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112
나는 회귀했다 112
그러나 끝이 아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그건 이휘의 신념이었다.
아무리 절박한 상황에 처해도 죽음이 의지를 잘라내지 않는 이상 끝은 없다.
“후욱, 후욱.”
숨을 헐떡인다.
그 순간, 틈을 주지 않고 다시 한번 발차기가 날아든다.
하이킥.
피하긴 늦다.
축 늘어진 팔은 말을 듣지 않는다.
이휘는 순간 앞으로 파고들었다.
퍼억!
무릎에 늘어진 팔뚝이 걸리며 몸 전체가 휘청거렸다. 버티기 힘든 고통은 둘째 치고, 몸이 밀릴 정도로 강력한 하이킥이다.
“크읍.”
비명을 들이마시며 다시 한 걸음 내디뎠다. 간 보듯 하이킥을 날렸던 놈이 눈으로 따라잡기 힘든 훅을 날렸다. 다친 팔로는 막을 수 없었지만, 어깨를 들며 간신히 방어했다.
퍼억!
“큭!”
신음을 삼키는 순간 명치에 주먹이 꽂혔다.
뻐억!
“커헉!”
답답한 숨이 터지며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뒤로 주르륵 밀리는 순간, 지척에 있던 이휘가 앞으로 고꾸라지듯 쓰러졌다. 그의 어깨를 잡아 일으키는 찰나.
이휘는 발로 바닥을 쓸며 놈의 발목을 가격하려 했다. 놈이 한 발을 들어서 하단을 걸려던 발을 짓밟는다.
콰앙!
우득!
“커헉!”
세 번.
공격을 허용했다.
대가는 치명적이다.
그럼에도 이휘는 눈을 번뜩였다.
상대의 눈이 커지는 순간, 이휘가 나머지 멀쩡한 손을 뻗어 턱을 잡아갔다.
놈이 손목을 움켜쥐고 반대 손으로 얼굴을 가격하는 순간.
이휘는 바로 고개를 돌리며 팔꿈치를 휘둘렀다.
퍼억!
타격음은 하나였다.
상대방의 주먹은 이휘의 얼굴에 들어갔으나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아슬아슬하게 빗나갔고.
이휘의 팔꿈치는 놈의 안면에 제대로 틀어박혔다.
“크윽!”
처음 비명을 터뜨린 놈이 뒤로 물러나려 했다. 그러나 이휘는 놔주지 않고 다시 한 번 팔꿈치를 휘둘렀다.
퍼억!
코가 이상한 방향으로 꺾였었는데 이번에는 광대가 주저앉았다.
“이 개….”
그 순간, 이휘가 부러진 발을 번쩍 치켜들었다. 발은 부러졌지만 허벅지 힘은 여전했다.
퍼억!
무릎으로 옆구리를 가격하는 순간 허리를 접은 놈이 물러나려 했다.
이휘는 턱주가리를 놓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쓰러질 듯 몸을 밀착시키며 다시 한 번 팔꿈치, 무릎을 동시에 휘둘렀다.
퍽― 퍼억!
“커헉!”
놈이 이휘의 얼굴을 향해 입 안에 고인 피를 한 움큼 뿜으며 발로 밀어찼다.
퍼억!
마침내 이휘가 떨어져 나가면서 놈과 양쪽으로 떨어졌다. 이휘는 쓰러진 사물함에, 놈은 바닥에 처박혔다.
“개새끼가!”
놈이 벌떡 일어나 안광을 번뜩인다. 이미 얼굴은 정상이 아니었다.
저렇게 맞고 정신을 잃지 않다니!
이휘는 쓰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절호의 기회에 끝내지 못했으니 승률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지만 상관없다. 이미 누구 한쪽은 죽어야 끝나는 싸움이 됐으니까.
“퉤!”
침을 뱉은 이휘가 스윽 등 뒤에서 뭔가를 꺼냈다. 사물함이 쓰러지면서 떨어져 나온 날카로운 철조각을 손에 쥔 것이다.
“고작 그딴 걸로 상황이 바뀔 거라고 생각하나?”
놈은 그렇게 묻는 동시에 몸을 날렸다. 바닥에 떨어진 권총을 향해서.
이휘는 한쪽 다리를 못 쓰는 상태이기에 반응하지 못했다. 대신, 날카로운 철조각을 있는 힘껏 날렸다.
쉬익!
푸욱, 순식간에 날아간 철조각에 적중당한 놈이 몸을 뒤집으며 쓰러졌다.
“커헉!”
철조각이 목에 박혀 있었다.
출혈이 크지만 이 정도로 죽일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을 아는 이휘는 부지런히 접근하다 쏜살 같이 날아 덮쳤다.
콰앙!
두 사람이 뒤엉킨다.
이휘는 무차별적인 폭격을 당했다.
퍼버버버벅!
스파링할 때 가드 없이 상대의 공격을 허용하면 순식간에 여러 차례 타격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
가까이 붙어서 치고받을 때 느끼는 상대의 주먹은 반응하기 힘들 만큼 빠르다.
머리통을 양철북마냥 두드려 맞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휘가 노린 것은 오로지 하나였다.
목에 박힌 철조각.
이휘는 그걸 잡아다 작은 망설임도 없이 냅다 그어버렸다.
촤악!
피가 튄다.
그러나 이미 여긴 지옥이다.
피투성이 상태로, 이휘는 다시 한 번 철조각을 찔렀다.
푸욱!
놈이 팔로 철조각을 막더니 휘둘러서 이휘의 손에서 철조각을 떼어놨다.
다시 주먹이 들이쳤다.
콰앙!
이휘는 남은 팔로 놈의 타격을 막아낸 뒤, 냅다 이마로 콧등을 내리찍었다.
콰직!
“커헉….”
그걸 시작으로 이휘는 쉼 없이 이마로 놈의 얼굴을 내리쳤다.
퍽! 퍼억!
몇 번이나 찧어댔을까.
놈의 동공이 흐릿하게 풀린다.
“….”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잔상처럼 남았다.
그도 그럴 것이 둘 사이의 싸움은 오직 의지력의 싸움이었다.
어느 한쪽이 기절하지 않는 것이 기이할 지경이었다.
정신을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은 이휘가 잠을 자지 않고 받았던 훈련, 고문을 버텨내는 훈련 따위에서 얻은 정신력이다.
물론 상대도 그런 훈련을 거쳤기에 정신을 놓지 않을 수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살아남은 것은, 이번에도 이휘였다.
거인을 잡으려면 방법은 오직 하나다.
허를 찌르는 것.
놈이 이휘의 뼈를 부러뜨리는 타격을 쏟아낼 때, 이휘는 오로지 한 방 한 방 유효타격만 신경을 썼다.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절망감과, 그 절망감에서 꽃피운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이 승리를 가져온 것이다.
상대는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방심이 되어 패배한 것이고.
“강해서, 이기는 게 아니야.”
이휘는 주먹을 쥐고 가드조차 올릴 힘이 없는 놈의 얼굴을 겨냥했다.
“약해서 이기는 거지.”
퍼억!
한 방.
이미 적대할 힘이 없는 상대에게 들어간 치명타 한 방은 죽음을 선사했다.
이휘나 상대나 서로 저항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는 순간 이미 한 방에 승부를 종결 지을 힘이 있었다.
그 결과는 참혹했지만, 이휘는 놈의 숨통을 끊고 엉금엉금 기어가서 권총을 잡았다.
만에 하나 있을 대항이나, 또 다른 상대의 기습에 맞서기 위해.
그리고 잠시 후 알란이 총을 겨눈 채 들이닥쳤다.
“이게 무슨….”
그는 온통 박살 난 주위를 훑더니 혀를 내둘렀다. 총알자국만 해도 한 두 발이 아니다. 얼마나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는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상대는 죽어있고, 이휘도 숨만 붙은 수준이었다.
저런 상태에서 권총을 쥐고 있다.
“접니다. 저에요.”
이휘가 입매를 일그러뜨렸다.
“후우.”
숨을 내쉬는 것.
그게 다다.
알란은 이휘를 부축했다. 알란에게 기대어 일어서는 것마저 신음을 뱉는다.
알란은 괜찮냐고 묻지 않았다.
‘보통 사람 같으면 즉사했어도 이상하지 않다.’
상황이, 계획이 꼬였다.
상대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알고 있었지만 직접 접전을 벌여본 적은 없다.
설마 이휘가, 이제는 알렉세이와 자신이 함께 달려들여야 겨우 대등한 싸움을 치를 수 있을 것 같은 이휘가 이 정도로 호되게 당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이제 이휘는 전처럼 사고할 수 있을지-`당연히 전면에 나서서 싸울 수는 없겠지만`- 알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돌아갑시다. 돌아가서 치료 받고 다시 시작해요.”
그 말이 들렸는지, 이휘가 미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대장. 지금 이 상태론 전처럼 일상생활이 가능할지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보기보다….”
“뭐요?”
“괜찮아요.”
이휘가 숨을 몰아쉬며 말을 이었다.
“뼈는 몇 대 부러졌지만, 치명상은 피했습니다.”
알란은 눈을 크게 뜨고 얼굴을 확인했다. 그러고 보니, 정작 얼굴은 멀쩡하다.
상대는 얼굴의 형체도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정도로 당해 절명한 반면 이휘는 치명상을 피한 것이다.
그렇지 않은 이상, 이런 싸움에서 얼굴만 멀쩡할 리 없으니까.
이휘의 안면에 묻은 피는 모두 상대방의 피라는 뜻이 된다.
“어떻게….”
“방심하기에… 더 방심하게 만들었지.”
이휘가 다시 입매를 비튼다.
“아마… 지금 상대도 마찬가지일 테고.”
이휘가 말하는 그 대상이 누군지 안다.
알란이 말했다.
“그럼 뭐합니까. 그놈이 어딨는지, 누군지도 모르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가 이 고생을 했겠습니까?”
“모르지만… 우리 편이 생겼잖아요.”
“예?”
무슨 소리지?
알란이 갸웃하자 이휘가 덧붙였다.
“저놈이 회담장을 폭파시켜서 죽인 자들… 다 누군가 보낸 놈들 아닙니까.”
“아!”
“그자들과 함께 잡으면 됩니다. 우리끼리 움직이는 것보단… 훨씬 도움이 될 거예요.”
“그럼 굳이 저자를 처리할 필요 없었던 것 아닙니까? 몸만 뺐어도….”
“아니.”
이휘가 고개를 저었다.
“놈은 우리가 이리로 올 걸 몰랐어요. 그런데도 이 정돕니다. 만약 놈이 우릴 노리게 만들었다면… 결국은 당했을지도 몰라요.”
유리한 상황을 만든 이상 피할 게 아니라 전면전을 벌이는 것.
당장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뒤를 생각하는 것.
말은 쉽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이휘가 물었다.
“저놈… 전문가를 고용해서 파트너들과 움직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네. 그게 저놈 스타일입니다. 아무도 곁에 두지 않아요. 그래서 잡기 더 힘들고.”
“그럼 저놈의 복수를 위해 움직일 자들은… 없겠군요.”
“…이번 일로 우리만 몸집을 불린 격이네요. 상대는 중요한 공격자원을 잃은 걸 테고.”
“그 술집에 있었던 해결사들을 보낸 자들과… 회담을 가질 겁니다. 이번에는 진짜로.”
“그자도 그냥 당하진 않을 겁니다. 지금까지 상황을 봐서는요.”
“이번 테이블에 CIA도 불러요.”
“CIA요?”
“우리를 노리던 놈들이 이용가치가 사라진다면… 더 좋은 정보제공자들이 여럿 생긴다면 굳이 놈을 비호하지 않을 겁니다.”
그제야 알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해결사를 보낸 자들도 김정판의 비자금을 노리는 자들일 테니 뛰어난 정보력을 가진 자들이겠죠.”
“그래요.”
알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휘는 이번 일을 통해 아군을 만든 셈이다.
반대로 적은 적을 늘린 셈이고.
“호텔로.”
“호텔이요?”
“놈들이 그쪽에도 손을 썼을 겁니다.”
김정판과 장문택을 피신시키는 척 호텔로 복귀시켜놨다.
그곳은 PMC 용병들과 알렉세이가 지키고 있지만, 상대가 어떤 놈들을 보냈는지 모른다.
그러나 알란은 좋은 소식을 전했다.
“알렉세이에게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알렉세이에게?”
“습격 시도가 있었지만 미리 언질해주신 덕에 김정판과 장문택을 잘 지켜냈다고 합니다.”
“그렇게 말했을 리가 없는데.”
“…?”
“그 무식한 알렉세이가.”
알란이 피식 웃었다.
“제가 순화한 겁니다. `너희나 잘해`라더군요.”
이휘도 마주 입술을 비틀었다.
“큭. 이제….”
“….”
“반격할 차롑니다.”
이휘의 눈이 번뜩였다.
이번에 자신을 죽이지 못한 걸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다.
만약 마음을 먹었다면 여러 곳에 분산해서 일을 처리할 게 아니라, 총력을 다해 오로지 자신의 목숨만 노렸어야 했다.
상대는 지금까지의 누구보다 자신을 높이 사고 있지만, 아직도 자신에 대해 전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