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voice phishing, but it's a life reversal RAW novel - Chapter 6
강주혁은 멍청하게 1200만 원에 가까운 결과값을 내뱉은 계산기를 쳐다봤다. 대박이었다. 그러면서.
“ 천 이백만 원이라고? ”
다시 한번 말을 내뱉는다. 애초 예상했던 250만 원에 4배가 넘는 금액. 갑자기 불어난 당첨금에 강주혁은 어안이 벙벙했다.
강주혁의 시선이 노트북 화면에서 옆에 놓인 하얀색 핸드폰을 옮겨간다. 저 핸드폰에서 걸린 보이스피싱이 오늘 강주혁에게 1200만 원을 벌어다 줬다.
그런 핸드폰을 쳐다보면서 강주혁이 말한다.
“ 빨리 울려라. ”
이제는 기대감까지 솟았다. 아직 전화가 울리진 않았지만, 분명 오늘 안에 울린다. 지금까지 보이스피싱은 하루도 빠짐없이 왔으니까.
강주혁은 슬쩍 웃으면서, 다시 노트북 화면을 향했다. 토토 공식 사이트를 내리고, 새로운 인터넷 창을 열었다.
새롭게 열린 인터넷 창에 검색사이트가 출력된다. 강주혁은 커서가 깜빡이는 검색창에 글자를 치기 시작했다.
-토토 당첨금 수령
검색어를 완성한 강주혁이 강하게 엔터를 때렸다. 곧이어 검색사이트가 결과를 뱉어낸다. 쭉 펼쳐지는 결과를 강주혁이 대충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 은행 가야 되네. ”
강주혁은 길게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처박는다. 결과적으로 은행에서 당첨금을 받을 수 있었다. 어제 그렇게 힘겹게 외출을 감행했는데, 또 나가야 한다니.
강주혁은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다시 한번 핸드폰을 내려다본다.
“ 어째, 자꾸 나를 밖으로 내보내는 거 같은데. ”
실제로 제일 처음 보이스피싱이 왔을 때 들었던 어떤 특정 인물의 사망에 대한 미래 예지 같은 건 상관없으나, 이렇게 토토 같은 미래 예지는 자꾸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 어느 정도 각오를 해야 하나. ”
어찌 됐건 토토는 판매점에서 사야 배팅이 완료되고, 당첨되면 은행을 가야 돈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자꾸 보이스피싱이 토토를 유도한다면 강주혁은 외출을 감행할 수밖에 없다.
“ 누가 대신 안 해주나. 이런 거. ”
강주혁의 짧은 한탄. 내가 지시를 내릴 테니, 당신이 좀 사다 주시오. 같은 느낌을 원했다. 하지만 5년 동안 방에 틀어박혀 산 강주혁에게 그런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다.
강주혁은 별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하니 8시 30분. 어차피 갈 거면 사람이 그나마 없는 시간대인 은행 오픈 시간에 갈 생각을 한다.
역시나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롱패딩을 대충 걸친다. 이어서 자고 바로 일어나서인지 하늘로 승천할 듯 삐죽 솟아있는 머리에 검은색 모자를 푹 눌러주고, 여전히 까끌까끌하게 자란 수염을 가릴 마스크를 쓴다.
이어서 강주혁이 다시 현관문의 손잡이를 잡았을 때, 다시 이름 모를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래도 어제보단 좀 괜찮았다. 은행만 다녀오면 된다 싶었으니까.
그런 생각에 강주혁은 이미 푹 눌러진 모자를 한층 더 깊게 눌러 쓴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었다.
집주변 은행 앞.
강주혁은 은행에 도착하자마자, 이상함을 느꼈다. 은행 문이 굳건하게 닫혀있었기 때문이다. 그 굳건하게 닫혀있는 문을 보며 강주혁은.
“ 뭐지? ”
그러다 순간.
“ 아, 오늘! ”
하며 패딩 주머니에서 하얀색 핸드폰을 꺼내어 오늘 요일을 확인한다. 핸드폰이 표시하는 요일은.
“ 이런 씨ㅂ······토요일이네. ”
토요일이었다. 워낙에 집에 박혀만 살아서 그런지 요일 감각이 무뎌진 탓에 오늘이 토요일인지도 몰랐다.
강주혁은 오른쪽 관자놀이와 왼쪽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짧게 혀를 찬다. 혀를 차는 소리가 끝나서야 강주혁은 몸을 돌려 은행을 뒤로했다. 다시금 집으로 가는 길에 강주혁은 패딩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들었다.
지갑 안에는 어제와 같은 만이천 원이 들어있다.
“ 라면이나 사갈까. ”
하지만 도중에 생각을 바꿨다. 주말이 지나면 1200만 원이 들어온다. 돈을 받으면 더 비싼걸 사 먹어야겠다는 마음에서였다.
그렇게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온 강주혁은 본인의 집에 현관을 열자마자, 자신이 사는 집에 냄새가 고약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게 그렇다. 집에 박혀 살 때는 냄새에 적응이 되니까, 별 느낌이 안 드는데. 막상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면 순간 자기가 사는 집에 냄새를 느낄 수 있는 것처럼.
강주혁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면서.
“ 쓰레기나 좀 버려야겠네. ”
곳곳에 쌓여있는 쓰레기봉투, 그마저도 쓰레기봉투의 공간이 부족하면 일반 봉투 안에 쓰레기들이 쌓여있다.
집으로 돌아온 강주혁은 롱패딩을 벗어, 침대에 휙 하니 던져놓고, 오랜만에 쓰레기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 시간은 6시 30분.
침대에 자빠져서 TV를 보면서도 강주혁의 시선이 자꾸 옆에 놓인 핸드폰으로 향한다. 어째선지 오늘 핸드폰이 잠잠하다.
“ 종잡을 수가 없네. ”
말 그대로 전화가 오는 타이밍이 종잡을 수 없었다. 어떨 땐 아침에 오고, 어떨 땐 새벽에 오고, 오늘은 지금까지 전화가 없다. 그리고.
“ 왜 하필 나지? ”
이쯤 되니까, 강주혁은 문득 의문이 떠올랐다. 지금까지야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왜 이 보이스피싱이 자신에게 걸려오는지 궁금해졌다. 그럼에도.
“ 확인할 방법이 없어. ”
확인할 방법이 없다. 보이스피싱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왜 오는 것인지. 미래를 어떻게 다 알고 있는지. 그리고 왜 하필 강주혁인지.
그런 생각을 내뱉던 강주혁은 에라 모르겠다 같은 심정으로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다시 TV로 시선을 옮겼다.
바로 그때였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띠리리링!!!
♬띠리리링 띠리리링 띠리리링!!!
강주혁이 시선을 돌리자마자,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핸드폰이 울림과 동시에 쭉 늘어져 있던 강주혁은 다리와 허리를 쭉 당기면서 자세를 고치고서는 핸드폰을 집었다.
*070-1004-1009
번호는 역시 늘 보던 번호였다. 기다렸던 보이스 피싱. 강주혁은 통화를 터치하고, 곧장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곧장 강주혁의 고막에 여자 목소리가 꽂힌다.
[강주혁 님은 ‘무료 서비스’를 이용 중입니다! ] [남은 기간은 총 3일! ‘무료 서비스’ 기간을 만끽하세요!] [‘무료 서비스’ 중에는 미래 기간설정이 임의로 설정될 예정이니, 참고하세요!] [‘무료 서비스’를 경험하며 인생역전의 발판으로 삼으시길 기원합니다! ] [계속 들으시려면 1번, 수신 거부는 2번을 눌러주세요. ]“ 3일. ”
강주혁은 3일이라는 남은 일수를 입으로 짧게 읊조리며 1번을 눌렀다.
-띠익
[들으실 항목의 키워드를 ‘선택’해주세요! ] [1번 ‘저녁 7시 30분’, 2번 ‘저녁 7시 50분’, 3번 ‘새벽 5시 47분’, 4번······ ] [ 다시 듣기는 #버튼을 눌러주세요. ]“ 뭐가 이렇게 애매해. ”
강주혁은 키워드 ‘저녁 7시 30분’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키워드들의 시간이 애매하다고 느꼈다. 그러면서 노트북을 켰다. 왜 노트북을 켰는가 하면, 보이스피싱에서 내뱉는 키워드들을 검색해볼 생각이었다.
노트북이 켜지자마자 강주혁은 인터넷에 접속했다. 검색창이 뜨고, 검색창에
-오늘 축구
를 치고 엔터를 쳤다. 저번에도 축구를 알려줬으니 키워드 중의 하나는 축구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리고 보이스피싱에는 다시 듣기 #을 눌렀다. 끊어지면 큰일이다.
#을 누르니, 보이스피싱에서는.
[들으실 항목의 키워드를 ‘선택’해주세요! ] [1번 ‘저녁 7시 30분’, 2번 ‘저녁 7시 50분’, 3번 ‘새벽 5시 47분’, 4번······ ] [ 다시 듣기는 #버튼을 눌러주세요. ]멘트가 반복됐고, 축구라고 검색한 검색사이트에는 오늘의 축구 일정이 주룩 표시됐다. 그중 해외축구는 꽝이었다. 애초에 새벽 경기가 많아서, 키워드 시간인 ‘저녁 7시 30분’에 잡힌 경기는 없다.
나는 해외축구는 패스하고, K리그에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 그중에.
“ 있네? ”
-7:30 전북 vs 제주 (경기 전)
오늘 남은 경기일정은 ‘저녁 7시 30분’에 딱 하나 잡혀있었다.
곧바로 토토 사이트에 접속해서 배당률을 확인했다. 배당률이 똥배당이다. 강주혁은 가뿐하게 키워드 ‘저녁 7시 30분’를 거르기로 했다.
이제 남은 키워드는 ‘저녁 7시 50분’, ‘새벽 5시 47분’. 두 개 중 어떤 걸 선택해야 할까?
그러다 문득, 강주혁은 첫 번째 보이스피싱에서 들었던 신인배우를 떠올렸다. 그 친구도 늦은 새벽녘에 사망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에 ‘새벽 5시 47분’도 왠지 걸러야 할성싶었다.
남은 건 ‘저녁 7시 50분’.
강주혁은 나름 계산해서 나온 답인 키워드 2번 ‘저녁 7시 50분’을 눌렀다.
-띠익
[ 탁월한 선택! 강주혁 님이 선택한 키워드는 ‘저녁 7시 50분’입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이어서 여자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 ‘저녁 7시 50분’! 용인에 있는 행복 초대박 로또 점에서 강순철 씨가 ‘저녁 7시 50분’ 751회차 로또 5장을 사고, 로또 점 옆길로 들어서자마자, 로또 한 장을 바닥에 떨어트립니다! 아차! 그 로또를 5분 뒤 김진구 씨가 줍게 되는데요? 그 로또 한 장의 당첨금이 김진구 씨의 인생을 바꾸게 되고, 이 이야기는 웹상에 퍼져 화제를 불러일으킵니다! ]-뚝
그렇게 보이스피싱이 끊겼다. 강주혁의 입이 곧장 열린다.
“ 로또라고? ”
그것도 로또 번호를 줄줄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김진구라는 사람의 인생이 바뀐다는 내용. 그런데.
“ 751회차가 언제지? ”
강주혁은 곧장 로또 검색을 때렸다.
-750회차 당첨번호.
저번 주가 750회차였다. 그럼 이번 주가 751회차. 그렇다면 지금 보이스피싱이 알려준 미래는 오늘, 그것도 한 시간 뒤?
멍하게 노트북을 보며 생각을 정리하던 강주혁의 입이 다시 열렸다.
“ 떨어져 있는 5분 안에 내가 주우면? ”
섬광처럼 스쳐 지나간 생각에 강주혁은 급하게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은 6시 40분.
남은 시간은 1시간 남짓. 강주혁은 급하게 검색창에 용인 행복 초대박 로또 점을 검색했다. 다행히 용인 기흥 쪽에 있다는 지도 표시가 떴다. 강주혁이 사는 반전세 월세방은 분당 미금역 주변.
원래 같으면 40~50분은 걸릴 거리다. 즉.
“ 시간이 없다. ”
시간이 부족했다. 강주혁은 곧바로 침대에 걸쳐진 롱패딩을 걸치고, 현관으로 달렸다. 달리는 와중에 롱패딩에 지갑이 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지갑은 롱패딩에 그대로 있었다.
대충 신발을 구겨 신고, 현관문을 곧바로 열었다. 일단 택시를 잡는 것이 급선무였다.
도착한 행복 초대박 로또 점. 시간은 7시 43분.
좀 막히긴 했지만, 다행히 로또 점에 제시간에 도착했다. 강주혁은 로또 점에 도착하자마자 다급하게 지갑에서 그나마 있던 만이천 원 중 만 원짜리 한 장을 택시기사에게 건넸다.
‘잔돈은 괜찮습니다.’라고 급하게 말하며 택시에서 내린 강주혁은 횡단보도를 건너서 행복 초대박 로또 점에 옆길을 파악했다. 그리고 그 주변은 살짝 서성거리며 시간을 죽였다. 이윽고 7시 50분이 되자.
“ 수고하세요. ”
하며 행복 초대박 로또 점에서 중년의 남성이 걸어 나왔다. 강주혁은 재빨리 골목길에 주차돼있는 차 뒤에 몸을 숨겼다.
이어서 보이스피싱에서 말한 강순철이라는 이름을 가진 중년남성은 강주혁이 숨어있는 골목길로 들어섰다.
중년남성은 골목길에 들어서자마자, 로또 여러 장을 주머니에 쑤셔 넣는데.
-팔락
한 장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 바닥에 떨어진 로또를 보자마자 강주혁이.
‘ 진짜 떨어졌다. ’
속으로 외쳤다. 차마 입을 열진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중년남성은 로또를 떨어트리는지도 모른 채 점점 골목길 저 끝으로 사라진다.
완전히 멀어진 중년남성을 확인한 강주혁은 차 뒤편에서 빠져나와 바닥에 떨어진 로또를 집어 든다.
-4, 14, 20, 30, 33, 41 (자동)
로또에는 번호가 한 줄로 적혀져 있다. 번호를 확인한 강주혁이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한다.
-7시 55분.
그가 시간을 확인하자마자.
-뚜벅뚜벅
강주혁의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강주혁이 돌아보니, 퍼런색 패딩을 입은 20대 중반쯤 돼 보이는 남자가 강주혁을 지나친다.
‘얘가 김진구? ’
김진구라고 예상되는 20대 중반 남자는 강주혁을 한번 힐끔 쳐다보고는 영혼 없이 다시 갈 길을 간다.
남자가 멀어지자, 강주혁은 보이스피싱이 알려줬던 미래를 다시금 떠올렸다.
[ 강순철 씨가 로또 점 옆길로 들어서자마자, 로또 한 장을 바닥에 떨어트립니다! 아차! 그 로또를 5분 뒤 김진구 씨가 줍게 되는데요? 그 로또 한 장의 당첨금이 김진구 씨의 인생을 바꾸게 되고······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강주혁은 회심의 미소를 살짝 지으면서 골목길에서 빠져나왔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려는 찰나에 한가지 생각이 강주혁을 관통한다.
‘ 이게 당첨번호가 확실하면, 좀 더 사도 되지 않나? ’
강주혁은 급하게 지갑을 열었다.
“ 이 천원······ ”
지갑에는 이천 원이 들어있다. 강주혁은 지갑에서 돈을 꺼내 들고 시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7시 56분
강주혁은 곧장 로또 판매점으로 뛰었다.
끝
ⓒ 장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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