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voice phishing, but it's a life reversal RAW novel - Chapter 81
DBS 국제독립영화제의 최종 심사위원들의 감상평은 이랬다.
난 지쳐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었다.
다큐멘터리는 다큐멘터리답게 스토리를 이끌어가야 했다. 그러나 이번 영화제의 대부분의 출품작은 그렇지 못했다.
나는 매우 실망했다.
하지만 단 하나의 영화가 내 지친 눈을 이끌었다. 영화의 시작부터 기묘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들이 모여 카드를 치고 있었으니까(화투를 말하는 듯)
정말 새로운 접근이었다.
다큐멘터리에 시작이 카드라니!
언제나 새로운 발견은 즐거운 법이고, 나는 지금 얼른 돌아가, 가족들에게 이 영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 모르칸 트리비치/ 최종 심사위원 (노르웨이의 예술 감독이자 예술가)
두 아이를 잃은 할머니의 삶. 하지만 그 삶은 관통하는 또 다른 행복. 그녀의 삶은 두 아이를 잃는 순간 멈췄을지 모르나, 제2의 인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영화가 끝나고 관계자에게 중간에 나온 여자가 누군지 물었다.
“ 혹시 할머니의 친척인가? ”
하지만 돌아온 대답 역시 나를 놀라게 했다. 평범한 배우라니. 너무 자연스러워서 난 할머니의 친척인 줄 알았다.
무슨 말이 필요한가!
이 작품을 만들어낸 제작사와 감독들에게 박수를! – 리싱 팡/ 최종 심사위원(중국의 다큐멘터리 독립영화 감독이자 연출자)
최근 본 다큐 독립영화 중에 가장 수작이라 생각했다. 왜 그러냐고? 다큐스러우면서 다큐답지 않은 연출법이 재미있다. 길게 설명하지 않겠다. 수작이다. – 김창후/ 최종 심사위원(다큐멘터리 독립영화 감독이자 대학교수)
중간중간마다 나오는 여자 목소리(나레이션)가 인상 깊었다. 극 자체는 할머니를 바라보는 3인칭으로 진행되는데, 그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62분이 6분같이 지나갔다. – 정수아/ 최종 심사위원(영화평론가이자 대학교수)
연출, 스토리, 음향, 반전, 코믹 기타 등등 종합선물세트였다. 보통 독립영화라는 게 여러 가지를 믹스로 집어넣으면 산만하기 마련인데. 주인공인 할머니가 그 모든 것을 상쇄한다.
실제 있었던 이야기와 실재인물을 바탕으로 이런 수작을 만들어냈다는 것에 감독들에게 칭찬을 보낸다. 나 역시 감독으로서 많이 배울 수 있는 작품이었다. 꼭 나중에 밥 한번 사주면서 얘기를 나누고 싶다. – 김삼봉/ 최종 심사위원(영화감독)
이어서 DBS 국제독립영화제의 공식 홈페이지에 제15회 DBS 국제독립영화제 수상작들이 열거됐다.
그중에서 단연 돋보였던 것은.
제15회 DBS 국제독립영화제.
출품작 : 총 80개국, 출품작 1102편
수상작 :
대상- 류성원, 최철수
최우수상- 스테파 코테프스카
심사위원 특별상- 류성원, 최철수.
우수상- 클레어 포드.
장려상- 브뤼니, 테디스키
제작지원 프로젝트 선정작- (장편) 류성원, 최철수.
수많은 국가 출품작 중에 대상과 특별상 그리고 관객상을 거머쥔 내 어머니 박점례였고, 사실상 국내에서 출품한 작품 중 유일하게 상을 받은 작품에다가 심지어 3관왕에도 오르는 저력을 보여줬다.
덕분에 DBS 국제독립영화제와 관련된 사람들과 영화인, 제작사 등으로 내 어머니 박점례의 입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 이번 대상은 한국에서 나왔다! 심지어 수많은 국가의 많은 출품작을 제치고 3관왕! ’
내 어머니 박점례의 기류가 심상치 않았다.
보이스프로덕션 사옥. 3층 사무실.
“ 축하드립니다. ”
주혁이 사무실에 도착해, 믿기지 않는 듯 앉아있는 최철수, 류성원 감독들에게 축하를 전했다.
“ 축하드립니다! ”
미팅차 들린 VIP 독립파트 팀장 역시 그들에게 축하를 던졌고.
“ 감···사합니다. 정말······ ”
“ 뭐, 어떻게 감사를···드려야 할지. ”
축하를 받은 최철수 감독은 어느새 눈 주변을 훔치고 있었고, 류성원 감독은 코를 훌쩍거렸다. 감독들의 그런 모습에 주혁이 미소지으며 답했다.
“ 전부 감독님들이 만들어 낸 겁니다. 당당하셔도 돼요. ”
“ 그럼요! ”
주혁의 말에 VIP 독립파트 팀장이 거들었고, 그 말끝을 강주혁이 붙잡았다.
“ 그런데 축하받을 일은 아직 끝이 아니죠. 팀장님 일정 확인해 보셨습니까? ”
“ 예. 일단, 이미 발표된 부분은 변경되지 않는답니다. 영화제 상층부 관계자에게 확인했고, 시상식은 한 달 뒤 10월 초경으로 잡힌답니다. 근데 재미있는 소리를 들었어요. ”
“ 재미있는 소리를 들었다? ”
“ 하하. 그게. ”
VIP 독립파트 팀장이 다이어리를 펼치며 메모해 온 것을 그대로 읽었다.
“ 이번 제15회 DBS 국제독립영화제는 이례적으로 국내 작품이 대상을 수상, 심지어 3관왕까지 잡았다는 명분 아래 DBS 국제독립영화제 측이 시상식을 꽤 크게 연다는데요? 준비 때문에 시상식 일정도 좀 미뤘고, 그쪽 유명인사들이 꽤 깔릴 것 같습니다. ”
“ 크게 한다라······ ”
꽤 흥미로운 발상을 생각 중이었는지, 순간 주혁의 뇌가 빠르게 돌았다.
‘ 10월 초. 시기상으로는 영화를 개봉시키고 성적이 어느 정도 나온 다음, 시상식에 참여하게 된다는 건데······ ’
대충 생각을 정리한 주혁이 미소를 지으며 VIP 독립파트 팀장에게 물었다.
“ DBS 방송국부터 영화제 관련 사람들로 북적이겠네요? 참석자는 어느 수준까지로 잡는답니까? ”
“ 글쎄요. 거기까진 정보가 없는데. 통상 독립영화제 시상식은 해당 감독들과 제작사, 배급사 정도 초빙합니다. ”
주혁이 턱을 쓰다듬었다.
“ 흠······ 영화가 대상과 수상 3관왕에 개봉용으로 관객수 300만 이상 찍으면 엄청 시끄러워지겠네요. 영화제가. ”
“ 하하하. 다큐 독립영화가 300만이요?! 그것만으로도 난리가 날 겁니다. ”
“ 또 한 번 휘몰아칠 수 있겠어요. ”
“ 예? ”
“ 아, 아닙니다. ”
다시 한번 세상에 보이스프로덕션을 크게 알릴 기회였고, 판을 키울 설계를 마친 주혁이 정리를 서둘렀다.
“ 팀장님. 일단 수상은 확정 났으니, 곧장 홀드 잡아뒀던 포스터부터 찍죠. 이제 스크린에 겁시다. ”
“ 그래야죠! 준비는 이미 끝났습니다. 이제 걸기만 하면 끝나요. 그나저나 신기하네요. 어떻게 딱 배급사가 좋아하는 루트로 영화가 움직이는 게. 하하하. 아, 제작사, 투자사, 배급사 텍스트는. ”
“ 제작사, 투자사 보이스프로덕션으로 가고, 배급사는 VIP. ”
“ 그렇죠? 알겠습니다. ”
VIP 독립파트 팀장의 당찬 대답을 끝으로 주혁은 여전히 현실이 아닌 듯 몽롱하게 앉아있는 감독들에게 눈길을 던졌다.
“ 감독님들도 바빠질 겁니다. 당연히 상업보다야 작은 홍보겠지만, 제작발표회부터. 아, 제가 알기론 DBS 쪽이랑도 미팅을 많이 하실 겁니다. 그러고 보니 팀장님. ”
“ 예. ”
“ 내 어머니 박점례. 개봉 후로 영화제 시사일정 맞추셨죠? ”
“ 물론이죠. DBS 쪽에서는 아예 방송 편성을 잡는 움직임도 보입니다. 덩치 있는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라는데, 그것도 곧 감독님들이랑 미팅을 해봐야죠. ”
영화제는 통상 수상작들을 시사회 느낌으로 관객들에게 상영한다.
특히나 DBS 영화제는 방송국 주체로 되어있기에 방송 쪽도 편성을 잡아서 내보내기에, 주혁은 내 어머니 박점례가 스크린에서 떨어진 후로 시사일정을 잡으라 요청한 것이었다.
“ 좋습니다. 자, 움직이죠. ”
얼추 정리를 끝낸 주혁이 마무리를 지었고, 영화 개봉까지는 약 2주가 채 남지 않은 상황. 배급사의 마케팅, 홍보부터 개봉 확정일까지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이제 정말 개봉만이 남았다.
이후부터 주혁은 마치 대통령이 나라를 순회하듯이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최근 가장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은 최명훈 감독이었다.
“ 최명훈 감독? 편집실에서 안 나와. 내가 걱정돼서 생사확인 하러 들어갈 정도라니까. ”
다행히 그의 소식은 무비트리 송사장에게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래도 큰 문제 없이 편집에만 열중하는 중이었고.
“ 해외 출장 말입니까? ”
“ 그래. 한 2주는 걸릴 거야. 내 그래서 자네에게 부탁할 게 있어. ”
그 사이 김재황 사장에게 해외 출장을 간다는 전화를 받은 강주혁.
“ 말씀하세요. ”
“ 재욱이. 내 아들 잘 좀 부탁하지. 연락이 아예 안 되는 건 아닐 테지만, 그래도 국내에 있는 것과는 다를 테니까. ”
“ 그렇죠. 걱정하지 마세요. 재욱이는 사장님 아들임과 동시에 제 회사 소속 배웁니다. ”
“ 허헛. 그래. 들어보니 드라마에 나온다지? ”
“ 한방에 붙었습니다. ”
“ 기대하고 있어. 그리고 웹드라마. 신경 쓰라고 말해 뒀으니. 한번 잘 해봐. ”
-뚝.
그렇게 전화가 끊겼고.
“ 웹드라마. 안 그래도 신경 쓰고 있지. ”
보상으로 받은 웹드라마였기에, 주혁은 파워볼륨과 백번 촬영팀을 합류시켜 최근 리메이크 작업이 한창이었다.
다행히 백번 촬영팀에 작가인 송미진이 상업 드라마 느낌을 이해하는 게 빨라서 웹드라마도 촬영이 목전이었고, 그에 따라 아쉽게 드라마 오디션에 낙방한 강하진은 웹드라마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틀 뒤, 이른 아침 사장실.
새벽이라고 봐도 무방한 시간. 요 며칠 주혁은 자신이 손댄 일이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는데도 어마어마한 시간을 쏟아야 했기에 일찍부터 출근했다.
-띠링!
출근하자마자, 주혁의 핸드폰에 문자가 도착했다.
-VIP 독립파트 팀장.
-사장님. 재미있는 사진 한 장 보냅니다. 확인하세요.
“ 재미있는 사진? ”
짧게 읊조린 주혁은 VIP 독립파트 팀장이 보낸 첨부 파일을 확인했다.
“ 하하하. 이게 이렇게 변했다고? ”
VIP 독립파트 팀장이 캡쳐해서 보낸 사진은.
-김삼봉@KIMSAMBONG
[#DBS 국제독립영화제]
[나는 오랫동안 이 영화제에 참석해왔다. 그런데 하다하다 이번 해처럼 쓰레기 같은 작품만 출품된 해는 처음이었다. 정말 쓰레기 천지였다. 하지만 딱 한 작품. 한 작품만이 나를 신나게 했다. 쓰레기 작품들 사이에서 딱 한 작품만 빛이 났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독립영화의 어두운 미래에서 실낱같은 희망이 보였다.]
[1시간 전]
다름 아닌 김삼봉 감독이 SNS에 한 소신 발언. 사진을 보던 주혁은 괜히 웃음이 났다.
“ 바뀐 미래를 보는 것도 재밌다니까. ”
괜스레 웃음이 나던 주혁은 곧장 수첩을 꺼내 김삼봉 감독 관련 DBS 국제독립영화제의 미래정보를 지워냈다.
-영화 ‘척살’ (진행 중)
-다큐 독립영화, 내 어머니 박점례 (진행 중)
-28주, 궁궐에 피어난 꽃. 오물 드라마, 졸작.(진행 중)
-HY테크놀로지, 제2공장을 경기도 광주 오포읍 방면으로 건설 (진행 중)
-일본 기업 불매 운동, KR-마카롱 핫 아이템으로 승승장구. (진행 중)
-백번 촬영 동아리팀, 웹드라마 청순한 멜로, 리메이크 후, 1억 뷰.
“ 나머지도 곧 이야. ”
미래정보가 적힌 수첩을 흐뭇하게 내려다보던 주혁은 이내 수첩을 다시 속주머니에 집어넣고는 커피머신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바로 그때였다.
-똑똑.
-끼익.
이른 아침부터 사장실의 문이 열렸다.
“ 아, 황실장님. 박과장님 ”
“ 사장님. 계셨네요. ”
“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요즘 엄청 핫하시더라고요! ”
“ 하하하. 앉으세요. ”
-스윽.
꽤 감개무량한 표정의 황실장과 박과장이 자리에 앉자, 주혁이 그들에게 커피를 권했다.
그사이 먼저 입을 연 것은 황실장이었다.
“ 요즘 정말 신기합니다. ”
“ 네! 정말입니다! ”
강주혁이 웃으며 물었다.
“ 뭐가요? ”
“ 뭐랄까. 제가 다니고 있는 회사와 사장님이나 사장님이 관여된 일들이 매일 인터넷에 난리법석인 것이 뭔가 현실 같지가 않습니다. 하하. 박과장 이놈은 자랑하고 싶다고 아주 난립니다. ”
“ 강주혁 사장님! 정말 대단스럽습니다! ”
“ 하하하. 스러운건 뭔가요? 하여튼 제 회사가 커질수록. 아시죠? 보안팀인 두 분. 할 일이 많습니다. 지금이야 제 직속으로 움직이지만, 앞으로는 회사 측면에서도 일이 많습니다. ”
“ 잘 알고 있습니다. ”
-후릅.
황실장의 대답을 들은 주혁이 모락모락 연기 나는 커피를 한 모금한 후, 입을 열었다.
“ 그래서. 최근까지는 장수림이나 류진태 움직임이 좀 어떻습니까? ”
“ 둘의 일과는 비슷합니다. ”
“ 비슷하다? ”
“ 예. 장수림 변호사는 분명 최근 굉장히 바빠 보였고, 류진태. 즉 전 소속사 사장이라는 사람 쪽도 크게 다를 건 없습니다.”
“ 그래요? 흠. ”
“ 그런데. 하하. 이게 참.”
계속 진지한 표정을 짓던 황실장이 순간 웃으며 말을 이었다.
“ 뭐랄까요.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재밌는 여자가 튀어나왔습니다. 일이 흥미롭게 돌아갑니다. ”
“ 호? 무슨. ”
바로 그때였다.
♬띠리리 띠리리링 띠리리 띠리리링!!
주혁이 말하는 찰나에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070-1004-1009
발신자는 보이스피싱이었고.
확인한 강주혁은 양해의 손짓을 한 뒤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에서 전화를 받았다.
[‘브론즈’단계의 주인이신 강주혁님 안녕하세요!] [강주혁님의 유료 서비스 ‘브론즈’의 남은 횟수는 총 2번입니다.] [‘유료 서비스’를 경험하며 인생역전에 더욱 가까워지길 기원합니다! ] [계속 진행을 원하시면 1번을 눌러주세요. ]“ 이제 2번. ”
남은 횟수를 들은 주혁은 이어서 1번을 눌렀고.
-띠익
[들으실 항목의 키워드를 ‘선택’해주세요! ] [ 1번 ‘2’, 2번 ‘9’, 3번 ‘10’, 4번 ‘새벽 2시 30분’, 5번······ ] [ 다시 듣기는 #버튼을 눌러주세요. ]키워드는 2번 ‘9’를 누른 강주혁.
[ 탁월한 선택! 강주혁 님이 선택한 키워드는 ‘9’입니다! ] [ 탑배우 강주혁씨가 9월‘9’일 아침 충북 음성군청 부근 도롯가에 사망한 채 본인의 차량에서 발견됩니다. 경찰은 차량 내부에서 발견된 유서와 저항 흔적이 없는 것으로 판단, 자살로 사건을 종결합니다. ]-뚝!
그렇게 보이스피싱이 끊겼다.
분명 전화는 끊겼는데 주혁은 핸드폰을 귀에서 떼어내질 못했다.
그 상태로 몇 초가 흘렀고, 주혁이 어렵사리 읊조렸다.
“ 내가 죽는다고? ”
몇 년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이번 년이라면 9월 9일은 며칠 뒤. 가만히 서 있던 주혁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 뭐라는 거야 지금. ”
퍽 혼란스러웠지만, 주혁은 힘겹게 방금 보이스피싱에서 들었던 내용을 수첩에 정리했다.
“ 내가 자살을 해? 이런 미친. ”
주혁은 생각을 해봤다. 지금 현재 자신이 자살하고 싶은가?
“ 말도 안 되지. ”
전혀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신이 죽게 된다는 것인가? 답은 하나였다.
“ 수술을 당하는 거야. ”
누군가 펼쳐놓은 덫에 강주혁이 걸려드는 그림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뻗친 주혁은 머리를 한번 쓸어넘기며 수첩에 적힌 미래정보를 정독했다.
“ 내가 죽는다는 날이 9월 9일. 장소는 충북 음성군청 부근 도롯가. ”
9월 9일까지는 며칠 남은 상황이지만, 이 9월 9일이 이번 년인지 내년인지 알 순 없다. 그런데.
“ 9월 8일은 장수림과 류진태의 접선 현장에 가기로 했단 말이지. ”
말 그대로였다. 9월 8일은 황실장과 박과장 그리고 박기자 포함 기자 몇몇을 데리고 그들의 접선 현장을 덮치려고 한 날이었다.
“ 이러면 그림이 이어지는데. ”
주혁은 수첩에 적힌 미래정보를 토대로 가설을 세우기 시작했다. 장수림과 류진태가 접선하는 장소는 충북 음성군청 부근 산속 별장. 거기다 그들을 덮치는 날로 정한 것이 9월 8일.
가설로는 이랬다. 9월 8일 접선 장소에서 강주혁이 덫에 걸렸고 죽은 뒤, 다음 날 아침. 준비된 계획대로 강주혁을 차에서 자살한 것처럼 위장한다는 뻔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
“ 가설이라기보단, 거의 확실하겠네. 그런데 어째서 준비하고 있었지? ”
경찰의 수사는 절대 허술하지 않다. 얼결이었든 우발적이었던 강주혁을 죽인 후, 허겁지겁 자살로 위장했다면 분명 무언가 구멍이 있었을 터. 하지만 경찰은 결국 자살로 사건을 종결한다고 했다.
즉, 철저하게 계획되었다는 뜻.
그렇다면 어째서 그쪽 진영이 강주혁이 오는 날에 맞춰서 계획을 짜고, 대비하고 있었을까? 답은 나와 있었다.
“ 정보가 새고 있는 거지. ”
그쪽 진영에서 강주혁에 관한 이동 정보를 꿰고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고, 어디선가 정보가 새고 있다는 뜻이었다.
“ 어디지? ”
어디서 새고 있는 것일까. 주혁의 머리가 빠르게 돌았다. 그러다 몇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가장 먼저, 장수림 변호사의 끄나풀이 강주혁 진영에 박혀 있을 가능성.
“ 근데. 이건 가능성이 좀 낮아. ”
사실 해창전자와 관련된 정보는 황실장만 알고 있었고, 정보 공유나 일의 진행 자체도 황실장이 도맡아 한다. 최근 합류한 박과장은 해창전자와의 일은 전혀 모른다.
그렇다면 결국, 황실장이 끄나풀인가?
“ 말이······안돼. ”
황실장을 끄나풀로 보기에는 말이 안 되는 부분이 많았다.
만약 황실장이 끄나풀이라면 장수림이 굳이 일본에 있는 류진태까지 끌어들여야 했을까? 장수림은 변호사고, 철저한 편. 일을 그렇게 크게 벌릴 리가 없었다.
이런 일은 보통 아는 사람이 적은 편이 무조건 낫다.
거기다 황실장이 그쪽 진영에 붙어있었다면 사실 일을 여기까지 끌고 올 필요가 없었다. 강주혁을 수술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진작 처리하고도 남았을 시간이었다.
쉽게 얘기해서, 매우 쉬운 길을 놔두고, 일을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어 처리할 정도로 장수림이 멍청하지는 않을 거란 뜻.
“ 그리고 황실장이 그쪽에 붙어서 이득 볼 게 없어. ”
대 해창그룹 김재황 사장도 아니고 고작 비서로 있는 장수림 변호사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조건을 내밀 수 있을까?
가볍게 생각해보면 돈. 과연 장수림이 몇십억 몇백억을 준비할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이다.
“ 나를 치운다는 이해관계가 성립된다면 얘기가 다르지만. ”
장수림. 류진태. 이들이 붙어먹은 이유는 한마디로 강주혁을 치운다는 일맥상통하는 부분, 그리고 서로의 목표가 얼추 맞아떨어진 결과.
“ 끄나풀이 아니라면······도청? ”
다음으로 떠오른 가능성은 도청이었다. 사실 강주혁 진영에 사람을 심어놓던가 아니면 어딘가 도청을 심어놓는 것 빼고는 정보가 샐 리가 없었다.
하지만 도청 쪽도 문제는 많았다. 사람을 시키든 장수림이 직접 하든, 건물에는 수많은 CCTV가 있고 굳이 곧 밝혀질 짓거리를 하고자 할까?
“ 도청도 아닌······아니. 잠깐만. ”
순간 강주혁의 뇌리에 번뜩 스치는 장면.
‘ 저희 사장님이 준비하신 선물입니다. 이 노트북들은 어디에다 둘까요? ’
일전에 장수림이 김재황 사장의 선물이라며 가지고 온 노트북들. 30박스가 넘는 노트북 중 한 개를 주혁은 사장실에서 사용하고 있었다.
“ ······이건 말이 돼. ”
장수림 변호사 쪽이 도청을 하고 있었다면 이미 이쪽에 모든 상황이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을 것이 자명했다. 상황이 썩 좋지 않았지만.
“ 흠. ”
-스윽.
그는 아랑곳없이 양 볼을 쓰다듬으며 생각을 빠르게 돌렸고, 그렇게 몇 초가 흘렀다.
이윽고 계획을 정리한 강주혁이 짧게 읊조렸다.
“ 이걸 역으로 이용해 먹으면 될 것 같은데. ”
끝
ⓒ 장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