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125
나는 회귀했다 125
미국 대통령, 도널드 레이먼은 비서가 건넨 신문을 집어던졌다.
“이 새끼들이 미친 거야?”
버럭 소리치고도 한참이나 씩씩거린다.
새벽에 들은 `러시아가 심상치 않다`는 소식의 원인을 두 눈으로 확인하니 아침에 먹은 오믈렛이 올라오는 느낌이다.
“감히….”
앞에 시립해 있던 정책보좌관이 말했다.
“재무장관, 외교장관, 국무장관, 연준 의장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가지.”
도널드 레이먼은 보좌관과 함께 집무실로 나갔다. 과연 네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전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들이다.
“어떻게 된 건가?”
도널드 레이먼이 묻자 외교장관이 대답했다.
“비공식적으로 러시아 대사를 만나 확인한 바로는, 파트리아 펀드에 대한 공작을 중지하지 않을 시 계속 유가를 낮추겠다고 합니다. 러시아만이라면 문제가 안 되지만, 문제는 사우디입니다.”
“숟가락을 얹겠다?”
“러시아가 시발점을 만들면 사우디도 유가를 내릴 명분이 생깁니다.”
“그건 알겠는데……”
도널드 레이먼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파트리아 펀든지 뭔지, 그놈들 이름이 왜 나와? 러시아가 이렇게 나올 정도인가? 미치지 않은 이상 기업 하나 돕자고 러시아 전체가 움직여?”
“그게… 조사한 바로는 파트리아 펀드에서 우리나 러시아에 미치는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재무장관이다.
“자세히.”
“미국 기업들 중 상당수에 파트리아 펀드의 돈이 들어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최대지분을 소유한 곳도 있고요. 중국의 알리, 러시아의 무기산업까지… 완전에 손에 쥐고 있습니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계속 물밑에서 움직인 듯합니다.”
“우린 그걸 여태껏 몰랐고? CIA는 뭐하는 데야?”
“파트리아 펀드의 대표는 그야말로 귀신같은 자입니다. CIA에서도 그놈을 `고스트`라고 부른다더군요.”
“허.”
도널드 레이먼이 고개를 저으며 책상에 기대섰다. 야구 공을 던지고 받으며, 그가 네 사람에게 물었다.
“그럼 어쩌면 좋겠나?”
국무장관이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겁을 주셔야지요.”
“겁을 먹을 것 같아요?”
도널드 레이먼이 묻자 국무장관이 어깨를 으쓱였다.
“미 대통령이 아니십니까.”
“그건 그런데, 워낙에 겁이 없는 자 같아서 말입니다. 그렇다고 미국이 러시아에 고개 숙이고 들어가는 태도를 취할 수도 없고… 젠장, 재선이 코앞인데 골치 아픈 일이 터지는군.”
“아마 그 자도 그걸 알았을 겁니다.”
국무장관이 말을 이었다.
“세계경제, 외교관계, 국내 정치적 상황까지 아주 잘 파고들어서 이용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런 말이 나오십니까? 유가를 떨어뜨리기 시작하면 기름전쟁이 시작돼요. 그럼 모든 기업의 주가가 하락할 겁니다. 오랫동안 파장을 겪을 거에요. 안 그렇습니까, 의장?”
연준 의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금리를 내리고, 양적완화를 순차적으로 해나가면 진정시킬 수 있는 불입니다.”
“고작 그런 회사며 대표 하나 때문에 계획에도 없던 중대사를 치를 수는 없지. 그렇게 되면 내 지지율에 큰 영향을 받을 겁니다.”
“….”
모두가 말문을 닫았다.
이렇게 되면 미국의 국격과 자존심을 챙기느냐, 비공식적으로 손을 써서 급한 불부터 끄고 차차 다른 쪽으로 파트리아 펀드와 문제를 풀어나가느냐.
이내, 국무장관이 입을 열었다.
“그 친구를 한 번 만나보시지요.”
“파트리아 펀드 대표를?”
“예.”
“이런 제안을 하는 이유가 있겠지. 자세히 얘기해보세요.”
“지난 주말에 워런 버핏한테 전화 한 통이 왔습니다. 새로 눈여겨보는 사람이 생겼다더군요. 기업이 아니라 사람이 말입니다. 지금 CIA와 문제를 겪고 있는데, 이 문제가 장기화 되면 우리한테도 좋을 게 없을 거라는 얘기였습니다.”
“워런을 등에 업었다?”
“그렇습니다. CIA와의 문제라면 간단히 해결해 줄 수 있는 일 아닙니까? 차라리 만나셔서, 그 친구를 우리한테 우호적인 방향으로 끌어들이시지요.”
“흐음.”
도널드 레이먼이 턱을 쓸었다.
“그러다 목줄 잡힌 게 러시아, 그리고 북한이 아닌가 싶습니다.”
“숙주를 잡아먹는 요물이란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실제로 그렇잖소.”
“아무리 요물이라도 미국을 삼킬 수 있겠습니까. 그런 덩치가 아니지요. 우린 그 자를 품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세계에서 유일하게 그게 가능한 나라고, 그걸 알기에 그 자도 미국 기업들에 투자를 한 것 아니겠습니까? 잘만 하면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할 좋은 무기가 될 지도 모릅니다.”
“하긴, 중국과 사이가 좋을 리 없지.”
북한이 그렇게 됐으니, 중국에서 호의적인 눈길로 파트리아펀드라는 기업을 바라볼 리 만무했다. 지금은 잠자는 사자처럼 조용하지만 앞으로 좋든 말든 파트리아 펀드는 거대한 폭풍에 휘말릴 것이다.
도널드 레이먼이 깊은 생각에 잠긴 그때였다.
보좌관이 들어오더니 귓속말을 했다. 그말을 들은 레이먼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거 두 손 두 발 다 들었군.”
“…?”
네 사람이 일제히 그를 보자, 그가 덧붙였다.
“퍼즐이 딱 하나 부족한 느낌이었는데… 바로 완성해버리는군요.”
“무슨 일입니까?”
국무장관이 참지 못하고 묻자 도널드 레이먼이 리모컨을 들어 TV를 켰다.
그러자, 한국 대통령이 연설하는 장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
“한국 정부는 파트리아 펀드와 협력하여 이 난관을 해쳐나갈 것입니다. 더불어 파트리아 펀드는 단순히 일개 기업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냈다는 것을 이 자리를 비로소 국민 여러분께 알립니다. 파트리아 펀드 측에서 공개하길 원치 않았지만 정부는 국민 여러분께 사실을 고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 지난 김정판의 망명과 북한의 항복 선언에 관해 이 모든 일의 주역이 파트리아 펀드임을 공표합니다.”
웅성웅성.
기자회견장이 난장판이 되었다. 이미 기자들은 우수수 손을 들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감히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진실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정부 발표 외에 이번 사건의 진상에 대해 유추했으나 단 한 번도 파트리아 펀드의 이름이 거론된 적은 없었다.
일개 기업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 대통령은 파트리아 펀드가 조국을 통일시키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선언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질문이 시작됐다.
“북한의 항복 선언으로 인해 국민들은 전례 없던 환희를 맛보았습니다. 동시에 현 정권에 대한 지지율은 역사에 없었을 만큼 치솟았죠.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현 정권이 아닌, 파트리아 펀드에서 계획하고 진행한 일이라는 말씀을 하고 계신 건가요?”
“그렇습니다. 파트리아 펀드 측의 요청으로 지난 시간 국민 여러분께 사실을 고하지 못한 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고려일보의 이선민 기자입니다. 파트리아 펀드라고 하면 이휘 대표가 이끌고 있고, 또 국내외에 여러 기업들을 거느리고 있는 회사인데요. 그것만으로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기업, 부채가 없고 매 년 폭발적인 실적을 기록하는 안정적인 대장주라는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그 덕분에 국내 투자자들의 관심도 늘고 있고요. 심지어 전세계로 봤을 때도 이렇게 좋은 지표를 그리는 회사가 없는데, 이번에 크게 주가가 떨어지면서 코스피에 큰 충격이 왔습니다. 이번 발표가 혹시 이를 방지하기 위한 정부의 미봉책이 아닌지 답변해주셨으면 합니다.”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대통령이 입가에 미소를 띄었다.
“물론 말씀하셨듯이 파트리아 펀드는 대단한 기업이지만 역사가 짧고, 그래서 많은 분들이 우려를 표하시는 것 같습니다. 위기가 온 지금 정부가 구제하는 것 아니냐, 하는 여론도 만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정부의 협력은 특정 기업의 편의를 봐주는 방향이 아닌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자세한 정책내용까지 발표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파트리아 펀드에서 국내 시장의 안정화를 위해 물심양면 힘을 빌려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상황이란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시 한 번 생각했던 것과 정 반대의 대답을 들은 기자들이 들썩였다.
“그럼 파트리아 펀드의 주가하락 원인이 기업의 위기로 인한 게 아니란 말씀이십니까?”
“이는 정부 주관의 안건이 아니라 제가 세세히 입에 담을 수는 없지만 파트리아 펀드, 그리고 한국 정부는 함께 이 위기를 이겨 나갈 것입니다. 이상 기자회견을 마치겠습니다.”
“대통령님!”
“한 말씀만…”
기자들이 전부 다 들고 일어나며 난리를 피웠으나 묵묵히 인사한 대통령은 회견장을 나섰다. 그는 따라붙는 민정수석에게 말했다.
“미봉책… 아직까진 그 말이 정확해. 만약 여기서 파트리아 펀드가 무너지면 현 정권의 지지율도 무너지겠지.”
“잘 이겨낼 겁니다.”
“그래야 해. 우리한테 몰아줘서 지지율을 올려주더니, 우리가 위기 때 발을 빼려니까 전부 다 받아가는군. 설마 코스피를 움직일 줄이야.”
“저도 이해가 안 갑니다. 우리 쪽 전문가들이 분석했을 때도 파트리아 펀드가 국내 경제를 움직일 정도는 아니라고 했는데… 오차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차 범위가 너무 크지 않나?”
“그게, 파트리아 펀드에 대대적인 자금이 들어오면서 투자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은 탓입니다. 그 덕분에 기존까지 양호했던 현금흐름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적당히 있었던 부채도 일시에 다 갚아서 사라졌습니다. 이런 변화는 너무 갑작스러워서 미처 대비할 시간이 없었던 거지요.”
“투자금인가?”
“네. 명목상은 그런데…”
대통령이 지끈거리는 이마를 잡았다.
“북한이군.”
“네. 파트너 회사들이 빠지기 직전에 김정판의 비자금을 넣은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올랐던 주가가 빠지니, 상승했던 코스피 지수도 같이 빠지고 있는 거고요.”
“그걸로 우리를 움직였고. 아직 비자금이 더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렇습니다.”
“완전히 우리를 들었다 놨다 하는구만. 남북 문제를 단숨에 해결한 곳이 파트리아 펀드란 것도 공표했으니, 김정판 비자금에 대한 내용은 문제 삼을 수도, 언급할 수도 없겠어. 깔끔하게 우리 입을 막았군.”
“…만약 우리가 그 사실을 발표하는 순간 이 문제에 대해 정부가 조금도 통제하고 있지 못했다는 게 되니까요. 무능함을 증명하는 꼴입니다.”
“우릴 겨냥한 건 아닐 테고.”
“네. 미국을 압박하기 위한 반격 같습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더니…”
대통령은 헛웃음을 흘렸다.
누가 새우고 누가 고래인지.
어째 국가와 기업이 뒤바뀐 느낌이다.
휘휘 고개를 저은 그는 나지막이 말했다.
“…자의든 타의든 우린 이휘한테 편승했어. 그 친구가 침몰하면 함께 침몰할 수밖에 없네.”
***
그 시각, 이휘는 중국의 한 공장부지에 도착해 있었다. 이제 마지막. 미국과의 신경전에 종지부를 찍을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