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voice phishing, but it's a life reversal RAW novel - Chapter 69
“ 아? 그래. 번호를······뭣?! ”
추민재 팀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상태였다. 반대로 홍혜수 팀장은 꽤 여유로운 표정으로 추민재 팀장을 올려다봤다.
“ 어머. 민재야. 너 앉으나, 서나 눈높이가 똑같네? ”
그렇게 다시금 티키타카가 시작되려는 찰나에 주혁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 누나. 헤나 번호를 알아? ”
“ 응. 알아. ”
“ 어떻게 알아? ”
“ 음- 설명하자면 좀 길어. 사장님 그때 그렇게 되고 내가 좀 떠돌았어. 프리랜서로. 그즈음 걔가 배우로는 신인이었거든? 그때 연기 레슨을 좀 봐줬지. ”
주혁이 팔짱을 끼며 되물었다.
“ 그럼 못해도 5년인데. 번호가 바뀌어도 수십번을 바뀌었을 시간인데? ”
그러자 홍헤수 팀장이 미소를 머금었다.
“ 글쎄. 걔가 년 단위로 안부 문자를 보내던데? 번호가 바뀔 때도 보내주고. 걔 연기 레슨 봐준 게 끽해봐야 1년인데, 나한테 감동을 한 거지. ”
어느새 자리에 앉은 추민재 팀장이 콧방귀를 뀌었다.
“ 헹! 어쩐지 헤나 걔 딕션 따박따박스러운 게 어디서 많~이 들어봤더라니. ”
“ 호홍. 고마워. 민재야. ”
가만히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주혁이 팔짱을 풀며 홍혜수 팀장에게 시선을 던졌다.
“ 가장 최근에 연락된게 언제야? ”
“ 어- 한 넉달 전? ”
‘ 넉달. ’
주혁이 턱을 쓰다듬었다. 그런 주혁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홍혜수 팀장이 되물었다.
“ 사장님. 이제 설명 좀 해주지? 어째 나만 모르는 거 같아. 맨날 연습실에 짱박아두고! ”
살짝 섞인 콧소리에 강주혁도 추민재 팀장도 실소를 터트렸다. 하지만 홍혜수 팀장은 눈을 똘망똘망 뜨고 자신의 사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덕분에 주혁은 슬쩍 웃으면서 상황을 설명했다.
“ 28주, 궁궐 알지. 투자를 시작했어. ”
간략하긴 했지만, 충분히 포인트만 집어서 얘기했고, 이어서 헤나와 관련된 설명은 추민재 팀장 역시 귀를 기울였다.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한 홍혜수 팀장이 입을 열었다.
“ 그러니까. 지금 헤나가 필요한데, 사장님이 걜 도와줄 카드를 들고 있다는 거네? ”
“ 맞아. ”
“ 그런데 사장님 그런 고급정보는 어디서 얻는 거야? ”
주혁이 웃었다.
“ 하하. 있어. 나한테만 정보를 주는 곳. ”
“ 여하튼 사장님은 뭔가 요지경이라니까. 뭐, 그건 그렇다 치고. 헤나? 걔 쉬운 애 아니야. ”
대답은 추민재 팀장 쪽에서 나왔다.
“ 쉬운 애가 아니라니? ”
“ 음. 뭐라고 할까. 약간 뱀 같다고 할까? 애가 독사까진 아닌데, 여튼 그런 이미지야. 독하기는 또 얼마나 독한데. 하긴 그 정도나 되니까, 그 나이에 솔로 가수나 배우로도 성공했겠지. ”
-툭툭툭
가만히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주혁이 생각을 정리하는지, 검지로 책상을 두들겼다.
“ 어쨌든. 이건 무조건 돼야 돼. ”
주혁의 혼잣말에 두 팀장들은 서로의 얼굴을 한 번씩 쳐다보다가, 다시금 주혁을 돌아봤다. 수많은 생각이 오가는지, 그의 검지가 책상을 때리는 숫자는 점점 늘어갔다. 신중한 것이 당연했다.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따라서 주혁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단어가 헤엄쳤고, 그 단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헤나, 뱀, 홀로서기, 이미지 관리, OST, 표절, 작품성, 소속사와의 관계. ’
-툭툭······
그러다 그의 검지가 순간 멈췄다. 이어서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두 팀장에게 시선을 던졌다.
“ 일단, 형. 형은 지금 바로 김앤미디어 쪽이랑 김태우 PD, 정작가 모두 연락해서, 모아놓고 상황을 전달해. 급하니까 아무 배우나 잡을지도 몰라. 계약서 쓰면 안 되니까, 적당히 내가 헤나 쪽이랑 접촉한다고 말해놔. ”
“ 그래서? ”
“ 내가 연락할 때까지, 잡아놔야지. 아마 전전긍긍하고 있을 테니까, 가면서 전화를 돌려. ”
“ 알았어. ”
-스윽.
그렇게 추민재 팀장이 잽싸게 사장실을 빠져나갔고, 주혁은 곧장 홍혜수 팀장에게 시선을 던졌다.
“ 헤나랑 친분이 어느 정도나 되는 거야? 혹시 지금 약속 잡고 부르면 밥 먹을 정도는 돼? ”
“ 음- 그 정도는 되는 거 같은데? 근데 걔 바빠서. ”
홍혜수 팀장이 말하는 도중, 주혁이 고개를 저었다.
“ 지금 놀고 있다나 봐. 작업 기간이 짧은 OST나 드라마 차기작 고르면서. 확실히 혼자 생활하려고 숨 고르기를 하고 있어. ”
“ 그래? 그럼 어떻게 해볼까? ”
그녀의 말이 끝나자, 주혁이 곧장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은 아침 9시가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이어서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물음에 답하는 강주혁.
“ 내 설계상으로는 무조건 점심 전에는 헤나를 만나야 돼. 그리고 늦어도 오늘 저녁 안에는 확실한 결정이 나야 해. ”
“ 오늘? ”
“ 어. 내일이면 늦어. ”
사실이 그랬다. 조금이라도 타이밍이나 시간이 어긋나면 주혁으로서는 여러 가지로 난감한 상황이 펼쳐질 것이 확실했다.
그때 주혁이 홍혜수 팀장과 눈을 맞추며 입을 열었다.
“ 누나. 간만에 현실 연기 좀 하자. ”
“ 호홍. 대사는? ”
-스윽
양 볼을 쓰다듬는 주혁의 머릿속에는 이미 대사가 결정돼 있었다.
“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였으니, 누나 외국 나가 있던 것도 알겠지. 한국 들어왔는데, 점심이나 같이하자고 해봐. 장소, 시간은 톡으로 보내준다 하고. ”
“ 근데 느닷없이 사장님이 나타나는 전개? ”
“ 대뜸 내가 부른다고, 믿을 것 같지가 않아. 안 그래도 이미지 관리 때문에 예민하다는데. ”
간만에 긴장된다는 듯이 심호흡을 하는 홍혜수 팀장.
“ 후-우- 웬일이니. 나 이런 거 처음 해봐. 지금 바로 할까? ”
“ 바로 해야지. 연기 레슨 선생님. 위엄을 보여줘. 절대 티 나지 않게. ”
돌연 위엄있는 표정으로 돌변한 홍혜수 팀장이 짧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툭툭.
이어서 핸드폰 화면을 몇 번 터치하더니, 헤나의 번호를 찾았는지, 통화를 누르며 핸드폰을 귀에다 가져다 댔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이, 방금까지 가득하던 긴장된 기색은 온데간데없이, 장난치기 좋아하는 어린아이 같은 웃음을 짓고 있다.
그렇게 약 5초가 흘렀고, 이후 그녀의 입이 열렸다.
“ 어머. 헤나야. 오랜만이다? ”
그녀의 첫 대사에 주혁이 미소를 머금었다. 그도 그럴게 홍혜수 팀장의 연기는 자연스러운 그 자체였다.
“ 응응. 그래. 언니 한국 왔어. 같이 점심 먹자. ”
홍혜수 팀장의 두 번째 대사가 끝나자, 얼마나 크게 대답했는지, 헤나의 통화 목소리가 주혁에게까지 들렸다.
“ 지인짜아?! 먹어요! 어디로 가? ”
“ 언니. 지금 움직이고 있으니까, 장소랑 시간은 톡으로 찍어줄게. 응응. 알았어~ ”
-스윽
자연스럽게 통화를 마친 홍혜수 팀장이 핸드폰을 책상 위에 올리면서 입을 열었다.
“ 장소, 시간. 어떻게 보낼까? ”
어느새 주혁은 그녀에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잠시 뒤, 약속장소로 이동하는 강주혁의 차 안.
헤나에게 약속장소와 시간을 전송한 후, 주혁은 곧장 약속장소로 움직이고 있었다. 의심을 피하기 위해 약속장소를 서울주변으로 잡았는데, 생각보다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끼익
이어서 한창 운전 도중에 신호가 걸렸다. 그리고 때마침 주혁의 차가 완전 멈춰섰을 때, 박기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를 확인한 주혁이 핸들 옆 버튼을 눌렀다.
“ 어어. 뭐 좀 나왔어? ”
“ 확인해봤는데, 그 헤나 소속사 사장이 헤나한테 자꾸 중국 진출을 강요하는 모양이야. ”
“ 중국? ”
“ 응. 안 그래도 요즘 중국 쪽이 한국 배우들한테 빡빡하게 구는데, 왜 굳이 중국을 선택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연예부 쪽 애들은 거진 다 아는 내용인가 보더라고. ”
“ 다른거는? ”
“ 어- 그래서 둘이 사이가 안 좋은데, 딱 재계약이 임박한 거지. 그런데 헤나가 재계약을 계속 미룬다네? 독립하려나? ”
대충 떠도는 얘기는 비슷비슷했다. 중국쪽 진출을 강요받은 것은 처음 듣는 얘기였지만.
주혁은 잠시간 핸들은 검지로 툭툭 치면서 말을 멈췄다가 무언가 떠올랐는지, 박기자에게 위치를 물었다.
“ 지금 어딨어? ”
“ 나? 나 회사지. ”
“ 지금 데리러 갈 테니까, 시간 좀 내라. ”
“ 지금? 어- 특종입니까? ”
“ 니가 오면 특종 될 가능성이 커지긴 하겠지. ”
“ 외출 채비 끝내놓고 기다리겠습니다! ”
-뚝.
그렇게 전화가 끊겼고, 주혁은 헤나와의 약속 장소로 가기 전, 박기자를 태우기 위해 디쓰패치로 목적지를 빠르게 변경했다.
아침에서 점심 사이. 무비트리 편집실.
수많은 모니터가 즐비한 편집실에서 이미 짐승처럼 변해버린 최철수, 류성원 감독이 연신 키보드와 마우스를 조작하고 있다.
-타닥타닥타닥
-딸칵딸칵딸각
고요한 편집실에는 오로지 키보드를 치는 소리와 마우스 클릭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그러다 수염이 잔뜩 자란 류성원 감독이 눈과 눈 사이를 꾹꾹 누르면서 입을 열었다.
“ 후- 철수야. 우리 죽는 거 아니겠지? ”
그의 물음에 최철수 감독은 시선은 여전히 모니터에 두면서 입을 열었다.
“ 사람은 몇 밤 안 잔다고, 죽진 않아. 컷 편집했으면 빨리 넘겨. 지금 테이크 싱크랑 음향 거의 끝났어. ”
“ 끄어- 나도 거의 다 잘랐다. ”
몇 주간 편집실에 처박혀 편집을 진행하던 그들은 어느새 컷 편집과 음향마스터링(음향과 싱크, 음악 등을 맞추는 작업)중이었다.
그래도 상업영화에 비해 다큐 독립영화라 작업은 빠른 편이었다.
보통 상업영화는 촬영 콘티를 토대로 컷 편집을 한다. 거기서 NG컷을 걷어내면서 새롭게 파생되는 아이디어 등을 삽입하기에 시간을 어마어마하게 잡아먹는다.
따라서 상업영화는 각 파트마다 수주를 넣거나, 전문 편집기사가 따라붙는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들의 편집 작업이 순항 중인 이유는, 내 어머니 박점례 같은 경우 독립영화에다가 다큐적인 장면이 많아, NG컷이 매우 줄어드는 데다가, 복잡한 사운드 믹싱이 덜 중요하기 때문.
즉, 독립영화는 전하는 메시지에 중점을 둔다.
다만, 독립영화의 경우 대개 연출한 감독이 모든 편집을 책임지기 때문에, 체력적인 부분은 문제가 따랐다.
그런 중요한 체력이 이미 바닥난 류성원 감독이 멍한 눈빛으로 최철수 감독에게 물었다.
“ 시간······ 맞출 수 있을까? ”
“ 죽어도 맞춰야지. ”
“ 출품 기간. 얼마나 남았지? ”
“ 접수는 시작됐고, 2주간. ”
“ 후- 겁나 빡빡하네. 그럼 못해도 접수 날까진 끝나야 한다는 거잖아. ”
여전히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최철수 감독이 고개를 저었다.
“ 안돼. 적어도 12일. ”
“ 어? 왜? ”
“ 사운드 믹싱 끝내고, 영화 뽑으면 강주혁 사장님한테 보여드려야지. ”
“ 아. ”
“ 그리고. 편집하면서 든 생각인데. ”
“ 뭔데? ”
“ 우리 영화. 강주혁 사장님 눈에 못 들면 수상이고 나발이고, 개봉까지 못 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 ”
자기도 인정한다는 듯, 끄덕이던 류성원 감독도 모니터에 얼굴을 박았다. 그러자 최철수 감독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 형. 이 정도 되니까. 오기가 생겨. 영화 진짜 잘 뽑고 싶다. ”
“ 나도. ”
“ 우리 영화 얼마나 풍파가 많았냐. 강주혁 사장님이 안 건졌으면 홍경연 그 새끼 때문에, 어후······ 생각하니까 또 빡치네. ”
“ 그렇지. 솔직히 우리 영화, 결과는 그렇다 치더라도 상하나 떡하니 타고 싶다. ”
멈칫.
그러다 순간 바쁘게 움직이던 최철수 감독의 손이 멈췄다. 이어서 류성원 감독을 돌아보면서 나지막이 속삭였다.
“ 형. 우리 상 타면 다음 작품 할 때, 강주혁 사장님이 또 뒤를 봐주지 않을까? ”
“ ······ ”
마찬가지로 최철수 감독을 말없이 쳐다보던 류성원 감독이 다시금 모니터로 고개를 돌리면서 입을 열었다.
“ 밤새자. ”
그렇게 목표가 생긴 그들은 또다시 미친 듯이 키보드와 마우스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이른 점심, 마포역 주변, 룸 레스토랑.
룸으로 이루어진 레스토랑으로 마스크를 쓴 강주혁과 박기자가 들어섰다. 그들이 들어서자, 카운터에 서 있던 직원이 고개를 숙였다.
“ 어서 오세요. 예약하셨습니까? ”
“ 네. 홍혜수로 했습니다. ”
“ 잠시만요. 아, 5번 룸이세요. 일행은 있으십니까? ”
“ 아, 한 명 더 올 겁니다. ”
“ 알겠습니다. 오시면 5번 룸으로 안내하겠습니다. ”
친절한 안내를 해준 직원에게 고개를 숙인 주혁과 박기자가 5번 룸으로 이동했다.
룸안은 적어도 10명이 앉아서 식사할 수 있는 세팅이 완료된 상태였다.
-드륵
룸에 들어서자, 주혁이 문을 닫았고 박기자가 자리에 앉으면서 입을 열었다.
“ 그러니까. 지금 너 계획에 내가 필요하다는 거지? ”
“ 맞아. 그리고 오늘 결정되는 거에 따른 특종은 너한테 줄게. 가장 빨리 기사 올릴 수 있을걸? ”
“ 흐흐흐. 좋아. 일단 물주님의 장단을 맞춰주지. 그런데 헤나 진짜 오긴 오는 거야? ”
박기자의 물음을 들은 주혁이 피식하며 순간적으로 홍혜수 팀장의 자연스러웠던 연기를 떠올렸다.
“ 올 거야. ”
“ 그래? ”
대답을 들은 박기자가 핸드폰을 조작하더니 테이플 위로 올렸다.
-스윽
그때 주혁이 시간을 확인했다.
‘ 12시 8분. ’
홍혜수 팀장이 헤나에게 톡으로 보낸 약속 시각은 12시 10분이었다.
‘ 슬슬 올 때가. “
바로 그때였다.
-또각또각
주혁이 시계를 보던 손을 테이블 위로 올리는 타이밍에 복도에서 구두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반사적으로 주혁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덩달아 박기자도 움찔거리며 일어났다.
이어서 구두 소리가 멎었고.
-드륵!!
닫혔던 문이 괴팍하게 열렸다.
” 언니!!! ······어? “
문이 열린 곳에는 웃음과 당황이 공존하는 표정의 헤나가 등장했다.
투명한 피부, 가슴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에 검은색 구두, 허벅지를 살짝 덮는 정장풍에 빨간 원피스. 검은색 백을 멘 모습.
공항패션으로 찍혀도 손색없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다가왔는지, 그녀 앞에 주혁이 섰다. 그러자 딱 주혁의 어깨 정도 닿는 헤나의 시선은 천천히 강주혁의 얼굴로 올라갔다.
” 뭐, 뭐지? 제가 방을 잘못 찾았나요?! “
그녀의 당황 섞인 외침에 주혁이 싱긋 웃으면서 마스크를 벗었다.
” 아니요. 잘 찾아오셨습니다. 헤나씨. “
순간 강주혁을 알아본 헤나.
안 그래도 큰 그녀의 눈이 2배는 커졌다.
눈을 동그랗게 뜬 헤나는 입을 살짝 벌리며 앞에 서 있는 강주혁을 올려다봤다. 당황과 난감이 섞인 표정인 게 한눈에 보였다.
그렇게 몇 초가 흘렀고.
강주혁을 올려다보던 헤나는 여전히 커다랗게 커진 눈을 돌려 자리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박기자와 룸을 쭉 둘러봤다.
예상하던 그림이 아니었다.
꽤 넓은 룸에 자신이 찾던 홍혜수 팀장은 없고 웬 남자와 강주혁이 서 있음을 정확하게 인지한 헤나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면서 시선을 다시 강주혁에게로 돌렸다.
“ 뭐예요. 이 상황? 언니는요? ”
-스윽
주혁은 웃음을 지으면서 정중하게 의자를 가리켰다.
“ 일단, 앉으실까요? ”
“ 제가요? 왜요? ”
하지만 헤나는 요지부동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강주혁을 마치 귀찮은 방문판매 업자처럼 느끼는 듯 보였다.
그래도 지금 상황이 궁금하기는 했는지, 헤나는 룸을 나가지는 않았다. 그런 그녀가 다시 한번 박기자를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 무슨 상황인지 설명부터 해줘야 앉든지 말든지 할 거 같아요. ”
다시 시선을 강주혁에게 맞추는 헤나.
“ 선배님. ”
선배님이라는 호칭에 주혁이 순간 류진주를 떠올렸다. 잠시 잠깐 떠오른 류진주를 넘어 주혁이 가리키던 의자를 살짝 앉기 쉽게 빼내면서 입을 열었다.
“ 헤나씨에게 제안할 게 있는데, 도통 만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해서 홍혜수 팀장님에게 도움을 좀 요청했습니다. ”
“ 제안? 팀장? 혜수 언니가 팀장이에요? ”
“ 네. 제 회사 팀장입니다. ”
“ ······어떤 제안인데요? ”
다시 한번 의자를 가리키는 강주혁.
“ 앉으시죠. ”
“ ······ ”
헤나를 쳐다보는 주혁의 여유로운 표정은 변함이 없었고, 반대로 헤나는 호기심이 당기는지 어쨌는지,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주혁을 바라봤다.
그렇게 다시 흐른 시간이 몇 초.
-스윽
결국, 헤나가 주혁이 빼둔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고, 주혁은 헤나가 자리에 앉자마자, 룸의 문을 닫았다.
-뚜벅뚜벅
문을 닫자마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주혁은 앉기 전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서 헤나에게 건넸다. 그러자 허겁지겁 명함을 꺼낸 박기자도 헤나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자신에게 건네진 명함 두 장을 집어, 번갈아 보던 헤나가 입을 열었다.
“ 디쓰패치? 보이스프로덕션? 뭐예요 이 조합? ”
그녀의 말이 끝나자, 곧장 인사를 던지는 박기자.
“ 헤나씨. 반가워요. 기자회견 하실 때, 몇 번 뵀었는데. 하하하. 잘 모르시겠죠? 편하게 박기자라고 불러주세요. ”
“ 디쓰패치···. 박기자님······ 아! 그분이시구나? FNF 접대사건 터트린? ”
“ 와하하. 알아봐 주시니 영광입니다. 별거 아니었는데. ”
“ 별거 아니긴요. 너무 대단한 일을 하신 거죠. 자료들도 엄청 디테일해서, 저 엄청 몰입해서 봤었는데! ”
“ 과찬입니다. 하하하. ”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박기자는 어느새 헤나의 꼬임에 넘어간 듯 보였다. 그 장면을 조용히 지켜보던 주혁은 홍혜수 팀장이 말했던 헤나에 대한 평가를 떠올렸다.
‘ 뱀. ’
그렇게 몇 분간 박기자를 띄워주던 헤나가 손에 들린 두 번째 명함을 보면서 다시금 입을 열었다.
“ 보이스프로덕션? 여긴 뭐예요? 선배님이 하시는 건가? ”
“ 네. ”
“ 오? 진짜요? 복귀는 안 하시고 사업하시는 거예요? ”
“ 네. ”
“ 아아. 그렇구나. 대따 신기하다. 뭐뭐 해요? ”
“ 그냥. 이것저것 해요. ”
“ 이것저것 뭐요? 프로덕션이니까 작품 제작 같은 것도 해요? ”
“ 네. ”
주혁의 표정은 여전히 여유로웠지만, 대답은 무척이나 빨랐고, 무미건조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헤나는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
“ 혜수 언니는 거기서 무슨 일 해요? ”
“ 나중에 놀러 가도 돼요? ”
“ 사옥이 광주에 있네요? ”
하지만 주혁의 대답은 ‘네, 아니요’ 정도였다. 박기자는 어느새 정신이 없어졌는지, 눈알을 굴리기 바빴다.
“ 아아. 그럼, 거기 소속된. ”
그리고 헤나가 바로 다음 질문을 던지려 할 때, 주혁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 헤나씨. 홀로서기를 준비하신다구요. ”
끝
ⓒ 장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