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voice phishing, but it's a life reversal RAW novel - Chapter 54
척살의 부둣가 로케 촬영은 결국 이틀로 이어지면서, 배우, 스텝 포함 전 인원이 촬영장 주변 숙소를 잡아 하루를 보내야 했다.
당일 강하진을 책임졌던 강주혁은 최명훈 감독과 상의하여 강하진 역시 숙소를 잡아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촬영을 진행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류진주와 강하진이 붙는 씬은 오전부터 시작되는데 다음 장면에서 갑자기 날이 어두워진다면 씬이 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준비를 마친 강하진을 데리고 주혁은 촬영장을 다시 찾았다. 이른 아침임에도 부둣가 야외 촬영장에는 스텝들이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촬영준비가 한창이다.
“ 하진씨. ”
“ 네. ”
“ 스텝들이나 진주한테 말하고 갈 테니까, 잘하고 있어요. 나 광고제작사랑 미팅 때문에 서울 잠깐 다녀올게요. ”
“ 아, 네. 잘하고 있을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
담담하게 대답하는 강하진을 보면서, 주혁은 나름 애쓰고 있구나 싶었다. 그래도 불안한 건 사실.
‘ 직원을 빨리 뽑아서, 로드라도 둬야겠어. ’
전반적인 스케쥴은 추, 홍팀장들이 보더라도, 이런 급한 미팅이 잡힐 때, 연기자들을 봐줄 수 있는 로드라도 뽑는 게 시급했다.
“ 강하진씨 도착했습니다! 하진씨 이쪽으로. ”
촬영장에 나타난 강하진을 보고, 어느새 나타났는지 조감독이 크게 소리치며 강하진을 이끌었다.
“ 가봐요.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하고. ”
“ 네. 다녀오세요. ”
꾸벅 인사를 하곤 조감독과 분장팀 쪽으로 걸어가지는 강하진을 보던 주혁은 이내 시선을 돌리며 최명훈 감독을 찾았다.
최명훈 감독은 어제와 똑같이 모니터 앞에 앉아, 연신 하품을 하며 대본을 훑고 있었다.
“ 졸려 죽겠죠? ”
대뜸 들린 목소리에 놀란 최명훈 감독이 뒤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 아! 사장님. 언제 오셨어요? ”
“ 하하. 방금요. 오늘 첫 씬부터 빡빡하던데요? ”
“ 네. 죄송해요. 제가 그림 욕심낸다고, 하루면 뺄 거를 이틀이나 쓰네요. ”
“ 뭐, 죄송할 거 있나요. 현장 총 책임자가 찍자면 찍는 거지. 그보다 제가 지금 미팅 때문에 좀 빠져야 하는데, 하진씨 좀 신경 써주세요. ”
“ 하하하. 우리 핵심 배우님인데 제가 신경 쓰지 누가 신경 씁니까. 걱정말고 다녀오세요. ”
여자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 선배님! ”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메이크업을 끝낸 류진주가 길쭉한 다리로 타박타박 걸어오고 있다. 그 모습에 주혁이 살짝 놀랐다.
‘ 여배우는 여배우구만. ’
같이 작품을 할 때나, 주혁이 활동을 할 때는 잘 몰랐는데, 막상 한 발짝 물러난 상태에서 바라보니 또 다른 느낌이 풍겼다.
“ 오랜만이다. ”
“ 진짜요. 너무 오랜만이에요. ”
“ 안 그래도 문자 하나 보내려고 했는데. ”
“ 어? 진짜요? ”
“ 응. 하진씨 좀 돌봐달라고. ”
“ 하진이? 왜요? 어디 가요? ”
강주혁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 미팅. ”
짧게 대답한 주혁이 고개를 돌려 최명훈 감독에게 다시금 말을 던졌다.
“ 감독님. 저 갑니다. 오다 보니까 저기 한식집 큰 거 하나 있던데, 150명 넉넉하게 전부 말해놓을 테니까, 가서 식사하세요. 계산은 걱정하지 마시고. ”
“ 알겠습니다. ”
최명훈 감독과 짧게 악수를 끝낸 주혁이 걸어가다 류진주를 스치며 잠시 한마디를 던졌다.
“ 하진씨 잘 부탁해. ”
“ 알겠어요. 걱정 마요. ”
그녀의 대답에 한결 마음이 편해진 주혁이 슬쩍 미소로 화답하며 다시 걸었다. 그러다.
우뚝.
네 걸음 정도 걷다 멈춰선 주혁이 이상했는지 류진주가 고개를 갸웃했고, 대뜸 강주혁이 돌아섰다.
“ 아 맞다. 야. 어제 보니까 너 연기 좋더라. ”
간단히 말을 던지고선 주혁의 발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류진주는 입을 샐쭉 내밀고선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프로덕션클릭 사무실.
이번 해창전자의 노트북 광고를 진행할 제작사 프로덕션클릭의 위치는 양재역 주변이었다. 인천 촬영현장에서 곧장 양재로 달린 주혁은 건물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곤 바로 광고사의 사무실로 움직였다.
엘리베이터에 표시된 프로덕션클릭은 14층과 15층 총 두 개 층을 모두 사용하고 있었고, 광고사 측에서는 주혁에게 15층 2회의실로 오라 했기에 주혁은 주저 없이 15층을 눌렀다.
-띵
어느덧 엘리베이터는 15층에 도달했고, 스르륵 문이 열렸다. 그러자 복도 없이 바로 사무실이 펼쳐졌다.
‘ 사람이 적네. ’
사무실의 크기에 비해 사람이 거의 없었다. 잘못 온 게 아닌가 싶을 만큼 휑한 느낌.
일단,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주혁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 여깁니다! ”
휙 돌아본 곳에는 흰색셔츠에 목 끝 단추를 간편하게 풀은 남자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강주혁이 그를 알아채곤 움직이자, 남자가 안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어쨌든 주혁은 남자가 사라진 쪽으로 움직였다.
-끼익
닫힌 문을 열자, 안에는 총 4명의 사람이 앉아있다. 남자 둘에 여자 한 명. 그리고 방금 주혁을 불렀던 남자가 일어나 주혁에게 손을 내밀었다.
“ 반갑습니다. 자초지종은 해창전자에서 전부 들었어요. 제가 총괄 기획자(AE / 광고기획자) 박장수라고 합니다. ”
“ 보이스 프로덕션 강주혁입니다. ”
그렇게 박장수와 강주혁의 맞잡은 손이 놓이자, 순간 침묵이 흘렀다. 그런데 제작팀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무언가 참고 있는 듯한. 입꼬리가 씰룩거린다. 그 모습에 주혁이 피식했다.
“ 편하게 말씀하세요. 그렇게 하시면 제가 더 불편합니다. ”
순간 얼어붙었던 분위기가 누그러지면서,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한 번씩 마주 보더니 이내 여자 직원이 벌떡 일어나 강주혁에게 다다닥 달려왔다.
“ 강주혁씨! 저, 저 진짜 팬이거든요? 사인 좀 부탁드려도 돼요?! 회의 다 끝나고. ”
“ 네. 뭐. 소문 안 좋은 퇴물배우 사인이라도 괜찮으시면. ”
“ 와하하. 진짜 처음 이 얘기 들었을 땐, 안 믿었는데. 진짜일 줄이야. 저희 해창전자에서 강주혁씨랑 미팅할 때 비공개로 하라고 해서, 15층 전부 비웠습니다. ”
사인을 원하던 여자 직원 바로 뒤에 서 있는 약간 호리호리한 남자가 현재 15층이 왜 이렇게 휑한 것인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의 설명이 끝나자, 처음 강주혁을 불렀던 박장수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 강주혁씨 엔터 하시는 거예요? 아,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 이 미팅에서 일어난 일은 전부 함구하기로 해창전자와 합의했습니다. 계약서에 비밀유지 조항도 들어가 있어요. ”
“ 아니, 뭐. 여러 가지 합니다. ”
“ 하하하. 그러시군요. ”
그때 전부 일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앉아있는 뚱뚱한 남자가 투덜거렸다.
“ 거- 뭔 대단한 사람 왔다고, 빨리 진행이나 합시다. 시간 없어요. ”
그러자 여자 직원이 획 돌아서 뚱뚱한 남자를 째려봤다.
“ 주황구 피디님. 사람 앞에 대고 무슨 말씀을. ”
“ 아니요. 괜찮습니다. 진행하시죠. ”
강주혁이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자리에 앉았고, 뚱뚱한 남자, 아니 주황구 피디가 짧게 혀를 찼다.
그런 주황구 피디를 주혁이 유심히 쳐다봤다. 뭐, 이 바닥이야 별의별 인간이 널렸지만, 혹시 과거에 본 적이 있는 사람인가 싶어서였다.
‘ 기억에 없는데. 뭔데 나대지 쟤는. ’
-스윽
그때 총괄 기획자가 주혁에게 스토리보드와 광고 대본을 내밀었다.
“ 확정 시안입니다. ”
두 가지를 받아든 주혁은 일단, 대본을 둘째치고, 스토리보드를 먼저 확인했다.
대충 스토리의 느낌은 수능을 앞둔 딸에게 아버지가 노트북을 선물한다. 여기까지는 훈훈한데, 갑작스레 딸이 선물 받은 노트북을 바닥에 내팽개쳐버린다. 그리고선 갑자기 춤을 추고.
분위기는 난데없이 병맛으로 전환된다.
딸이 한차례 병맛 춤을 추면 아버지가 싱긋 웃으며 뒤 춤에 숨겨놨던 해창전자의 노트북을 건넨다. 그때야 병맛 춤을 추던 딸은 춤을 멈추고 노트북을 보며 화사한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화면전환. 해창전자 로고와 노트북 카피.
솔직히 주혁은 그림으로 그려진 스토리보드만으로 웃음이 터질뻔했다. 그때 총괄책임자가 설명을 덧붙였다.
“ 1분, 30초, 15초로 총 3가지 버전으로 뽑을 겁니다. 그와 같은 컨셉의 광고로 총 3편의 시리즈로 찍을거구요. 한 달 정도 단위로 보시면 됩니다. ”
“ 그렇군요. ”
이어서 여러 가지 설명이 보충됐지만, 딱히 큰 문제점은 보이지 않았다. 충분히 재미있는 컨셉이었고, 어쩌면 꽤 이슈가 될 수도 있다는 느낌을 받은 주혁이었다.
이후부터는 현실적인 얘기가 오갔다. 모델의 출연료, 촬영 일정, 기간, 계약 등 얘기를 나눴고, 계약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광고 촬영 시기는 물론, 어느 정도 협의는 있어야겠지만, 약 2주 뒤.
“ 수고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제작팀에서 따로 연락이 갈 겁니다. 거기에 맞춰서 스케쥴 조정하시면서 진행하시죠. ”
“ 알겠습니다. ”
미팅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자, 아까 팬이라던 여자 직원이 다시금 사인 요청을 했고, 사인하면서 주혁은 광고사 직원들과 이것저것 사담을 나눴다.
해창전자와는 어떤 사이인지, 자기네들 회사를 좋게 말해달라는 말과 감독은 이미 결정됐지만, 이 자리엔 안 나왔고 충분히 능력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얘기도 나왔다.
적당히 얼버무리며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광고사를 나온 주혁은 주차장으로 향했다.
-띠딕
곧장 차에 오른 주혁은 시간을 확인했다.
“ 오래 걸렸네. ”
예상보다 미팅이 오래 걸려서, 살짝 마음이 다급해진 주혁은 곧장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그새 박기자에게 문자가 와있었다.
-미친 박기자
-얼추 자료 정리는 끝났다. 곧 방송 탈 거야. 방송이 먼저 나가고, 두 번째로 우리가 터트릴 거다. 최화진 씨는 니 말대로 했으니까 걱정마라. 그리고 너의 대한 곁다리 기사, 대충 구상 잡아서 보낸다. 확인해보고 괜찮으면 그걸로 갈게.
문자에는 첨부파일이 달려있다.
바로 파일을 확인해볼까 하다, 기다리고 있을 강하진이 떠오른 주혁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시동을 걸었다.
전화가 울린 건 그때였다.
♬띠리리 띠리리링 띠리리 띠리리링!!!
확인해보니 발신자는 추민재 팀장이었다.
“ 어. 형. 확인해봤어? ”
“ 케이블 전체 방송사 다 쑤셔봤는데, 걸리는 게 없다? 케이블 맞아? 공중파 아니냐? ”
아니. 분명 보이스피싱에서는 케이블이라고 알려줬다. 공중파일 리가 없었다.
“ 아니야. 공중파는. ”
“ 음. 사실 편성 받고, 대본 돌리고 있는 과정이면 이게 소문이라도 돌아야 하는데. 개뿔 없어. 아무것도. ”
그렇다면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다는 것.
“ 형. 그럼. 여기저기 떡밥 좀 뿌려놔. ”
“ 어. 안 그래도 만나는 사람마다 전부 약 좀 쳐놨다. 아마 정보 뜨면 방송사 인간들 빼곤 제일 빨리 알 수 있을 거야. ”
역시 추민재 팀장. 확실히 인맥도 두텁고 눈치가 빨랐다.
“ 오케이. 아, 형 그럼 지금 바로 인천으로 좀 넘어가. 하진씨 촬영하고 있으니까. 봐주면 돼. ”
“ 알았다. 그 드라마 정보 나오면 바로 보고 올릴게. ”
-뚝.
다행히 타이밍이 딱 맞았다. 인천으로 움직이려던 주혁은 목적지를 바꿔 사무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각, 어느 케이블 방송사 국장실.
꽤 나이 들어 보이는 남자가 머리 아픈 일이 있는지, 끼고 있던 안경을 벗어 책상에 올리면서 눈과 눈 사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준다.
그때 사무실의 문이 열리며 적당한 흰색셔츠에 명찰을 맨 남자가 들어왔다.
“ 국장님. 부르셨다고. ”
“ 어. 태우야. 앉아. ”
국장의 손짓에 태우라 불린 남자는 머쓱한 자세로 국장실 소파에 자리했다. 그보다 뒤늦게 상석에 앉은 국장이 남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 너 지금 한창 대본 찾고 있겠다. 그치? ”
“ 예. 뭐. ”
“ 그럼 네가 ‘신입사원 박원태’ 끝나면 그 뒤로 미니 바로 들어가라. 금토. ”
“ 예?! 아니 그걸 왜 제가 들어갑니까? 그거 송호 선배가 들어간다면서요? ”
“ 아니. 그냥 니가 들어가. ”
느닷없는 지시에 남자는 머리를 감싸 쥐며 외쳤다.
“ 아니. 국장님. 그거 이제 6부 남았는데 갑자기 무슨. 그리고 저 내년 상반기 월화편성 주신다면서요. 저 그거 하나 보고 지금 계속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뭔 말도 안 되는 말씀이세요. 송호 선배는요? 준비하던 거 있잖습니까! ”
“ 후- 야. 내가 오죽하면 이러겠냐? 내 죄다 내 죄야. ”
“ 아니. 국장님. ”
“ 최작가가 송호랑은 죽어도 못하겠단다. 해외로 도망쳤어. ”
“ 예?! ”
국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 모습에 남자가 되물었다.
“ 엎어진 거, 저더러 땜빵 하라는 겁니까? ”
“ 야야. 땜빵은 무슨. 그냥 나 좀, 아니. 다 같이 좀 살자는 거지. ”
“ 그게 그 말이잖습니까! ”
“ 그럼 어떡하냐. 너밖에 없는데 지금. ”
“ 아니. 하······. 국장님 지금 앞에 거 6부 남았어요. 언제 작품 골라서, 작가 미팅하고, 언제 찍습니까? 말이 안 되잖아요. 그리고 그때 TVL이랑 HTVM, 대작 들어가서 싸움 붙인다고 최작가랑 송호선배 붙인 거잖아요? 최작가 없이 지금 비비기나 하겠습니까? ”
국장이 양손을 모으며 남자를 지긋이 쳐다보며 나긋나긋하게 말을 던졌다.
“ 그러니까 그냥 적당한 거 골라서 적당히 찍고, 적당히 내보내. 어떡하냐 급한 불부터 꺼야지. 이번만 네가 좀 해라. 앞에 6부 남은 거 끝나면 단막 몇 개 넣어서 시간 벌어볼 테니까. ”
“ 아니. 그러니까 그게 말이. ”
“ 이것만 잘 봐주면 내가 내년 하반기에 네가 원하는 편성 잡아줄게. 좀 다 같이 살자. ”
“ 하······ ”
“ 대본 너무 좋은 것도 필요 없어. 그냥 대충 공모전이나 어디 도는 거 잡아서 진행해봐. 욕먹을 정도만 아니고 앵간하면 다 사인해줄게. 그리고 앞에 ‘신입사원 박원태’ 끝나면 거기 붙어있던 키스텝들 전부 네가 데리고 해. ”
결국, 해야 될 분위기였다. 까라면 까야 되니까.
남자는 말 없이 머리를 쥐어뜯었지만, 더는 말을 뱉진 못했고, 오직 지금까지 봤던 대본 중 괜찮았던 게 뭐가 있었는지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기 바빴다.
한 시간 뒤, 척살 촬영장.
아침 일찍부터 시작된 로케 둘째 날의 촬영은 어느새 중후반부로 접어들고 있었다.
“ 컷! 아, 정훈씨 좋아요. 좋은데 다른 구도로 한 번만 더 가겠습니다. ”
걱정스러웠던 하정훈의 연기문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누가 봐도 대단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회복됐고, 그에 따라 최명훈 감독도 이 기세를 몰아, 빠르게 일정을 쳐내고 있었다.
그렇게 하정훈의 단독 샷이 끝났고, 다음 장면을 위해 조연들이 대거 투입됐다. 본 촬영 전 리허설을 진행하고 있을 즈음.
촬영장에서 조금 떨어진 주변으로 송사장과 VIP픽쳐스 직원들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촬영에 방해되고 싶지 않다는 듯 조심스럽게.
“ 아, 딱 좋을 때 도착했네요. ”
VIP픽쳐스의 최혁 팀장이 어디서 뽑아왔는지, 커피를 송사장에게 건네며 말을 걸었다.
“ 아, 감사합니다. 오늘 로케 촬영에 주요 주연, 조연 전부 담으니까, 홍보자료로 딱 좋을 겁니다. ”
-찰칵! 찰칵!
이미 최혁 팀장과 같이 온 직원이 연신 현장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영화 촬영계획표 상으로 반 이상은 쳐냈기에 VIP픽쳐스도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
그때 받아든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던 송사장이 최혁 팀장에게 질문했다.
“ 오늘 뭐뭐 하신다구요? ”
“ 아, 일단 보도 자료 돌릴 사진이랑 배우들 간단한 인터뷰 하고 감독님 인터뷰 딸 겁니다. ”
이해했다는 듯, 송사장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에 촬영장에서 최명훈 감독의 외침이 들렸다.
“ 하이- 액션! ”
사인이 떨어지자, 본 촬영에 들어간 촬영장을 사진 찍던 직원이 더욱 빡세게 셔터를 눌러댔다.
그와 동시에 하정훈을 포함한 조연 배우들이 감정을 주고받는다.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이어지는 액션씬. 장면을 지켜보는 모든 이의 침이 바짝바짝 마른다.
그만큼 격동적이고, 생동감이 넘쳤다.
“ 와. 이거 그림 진짜 좋은데요? ”
가만히 지켜보던 최혁 팀장이 극찬했다. 이미 송사장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 그럼요. 저 배우들 누가 뽑은 건데. 이 정돈 나와야죠. ”
“ 이걸 어떻게 사진에 담아. 아직 티저도 안 나온 거 영상 찍을 수도 없고. ”
최혁 팀장이 머리를 긁으며 행복한 고민을 시작했고, 송사장은 어느새 팔짱을 끼곤 촬영장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액션씬이 끝나고, 이어진 컷. 오케이.
격동적인 분위기를 이어서, 류진주가 등장했다.
“ 워······ ”
사진을 찍던 직원이 난데없이 탄성을 자아냈다. 그 소리를 들은 최혁 팀장이 직원의 등짝을 날렸다.
“ 야! 정신 차려. 찍어. 계속 찍어. ”
“ 아, 네. 와 근데 어떻게 저렇게 지저분한 분장을 했는데도 사람이 예쁠 수가 있을까요? ”
“ 괜히 탑 여배우겠냐. 빨리 찍기나 해. ”
흐트러졌던 정신을 다잡은 직원이 다시금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고, 동시에 류진주의 원샷 독백 장면이 시작됐다.
팔짱을 끼고 진지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송사장이 혀를 내둘렀다.
“ 이 장면. ”
“ 예? ”
“ 지금 진주씨 원샷에 독백 치는 이 장면. 영화관에서 보면 진짜 끝내주겠는데요. ”
“ 그러니까요. ”
“ 곧. 하진씨 등장하는데, 묻힐까 걱정되는데. ”
“ 아, 그 강주혁 사장님네 친구 말이죠? ”
사실이 그랬다. 류진주는 그만큼 말로 표현 못 할 무언가로 주변을 압도했다. 그게 아름다움이든 아우라든 뭐든 간에.
그게 너무 태가 나니까, 오히려 강하진이 걱정된 송사장이었다.
이후 송사장과 최혁 팀장은 계속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긴 했지만, 대체로 배우들의 연기와 영화 자체의 분위기를 보며 감탄과 탄성이 대부분이었다.
바로 그때.
“ 하진씨 준비하겠습니다! ”
때마침 메이크업과 분장을 마친 강하진의 등장이 어어 졌고.
“ ······ ”
“ ······ ”
그 청초한 모습에 송사장과 최혁 팀장이 입을 다물었다. 오직 사진을 찍던 직원만이 입을 열었다.
“ ······와. 대박 ”
끝
ⓒ 장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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