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101
나는 회귀했다 101
이성환 회장은 느긋하게 좌중을 둘러봤다.
아무도 반대하는 이는 없었다.
두 아들들이 어째 불안한 표정으로 앉아있긴 했지만,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 않는 것이 용할 정도다.
‘미안하다.’
평생 자신의 자리만 바라보며 공부하고, 회사 일을 해왔던 녀석들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성환 회장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는 이제 두 아들이 보이지 않았다. 평생 자신의 꿈을 바친 정성그룹. 그 정성그룹에 방점을 찍어줄 손자가 눈을 빛내고 있었다.
손자의 눈에는 탐욕이 보이지 않는다. 늘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매사를 침착하게 처리한다.
이휘가 해왔던 일들도 놀랍지만-`그리고 그 끝을 알지도 못하지만`- 저러한 태도가 이성환 회장에게 신뢰를 주었다.
아무리 특출 난 자라도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은 경륜이 알려준 바, 리더의 자리에 오래 머물며 느낀 것은 결국 사람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을 쓸 때도 그런데 모든 것을 물려줄 후계자를 찾는 데에야.
“자, 그럼 업무들 보시게.”
이성환 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우수수 다들 몸을 일으키며 인사한다.
이성환 회장은 회의장을 빠져나가기 전, 이휘를 지나치며 말했다.
“나 좀 보자.”
그가 나가고 이휘는 좌중을 한 번 쓸어본 뒤 따라 나섰다. 말없이 회장실로 가서, 문을 닫은 뒤에야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모든 게 네 뜻대로 됐구나.”
이휘가 자리에 앉으며 대답했다.
“할아버지가 품으신 뜻과 어긋나지 않을 텐데요.”
“계획에서는 벗어났지.”
할아버지가 맞은편에 앉으며 계속했다.
“네 큰아버지들이 걱정이다.”
“큰 사고가 없는 한은, 그 자리를 보존하게 해드릴 생각이에요. 물론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다른 경영진과 차별 없이 처우할 생각이지만.”
“그 뜻이 아니란 걸 알잖니.”
“극단적인 선택… 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고개를 끄덕인 할아버지가 의자 팔걸이를 두드렸다.
“그래, 네 큰아버지들은 이 자리만 보고 인생을 걸었어.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게다. 자신의 꿈과 가족의 미래, 심지어 미래까지 생각하면 천문학적인 돈이 걸린 일이야. 부모자식도 없는 판국에 눈에 가시처럼 생각하는 조카가 눈에 보이려고.”
“…저를 걱정해주시는 거였네요.”
“걱정이 안 될 리가 있나? 내가 왜 그룹 내 관계도나 지분을 정리하기 전까지 발표를 미루었는지 아느냐?”
“….”
“더 살면 얼마나 더 살겠느냐 만은, 적어도 자식들과 골육상쟁은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그 칼끝이 네게 갔으니 집안싸움은 피할 방법이 없어졌다. 유일한 길은 네가 사전에 그 같은 일을 막는 게지.”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저와 싸울 무기까지 빼앗고 굴복시키는 것. 그전까지 두 분 삼촌들은 결코 욕심을 버리지 못할 거예요.”
“네 말이 맞다.”
할아버지가 눈을 번뜩였다.
“내가 너에게 그룹을 넘길 땐 이미 부정을 지우기로 결심한 후다. 그룹 내적인 사정을 정리하기 이전에 그런 결심이 필요했고. 넌 내게 시간을 줬고, 더 이상 잔정에 휘둘려 못난 모습을 보일 수는 없구나. 손에 피를 묻히는 건 네가 아닌 내가 하마.”
이휘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네 큰아버지들에게 자진사퇴를 요구해볼 생각이다.”
“거부할 겁니다.”
“강제로 사퇴시킬 수는 없겠지만 잘 설득해봐야지. 필요하다면, 내가 전면에 나서서라도 그렇게 만들도록 하마.”
즉, 할아버지는 두 큰아버지의 처우를 자신에게 맡겨달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선처해달라는 게 아니라, 이휘에게 가만히 지켜봐주길 부탁하는 거다.
전에는 선처를 부탁했지만, 막상 자리를 넘겨주기로 마음먹자 생각을 바꾼 셈이다. 아니면 할아버지 나름대로 정보망을 돌려 두 큰 아버지가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냈을지도 모른다. 지금 할아버지의 어조는 사고 칠 것을 `우려`하는 사람이 아니라 `확신`하는 것에 가까웠으니.
이휘가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그래.”
“이 문제에 대해 더 엄격해지셔야 해요.”
“무슨 뜻이냐?”
“이 문제는 가족 일이 아닙니다. 회사 경영과 관련된 일이에요. 공적인 일이고, 저는 저항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저항을 극복해야 하고요. 그렇지 않으면 누구도 저를 진심으로 인정하지 않을 테고 야망이 큰 자들은 또 다시 딴 마음을 품을 겁니다.”
“후우.”
할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정도 이런 대답을 예측한 모양이다.
“네 뜻은 잘 알겠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마음 편하신 방향으로, 자유롭게 할 일을 하셔도 돼요. 단, 저는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겠습니다.”
너무 똑 부러진 손자를 보다보니 지치는 걸까? 할아버지는 다시 한 숨을 내쉬며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마음을 쓰지 못했는데, 누가 널 이렇게 만들었을꼬.”
이휘는 쓰게 웃었다.
누가 이렇게 만든 게 아니라, 이렇게 됐다.
이 세상이 몰아쳤고 그때마다 선택했으며, 저절로 이런 사람이 돼버렸다.
만약 누가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면 아마 다시 한 번 삶의 기회를 준 초월적인 존재일 것이다. 그게 누군지,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지만.
‘종교라도 가져야 하나?’
이휘는 뜬금없는 생각을 하다가 그만 실소하고 말았다. 어떤 종교든 살인을 용인하지 않는다. 그리고 용서 받을 마음도, 자신이 저지른 짓을 미화시킬 마음도 없다. 앞으로도 필요하다면 똑같은 짓을 저지를 것이다. 이런 사람이 무슨 염치로 천국을 바라고, 누굴 섬기겠는가?
그때 할아버지가 말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기자회견을 잡아뒀다. 네 큰아버지들이 경거망동하지 못하게 만들 족쇄가 되어줄 거야.”
***
이성환 회장과 이휘가 두 큰아버지의 처우를 논하고 있는 그 시각, 두 사람은 계열사 사장실에 모여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우리 손발을 다 자르려 들 겁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아버지와 결탁해서 일을 치른 놈이에요. 형님, 무서운 놈입니다. 우리를 그냥 둘 수 없어요.”
“나도 알고 있다.”
이휘의 첫째 큰아버지, 얼마 전까지 정성그룹 이성환 회장의 손자였던 이주완 사장이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가에 잠겼다. 그는 아버지가 두 사람을 보호해주리라 생각할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그들이 본 아버지는 기회를 주는 것 이상 자신들에게 뭔가를 베풀 사람이 아니었다.
특히나 이휘 같은 후계자가 나타난 이상.
그리고 실제로도 오늘 청천벽력 같은 공표를 들음으로서 이성환 회장의 속내가 밝혀졌다.
“그래서, 어쩝니까?”
둘째 큰아버지, 이수찬 사장이 답답한 듯 되물었다. 얼마 전까지 피 튀기게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던 사이인데, 막상 이런 일이 터지니 그래도 형제라고 의존하게 된다.
“우리 애들의 미래가 걸려있습니다. 우리만의 일이 아니에요. 이휘 그놈은 우리를 그냥 두지 않을….”
그때였다.
핸드폰이 울린 것은.
이주완 사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가져온 거냐? 밀회할 땐 핸드폰 가져오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아니, 사장실에서 보는 거니 가져왔지요. 모르는 번홉니다.”
“이휘 아니야?”
“그놈이 왜 우리한테 연락을 합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수찬 사장은 전화를 받았다. 말없이 앉은 그때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재밌는 일이 있었다던데. 형제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게 됐구려.
“너 누구야?”
-적의 적은 동지라던데, 이휘의 적이라고 하면 알아듣겠소?
“이휘의 적…? 어디서 개수작을!”
그가 소리치는 순간 이주완 사장이 전화를 빼앗아가며 입술에 검지를 붙였다.
이주완 사장이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얘기하시오.”
-역시 말이 통하는구려. 이주완 사장.
“우릴 잘 아는 것 같은데?”
-당신들이 새가슴이 아니란 것도 알고 있소. 대단하신 분들이 더 대단한 조카를 만나 얼마나 놀랐을지도.
“입 바른 얘기하지 말고 본론만 말합시다. 그쪽이 누군지, 뭘 원하는지 밝히시오.”
-먼저 이휘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서… 믿기 힘들겠지만 놈의 재산은 수 조를 넘소.
“…믿소.”
-그래, 그 꼴을 당했으니 믿어야지. 어쨌든 이게 말이오. 30퍼센트쯤은 비자금이야. 원래 얻을 때부터 범죄에 사용된 비자금을 가로챈 거라서 손에 넣는 순간 세금 한 푼 안 떼는, 아무도 모르게 전액 다 쓸 수 있는 돈이라 이거요.
“그 돈을 갖게 해주겠다는 건가?”
-아니. 그 돈은 우리가 이휘를 처리하는 데 당신들이 줘야할 수수료지.
“처리?”
이주완 사장의 가슴이 뛰고.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수찬 사장 역시 눈을 부릅떴다.
두 사람이 침묵하는 사이 상대가 말했다.
-왜? 가진 걸 모두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 됐는데 이제서 가족애라도 불태우는 건가?
“해서 될 일이 있고 안 될 일이 있소. 내가 설마 가족 목숨에 손을 댈 것 같소? 아무리 돈과 명예가 탐나도 그 정도 쓰레기는 아니오.”
-그런데 전화를 끊지 않는군. 그보다 뒤탈이 생길까봐 두려운 거겠지.
이주완 사장이 이를 갈았다.
“조카에게 얘기해서 당신들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 누군지는 몰라도 우리가 만만해 보였나?”
-생각보다 새가슴이구만. 아니지. 정성그룹 같은 구멍가게에 목숨 건 양반들이니, 당연한 건가?
“뭣? 구멍가게?”
-이휘 그놈은 김정판의 사재를 털 궁리를 하고 있는데 그 웃어른이란 인간들은 정성그룹 하나 가지려고 전전긍긍이라니….
“김정… 뭐?”
이주완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더니, 이내 돌처럼 굳어져서 물었다.
“지금 북한을 말하는 건가?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 이휘가 북한의 금맥을 저 혼자 꿀꺽하려 한다는 소리지. 돈으로 환산하면 20조 이상일 거요. 아마 곧 한국정부에서 북한과 관련한 통일사업 계획을 발표할 테고…. 나 참. 그놈이 운이 좋아. 통일 된다는 소식을 어떻게 구해서는 또 돈 냄새를 맡았다는 것 아니겠소? 그 문제가 이휘의 계획대로만 풀린다면 정성그룹은 그냥 돈벌이 수단이지, 그 이상 이하의 이미도 없어지오.
“…!”
두 사람은 기겁할 만큼 놀랐다. 그들은 모르지만, 상대는 진실에 거짓을 섞고 있었다. 뱀처럼 음흉하게, 이휘가 북한을 굴복시키는데 일조했던 힘은 숨기면서 `20조`라는 금액은 분명한 사실에 입각해 들려주었다.
심지어 얼마 후면 정부에서 발표할 내용까지 미리 알려주자, 두 사람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주완 사장이 물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당신 말을 믿으라고?”
-사실 속으로는 알고 있을 텐데. 내 말이 사실이라는 걸… 우리가 당신들에게 넘겨줄 대가는 정성그룹이오. 딱 그 정도만, 어디까지나 조력자가 되어주면 돼.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정성그룹 같은 회사가 아니라 김정판의 은닉자산과 `수수료`로 받아갈 이휘의 은닉자산이니까. 우리가 당신들이 눈에 가시처럼 생각하는 이휘를 쥐도 새도 모르게 실종시켜주겠소. 자, 여기까지 하고. 다음 이야기는 한국 정부의 발표가 있은 후 다시 합시다.
“연락 방식은?”
-우리 쪽에서 다시 걸겠소.
그 말을 남긴 상대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주완 사장과, 이수찬 사장이 시선을 교환했다. 두 사람의 초조하던 눈빛에 다시 한 번 탐욕이 일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