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voice phishing, but it's a life reversal RAW novel - Chapter 5
써먹을 수 있다. 방금 전화가 끊긴 핸드폰을 손에 쥐고 강주혁이 뱉은 말이었다. 그는 잠시간 끊긴 핸드폰을 쳐다보다가, 벽에 걸린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은 새벽 6시를 조금 넘긴 시간.
그리고 강주혁이 이번에 보이스피싱에서 선택한 키워드는 ‘새벽 2시 30분’.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판단하면 이 키워드는 미래의 ‘새벽 2시 30분’에 일어나는 일을 알려준 거다.
“ 그렇다면. ”
강주혁이 짧게 말하며 방금 보이스피싱이 말해준 내용을 떠올렸다.
[ 탁월한 선택! 강주혁 님이 선택한 키워드는 ‘새벽 2시 30분’입니다! ] [ ‘새벽 2시 30분’! 번리와 토트넘이 격돌합니다! 경기 시작 전부터 모두 토트넘의 승리를 확신하지만, but! 체력 안배를 위한 서호민선수가 결장하고, 경기 후반 번리소속 크림스 우즈와 실리 반스 선수가 차례로 골을 터트리면서,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번리 승리! ]이번에도 보이스피싱은 해외축구 관련 미래를 알려줬다. 해외축구, 프리미어리그에 번리라는 팀과 토트넘이 격돌한단다.
“ 서호민이 결장? ”
강주혁이 말한 서호민 선수는 한국인으로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몇 안 되는 훌륭한 선수. 그런 선수가 체력 안배를 위해 결정하고, 이어서 번리소속 선수 두 명이 연달아 골을 넣으면서 번리에 승리로 끝.
그렇다면 보이스피싱이 말한 그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고 강주혁은 판단했다. 실제로 방금 TV로 본 첼시와 에버턴의 경기가 진짜로 보이스피싱이 말한 대로 흘러갔으니까.
생각을 정리한 강주혁은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내려놓고, 노트북을 켰다.
‘새벽 2시 30분’이라는 시간을 알고 있지만, 내일 하는지 아니면 다음 주에 하는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기에 일정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잠시간에 부팅시간이 끝나고, 노트북이 바탕화면을 토해낸다. 강주혁은 곧바로 인터넷에 접속했다. 인터넷에 접속하자 노트북 화면은 검색사이트가 켜진다.
깜박이는 커서, 그 커서가 있는 검색창에 강주혁은.
-토트넘 일정
을 적고서 엔터를 때렸다. 그러자 검색사이트는 빠르게 결과를 뱉어낸다. 토트넘의 경기일정이 차례대로 보기 좋게 정리되어 읽기가 편했다.
그런데 스크롤을 아래로 내릴 필요가 없었다. 가장 상단, 가장 첫 줄에 표시된 경기일정에 강주혁의 시선이 꽂혔다.
– 02:30 번리 vs 토트넘
가장 첫 줄에 표시되는 ‘새벽 2시 30분’ 경기. 진짜로 있었다. 그리고 그 경기가 시작되는 날은.
내일이었다.
“ 내일 새벽에 한단 말이지? ”
경기일정을 확인한 강주혁이 검지로 노트북을 툭툭 쳤다.
그렇게 5초 정도 생각에 빠졌던 강주혁이 이내 생각을 정리했는지, 경기일정을 검색했던 인터넷 창을 내리고, 새로운 창을 켰다.
똑같은 검색사이트가 켜졌지만, 이번에 강주혁이 친 검색어는 방금과 달랐다. 그 검색어가.
-스포츠토토
강주혁이 엔터를 치자, 검색사이트가 스포츠 토토 공식 사이트를 뱉어낸다.
“ 프로토 승부식이었나? ”
프로트 승부식(스포츠 경기에 승부를 예측하여 맞추는 일종의 복권, 경기마다 배당률이 있고, 승부를 맞추면 그 배당률에 따라 당첨금을 받는다.)
강주혁이 한창 활동하던 시절. 심심하면 바뀌어대는 로드 매니저 중 토토를 광적으로 하는 친구가 있었다. 이름은 자세히 기억 안 나지만, 강주혁은 당시 그와 함께 프로토 승부식을 몇 번 했던 것을 떠올렸다.
물론, 강주혁이 프로토를 한 건 끽해봐야 두세 번. 그래도 한가지는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 결과만 알고 있으면 당첨이야 쉽지. ”
복권이란 건 결과를 모르기 때문에 어렵다. 하지만 결과를 알고 있다면? 갈 길이 매우 쉬워진다. 그리고 그 결과를 지금 강주혁은 알고 있다.
그러니 지금 확인해볼 것은 배당률.
강주혁은 토토 공식 사이트에 접속하여 번리와 토트넘에 경기의 배당률을 곧장 확인할 수 있었다. 내일 경기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 배당률이.
– 02:30 번리 vs 토트넘 (경기 전)
배당률:번리 승(6.71), 무(3.65), 번리 패(1.35)
번리 승으로 6.71이었다. 꽤 높은 배당률. 하지만 프로토는 한 경기만 배팅할 수가 없다. 적어도 두 경기. 최소로 두 경기에 배팅해야만 가능하다.
그것을 알고 있는 강주혁은 번리와 토트넘의 배당률 바로 밑에 적혀있는 다른 경기를 확인했다.
– 02:30 허더즈필 vs 울버햄턴 (경기 전)
배당률:허더즈필 승(5.95), 무(3.20), 허더즈필 패(1.21)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하는 다른 경기. 비록 팀이름은 익숙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번리와 토트넘이 메인이고, 이건 그냥 배팅을 위한 곁다리 경기일 뿐이니까.
강주혁은 잠시간 배당률이 표시된 노트북 화면을 보면서 생각에 빠졌다. 배팅할 경기들은 정해졌다. 어차피.
(번리 승, 허더즈필 승), (번리 승, 무승부), (번리 승, 허더즈필 패).
이런 식으로 배팅하면 하나는 맞을 거다. 문제는 프로토를 사려면 집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 인터넷으로 사도 되지만, 그렇게 되면 배팅금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배팅금이 적으면 당연하게 당첨금도 줄어든다.
그러니까 나가서 사야 한다. 다 안다. 다 알고 있는데 순간 두려움이 엄습한다. 머리론 이해하는데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
“ 아오. 씨 ”
그게 쉬웠으면 진작에 나갔을 거다. 쉽지 않기에 반지하 월세방에 박혀 살았던 거겠지.
정신병이란 게 그렇다. 탁 보기엔 멀쩡해 보여도 속은 썩어있다. 무형의 두려움이 항상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강주혁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굳건하게 닫혀있는 현관문을 쳐다봤다. 문을 열고 나갈 생각을 하니까 벌써 울렁거린다. 그러다.
“ 푸후- ”
내뱉는 짧은 한숨. 이어서 강주혁이 양손으로 푸석한 얼굴에 마른세수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어두침침한 방안을 한번 휘 둘러본다. 그렇게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돈다. 그러다 멈칫.
방을 둘러보던 강주혁이 주머니에 두 손을 쑤셔 박고는 터벅터벅 화장실 쪽으로 움직여 화장실의 문을 연다. 그리고 불을 켠다.
화장실의 불을 켜자, 주황 불빛이 퍼진다. 그리고 화장실 안 정면에 배치된 네모난 거울에 강주혁의 모습이 비친다.
단발이라 봐도 무방한 긴 머리, 사극에서나 볼법한 까끌까끌하게 자란 수염, 늘어진 티셔츠, 생명 꺼진 반바지.
한때 연예계를 호령하던 잘빠진 강주혁이 아니었다. 거울에 비친 남자는 그저 먹고, 자고, 싸는 애니멀. 동물이었다. 절대 그 누구도 강주혁이라 생각하지 못할 거다.
그 애니멀같은 모습이 비치는 거울을 보던 강주혁의 입이 열렸다.
“ 빨리 치고빠져? ”
빨리 치고빠지기. 강주혁이 힘겹게 내린 결론이었다. 물론, 힘들겠지. 사람들과 마주치는 순간, 또다시 이름 없는 두려움이 강주혁을 스멀스멀 침범할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 기회가 보이는데 놓치는 건 병신이니까. ”
기회를 잡는 게 어려운 이유는 보이지 않아서다. 눈앞에 있음에도 놓치는 게 허다하다. 강주혁 역시 정상급 배우의 반열에 올랐음에도 수많은 기회를 놓쳐왔다.
강주혁이 놓친 기회를 다른 배우가 엉겁결에 잡아 하늘로 훨훨 날아오르는 것을 보고, 땅을 치며 후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기회인 줄 알고 잡았더니, 기회의 탈을 쓴 위기인 적도 많았다. 그만큼 온전한 기회를 잡는 건 지랄같이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 강주혁에게는 그 잡기가 지랄같이 힘들다는 기회가 매일 전화로 들린다. 병신이 되긴 싫다. 강주혁은 마음을 단단하게 먹었다.
이어서 강주혁은 크게 숨을 한번 들이마시고는 입고 있던 옷들을 벗어 던지고, 나뒹구는 츄리링 바지와 후드집업, 검은색 롱패딩을 대충 걸친다.
그 롱패딩을 걸친 채로 다시 노트북을 집어 들고, 집주변의 토토 판매점에 위치를 파악한다. 다행히 강주혁이 사는 월세방 주변으로 복권 전문 판매점을 포함해서, 편의점, 슈퍼 등 토토를 살 곳은 많았다.
강주혁은 판매점의 위치 지도를 보이스피싱이 오는 하얀색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은 뒤, 굽혔던 허리를 폈다. 이어서 바닥에 떨어져 있던, 마스크와 모자를 푹 눌러썼다. 침대에 나뒹구는 지갑도 챙겼다.
지갑을 한번 펴보니 지갑 안에 강주혁도 몰랐던 돈 만이천 원이 들어있다. 개그 치냐? 강주혁은 슬쩍 웃으면서 지갑을 패딩 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끼리릭
현관문이 오랜만에 열린 탓에 녹슨 소음을 뱉어낸다. 강주혁은 열린 문틈으로 몸을 천천히 비집고 나온다. 이윽고.
-덜컹
복도로 완전히 나와버린 강주혁의 등 뒤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5년 만에 외출이었다.
강주혁의 월세방 주변. 시간은 1시.
은행에서 현금을 뽑고, 강주혁은 곧장 토토 판매점을 돌았다. 핸드폰으로 찍어온 지도 사진을 보면서 최대한 빠르게 움직였다. 그럼에도 여기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판매점 9곳을 돌아야 했으니까.
강주혁이 가진 전 재산 98만 원. 강주혁이 걸어야 할 게임은 총 3게임.
(번리 승, 허더즈필 승), (번리 승, 무승부), (번리 승, 허더즈필 패).
한게임당 30만 원씩 총 3게임으로 90만 원을 배팅했다.
한 판매 점당 배팅할 수 있는 금액은 10만 원. 해서 총 9곳을 돌았다. 그의 롱패딩 주머니에는 지금 총 9장에 토토 영수증이 들어있다.
그 영수증을 주머니에 넣고, 강주혁은 빠르게 집으로 귀가한다. 다행히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다시 돌아온 그의 월세방.
집에 다시 돌아온 강주혁은 옷을 입은 채로 침대에 나자빠졌다. 너무 긴장하며 돌아다닌 탓에 온몸이 한 10시간은 뛴 것처럼 무거웠다.
그렇게 강주혁이 나자빠져 있기를 10분. 쥐죽은 듯이 누워있던 강주혁이 부스럭부스럭 패딩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난다.
패딩을 대충 벗고, 모자와 마스크고 벗겨낸다. 그리고 화장실에 가 손을 대충 씻고, 다시 침대로 돌아와 노트북을 켰다. 받을 금액을 대충 계산해보자는 생각에서였다.
노트북이 부팅을 끝내고, 바탕화면을 토해내자 강주혁은 곧바로 토토 공식 사이트에 접속해 자신이 오늘 배팅한 게임의 배당을 확인한다.
– 02:30 번리 vs 토트넘 (경기 전)
배당률:번리 승(6.71), 무(3.65), 번리 패(1.35)
– 02:30 허더즈필 vs 울버햄턴 (경기 전)
배당률:허더즈필 승(5.95), 무(3.20), 허더즈필 패(1.21)
보이스피싱의 말대로라면 번리의 승리는 확정. 그러면 배당률이 6.71. 거기에 곁다리 경기는 허더즈필의 패라고 생각했을 때 배당률이 1.21.
6.71과 1.21을 곱하면 8.1 정도 나온다.
30만 원을 배팅했으니, 당첨금은 대충 250만 원 선. 하루 만에 150만 원을 번 셈이다.
물론, 강주혁에게 150만 원은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겠으나, 그건 예전 잘나갈 때나 얘기다. 지금의 강주혁에게는 150만 원을 하루 만에 번 게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결과가 대충 나오자, 강주혁이 다시금 벌러덩 침대에 누워버린다. 그의 눈에 칙칙한 천장이 보인다.
“ 내일은 또 어떤 걸 알려줄래나. ”
보이스피싱이 내일은 어떤 미래를 알려줄지 심히 기대되는 표정이다. 그런 표정을 머금고 강주혁이 침대에서 리모컨을 찾기 시작했다.
예정에도 없던 외출을 감행하고 왔으니, 이젠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낼 참이었다.
다음 날 아침.
강주혁이 순간적으로 번뜩 눈을 뜬다. 이어서 입이 열린다.
“ 경기 어떻게 됐지? ”
강주혁은 축구 경기를 보지 않았다. 관심도 없거니와 그저 결과만이 중요했다. 그래서 그냥 자버렸다. 일어나서 결과만 확인하면 그뿐이니까.
그가 말을 끝내자마자, 곧장 노트북을 켜서 검색사이트에 프리미어리그 경기결과를 검색했다.
-탁
짧게 엔터를 치니 노트북이 경기결과를 토해낸다.
– (승리) 번리 2 : 1 토트넘
역시 보이스피싱의 말대로 번리가 승리했다. 강주혁의 입가에 슬쩍 웃음이 번진다. 그런데.
– (승리) 허더즈필 1 : 0 울버햄턴
“ 이거? ”
강주혁이 곁다리로 배팅한 경기에 허더즈필이 승리한 것이 눈에 띄었다.
“ 잠깐만. ”
순간 강주혁의 몸짓이 빨라졌다.
“ 이렇게 되면 배당률이. ”
그가 빠르게 토토 공식 사이트에 접속해 배당률을 확인했다.
– 02:30 번리 vs 토트넘
배당률 : 번리 승(6.71)
– 02:30 허더즈필 vs 울버햄턴
배당률 : 허더즈필 승(5.95)
경기가 끝난 탓에 토토 공식 사이트에서는 이미 프로토의 적중결과만이 표시됐다.
배당률을 확인한 강주혁이 계산기를 켰다.
“ 6.71 곱하기 5.95 ”
그가 곱하기를 누르자, 계산기는 빠르게 답변을 내놓았다.
“ 39.9? ”
강주혁은 39.9라는 결과값에 배팅금 30만 원을 곱했다. 계산기는 이번에도 빠르게 답변을 내놓는다.
-11,970,000
“ 천이백만 원? ”
강주혁의 당첨금은 어제 예상했던 250만 원이 아니었다.
천만 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끝
ⓒ 장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