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121
나는 회귀했다 121
비공식적으로 한국에 도착한 이휘는 자신을 마중 나온 의외의 인물을 볼 수 있었다.
“어서 와요.”
나타샤다.
그녀는 이휘를 한 차례 훑더니 고개를 저었다.
“또 다쳤네요.”
“별 거 아니에요.”
이휘는 겉으로 보이는 붕대를 푼 상태였다. 얼굴에 상처와 멍자국도 선글라스를 써서 대부분 가렸다. 언뜻 보기에는 크게 다친 것 같지 않았는데, 나타샤는 단번에 그의 부상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아봤다.
“걷고 서있는 것부터가 틀린데 무슨 되도 않는 거짓말을 해요?”
이휘가 쓰게 웃었다.
“대부분 속았을 겁니다.”
“난 아니에요.”
나타샤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일단 가면서 얘기하죠.”
“다시 써요. 나보단 나타샤가 눈에 띌 테니까.”
멋쩍게 웃으며 도로 선글라스를 써서 얼굴을 가리는 나타샤. 그럼에도 그녀의 아우라는 특별했다. 그들은 모자와 선글라스를 얼굴을 가린 채 어쩔 수 없는 주목을 받으며 차로 움직였다.
나타샤가 타고 온 S클래스 주변에 경호원들이 철통같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휘는 고개를 내저었다.
“눈에 안 띄려는 사람 치고 너무 요란한데.”
어깨를 으쓱인 나타샤가 뒷좌석 문을 열어주었다.
이휘가 타고, 그녀가 차에 탔다.
알란이 보조석에 타고 알렉세이가 기존 운전사에게 이야기를 하고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이동하는 사이 나타샤가 물었다.
“우리 어디로 가요?”
“사무실로.”
“뉴스 봤어요. 정부에서는 오라버니와 관계를 극구 부인했던데.”
“미리 얘기되어 있던 사항입니다.”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니에요? 오라버니가 한 일을 생각하면 그래선 안 됐죠.”
“정부 측에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거에요. 그나저나 고마워요.”
“뭐가요?”
“내 꼴을 보고도 소란 떨지 않아서.”
“보통은 서운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그런 분위기를 안 좋아해서.”
“의외의 곳에서 점수를 땄는데?”
나타샤의 표정이 기분 좋게 폈다.
그녀는 답답한 선글라스를 벗으며 말했다.
“그래서, 이제 어쩔 거에요? 미 정부에서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잖아요? 자기네 통제를 벗어난 요주인물을.”
“언제는 말 들었나요, 뭐.”
“미 정부에선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텐데.”
“그래서, `규격 외`의 인물이란 걸 단단히 알려줄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요?”
“그건 보면 알아요.”
나타샤가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강남역에 위치한 파트리아 펀드 본사에 도착했다.
이휘가 들어서자 직원들이 일어나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러면서도 일말의 근심이 얼굴에 자리잡고 있다. 최고의 직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이휘는 모른 척 사무실에 있는 사람 중에 방준수만 데리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물었다.
“상황은 어때?”
“총력전 할 준비는 끝났어.”
“미 정부에서 어떻게 나올 것 같아?”
“글쎄… 적어도 테러범들처럼 무식하게 굴지는 않겠지. 더 교활하고 무자비하게 공격할 거야.”
“우리가 인수한 미국 회사들을 모조리 날려버리진 못할 것 같은데.”
“맞아. 머리만 날리려 들겠지. 우리가 핸들을 잡고 있는 미국 회사들을 타격하는 순간 미국 경제는 크게 흔들려.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을지도 모르지.”
“수 싸움을 시작한 게 잘한 거라고 칭찬하는 거야?”
“내 생각은 그래.”
방준수는 이럴 때 당당하다.
“우리가 먼저 굽히고 들어갈 필요 없어. 다만 대비는 해야 할 거야. 저쪽에서도 우리가 사실상 소유하고 있는 회사들을 전부 파악한 것 같거든. 아마 공권력을 이용해서 견제할 거야. 회사 경영진이나 투자자들이 널 배신하도록.”
“팔다리를 잘라낸다?”
“그래. 미 정부에서 힘을 실어주면 경영진도 흔들릴 수밖에 없지. 처음 회사를 시작할 때 창업멤버들이야 우리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있지만 뒤에 들어온 경영진이나 투자자들까지 우리한테 충성을 맹세하는 건 아니야. 미국에서 장사하면서 굳이 미 정부와 척을 진 회사 편을 들 리가 없지. 우리 말고도 투자하고 싶다는 자본가들이 널렸는데.”
“그렇겠지.”
돈과 권력 앞에서 인간은 본색을 드러낸다. 어쩌면 방준수가 말하는 창업멤버들 마저도 다른 생각을 품을 수 있다. 이휘는 그같은 사실을 배제하지 않았다.
“우리를 배신하지 못하게 하려면 우리 힘을 보여줘야겠지. 나중에라도 미 정부가 우리한테 손을 뻗으면, 이번에 우릴 배신한 자들이 새 될 수 있다는 걸 알려줄 필요성이 있어.”
“내가 이래서 널 좋아한다니까.”
방준수가 씨익 웃었다.
이휘도 마주 웃었다.
“아, 그래? 나 좋아했어?”
“돈 주는 사람인데 좋아해야지 별 수 있나.”
“미 정부에서 보따리 싸들고 오면 첫 번째로 배신할 기세인데?”
“안 해. 네가 지지 않을 걸 아니까. 내가 돕는다면 넌 절대 안 져.”
“거참 든든하구만.”
“농담은 이쯤하고 계획을 얘기해봐.”
“형 생각은 어때?”
잠시 생각에 잠겼던 방준수가 입을 뗐다.
“미국에 있는 회사들은 당장 움직일 수 없어. 그들에게는 네가 말한 것처럼 우리한테 승산이 있다는 걸 먼저 알려줘야 하니까. 그렇다고 히든을 까긴 이르고… 시작은 가볍게 잽부터 날리자.”
“어쭈. 요새도 꾸준히 운동 하나보네. 싸우는 법을 좀 터득했나봐?”
“장난치지 말고. 내가 준비한 잽은 국내에 우리가 가진 회사들과 중국의 알리, 러시아까지. 미국과 거래를 중단하고 미국 투자자들을 내보내는 거야.”
“타격이 크겠군.”
“회사 전부 날릴 각오하고 싸움 건 거 아니야? 이 정도는 돼야 미국 경제에 생채기라도 내지.”
“미국 내에 있는 회사를 움직이지 않는 한 생채기도 안 날 거라는 게 내 생각이야.”
“생각이 좀 다른데?”
방준수의 미소가 짙어졌다.
“네가 회사 일을 나한테 일임한 뒤로 놀고 있었던 거 아니야. 지금 우리 회사 매출이 거저 생긴 것도 아니고. 미국에 우리가 투자하고 있는 회사가 몇 개인지 알아? 우리가 인수하거나 투자한 알짜배기 회사들 빼고, 나머지 회사들의 자금을 전부 다 빼서 러시아, 유럽에 퍼붓자고. 중국이 가장 좋긴 하겠지만 그놈들은 영 미덥지가 않아.”
이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소문을 내자는 거지?”
“맞아. 그럼 미 정부에서 어떤 제스쳐를 취하겠지.”
“기대되네.”
이휘는 탁자를 톡톡 두드리며 덧붙였다.
“하나 더. 미국이 점유하고 있는 무기시장을 빼앗아와야겠어.”
“무기시장을?”
“그래. 러시아가 세계무기시장의 40퍼센트를 먹고 있지. 그걸 60퍼센트까지 늘리자고.”
“러시아 대통령이 좋아하겠네. 친구 잘 둬서 이게 웬 떡이야. 늘리는 방법은?”
“치킨게임.”
“더 싸게 주자?”
“그래.”
“미 정부한테 치킨게임을 거는 건 미친 짓이지만, 러시아 무기시장 점유율을 통째로 이용한다면 못할 것도 없지. 러시아 대통령이 좋아하겠다는 말 취소야.”
“왜?”
“그런다고 러시아가 세계무기시장을 다 먹을 수 있겠어? 미국한테 잽 한 방 먹이려고 일시적으로 손해 보고 할인하는 것밖에 안 되겠지.”
이휘가 피식 웃었다.
“그래, 그렇지. 그리고 우리가 러시아에 보관을 맡긴 핵무기도 움직여야겠어.”
“그건 히든카드 아니야?”
“그냥 소문만 흘려. 중동과 거래를 하려고 한다….”
“미 정부가 진저리를 치게군.”
“그래. 누굴 건드린 건지 알려줘야지.”
“후우, 분노의 보복이 있을 텐데.”
“얻어맞는 건 익숙하잖아?”
방준수가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는 카운터 세게 맞을지도 몰라.”
“우리가 유도하는 카운터야. 알고 맞는 펀치로는 웬만해선 다운되지 않아.”
“그래, 우리가 흐름을 선도하는 그림을 만들자 이거지?”
“정확해.”
“알겠어. 그렇게 조취할게.”
이휘는 턱을 쓸었다.
“그리고.”
“또 있어?”
“유럽 쪽을 좀 알아봐. 김정판의 비자금 수조 원이 갈 길을 잃고 있어.”
“세계 전역이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겠군. 네 재력에.”
“인터뷰도 잡아주고.”
“인터뷰까지? 다들 혈안이 되어 있으니 언론사는 선택만 하면 죽어라 달려오긴 하겠지만.”
“우리가 벌어들인 돈이 어디서 났는지 조금쯤 알려줘야겠어.”
“악성 경제사범이 가져가려던 검은돈을 합법적으로 빼앗아왔다는 걸?”
“그래. 세금 내고 가져온 부분만 공개하는 거지.”
“영웅이 되겠군.”
“우리가 이미지를 가지면 그 이미지가 우리한테 적당한 방패가 되어줄 거야. 미국의 공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겠지만 마우스피스 끼고 맞으면 충격을 완화할 수 있겠지.”
“문제는 해명할 부분이 늘어나. 검은돈이라는 건 말이 좋지, 실체가 없으니까. 문제 삼기 좋아. 자칫 역습을 당할 수 있어.”
“알고 있어.”
이휘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돈을 우리가 쓰고 있는 자선사업기금과 엮는다면?”
“검은돈을 깨끗하게 세탁해서 썼다? 애매한데.”
“우리끼린 편하게 부르지만 그 돈을 `검은돈`으로 여기게 만들면 안 돼. `검은돈`이 될 뻔한 돈을 우리가 원래 쓰여야 할 곳에 쓴 것뿐이지. 아주 중요한 문제야. 우리 구미에 맞게 기사를 써줄 언론사를 찾아. 영향력이 큰 곳으로.”
“영향력이 큰 곳들 중에 미 정부의 영향을 안 받는 곳이 없어서.”
“언론사를 꽉 쥐고 있는 상원위원과도 접촉해 보고.”
“협조할까?”
“현 정부와 정치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야당의 상원이라면 반기겠지.”
“아무리 그래도 대놓고 우릴 돕는다고?”
“이건 미국과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야. 당장의 국익을 우선시하기보다 진실을 알리는 것. 그게 곧 미국을 위한 일이란 신념을 가질만한 사람을 찾아봐. 분명히 있을 테니.”
“네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지? 그럼 얘기해주면 편하잖아.”
“확실하지 않아서 그래. 형이 찾은 사람과 내가 떠올린 양반이 일치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
“넌 항상 이런 식이더라.”
“뭐든 확실하게. 한 걸음만 삐끗해도 천 길 낭떠러지야. 알잖아.”
“난 이미 떨어진 것 같은데….”
투덜댄 방준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뭐. 이번 위기를 기회 삼아 제대로 한 번 반등해보자고.”
“이 정도 했으면 미국에서도 카운터를 날리겠지. 그 한 방만 버텨낼 수 있으면 미국 내 우리가 투자한 회사들도 우리한테 협조할 거야. 진짜 싸움은 그때부터 시작이지.”
“후우, 수십 조를 가져도 건드리기 힘든 적수라. 미국이 대단하긴 대단하네.”
“수천 조가 있어도 같이 죽는 게 최선일 거야. 결국 미국과의 싸움은 자금력의 문제가 아닌 거지. 우리가 이번 싸움에 전부 다 던질 수 있다는 걸 어필하면 어떻게 반응하는지 한번 보자고.”
이휘가 눈을 번뜩였다.
그 눈길을 마주보던 방준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네가 매번 목숨 걸 수 있는 이유. 가끔 느끼는 건데, 넌 그 자체를 즐기는 것 같아. 봐봐. 이번에도 네 전부를 걸고 싸울 생각에 흥분하고 있잖아.”
“그건 형도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방준수가 피식 웃었다.
“그러니 투자업을 하고 있지.”
물론이다.
자신에 대한 확고한 확신.
그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실력.
얼마든 배팅할 수 있는 담력까지.
방준수는 삼박자를 모두 갖춘 인재다.
그의 어깨를 두드린 이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좀 쉬어야겠다. 이번 일에 필요한 사람들과 미팅 잡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