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110
나는 회귀했다 110
그 시각, 이휘는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놈은 알란이나 알렉세이에게 붙지 않았다.
여전히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하고 있다.
추적자들을 제거하는 일을.
“수고했어.”
이휘의 옆에는 건장한 청년이 서 있었다.
“내가 성공할 줄 어떻게 알았어?”
시원하게 웃으며 묻는다.
이휘가 대답했다.
“그동안 놀고 있지 않았으니까.”
“그건 그렇지.”
그는 정태수.
정대선의 아들이다.
“…하지만 확실한 소스가 아니었다면, 놈의 위치를 추적하는 건 힘들었을 거야.”
정태수는 정대선의 지인인 흥신소 사장에게서 일을 배우고 있었다.
이휘를 백업하다가 아예 이쪽으로 길을 잡았던 것이다.
법원에서 론스터와 사건이 있었던 후에도 이휘를 도왔지만, 지금껏 수면 위로 드러나는 일을 하지 않았다.
이는 이휘가 정태수의 안전을 고려해서 내린 판단이었으나 그 점이 오히려 이번에 정태수를 수면 아래서 움직일 수 있게 해주었다.
이휘는 정태수에게 이번 회담에 참가할 자들 중에 표적이 될만한 놈을 콕 집어주었다. 죽은 요원들처럼 미행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놈이 지나가는 길에서 관찰만 하면 되는 역할이었다.
“뭘 기준으로 삼은 거지? 어떻게 저놈한테 흉수가 붙을 줄 알았던 거야?”
정태수가 눈을 빛냈다.
일을 배우려는 의지가 다분하다.
이휘에게 있어서도 정태수는 중요한 자원이기에, 그는 숨기지 않고 대답했다.
“저놈 소속.”
“소속?”
“그래. 저놈은 멕시코 카르텔 소속이거든.”
“마약상 말하는 거야?”
“맞아.”
“마약상이 여기에 왜 있어?”
“돈이면 무슨 짓이든 다 하는 놈들이니까. 여기 온 놈들이 정상적으로 사업하는 기업가들이 보낸 놈들일까? 아니, 더러운 돈을 만지는 놈들이 보낸 자들이야.”
“그래서 김정판의 비자금을 노린다? 세금 한 푼 안 떼는?”
“맞아. 김정판의 비자금이라면 더할 나위 없지. 원래 그런 돈으로 자기 배 불리는 놈들이니까.”
“별의별 날파리가 다 꼬였네.”
“미국에 매년 감당 안 되는 사상자를 내는 마약. 그 마약을 유통하면서도 아직까지 살아남은 놈들이야. 날파리 수준이 아니지. 멕시코 정부, CIA, FBI… 모두 저놈들이 세금 대신 주는 돈을 먹었어.”
“그럼 미국과 한 편 아니야?”
“절대.”
이휘가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그저 저놈들이 사라져도, 또 다른 놈들이 생길 테니까 내버려 두는 것뿐이야. 매년 윗선에 세금 한 푼 안 떼는 돈을 먹이고 있는 것도 한몫했을 테고. 그래도 한 번씩 토벌 작전을 벌이거나 저놈들 보스를 구속시켜서 목줄을 틀어쥐어. 미 정부가 멕시코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건, 어쩌면 멕시코에서 왕노릇 하는 저놈들 덕도 있거든.”
“카르텔 입장에선 김정판의 비자금을 얻을 수 있다면 강력한 힘이 되겠군.”
“그래. 미국 입장에서는 날파리가 자기 밥그릇을 빼앗는 꼴을 보고 있을 생각이 없을 테고.”
“그럼 저 망치 든 놈은 미국에서 보낸 놈?”
“아니. 미국이 직접 손댈 리가.”
“그럼?”
“다른 하수인을 시키는 것. 그게 미국의 방식이지.”
“그럼 저놈은….”
“우리를 타깃으로 삼은 놈. 그놈이 보낸 자다. 얼마 전에 CIA와 그쪽 사람이 접촉하는 걸 봤거든. CIA에서 지령을 내렸겠지. 비자금을 노리는 자들을 처리해라.”
“그럼 그 조직은 CIA… 아니, 미국의 하수인이란 건가?”
“그것도 아니야. 놈들은 비자금을 가로채서 러시아를 전복할 생각이겠지.”
“러시아를?”
“블라디미르 총리가 낸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을 때, 다시 한 번 헤집어서 끝장낼 작정일 거야. 지금은 미국 눈치를 보면서 하청이나 받고 있지만 러시아를 손에 넣으면 더 이상 안 그래도 될 테니까.”
“서로가 서로를 노리는, 적과의 동침이네.”
“다 그렇지.”
이휘가 말을 이었다.
“지금까진 모두 짐작이었을 뿐이지만, 내 짐작이 맞았어. 저놈을 보낸 조직은 블라디미르 총리와 같은 목표를 갖고 있다. 미국 정부와는 아직까지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고.”
“그럼 저 망치 든 놈, 어쩔 생각이야?”
이휘가 차갑게 눈을 빛냈다.
놈의 움직임을 파악한 이상 PMC 용병들을 동원한다면 충분히 잡을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다.
꼬리를 잡아 봐야 카멜레온 몸통을 끄집어낼 수는 없다.
법적 절차를 밟는다면 모를까.
“일단 회담장으로 가자.”
“저놈을 그대로 두고?”
“무슨 짓을 하는지 지켜보자고. 어차피 그쪽으로 올 테니.”
“미행은?”
“알아챌 거야.”
정태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로 움직였다. 잠시 망치 든 놈을 쳐다보던 이휘 역시 차로 가서 회담장을 향해 출발했다.
***
회담장은 안전을 위해 파나마 시내의 한 술집을 비운 뒤에 잡았다.
이휘는 회담장 인근에서 알란과 합류했다.
“오다가 우리를 압박해 오고 있는 놈을 봤습니다.”
이휘가 고개를 끄덕이자 정태수가 알란에게 사진 한 장을 건넸다.
얼굴을 확인한 알란이 미간을 찌푸렸다. 차갑게 굳은 표정. 처음 보는 얼굴이다.
사진을 내려놓은 알란이 말했다.
“이자, 저희가 아는 자입니다.”
“알렉세이도?”
“네. 저희와 악연이 있습니다. 분명 감옥에 있어야 할 자인데….”
“누굽니까?”
“감옥에 가기 전 러시아 내부에서 소동을 일으켰던 자입니다. 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총리의 목숨을 노렸죠. 실제로 이자에게 대통령님과 블라디미르 총리의 측근들이 대거 죽어나갔습니다.”
“킬러?”
“네. 그런데 일하는 방식이 치밀하면서도 과감합니다. 저희도 이 자를 잡는 데 큰 피해를 봤으니까요.”
그 `피해`가 얼만큼 컸는지는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휘는 더 묻지 않고 말했다.
“혼자 일하는 것 같습니까?”
“원래 혼자 일하는 자입니다. 돕는 자들은 있겠죠. 그런 식으로 일합니다.”
“까다로운 스타일이네.”
“맞습니다.”
“이자의 다음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해야 합니다.”
“일부러 노출했을 수도 있겠군.”
알란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본인이 여기로 올 것을 노출하고, 우리가 함정을 파도록 만든다. 왜…?”
나지막이 뇌까리던 이휘가 표정을 굳혔다.
“우리를 쫓는 놈들을 모조리 죽였던 것도 자신을 찾기 만들기 위해서고, 때가 오자 스스로 존재를 직접 노출했다면… 오히려 우릴 여기로 유인한 것이 놈이란 뜻이 됩니다. 알렉세이에게 연락하세요.”
알라니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이 주변을 철저히 수색하라고 얘기하겠습니다.”
“부딪치지 말라고 당부해요.”
“하긴, 그놈을 보자마자 알렉세이 눈이 돌아가겠네요.”
“잡고 싶다면, 그래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당부해두겠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
“여기 모인 자들에게 메시지만 주고 우린 빠져나갑니다.”
“메시지 내용은요?”
“우린 이미 비자금을 쥐고 있으며, 놈을 잡는 자와 비자금을 나누겠다. 놈에 대한 정보는 모두 공유하세요. 어차피 놈이 비자금을 손에 넣기 전까지 멈추지 않을 것을 모두가 알아야 합니다.”
“한데 우린 자리를 뜬다고요? 신뢰하겠습니까?”
“그건 상관없습니다. 제가 놈이라면….”
이휘가 고개를 저었다.
“놈이 정말 거칠 것 없이 일을 저지르는 놈이라면,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일단 우린 빠져나가서 상황을 지켜봅시다.”
알란은 그가 서두르고 있다고 여기고 빠르게 움직였다. 이휘가 이처럼 다급해 보인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메시지를 주고 후문을 통해 술집을 빠져나가며, 알란이 말했다.
“살아서 여기 온 자들끼리 얘기를 좀 더 나눌 모양입니다. 그놈을 잡기 위해서요. 비자금을 나누는 것도 상의해봐야 하고.”
“놔두세요.”
“놈이 여기 올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
“그럼 놈을 발견하신 곳부터 여기까지 저격포인트에 저격수들을 배치하면….”
“안 올 겁니다.”
“안 온다고요?”
“계획을 수정해야겠어요. 놈들이 노리는 걸 제 목숨이나 비자금이 아닌, 다른 걸로.”
“어떤 것 말씀이십니까?”
“내가 이룩한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 있는 접점들. 가령 마원이요.”
“…!”
알란이 크게 놀랐다.
이휘가 덧붙였다.
“우린 알란에게로 갑니다.”
“알렉세이에게 근처 수색을 시키지 않으셨습니까?”
“제 생각이 맞다면 놈이 고용한 저격수들이 우릴 노리고 있을 겁니다. 부지런한 놈이에요. 마구잡이로 움직이는 것 같아도 잠시도 낭비하지 않고 끊임없이 우리를 흔들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교묘하게.”
그때였다.
진동이 울리자 이휘가 전화를 받았다.
“알렉세이.”
-저격수 둘을 처리했다.
“역시….”
이휘는 눈을 빛냈다.
“다음은, 여기겠군.”
-무슨 소리야?
“저격수들은?”
-둘 다 죽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즉시 호텔로 가.”
-알겠다.
바로 알아들은 알렉세이가 전화를 끊었다.
이휘가 말했다.
“우린 비행장으로 갑니다.”
알란, 정태수, 이휘는 마원과 백 팀장이 간 비행장으로 차를 몰았다.
시내를 빠져나가는 그때, 뒤에서 어마어마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콰아아아아아앙!
“…!”
알란이 사이드미러로 시커먼 연기가 솟는 술집 건물을 쳐다보더니 눈을 부릅떴다.
“회담이 있을 장소 자체를 날려버리다니…!”
“…역시.”
이휘가 중얼거리자 정태수가 물었다.
“뭐야? 미리 알고 있었던 거야? 술집을 비우라고 한 것도….”
“추측일 뿐이었어.”
“거긴 사람들이 있었다고!”
“킬러들?”
“그건….”
“놈들이 빠져나갔다면 우리가 나서기 전에 폭탄을 터뜨렸을 거다.”
“아무리 그래도!”
“잘 들어.”
이휘가 덧붙였다.
“우린 지금 한 발만 삐끗해도 목숨이 날아가는 싸움을 하고 있어. 우리 목숨뿐만 아니라, 네 아버지, 내 가족 모두. 저놈들은 지켜야할 선 같은 게 없어.”
“….”
“지금은 후회할 때가 아니라 이 상황을 만드는 문젯거리를 처리할 때야. 나머진 나중에 하자.”
알란은 힘껏 악셀을 밟았고, 그들은 비행장으로 갔다.
깊은 밤, 활주로가 눈에 들어올 때쯤에는 이미 총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저곳에서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알란이 말했다.
“그때도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놈은 열 가지 포석을 깔고 움직였고, 우린 그 안에서 놀았어요. 여러 명의 희생이 있은 다음에야 놈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아니, 놈이 잡힐 것 같자 투항했어요. 놈이 그런 짓을 벌였다는 증거도 없는 상황이었죠. 우리 팀원 중 한 명이 자기 목숨을 걸고 놈을 해치려고 했습니다. 만약 그놈이 자기를 죽이려 드는 팀원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감옥에 넣는 것도 불가능했을 겁니다.”
이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휘는 술집에서 회담을 갖는 척해서 놈을 유인하거나, 다른 해결사들이 놈을 잡도록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만약 그 일로 시간을 끌었거나, 놈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했다면 폭발에 휩쓸려버렸을 터였다.
한데 놈은 그 결과를 확인하기도 전에 비행장에 와서 이휘의 수족과 같은 마원을 처리하려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이휘가 등잔 밑이 어둡다는 점을 노려 김정판과 장문택을 빼돌리는 척 남몰래 PMC 용병들과 호텔로 빼돌린 것을 파악하고, 그쪽에도 손을 써뒀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알렉세이를 보낸 거고.
지금 자신과 알란은 비행장으로 온 것이다.
하지만 알란과 알렉세이가 겪은 지난 날과는 다를 것이다.
비록 호흡이 빠르긴 하지만, 지금 자신은 놈이 짜낸 계략과 나란히 달리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