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119
나는 회귀했다 119
“비자금을 노린 게 아니었나?”
그 질문에 블랙이 답했다.
“비자금 조 단위. 물론 탐나는 돈이야. 하지만 거기까지다.”
“…?”
“그 돈을 먹어봐야 탈이 날 수박에 없어. 그걸 방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휘가 눈매를 좁혔다.
“설마.”
“그래, 내게 위협이 되는 자들을 먼저 제거하고 삼킨다. 급하면 체하는 법이야.”
놀랍도록 여유롭다.
다들 코앞에 있는 듯한 거액의 비자금을 손에 넣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그건 이휘도 다르지 않았다.
그 역시 김정판의 비자금을 꿀꺽하기 위해 파나마로 온 거니까.
위협이 많을수록 그 돈을 빨리 손에 넣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랙이란 인물은 그 돈을 삼킬 환경을 만드는 것을 우선시했다.
“젠장. 그래서 그 돈을 노리는 놈들을 그런 식으로 제거한 거군.”
“자네와 내 악연의 시작점에 주목했어야지.”
이휘는 지난 일들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처음 블랙과 접점이 생긴 것은 기차 안에서. 놈이 접근해서 자신을 죽이려 들었다.
다음은 여자를 보내서 자신을 위해하려 했고.
애초에 두 번이나 자신의 목숨을 노리려다 실패했고, 그리 집요하게 노리는 이유가 있다고 여겼다. 그 이유를 김정판의 비자금이라 확신했으며 얼마 전부터는 김정판의 비자금을 쫓는 세력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블랙은 그 후에도 이휘나 돈을 노리는 자들의 목숨만을 노렸다. 자기 손을 더럽히는 대신 악명 높은 죄수를 고용해 돈을 찾으러 온 이들을 모조리 죽여버렸고, 이휘까지 살해하려 했다.
세 번째 살해 시도.
그러나 번번히 실패했고….
지금은, 이휘의 뒤통수에 총을 겨누고 있다.
“김정판의 비자금은 옵션일 뿐이었군.”
“맞아. 역시 머리가 잘 돌아가는군.”
블랙이 끼리릭 방아쇠에 서서히 힘을 준다. 마치 조물주처럼, 손가락 한 번 튕기면 사람 목숨이 꺼지는 것을 즐기는 듯한 태도다. 총을 쏘면서 이런 태도를 가지려면 정말 전투에는 이골이 나야 한다.
“내가 널 죽이지 않는 건, 네가 이용가치가 있기 때문이야. 처음에는 김정판의 비자금을 노리는 다른 놈들처럼 그냥 죽이려 했는데 드러내지 않은 게 많은 것 같더군. 잠시나마 CIA를 휘어잡은 것도 그렇고, 전세계 언론사를 통해 날 테러범으로 몰은 것도 그렇고. 그래서 김정판을 쥐고 비자금을 뜯어낼 게 아니라. 널 잡아서 네가 가진 모든 걸 삼켜야겠다고 생각했지.”
“꿈도 크셔.”
“이만하면 깜짝 놀라거나 감탄할 줄 알았는데?”
“내가 놀라거나 감탄했으면 좋겠나?”
“뭐?”
“그렇잖아. 당신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있지만 날 죽일 수 있었다면 죽여야 했어.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렇지. 그다음 내가 가진 모든 걸 찾아내서 다 가져도 늦지 않아. 당신 정도 능력이라면 주인이 사라진 은닉자산 따위, 삼키는 건 일도 아닐 테고.”
“명을 재촉하고 싶은가 본데….”
“아니.”
이휘가 이죽거렸다.
“당신은 날 못 죽여.”
“그렇게 죽고 싶나?”
“날 부하로 삼고 싶겠지.”
그 순간.
뒤통수를 겨눈 총구가 흠칫했다.
이휘는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동요를 느낄 수 있었다.
“돈을 버는 이유가 뭐지? 권력을 얻기 위해서. 그럼 권력이 뭐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결국 모든 건 힘을 가지고 싶어서야. 시황제나 히틀러가 공포를 통해 권력을 지키려 한 이유가 뭐지? 우리가 어렸을 땐 폭력이 힘이었지만, 지금도 같아. 다만 지금은 돈과 지위. 그리고 대중의 지지를 이용해 힘을 과시하는 것뿐. 대부분의 인간이 느끼는 최고의 자극과 희열은 우월감에서 온다.”
“하하하하하하하!”
웃음을 뚝 그친 블랙이 말했다.
“마치 날 잘 아는 것처럼 말하는군.”
“당신도 날 잘 알잖아.”
“날 두려워하고, 내게 굴복한 이들은 셀 수 없이 많다. 나는 강자야.”
“그런가?”
“물론.”
“그럼 더더욱 날 못 죽이겠군.”
“왜지?”
“이미 잡은 물고기에는 흥미를 잃었을 테니까. 당신에게 굴복했던 자들한테 느끼는 우월감은 더 이상 자극적이지 않을 거야. 하지만 나는?”
“스스로를 너무 과신하는 경향이 있어. 그런 자만심은 때때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불러오지.”
블랙에게서 살기가 피어올랐다. 그렇다고 만화영화처럼 붉은 오러가 피어오른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가 죽이고자 마음먹었을 때 상대방이 느껴지는 전기신호가 있다.
물론 블랙은 마음을 감추거나 일부러 확대하는 것에 능했지만, 지금처럼 굳이 위장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는 백 퍼센트 진심이었다.
따라서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알란이 소리쳤다.
“그만!”
허나 이휘는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럼 죽여봐.”
“착각하는군. 네 말이 맞다. 하지만… 난 한 번만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돼. 사람을 너무 약 올리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걸 모르나보군.”
그 순간.
블랙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이휘는 어깨가 터져 나가는 느낌과 함께 앞으로 굴렀다. 알란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탕! 탕! 탕! 탕!
블랙이 머리를 겨누고 있는 상황, 총알을 격발하는 완벽한 타이밍에 이휘가 쑤욱 앉아버리자 찰나의 틈이 생겼다. 하지만 블랙은 이휘 못지않게 노련한 전사였고 상대 움직임에 따라 자연스레 총구가 따라갔다. 그리고 다시 쏘려는 순간.
맞은편의 알란이 총을 쏘는 바람에 몸을 날려 피한 것이다.
“이 개새끼들!”
블랙이 크게 외치며 바닥을 미끄러졌다. 알란의 다리를 노리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도는 보기 좋게 먹혔다. 무릎을 총알에 스친 알란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휘는 돌아보는 대신 짐칸에 있던 커다란 캐리어를 집어던지며 달려들엇다.
캐리어를 쳐내느라 잠깐 시선이 팔렸던 블랙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총구를 겨누며 총을 쐈다.
탕! 탕!
이휘의 어깨에 총알이 박히고, 나머지 한 발은 뺨을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그걸 담보로 권총을 든 블랙의 손목을 거머쥘 수 있었다. 이휘는 망설이지 않고 몸을 틀며 블랙을 넘기려 했다. 보통 사람 같으면 0.5초만에 땅에 처박혀서 천장을 올려다봤겠지만, 블랙은 순간적으로 몸을 반대로 틀며 이휘의 손목을 꺾었다.
으득!
“큭.”
이휘가 짧은 신음을 뱉으며 블랙의 얼굴에 연달아 주먹을 두 방 꽂고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그 덕에 반격은 허용하지 않을 수 있었지만 아직도 왼쪽 손목이 얼큰했다. 순간적으로 걸린 기술에 자칫하면 뼈가 부러질 뻔했다.
운이 좋아서 반응할 수 있었지만, 지금 몸으로는 얼마 전과 같은 힘과 유연성, 반응속도를 발휘할 수 없었다.
한편 코가 부러진 블랙은 엄폐물에 숨어 코를 소매로 닦았다.
“이 개 같은 새끼!”
“넌 끝났어.”
이휘가 나지막이 으르렁거렸다.
“넌 총도 없지. 여긴 총 든 전사가 셋이나 있다.”
“셋?”
블랙이 맞은편 쇠를 통해 머릿수를 셈했다. 알란, 이휘, 그리고 지금 막 들어선 알렉세이까지.
세 사람이 총을 겨누고 있었다.
“투항한다.”
블랙이 마침내 위로 손을 들고 천천히 일어났다.
알란과 알렉세이가 총을 내렸다.
그러나 이휘는 아니었다. 알렉세이가 와서 건네어 준 권총의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끝인가?”
“뭐?”
“이게 끝이냐고.”
“무슨 뜻이냐.”
“너 혼자 이런 규모의 일을 벌일 수 있을 리 없잖아. 점조직? CIA는 점조직과 손을 잡지 않지.”
“음모론이군.”
“그럴지도.”
피식 웃은 이휘가 말했다.
“그래 뭐… 괜히 짐작할 필요 없지.”
“졌다. 널 돕지.”
“뭐?”
“내가 네 조력자가 되어주겠다는 뜻이다.”
“글쎄. 난 너한테 별 흥미 없는데. 넌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난 당신이 호적수라고 여기지 않거든.”
“내가 가진 모든 정보, 재산, 조직까지 넘겨주지.”
“싫어.”
“지금보다 훨씬 더 강력해질 수 있을 거다.”
“네가 본 게 다라고 생각하지마. 난 지금도 충분히 강하다.”
“그럼 날 CIA에 넘기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아니.”
탕! 타앙!
두 발.
블랙의 양쪽 무릎이 날아가며 놈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끄으으으. 무슨…!”
저벅저벅 다가가서 블랙의 뒤통수에 권총을 겨눈 이휘가 말했다.
“넌 수많은 인명을 학살하다시피 했어. 그중에는 우리 용병부대 부대원들도 있었고. 나는 그들의 가족에게 편지를 쓰고 찾아가서 사죄할 생각이다. 임무 중 사망. 위로금, 국가유공자대우를 받게 해주는 것… 그 무엇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거야. 죽은 사람은 결코 돌아오지 않으니까. 그런데 넌 감옥에서 호의호식하겠다? 아니, 아니. 분에 넘쳐. 노숙자들도 갈 데 없으면 먹여주고 재워주는 곳이라고 드나드는 데가 바로 감방이거든. 너한테 어울리는 건 지옥이지, 감방이 아니다.”
“너…!”
이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블랙이 그대로 널브러져선 경련했다.
뒤에서 지켜보던 알란과 알렉세이는 차마 말리기도 전에 블랙을 쏴버린 이휘를 응시하며 몸서리를 쳤다.
“이런 미친….”
알렉세이가 중얼거렸고.
“CIA에는 뭐라고 하실 생각이십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런 식으로 죽이는 건….”
알란이 망설이며 읊조렸다.
그러나 이휘는 냉혹한 처사를 한 표정 그대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테러범으로 재판을 받으며 아마 평생 감옥에 처박혀 있을 겁니다.”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이런 새끼는 계속 머리를 굴려요.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만약 저의 적이 저를 멈추려 한다면 죽여야 할 겁니다. 저도 그러니까. 이 자도 마찬가집니다. 물론 CIA의 말처럼 이 자의 자리를 다른 누군가 대체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놈은 나에 대해 잘 모를 겁니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다시 한번 싸움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 와도, 이쪽에 대한 데이터가 없는 상대와 싸우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이는 전술의 기본이다.
이휘는 그걸 충실히 지키고 있는 거고.
“게다가 선량한 사람을 수도 없이 죽인 놈이에요. 죄를 저지르면 감옥에 가겠지만, 선량한 사람을 해친 게 분명하다면 살려둘 필요가 없습니다.”
확고한 어조에 알란이 대답했다.
“총격전 중 사살된 것으로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
“그러세요.”
이휘는 알렉세이에게 권총을 넘겨주고 자리를 떠났다. 밖으로 나오자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전화가 왔다.
“네.”
-접니다.
백성범 팀장이다.
“말씀하세요.”
-저격수 둘 처리했습니다.
“네. 호텔 쪽은?”
여기서 `호텔`이란 더 이상 그들이 묶었던 곳이 아니다.
김정판 또한 벌써 이곳에 없었다.
이휘는 장문택을 호텔에 남겨두는 동시에 진즉 마원을 보내면서, 김정판을 빼돌렸던 것이다. 애초에 마원을 통해 김정판을 설득하는 계획만은 그대로 진행한 셈이다.
따라서 그가 말하는 `호텔`은 파나마 호텔이 아닌, 김정판이 있는 모든 곳이었다.
혹시 모를 적들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국정원 통신회로로 이휘 대신 마원에게 주기적인 연락을 받아주던 백 팀장이 말했다.
-김정판의 비자금을 전액을 회수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