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voice phishing, but it's a life reversal RAW novel - Chapter 47
“ OK! 잠시만 대기하겠습니다! ”
충분한 리허설이 끝난 후, 최명훈 감독의 외침으로 척살의 첫 촬영현장은 다시금 분주해졌다. 최명훈 감독과 조명, 촬영, 미술 등 주요 감독들이 모여들었고, 스크립터 역시 이에 동참한다.
스크립터는 장면마다 대사나 소품, 의상 등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지 일일이 기록하는 스텝인데, 영화촬영이 끝난 후, 편집까지 고려하면서 장면이 튀지 않게끔 신경을 써야 하기에 매우 중요하다.
“ 선배님. 좀 옆으로 이동해야겠는데요. ”
“ 그럴까? 오케이. ”
최명훈 감독이 리허설 후, 촬영 감독에게 카메라 구도 변경을 요청하고 있을 때, 폐창고 중앙에 서 있는 주연배우 하정훈에게 여러 명의 스텝이 달려든다.
-툭툭툭
스텝들이 하정훈의 얼굴을 여기저기 두드리기 시작한다. 그새 지워진 분장을 고치는 스텝을 포함하여 하정훈의 코디들까지 하정훈이 입고 있는 의상에 먼지가 묻었는지 재빠르게 털어냈고.
와중에 하정훈은 정신없이 대본을 본다.
대본은 사실상 배우의 생명줄이다. 작품에 들어간 배우가 대본을 얼마나 숙지했느냐에 따라 찍히는 그림이 하늘과 땅 차이.
“ ······귀찮게 하지 말고······, 이런 개새끼. ”
하정훈은 대본을 보며 연신 대사를 중얼거린다. 배우는 쉬는 타임마다 대본을 꾸준히 보며 각 장면의 감정선을 숙지해야 한다.
그도 그럴게. 영화촬영 자체가 시나리오 순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
대중들이 보는 영화의 첫 장면부터 차례대로 촬영을 진행하는 것이 아닌, 장소 문제와 배우들의 스케쥴, 현장 상황, 세트 등 여러 가지 부분들을 고려해서, 처음과 중간 그리고 끝 장면을 섞어서 촬영한다.
그 씬이 처음이든 중간이든 뭐든 상관없이.
오늘같이 폐창고에서 촬영이 진행된다면 한 씬만 찍고 끝내는 것이 아닌, 이 장소가 포함된 모든 씬을 촬영한다.
따라서 배우로서는 촬영하는 씬이 매번 다르므로 감정선이 튀지 않게 대본을 백번이고 천 번이고 읽을 수밖에 없다.
그래야 감독의 액션! 소리에도 자연스럽게 매 씬마다 감정을 이어가며 연기할 수 있으니까.
“ 아, 투자자님 오셨어요? ”
여기저기 뛰어다니던 조감독이 가만히 촬영현장을 지켜보던 강주혁을 발견하고는 꾸벅 인사를 한다.
“ 네. 문제없어 보이네요. ”
“ 옙! 문제없습니다! ”
척살에 참여한 스텝들 대부분이 강주혁을 ‘투자자님’이라고 부르지만, 강주혁도 이제는 정정하기를 포기한 모양이다.
“ 그럼! ”
조감독이 강주혁에게 꾸벅 재차 인사를 하고 어디론가 뛰어갔고,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주혁은 다시금 촬영현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 오랜만이네. ’
실로 오랜만이었다. 정신없는 촬영현장. 긴박감과 기대감이 공존하는 미묘한 공기.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이는 스텝들과 배우들.
‘ 뒤에서 보니까 뭔가 기분이 묘하다. ’
항상 영화촬영의 중심에 있던 주혁이 한걸음 떨어진 곳에서 촬영현장을 보니 퍽 기분이 남달랐다. 근데 그게 또.
‘ 뭐, 나쁘진 않네. ’
나름 괜찮은 모양. 가만히 촬영현장을 눈에 담던 주혁이 이번에는 서로 대사를 맞춰보는 배우들에게 눈을 돌렸다.
하정훈부터 시작해서, 류진주, 강하진, 그리고 강주혁이 꽂은 조연들. 이 폐공장 씬은 엔딩과 밀접한 장소이기도 하고, 주요 배우들이 모두 등장하는 씬이기도 했다.
‘ 배우들 분위기도 좋고. ’
텃세라는 게 배우들에게도 존재한다. 사실 사람 사는 곳이야 어디든지 텃세가 존재하겠다만, 특히 이쪽 바닥이 선후배 관계가 심해서, 주혁도 조금은 걱정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크게 튀는 배우들은 없다.
‘ 이제 좀 친해졌나? ’
거의 모든 배우들이 한 손에는 커피를 한 손에는 대본을 들고, 대사도 맞추고, 대화도 나누면서 본 촬영을 기다리고 있다. 그 와중에 강하진이 하정훈을 비롯해 류진주 그리고 조연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슬쩍슬쩍 웃는 게 보였다.
그 모습에 강주혁이 미소를 지을 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 사장님. 언제 오셨어? ”
“ 아, 형. ”
추민재 팀장이었다.
“ 오실 거면 아침에 출발할 때 같이 이동하지 그랬어? ”
“ 뭐하러. 첫 촬영인데 사장까지 따라오면 하진씨 저 성격에 퍽이나 긴장 안 하겠네. ”
“ 그래서 따로 온 거구만? ”
“ 그렇지. 하진씨는 어때? ”
“ 잘해. 적응도 빠르고. 따지고 보면 생짜 신인인데, 좀 괴짜 같으면서도 캐릭터 재미있다 야. ”
하긴 좀 특이하긴 하지. 강주혁이 팔짱을 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 애 캐릭터만 놓고 보면 너보다 재미있는데? 사장님 한창 잘나갈 때보다 더 크는 거 아니야? ”
“ 뭔 소리야 이 양반아. 당연히 더 커야지. 한 3배는 키우자고. ”
“ 3배? 아니 너보다 3배나 크게 키우라는 게 말이야 말 밥이야? ”
“ 해보자구. 여튼 나갑니다- 파이팅 하시고. ”
“ 헤이. 사장님. 배우들한테 인사는 안 하고? ”
놀라 소리친 추민재 팀장에게 주혁은 미소 띤 얼굴로 손을 흔들면서 촬영현장을 벗어났다.
이어서 차에 오른 주혁은 곧바로 다큐 독립영화 팀에 전화를 걸며 운전을 시작했다.
“ 아! 사장님. ”
“ 감독님 별일 없으시죠? ”
“ 그럼요! 덕분에 문제없이 촬영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진씨 첫 촬영인데 굉장히 떨립니다. ”
“ 하하하. 배우가 떨려야지, 감독님이 떨면 안 되죠. 잘하실 겁니다. 오늘 배급사가 정해져서 전화 드렸습니다. ”
“ 예?! 배급사요? 사장님이 그것까지 해주신 겁니까? 그건 저희가 해야······ ”
강주혁이 핸들을 돌리며 답했다.
“ 뭐, 투자한 입장에서 영화가 잘되면 저도 좋은 거니까요. ”
“ 혹시 어딘지 여쭤봐도. ”
“ VIP픽쳐스요. ”
“ 아 VIP······어? VIP픽쳐스? 제가 아는 VIP픽쳐스 말씀하시는 겁니까?! ”
“ 아마도 맞지 않을까요? 저도 오늘 아침에 확정 전화 받은 거라 빠르면 오늘 안으로 연락 갈 겁니다. 계약 잘 확인하셔서 진행하시면 돼요. ”
“ 아! 예!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
“ 아니요. 오늘 하영씨 잘 부탁드립니다. ”
이후로도 류성원 감독은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뱉으면서 전화가 마무리됐다.
-부웅
어느새 주혁의 차는 고속도로에 진입했고, 그와 동시에 주혁은 홍혜수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 응. 사장님. ”
“ 어. 누나. 어때? 거기 공기 좋지? ”
“ 말도 마. 나 완전 힐링 중이잖아. 경치도 좋고. ”
“ 어?! 사장님이죠? 저도 바꿔주세요! ”
홍혜수 팀장과 통화 중, 바로 옆에 있었는지, 강하영의 목소리가 끼어든다.
“ 사장님! ”
“ 하영씨. 어때요? 할만해요? ”
“ 완전 좋습니다! 감독님들도 좋으시고! 할머님도 너무 잘해주셔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
그러니까 군대냐고. 강주혁이 슬쩍 웃으면서 답한다.
“ 그래요. 잘하고 와요. ”
“ 네! 팀장님 바꿔드릴게요! 으익!”
“ 어머! 하영! 괜찮아? 앞을 보고 걸어 앞을! ”
그 와중에 넘어졌는지 어쨌는지, 홍혜수 팀장의 우려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 아, 여긴 괜찮아. 사장님. ”
“ 알았어. 올라올 때 운전 조심하시고. ”
“ 응. 하영아! 조심······”
-뚝!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주혁은 ‘못 말린다’ 정도의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착한 사무실(보이스 프로덕션).
오는 도중에 주혁은 황실장에게 대략적인 현재 상황을 전해 들었다. 현재 FNF엔터 사장의 뒤를 캐고 있고, 곧 윤곽이 잡힐 거 같다는 답변.
곧 보고를 올리겠다는 말을 끝으로 황실장은 전화를 끊었고, 주혁은 전화를 끊자마자,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집었다.
김재황 사장에게 받을 것을 찾아야 했다.
“ 지금 상황에 가장 이득이 될 만한. ”
돈이나 기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해창전자 김재황 사장에게만 받을 수 있는, 아니. 김재황 사장이 아니면 받을 수 없는 게 필요했다.
-타칵타칵!
검색어는 해창전자.
역시 굴지의 국내 탑 대기업이라 그런가? 정보량이 어마어마했다. 주혁은 검색창의 옵션을 바꿔가며 필요 없는 정보는 날렸다.
그렇게 줄였음에도 정보는 넘쳐났고, 덕분에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 음? ”
멈칫.
스크롤을 내리던 주혁의 손이 멈췄다. 그리고 이어지는 클릭. 나타난 내용을 보며 주혁이 턱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 흐음- 이거 괜찮은데? ”
주혁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사무실의 문이 열린 건 그때였다.
-끼익
느닷없이 사무실 문이 열린 탓에 검색에 열중하던 주혁의 시선이 곧장 문 쪽으로 꽂혔다.
-타박타박
이어서 아이 한 명이 사무실로 걸어들어왔다.
“ ······안녕하세요. ”
“ 너?! ”
김재황 사장의 아들 김재욱이었다.
“ 너가 여길 어떻게 왔어? ”
“ 변호사님에게 여쭤봤어요. ”
그렇지. 장수림 변호사는 강주혁의 사무실을 한번 방문한 적이 있었다. 대충 이해한 주혁이 김재욱을 유심히 쳐다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 너 혼자 왔냐? 그 변호사라도 대동하든지, 누구든 같이 다녀. 너 진짜 그러다 훅 간다. 니네 아버지가 너 걱정해서 그러는 건데, 반항은 그렇다 치고 니네 아버지가 너 지키려는 건 이해해줘야지. ”
“ ······ ”
“ 그래서. 왜 왔어? ”
“ ······저”
“ 왜 왔냐고. ”
“ ······저 연기가 하고 싶어요. ”
응?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 뭐? 지금 뭐라고. ”
“ 배우가 하고 싶습니다. ”
배우라니. 지금 들은 말이 사실인가 싶어, 주혁이 김재욱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김재욱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허. 그래. 배우야 하고 싶을 수 있다.
문제는 재벌가 아들씩이나 되는 애가 왜 배우를 하고 싶어서 하는 거지?
살짝 당황스러운 마음에 입을 다문 강주혁 대신 김재욱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배우가 하고 싶었어요. 어릴 때부터. 엄마도 TV에 제가 나오면 좋겠다고 좋아해 주셨는데.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부정적으로 생각하세요. ”
“ 그래서? ”
“ ······그때 저를 구해주셨을 때, 저한테 움직이지 말라고 소리치셨잖아요? 진짜 영화 보는 줄 알았어요. 너무 멋있고, 대단했어요. ”
말을 마친 김재욱을 주혁은 천천히 위아래로 훑는다. 큰 키에 비율도 좋고, 정확한 이목구비. 확실히 탈은 좋았다.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강주혁이 말이 없자, 김재욱이 대뜸 열성적으로 변했다.
“ 뭐, 뭐든지 할게요. 청소하라면 하고, 시키는 거 전부 할게요! 3년이든 5년이든 배우만 시켜주시면 진짜 제가! ”
“ 안돼. ”
“ ······ ”
강주혁의 단칼에 순간 열성적이던 김재욱의 말문이 막혔다.
“ 안돼. 돌아가. ”
“ 전 정말! ”
“ 안돼. ”
“ ······ ”
단호한 주혁의 얼굴을 약간 울먹이며 쳐다보던 김재욱은 결국 발길을 돌렸다.
“ 후- ”
다시 텅 빈 사무실에 남은 주혁은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
‘ 배우가 하고 싶습니다. ’
그리고 머릿속으로 방금 전 김재욱이 터트렸던 말을 되새겨본다.
“ 나 어릴 때 첫 작품 오디션 볼 때 했던 말이랑 똑같네. ”
혼잣말을 뱉은 주혁이 피식한다. 그리곤 이내 다시 검색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다음날, 느지막한 오후.
강자매들과 팀장들이 모두 사무실로 모였다. 강주혁의 부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팀장들은 만나자마자, 티키타카를 시작했다.
“ 어머. 민재야. 그새 얼굴이 상했네. 아- 아니네. 어제랑 똑같네. 내가 헷갈렸어. ”
“ 아줌마. 주름에서 스키 타도 되겠어. 왜 이렇게 굴곡진 거야. ”
“ 뭐야! 너는 뭐 없는 줄 아니! ”
“ 왜 소리를 질러! ”
“ 너는 지금 속삭였냐! ”
“ 하- 그만. ”
그들의 티키타카는 강주혁의 한숨과 한마디로 종결됐다. 여전히 씩씩거리곤 있지만. 주혁은 씩씩거리는 팀장들을 못 말린다는 듯 쳐다보다, 이내 A4용지 두 장을 강자매들에게 내밀었다.
멀뚱히 팀장들이 짐승처럼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던 강자매들이 종이를 집어 들더니 고개를 갸웃한다.
그리고 강하진이 먼저 강주혁에게 물었다.
“ 사장님. 이거······ 대본인가요? ”
“ 맞아요. 둘 다 똑같은 거야. 그냥 인터넷에 떠도는 대본인데, 가장 첫줄 한 번씩 해볼래요? 배경은 대학교. 주인공은 신입생. 먼저 하영씨. ”
강주혁의 큐사인이 떨어지자, 강하영이 냅다 대사를 친다.
“ 안녕하세요! 선배님! 신입생 조보라입니다. 제가 원하는 학교에 올 수 있어서 정말 기뻐요! ”
“ 오케이. 됐어요. 이번엔 하진씨. ”
강하진도 이에 질세라 나름 바로 대사를 던진다.
“ 안녕하세요. 선배님. 신입생 조보라입니다! 제가 원하는 학교에 올 수 있어서! 정말- 기뻐요. ”
‘ 확실히 다르네. ’
힘을 주는 포인트도 다르고, 강세와 느낌이 확 다르다.
같은 대사지만, 성격이 다른 캐릭터가 보였다. 덕분에 결정하기가 편해졌다.
“ 음. 됐어요. 이제. ”
“ 어······ 끝이에요? ”
“ 응. 원랜 대사 다 시켜볼 참이었는데. 그럴 필요 없겠어요. ”
조용히 A4용지를 탁자에 내려놓는 강자매들을 뒤로하고 주혁은 팀장들에게 앞으로 나올 법카와 승합차에 대해 전달했고, 현재 스케쥴을 파악한 후, 저녁 식사를 마치고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다시 조용해진 사무실.
“ 후- ”
주혁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몸을 움푹 기댄다. 그러면서 앞에 놓인 핸드폰을 집어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꽤 빨리 끊어졌다.
“ 김재황 사장님. ”
“ 누군가. ”
“ 접니다. 강주혁. ”
“ 오. 그래. 보상을 결정했나 보지? ”
“ 네. 뭐. 그것도 있고, 드릴 말씀도 있는데. 혹시 뵐 수 있습니까? ”
“ 그래. 그럼 오늘 3시간 뒤에 그때 그 집에서 보지. 차를 보내줘? ”
“ 아닙니다. 이번에는 제 차로 가죠. ”
“ 알겠네. ”
-뚝!
전화를 끊은 주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위에 올려진 핀배지와 영수증을 챙겼다.
3시간 뒤.
시간에 맞춰 아파트에 도착한 주혁은 대충 차를 주차하곤 아파트 입구로 향했다. 그러다 입구 바로 앞에 김재황 사장의 운전기사와 경호원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친다.
강주혁이 반사적으로 인사를 던졌다.
“ 안녕하세요. ”
-꾸벅
그들은 딱히 말없이 강주혁에게 그저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할 뿐이었다.
그렇게 그들을 스치면서 주혁은 경호원에 가슴팍을 다시 한번 확인해본다.
‘ 역시 똑같아. ’
가슴팍에 달려 있는 핀배지는 역시 주혁이 가지고 있는 핀배지와 같은 모양이었다.
잠시간 그의 가슴팍을 쳐다보던 주혁은 이내 아파트 입구를 통해 복도로, 그리고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띵동.
저번과 같은 곳이지만, 이번에는 벨을 눌렀다. 그러자 벌컥! 하고 문이 열렸고, 장수림 변호사가 강주혁을 반겼다.
“ 아, 오셨습니까? 사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
“ 네. ”
장수림 변호사의 안내를 따라, 신발장에서 구두를 벗던 주혁은 거실을 보자마자, 좀 놀랐다.
집 안 분위기가 저번과는 사뭇 달랐다.
김재황 사장과 그의 아들 김재욱이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TV를 보고 있는 모습. 영락없는 부자지간의 모습이었다.
“ 아, 왔군. 이쪽으로 앉지. ”
한창 TV를 보던 김재황 사장이 소파에서 일어나 주방 식탁으로 주혁을 안내했다.
“ 너 TV 그만 보고, 들어가서 공부해. ”
그 와중에 김재욱에게도 잔소리를 던졌다.
-드륵
잔소리를 던지던 김재황 사장은 김재욱이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끝까지 확인하곤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주혁도 의자를 빼서 자리에 앉는다.
“ 그래. 뭘 줄까? ”
밑도 끝도 없이 묻는 김재황 사장. 그래. 어차피 서로 말끔하게 줄 것은 주고, 받을 건 받고 끝낼 사이다. 따라서 주혁도 무심하게 대답했다.
“ 제가 좀 찾아보니까, 이번에 해창전자에서 새로 나온 핸드폰. 마케팅으로 15부작 3시즌짜리 웹드라마 제작 준비하던데. 그거 여주 자리 저 주십쇼. ”
“ 그러지. ”
1초 컷. 너무 쌈빡해서, 솔직히 주혁의 말문이 살짝 막혔지만.
‘ 이 정도면 하나 더 받아낼 수도 있겠는데. ’
그래서 다시 바로 말을 던졌다.
“ 그리고 신제품 노트북 광고. 비연예인으로 가는 거. 그것도 주십쇼. ”
비연예인 광고. 일반인 모델의 경우 기업으로서는 광고료 절감과 함께 소비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간다는 명목과 모델보다는 제품을 주인공으로 만들고 브랜드를 확실히 인식시키는 것이 주목적이다.
강자매들의 인지도는 어차피 일반인에 가깝다. 따라서 주혁은 출연료 따위는 제쳐두고, 작품과 인지도를 올리는 것에 치중했다.
그것이 웹드라마와 광고였던 거고.
사실, 해창전자가 기획하고 진행한다면 어마어마한 지원자가 몰리는 것이 사실이다. 거기다 해창전자니까 지원도 확실하고, 후방사격도 깔끔할 것이다.
거기서 배역을 따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
‘ 하지만 사장이 한마디 던지면 다 끝이지. ’
그리고 그의 대답은.
“ 그렇게 하지. 3년으로 줄게. ”
역시나 쌈빡했다.
‘ 그룹 내 최정상급이라 그런가 쌈빡하네. ’
“ 자, 그럼 일어날까? ”
싱긋 웃으며 김재황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 주혁이 그를 멈춰 세웠다.
“ 아, 한가지 알려드릴 것도 있는데요. ”
“ 알려줄 것? ”
“ 네. ”
“ 뭔가? 말해보게. ”
일어나려던 김재황 사장이 다시금 자리에 앉았다. 그러면서 강주혁의 말을 기다리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나 주혁은 바로 입을 열지 않고, 옆에 서 있는 장수림 변호사를 쳐다본다.
“ 자리 좀 비켜주시죠. ”
“ 하하하. 그 친구는 괜찮아. 내 변호사 겸 비서라 들어도 상관. ”
“ 아니요. 가능하면 사장님만 들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독대를 신청한 이유는 단순했다. 자기 아들이 관여된 김재황 사장 빼곤 믿을 수가 없었다. 거기다 망치든 남자가 주혁의 얼굴도 봤기에.
‘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
“ ······ ”
하지만 김재황 사장이 쉽사리 지시를 내리진 않았다. 덕분에 주혁은 한마디를 추가했다.
“ 사장님 아들, 김재욱이 관련된 사항입니다. 매우 중요한. ”
“ ······흠. 장변. 나가 있어. ”
장수림 변호사가 살짝 놀란다.
“ 사장님! ”
“ 나가 있어. ”
“ ······알겠습니다. ”
-덜컥!
반듯한 자세로 서 있던 장수림 변호사는 현관문을 열어 밖으로 나갔고, 그 모습을 확인한 김재황 사장이 이내 입을 열었다.
“ 자, 됐지? 말해보게. ”
팔짱을 낀 김재황 사장을 보며 주혁이 살짝 웃으며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잠시만. 어- 여기 어디. 아, 여기 있네. ”
-탁!
주머니를 뒤적거리던 주혁이 식탁 위에 핀배지를 올렸다.
“ 뭔지 알아보시겠습니까? ”
끝
ⓒ 장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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