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become an evolving space monster RAW novel - Chapter 422
421
스페이스 서바이벌에는 나를 싫어하는 플레이어가 꽤 많았다.
랭커들은 물론이고, 대형 클랜이나 거대 연합에 속한 자들도 나를 노렸다. 커뮤니티에서도 나를 공략하기 위해 에이모프 토벌대가 모집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들과 한 번이라도 맞부딪치면 내 정보가 순식간에 퍼졌다.
그렇다 보니 누군가와 정보를 공유하는 일이 드물었다. 거짓 정보를 퍼뜨려 적들을 교란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래서일까.
타인을 믿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털어놓는 이 상황이 왠지 묘하고 신기하게 느껴졌다.
과거에 엔딩을 노렸던 플레이어들, 기존의 엔딩 보스를 대체하는 에이모프형 생물, 이것들을 내게 환상으로 보여 준 정보기능체.
내가 봤던 것들을 그녀에게 빠짐없이 전했다.
얘기하는 시간 자체는 그리 길지 않았으나 그 안에 들어 있는 정보는 적지 않았다. 이야기를 전부 들은 하늘의 어머니가 침묵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리해볼게.」
생각에 빠져 있던 그녀가 사념파를 보냈다.
「현재 확실한 건 둘. 엔딩 보스가 에이모프처럼 생긴 괴물로 바뀌었다는 것, 공략전에 참여한 3위 아키라가 엔딩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것 맞지?」
“정확해.”
「그 정보기능체의 말, 믿을 수 있을까?」
“거짓말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 날 속일 생각이라면 더 쉬운 방법이 많을 테니까.”
지금보다 더 강한 환상을 보여준다든가, 아니면 내가 모르는 능력으로 나를 조종한다든가 등등, 방법은 많다.
그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지구로 가야 확실해지는 건가.」
“아마도.”
「너라고 해도 태양계를 돌파하는 것은 쉽지 않을 텐데.」
“꼭 태양계에 들어갈 필요는 없어. 놈을 밖으로 끌어내도 되니까.”
「어떻게…아. 25위를 이용할 생각이구나.」
“그래.”
이곳에 올 예정인 해적들의 우두머리가 아키라와 친분이 있다. 그를 잡으면 아키라를 유인할 수 있을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터.
“대략 12일쯤 후에 해적 본대가 올 거야. 그 전까지 준비했다가 놈을 덮치면 돼.”
상대는 최상위 에이펙스를 노리는 중인 강자.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다.
그렇기에 나는 이곳을 덫으로 만들어 랭커를 사냥할 생각이다.
PS-111은 행성의 통신 시스템을 완전히 장악했고, 나 또한 둥지를 몇 군데 마련해 둔 상태다. 계획을 성사시키기 위한 조건은 어느 정도 갖춰졌다.
“아무튼 중요한 얘기는 다 한 것 같네.”
물론 아직까지는 준비가 많이 부족하다.
둥지도 더 깔아야 하고, 위에 있는 연구단지에서 유전자 샘플도 더 먹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도시에 쓸 만한 인간들이 있는지 찾아봐야 하고. 해야 할 일이 아주 많다.
그때 하늘의 어머니가 내게 물었다.
「저 아이들은 어떻게 할 거야?」
“아이들?”
「…미안한데, 내가 아이들을 맡으면 안 될까?」
그녀의 눈은 어린 볼프들이 있는 둥지 안쪽을 향하고 있었다.
사실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얻은 이상, 저들은 불필요하다.
원시부족 태생이다 보니 당장 우주선을 몰거나 기계 장치를 조작할 수 없다. 이를 가르치려면 꽤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단순전투원으로 쓰기에는 나이도 어리고 몸도 허약하다.
강화된 기생충의 실험용으로 쓰거나, 인면충으로 만드는 것 말고는 딱히 쓸모가 없다.
그렇기에 하늘의 어머니가 꺼낸 말은 내 예상 밖이었다.
“볼프들, 딱히 유용할 것 같지는 않은데.”
「큰 충격을 받아서 중요한 정보를 알고도 기억 못 할 수도 있잖아.」
“흠.”
「어차피 당장 없애야 할 이유도 없으니 내가 데리고 있을게.」
앞발톱으로 부리를 긁적이며 말하는 하늘의 어머니.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둥지 안쪽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뭐지?’
평소와는 다른 태도다. 얘기 중에도 아이들에게 고정된 시선, 미세하게 흔들리는 눈에서 동요하는 기색이 엿보였다.
‘혹시 옛날 생각이 난 건가?’
그녀는 나와 만나기 직전에 지배파의 랭커 뮤리엘 때문에 가족을 잃었다. 남편이었던 ‘대지의 아버지’, 그녀가 보살피던 볼프 부족 모두 몰살당했다.
뮤리엘이 죽은 뒤, 그녀는 방치되어 있던 볼프들의 시신을 수습했다. 그 중에 어린 볼프도 꽤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고 보니 그때의 시체들과 이곳의 생존자, 비슷한 연령대야.’
아까 만났을 때 필요 이상으로 과격하게 행동한 것, 어쩌면 과거와 비슷한 상황을 겪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의외네.’
그동안 노예상과 해적을 여러 번 만났지만, 지금처럼 노예를 보고 동요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당연히 내게 이런 부탁을 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알았어. 데리고 있으면 뭐라도 도움이 되겠지.”
자세히 물어볼까 하다가 관뒀다.
과거의 아픔을 지닌 사람에게는 생각 없이 던지는 질문과 말이 상처가 될 수 있다. 나도 전에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잘 안다.
‘마음이 정리되면 그때 말하겠지.’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닌데 닦달할 필요는 없다.
“회복이 다 되면 위의 연구단지에서 지내면 돼. 볼프니까 여기보다는 그쪽을 더 좋아하겠지.”
「…고마워.」
하늘의 어머니에게 볼프의 처우를 맡긴 나는 벽에 붙여 놓은 해적들을 떼어냈다.
“너희들은 나와 같이 가야겠다.”
볼프랑 달리 이들은 쓸데가 있다. 벤트리스를 비롯한 고위 간부들은 시노 그룹의 본대에게 거짓 보고를 올리는데 쓸 거다. 나머지 떨거지들은 함정 유도용 미끼로 쓰고.
나는 해적들을 들고 둥지 밖으로 나왔다.
‘행성 하나를 덫으로 이용하는 건 오랜만이네.’
사실 게임에서 행성을 통째로 함정으로 활용한 적은 드물었다. 크기가 크기다 보니 둥지를 깔고 확장하는데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린다. 나조차도 준비 중에 들켜서 실패한 적이 훨씬 많았다.
그래서 적들을 유인할 수 있다고 확신할 때, 내가 계속 사용할 보금자리가 필요할 때만 만들었다.
‘이 경우는 전자라고 봐야겠지?’
물론 12일 안에 별 전체를 둥지로 덮는 것은 시간상 불가능하다. 그러니 적이 어디에 주둔할 것인지, 어디로 유인해서 덮칠지 등을 예상하고 덫을 깔아야 한다.
그리고 그 부분은 내 역량, 내 경험으로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날개를 펼친 나는 먹구름이 낀 하늘로 날아올랐다. 검은 점액에 잠식된 도시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25위와 그 부하들.
그들이 올 때쯤이면 이곳의 풍경도 전과 많이 달라져 있을 거다.
손님을 맞이하는 것은 테라포밍된 행성이 아니라 에이모프가 지배하는 행성이 될 테니까.
–
별들이 모래 먼지처럼 박혀 있는 검은 우주.
그 한복판에서 갑자기 푸른색 빛이 번쩍였다.
하늘 위에 친 번갯불처럼 공간을 찢고 나타난 것은 초광속 항해에 성공한 함대였다.
함선 수는 거의 50여 척에 육박해 열강에 소속된 함대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 하나 개별 함선들의 면모를 보면 정예함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배들의 모양과 크기, 규격 등 모든 요소가 제각각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배는 컬트식 순양함 베이스에 드론 지휘탑을 붙였고, 어떤 배는 메가콥 채굴선에 플라즈마 함포를 붙였다.
그 중 유독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함선이 있었다.
세 갈래로 갈라진 전면부가 삼지창처럼 생긴 그 배는 스타유니언의 XAX02급 전함, 흔히 작스 베타라 불리는 함선이다.
본래라면 사이보그 인민의 안녕을 위해 힘써야 할 터이나 이 자리에 있는 저 함선은 다른 주인을 섬긴다. 악명 높은 스페이스독, 그 중에서도 ‘시노’라는 이름을 공유하는 해적연합이 그 주인이다.
“두목. 분쟁구역에 도착했습니다.”
작스 베타의 함교. 인섹트맨 해적이 함장석에 앉은 인간 남성에게 보고했다.
그의 이름은 서덜랜드. 시노 그룹에 처음으로 가입한 카르텔, 시노이치 카르텔의 두목이다.
“오다가 낙오한 놈은?”
“없습니다.”
“좋아. 먼저 주변 싹 스캔하고, 시노니한테 행성에 내려간 애들한테 연락하라고 해.”
“옙.”
명령받은 해적들이 함교에 임의로 설치한 컴퓨터들을 조작했다.
“어, 저기, 두목?”
그러던 중 함선의 탐지기를 관리하는 해적이 두목을 불렀다.
“상태가 좀 이상한데요? 행성 대기 상태가 굉장히 불안정합니다.”
“얼마나?”
“행성 여러 지점에 초대형 폭풍이 발생하는 바람에 함선 스캔이 잘 안 먹힐 정도입니다.”
부하의 말에 서덜랜드는 눈살을 찌푸렸다.
“여기 오기 전에는 그런 말 없었잖아?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기상이변이 발생한 것을 봤을 때 테라포밍 기계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두목, 시노니 쪽에서 답장이 왔습니다.”
그때 연락을 맡은 사이보그 해적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3일 전에 분리주의자들의 테러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 때문에 테라포밍 기계에 문제가 생겼다고 합니다.”
“분리주의자? 정기보고에서는 싹 다 정리했다며?”
“미처 처리 못한 잔당이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다 처리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서덜랜드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었다. 손톱에 피가 묻어나올 정도로 긁은 그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조우 예정 지점에는 문제 없지?”
“통신이 약간 불안정한 것 빼고는 문제없습니다.”
“일단 이 배로는 스캔 계속 돌리고, 나머지는 착륙해. 아, 그리고 지난번에 배 허가 없이 채굴선으로 갈아탄 새끼들. 걔네한테 하루 줄 테니 최대한 빨리 테라포밍 기계 고치라고 해.”
“시노로쿠 카르텔 말씀하시는 겁니까?”
“어.”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난 함장실에 쉴 테니 나머지는 이전에 했던 방식으로 처리해.”
“옙!”
그 말을 끝으로 서덜랜드는 함교를 떠났다.
함장실에 가까워질수록 그의 얼굴에 깔린 그림자가 짙어졌다. 쉬러 가는 것인데도 그가 이런 얼굴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다른 해적들은 서덜랜드가 이 배의 주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 배, 그가 속한 카르텔의 주인은 따로 있다.
함장실에 금방 도착한 서덜랜드는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시노님, 서덜랜드입니다. 보고할 것이…끄으윽?!”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발생한 극심한 두통에 자기도 모르게 바닥에 주저앉았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의 귀로 젊은 청년의 목소리가 꽂혔다.
“하여간 무능한 버러지들. 이런 간단한 일도 제대로 처리 못 하세요?”
“끄으으윽!”
“이참에 그 나쁜 머리, 아예 바꿔줄까?”
“으으으, 한번만 용서를…!”
장난기가 섞인 탓에 농담처럼 들리는 말투와 달리 복종 장치는 여전히 작동 중이었다. 서덜랜드는 코와 귀에서 피를 쏟아내는 와중에도 애써 빌었다.
“피스케스 트웰브. 말한다. 대상은 아직 용도가 남아 있다. 이 시점에 소모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이어서 기계음이 섞인 여자의 목소리가 청년을 만류했다. 그게 먹혀들었는지, 목소리의 주인은 그가 정신을 잃기 전에 복종 장치를 중단시켰다.
“뭐, 계획과 달라지긴 했지만, 딱히 큰 문제는 아니니까 이 정도로만 할게요. 고맙죠?”
“가, 감사합니다!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피스케스 트웰브. 명령한다. 대상의 지시 일부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들어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