 정신병을 안고 살았던 인물. 그 인물은 고독했고, 황폐했다.
언제나 강주혁의 속에 남아 있던 인물은 재밌게도 영화 ‘Control’ 의 주인공 ‘루이스’와 닮은 점이 많았다.
마치, 그 인물의 고통이 점철된 삶 자체가 이 오디션을 위한, 이 영화를 위한 예행연습이었던 것처럼.
-스윽.
곧, 인물 세팅을 마친 강주혁이 모든 감정이 배제된 눈빛으로 앞에 선 엠마 메이를 쳐다봤고,
“애나”
과거 반지하 월세방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살던, 은둔형 외톨이 강주혁이 대사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