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voice phishing, but it's a life reversal RAW novel - Chapter 72
크랭크 업(마지막 촬영)을 앞둔 영화 척살의 세트장으로 향하는 주혁의 차 안은 기대와 긴장이 뒤섞인 애매한 분위기였다.
-끼익.
때마침 걸린 신호에 주혁은 차를 알맞은 위치에 세웠고, 짧은 숨을 내뱉었다.
“ 후- ”
그러면서 얼굴도 한번 쓸어 넘겼다. 그의 표정은 마치 시험결과발표를 앞둔 수험생 같은 표정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의 변곡점.
척살은 그를 집 밖으로 나가게끔, 본격적으로 피했던 세상을 똑바로 보며 움직이게끔 한 시발점 같은 영화였다.
버스사고를 막아냄과 동시에 찾아온 척살의 시나리오, 최명훈 감독의 합류, 홍경연의 미투 문제, 무명 배우들 캐스팅, 강자매, 제작과 투자까지.
척살을 오롯이 크랭크 인 시키기 위해 움직였던 주혁은 그간 있었던 일들이 마치 잔상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 진짜 많은 일이 있었네. ”
여기까지 오기에는 수많은 결정과 선택들이 난무했고, 문제도 많이 터졌지만.
“ 하하. 하긴 하네. ”
결국, 마지막 촬영이 도래했다.
세트 촬영장까지는 10분 남짓 남은 상황이었고, 도중에 여기저기서 전화가 빗발쳤다.
이미 현장에 있다는 송사장, 배급사 VIP 최혁팀장, 그리고 역시 현장에 도착해 있는 추민재 팀장과 강하진 까지.
모두 강주혁이 어느 정도까지 왔는지 확인 차 전화를 해왔지만, 다들 목소리가 상기돼있었다.
-부웅.
이어서 켜진 초록 신호.
신호가 바뀌자마자, 주혁은 빠르게 액셀을 밟았고, 그의 마음은 점점 급해졌다.
전화가 울린 것은 그때였다.
♬띠리리 띠리리링 띠리리 띠리리링!!!
-황실장님.
발신자는 최근 장수림 변호사의 뒤를 캐던 황실장이었다.
“ 네. 황실장님. ”
“ 사장님. 사장실에 안 계셔서. ”
“ 아, 지금 척살 촬영장으로 이동 중입니다. 오늘이 마지막 촬영이라. ”
“ 아! 그렇습니까?! ”
“ 황실장님도 오세요. 보고는 거기서 듣죠. 제가 지금 운전 중이니까, 위치는 추팀장님한테 받으세요. ”
“ 알겠습니다. ”
-뚝.
그렇게 전화가 끊겼고, 주혁은 속도를 높였다.
몇십 분 뒤, 도착한 세트 촬영장.
이미 세트 촬영장 주변은 인산인해였다. 최명훈 감독을 비롯해 스텝들도 스텝들이었지만, 당일 촬영분이 없음에도 기념하는 마음으로 몰려든, 강주혁이 직접 뽑은 조단역부터 조연들, 송사장 과 제작팀, VIP 최혁 팀장과 비하인드 촬영팀, 몇몇 기자들, 추민재 팀장과 강하진 등.
촬영장을 기준으로 꽤 넓게 만들어진 동그란 모양으로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물론, 촬영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이었다.
-텅!
그 모습을 보며 주혁이 차 문을 닫았고, 천천히 촬영장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 여기여기! 막내야! 조명 하나만 더 대봐! ”
“ 10분 후, 슛들어갑니다! 빨리빨리 움직입시다! ”
“ 마지막이다! 정신 차려! ”
“ 분장팀! 뭐해! ”
가까이 다가갈수록 촬영장의 열기가 느껴지는 외침들이 들렸다. 하지만 뛰어다니는 스텝들의 표정을 하나같이 밝은 표정이었다.
거기에 그 촬영장의 모습을 담고 있는 VIP 최혁 팀장과 비하인드 및 메이킹 팀.
작은 움직임도 놓칠세라 작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직원들의 움직임 역시 바빴다.
‘ 슬슬 VIP도 제대로 바빠지겠지. ’
배급사의 실질적인 힘은 영화의 촬영이 모두 끝난 후부터 발휘된다.
VIP 최혁 팀장은 오늘 마지막 촬영을 기점으로 보도 기사와 홍보 자료 등, 영화 척살의 소식을 바삐 퍼다나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주혁이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그곳에는 송사장과 제작팀, 추민재 팀장과 강하진 그리고 조단역과 조연들이 뒤섞여서 촬영장을 구경하고 있었다.
아직 강주혁을 발견하지 못한 것인지, 추민재 팀장과 제작팀이 무언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강하진과 배우들은 연신 웃으며 촬영장을 기웃거렸다.
송사장은 때마침 어디론가 전화를 걸 작정인지 핸드폰을 귀에다 댔는데.
♬띠리리 띠리리링 띠리리 띠리리링!!!
-무비트리 송사장.
그와 동시에 주혁의 핸드폰이 울렸다. 강주혁에게 전화를 걸었던 모양이었다.
“ 투자자님 어디야? 안 와?! ”
“ 나는 형 보이는데. ”
“ 어? 왔어? ”
이어서 두리번거리는 송사장이었고, 몇 번의 고개 돌림 이후, 주혁을 발견했다. 그러자 송사장이 씨익 미소를 지으면서 다가오려 하기에 주혁이 손을 올려 그를 막았다.
그러면서 주변을 손가락질하며 기다리라는 시늉을 던졌다.
소란스러워질 것 같았다.
다들 바쁘게 각자 할 일을 하는 와중이었고, 그것들을 주혁은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의 주인공은 저들이었고.
‘ 나는 들러리지. ’
눈치 빠른 송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멈춰섰고, 주혁은 적당한 거리를 둔 채 촬영장을 바라봤다.
잠시 뒤.
회사처럼 꾸며진 세트장에 분장을 마친 하정훈과 조연들 그리고 류진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촬영 콘티가 변경됐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정훈의 거친 분장으로 판단하건대, 아마 마지막 촬영은 액션씬 일 거라고 주혁은 판단했다.
하정훈과 류진주가 나란히 섰고, 그 주변으로 스텝들이 옷매무새와 분장을 연신 두드린다. 그 와중에 하정훈과 류진주는 서로 진지한 표정으로 대사를 맞춰보는 듯 보였다.
“ 하정훈씨! ”
이어서 하정훈을 콜한 무술 감독.
그에 따라 이번 액션씬에 대동하는 조연들과 함께 다시 한번 동선을 체크 했다.
물론, 위험한 장면을 연출하는 스턴트 팀들이 대기 중이었지만, 하정훈이 직접 동선을 파악하는 것을 보니, 어지간하면 본인이 쳐낼 작정인 듯 보였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고.
카메라 감독, 조명 감독 등과 촬영대본을 보며 얘기를 나누던 최명훈 총괄 감독이 천천히 모니터 앞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곧 본 촬영이 임박한다는 뜻이었고.
그와 동시에 비하인드 컷을 찍던 VIP 메이킹 팀이 촬영장에서 썰물 빠지듯 쭉 빠졌다. 각자 자리를 잡는 배우들 스텝들. 그러다 최명훈 감독의 눈빛이 변했고, 그가 손을 올렸다.
“ 카메라 ”
“ OK ”
“ 사운드 ”
“ OK ”
사인을 전부 확인한 최명훈 감독의 손이 순식간에 바닥으로 내리치면서 강하게 외쳤다.
“ 하이- 액션! ”
척살 마지막 촬영 도중.
마지막 촬영답게, 최명훈 감독은 그 어느 때보다 신중했다. 벌써 3번의 리 액션 주문이 나왔고, 5번의 카메라 구도 변경이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불평불만을 늘어놓지 않았다.
“ 자, 바짝 땡겨서 가볼게요. 정훈씨 표정 좋아요. 대신에 시선 좀만 긴박하게. ”
“ 예. ”
“ 다시 갑시다. 하이- 액션! ”
이어진 4번째 사인.
전 촬영에서 흐트러진 세트장 내에 소품들을 다시금 바로 잡은 뒤 촬영이 빠르게 이어졌다. 그 상황을 아까와 같은 자리에서 팔짱을 끼고 가만히 눈에 담는 강주혁.
“ ······ ”
딱히 움직임도 없었고, 말도 없었다.
그 요지부동을 깨트린 것은 대뜸 나타난 황실장이었다.
“ 사장님. ”
촬영장을 조용히 지켜보는 주혁의 등 뒤로 들린 목소리 덕에 그가 뒤를 돌아봤다.
“ 아, 황실장님. ”
“ 뭔가 북적북적하네요. ”
“ 하하. 처음 보시죠? 크랭크업 현장은. ”
“ 예. 뭐, 촬영장 자체가 생소하긴 합니다. ”
몇 번 본적은 있으나, 여전히 촬영장이 신기한 듯 주변을 구경하는 황실장이었고, 그를 웃으며 지켜보던 주혁이 다시금 촬영장에 시선을 두면서 본론을 던졌다.
“ 장수림 변호사. 뭐 좀 나왔습니까? ”
-스윽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속주머니에서 손바닥만 한 다이어리를 꺼내든 황실장이 답했다.
“ 지시하신 날로부터 꽤 따라붙었는데, 사실 뭐 이렇다 할 건 없었습니다. 김재황 사장 1비서답게 처리하는 일은 굉장히 많은 것으로 확인되고, 격주로 쉬는지, 거의 회사에 붙어있습니다. ”
“ 그래요? ”
“ 예. ”
황실장의 보고에 주혁이 살짝 고개를 꺾었다.
‘ 괜한 생각이었나. ’
팔짱을 낀 채로 오른손으로 볼을 쓰다듬던 주혁이 물었다.
“ 박과장님은요? ”
“ 혹시 몰라서, 장수림 변호사 과거에 대해 좀 알아보라고 시켜둔 상태입니다. ”
“ 잘하셨습니다. 흠. 나오는 게 없다라. ”
“ 그런데. ”
바로 그때 황실장이 반전을 꺼내 들었다.
“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점은 있습니다. ”
“ 이상한 점이 있다? ”
“ 예. ”
“ 어떤 점이요? ”
“ 장수림 변호사, 이번 쉬는 날에 충북으로 움직였습니다. ”
“ 충북? ”
고개를 끄덕이는 황실장.
“ 예. 충북에서 좀 외진 곳으로 빠져들어 가는 바람에 꼬리 붙은 게 티 날까 싶어서 미행은 중단했습니다. ”
“ 좋아요. 황실장님이나 박과장님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무리하지 마세요. 아니다 싶으면 그전에 확실하게 빠지시고. 그것보다 충북이라. 바쁜 와중에 그 피 같은 휴일에 거길 왜 갔을까요? 고향이 거기 있나? ”
하지만 황실장도 확실치 않은지, 고개를 갸웃했다.
“ 확인된 건 없습니다. 일단, 박과장이 진행하는 일을 마쳐야 뭐가 나와도 나올 것 같습니다. 제가 알아서 한번 기술적으로 충북 쪽 파보겠습니다. ”
“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
“ 예. ”
얘기를 마친 주혁은 다시금 시선을 촬영장으로 돌리면서 입을 열었다.
“ 오늘은 박과장님도 그렇고, 대충 정리하세요. 촬영 끝나면 크게 회식할 테니까. 간만에 고기로 배 좀 채우시죠. ”
“ 하하하. 알겠습니다. 박과장 바로 호출하겠습니다. ”
미소를 짓던 황실장이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고, 주혁은 다시 촬영장을 바라보는 데 집중했다.
잠시 뒤.
최명훈 감독의 ‘액션!’ 주문에 따라, 하정훈이 다시금 움직였다.
세트장에 나열된 책상을 뒤엎고, 바닥에 나뒹구는 모니터와 키보드로 상대 조연들을 후려쳤다. 주먹이 오가고.
이어서 칼부림까지.
-파칵!
-우쿵!
-지지직!
수많은 무기 소품들이 부서지는 소리와 배우들 간의 거친 호흡이 꽤 떨어져 있는 주혁에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 시발!!! 저 새끼 막아! 병신들아 막아! ”
그 틈에 조연의 대사가 던져졌고, 바닥에 쓰러진 류진주를 보호하는 하정훈은 계속 액션을 이어갔다.
그렇게 몇 분간 액션이 이어졌고, 컷의 마지막 장면은 하정훈이 각성해, 일그러진 표정으로 비장하게 카메라를 노려보는 장면.
“ ······ ”
5초, 10초, 15초.
여분 컷까지 모니터로 확인한 최명훈 감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컷! 오케이! 수고하셨습니다!! ”
최명훈 총괄 감독의 외침이 끝나자, 촬영현장이 난리가 났다.
“ 우와와오왁!!!!!! ”
“ 수고하셨어!!! ”
“ 끝이다!! ”
“ 워후!! ”
-짝짝짝짝!!
스텝들의 기쁨이 서린 고성, 그것을 지켜보던 관계자들의 축하 박수, 비록 오늘 컷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끝까지 지켜보던 조연들의 외침 등이 섞이면서 파티장을 만들어냈다.
최명훈 감독은 곧장 하정훈과 류진주에게 악수를 청했고, 이어서 숨을 헐떡이며 고생해준 조연들에게까지 악수를 나눴다.
조연들 중 몇몇은 최명훈 감독과 악수를 나누며 눈시울을 붉혔고, 개중에 바닥에 엎어진 채 통곡을 하는 배우도 있었다.
기나긴 무명 생활.
그 어두운 나날에 번뜩 나타난 기회.
가뜩이나 조연 및 조단역 역할이 무명으로 채워진 척살이기에 배우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회상하며 각자 지금 순간을 즐겼다.
그 현장을 지켜보던 주혁도 황실장과 함께 촬영장으로 걸음을 옮겼고, 강주혁을 알아본 스텝들과 하나둘 인사를 하던 주혁이 배우들과 연신 악수를 나누는 최명훈 감독을 불렀다.
“ 감독님. 고생하셨습니다. ”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최명훈 감독이 고개를 휙 하니 돌렸고, 주혁을 발견하곤 표현 못 할 오묘한 얼굴로 답했다.
“ 감사···합니다. ”
강주혁의 얼굴을 보자 뭔가 울컥했는지 어쨌는지, 살짝 떨리는 손을 내미는 최명훈 감독.
바로 그때 제작팀과 송사장이 촬영현장으로 난입했고, 소리치는 송사장.
“ 자!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마무리할 것들 정리하시고 팀별로 좌표 찍어 드릴 테니까, 가셔서 고기 배 터지게 드십시다! 이동수단 없으신 스텝, 배우님들 여기 우리 제작팀이 준비한 버스 타시면 됩니다! 고기집을 아예 하루 통으로 대여했으니까, 편하게들 마무리하세요! ”
송사장의 선포가 힘을 발휘했고, 다들 환희에 찬 모습으로 촬영장 마무리를 서둘렀다.
“ 선배님! ”
그 와중에 주혁을 류진주가 불렀고.
“ 어. 고생했다. ”
“ 선배님도 갈 거죠? ”
“ 고기? 가야지. ”
“ 좀 이따 봐요! ”
할 말을 전한 그녀는 그대로 자신의 스텝들과 준비된 벤으로 움직였다.
촬영장은 사실 시작 전 준비보다 끝나고 정리하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할 일이 더없이 많다.
와중에 VIP 메이킹 팀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정신없는 촬영장 비하인드 컷을 담기에 바빴고, 몇몇 카메라는 하정훈과 조연들을 인터뷰 하기 시작했다.
후반 마케팅에 사용될 영상이었고.
“ 강주혁 사장님. ”
“ 아, 최혁 팀장님. 오랜만입니다. ”
“ 하하. 그러니까요. ”
“ VIP는 이제 바빠지겠네요. ”
“ 그렇죠. 이제 본격적으로 마케팅을 날려야 되니까. 그래도 설계는 이미 끝났고, 반응 좋을 겁니다. ”
배급사 VIP는 자신감이 넘쳤다.
“ 그보다, 사장님 인터뷰를 좀 따고 싶은데요. ”
“ 제 인터뷰요? ”
“ 예. 초반 마케팅에는 처음 말씀하셨던 것처럼, ‘선례가 없었던 무명배우들로 꽉 찬 척살’이라는 컨셉이지만, 후반 영화관에서 내려온 후에 2차 판매전에 나갈 마케팅에 사장님 코멘트를 사용할까 합니다. ”
그의 말을 들은 주혁이 잠시 잠깐 생각에 빠져들었지만, 이내 답했다.
“ 나쁘지 않네요. ”
그날 저녁, 대형 고기집.
송사장이 예약한 고기집은 촬영장에서 멀지 않는 곳에 위치한 주택형 고기집이었다. 시내와는 꽤 떨어져 있는 곳이었지만, 마치 자연 속에 파묻힌 펜션 같은 느낌이었다.
“ 사장님! 여기 고기 10인분 추가요! ”
“ 감독님 어딨어! 우리 감독님! ”
“ 감독님 여기요! 쓰러지셨습니다!! ”
“ 깨워 깨워! ”
시작한 지 약 2시간. 이미 분위기는 미쳐있었다.
“ 자! 우리 주연 배우님들! 하정훈, 류진주씨 건배사 들어봅시다! ”
“ 어어어! 진주씨 도망갑니다! ”
“ 잡아! 진주씨 잡아! ”
“ 꺅! ”
스텝 몇몇이 도망치는 류진주를 잡으러 뛰어다니고, 그 와중에 담담하게 ‘ 대박 기원! ’이라는 심심한 건배사를 외치는 하정훈.
그는 초기 강주혁의 계획대로 어느새 척살에 많은 정을 붙인 상태였다.
-드르륵.
상황이 미쳐 돌아가는, 정신이 혼미해지는 광경을 즐기던 주혁이 혼자 조용히 가게 문을 열어 마당으로 빠져나왔다.
-서벅서벅.
문을 열고 가게 마당으로 나가면 앉아 쉴 수 있는, 벤치가 군데군데 박혀있는 넓은 잔디밭이 펼쳐졌다. 그중 가장 가까운 벤치가 있는 곳으로 주혁이 천천히 걸었다.
걸쭉한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 야. 어디 가냐? ”
목소리의 흐름을 따라 뒤를 돌아본 주혁이었고, 그곳에는 얼굴이 벌게진 하정훈이 서 있었다.
“ 왜. 보고 싶어서 따라왔냐? ”
“ 지랄. 저기 있다가는 뒈질지도 몰라서 나온 거다. ”
거칠게 답한 하정훈은 강주혁을 지나쳐, 먼저 나무 벤치에 몸을 던지며 말을 이었다.
“ 어후! 다들 미쳤어. 서서 뭐하냐? ”
-스윽
주혁이 하정훈 옆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 고생했다. 차기작은? 골랐냐? ”
“ 미친. 야. 오늘 촬영이 끝났는데, 뭘 벌써 차기작이여. 다 아는 놈이. ”
“ 하하. 그렇지. 이제 무대인사다 제작 발표회다 뭐다 더 바쁘긴 하지. ”
“ ······그래서. 내가 받을 건 언제쯤 줄 거냐? ”
“ 지금은 안되지. 영화 내려올 때쯤. ”
“ 쯧! ”
짧게 혀를 찬 하정훈이 담배를 입에 물면서, 이어서 말했다.
“ 이 영화가 대체 뭐라고, 그렇게까지 하는 거냐? ”
“ 글쎄. 대박이 터질 거 같아서? ”
“ 얼마나 예상하는데. ”
“ 적어도 900만. ”
“ 커걱! ”
담배 연기가 목에 걸렸는지, 한참을 기침하던 하정훈이 어렵사리 되물었다.
“ 900만? 야. 무슨 900만이야. 자기만족도 적당히 해야지. 300만만 나와도 대박이구만. ”
주혁이 그를 쳐다보며 웃었다.
“ 내기할까? ”
“ 무슨 내기? ”
“ 어- 900만이 넘으면 내가 필요할 때, 한 번 더 주연으로 서라. 하라는 거 아무거나. 불평불만 없이. ”
“ 안 넘으면? ”
“ 너 출연료 기부한 거 다시 지급하는 건 어때? ”
“ 니가? ”
“ 내가. ”
구미가 당기는지, 하정훈이 담배를 깊숙하게 빨더니 비릿한 웃음을 던졌다.
“ 콜. ”
♬띠리리 띠리리링 띠리리 띠리리링!!
바로 그때 주혁의 전화가 울렸다.
*070-1004-1009
발신자는 보이스피싱.
주혁은 하정훈에게 전화를 받는다는 시늉을 던지면서 벤치에서 일어났다.
[‘브론즈’단계의 주인이신 강주혁님 안녕하세요!] [강주혁님의 유료 서비스 ‘브론즈’의 남은 횟수는 총 6번입니다.] [‘유료 서비스’를 경험하며 인생역전에 더욱 가까워지길 기원합니다! ] [계속 진행을 원하시면 1번을 눌러주세요. ]-띠익
[들으실 항목의 키워드를 ‘선택’해주세요! ] [ 1번 ‘음성’, 2번 ‘2’, 3번 ‘억’, 4번 ‘아침 11시’, 5번······ ] [ 다시 듣기는 #버튼을 눌러주세요. ]“ 억? ”
주혁은 호기심이 당기는 3번 ‘억’을 눌렀다.
-띠익
[ 탁월한 선택! 강주혁 님이 선택한 키워드는 ‘억’입니다! ] [ 백번 촬영이라는 동아리팀에서 자체 제작한 웹드라마 청순한 멜로가 젊은 층으로부터 높은 인기를 끌자, 정식 제작사에서 백번 촬영 동아리 스텝들을 그대로 합류시켜 리메이크 제작을 통해, 네리버TV, 너튜브, SNS등으로 런칭. 통합 누적 조회수 1‘억’뷰를 달성합니다. ]-뚝!
그렇게 전화가 끊겼고, 주혁이 읊조렸다.
“ 웹드라마? ······해창전자. ”
순간 주혁은 해창전자에서 받았던 보상을 떠올렸다.
끝
ⓒ 장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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