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126
나는 회귀했다 126
이곳이 어디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아주 오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20년 전쯤 망한 중국 바이오 기업 한 곳이 있었다.
바이오 연구를 하는 회사가 으레 그렇듯, 실적이 없으면 투자자본이 점점 끊기고 바닥을 치기 마련이다.
그 회사도 그랬다.
여기서, 중국 정부가 금전적인 지원을 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
이휘는 공장부지에 위치한 연구소 시설 안으로 들어갔다.
까다로운 검문검색을 마치고 들어서자 연구소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범한 연구소장 같지만, 세계적으로 바이오 업계에서 굉장히 이름 높은 사람이었다.
첸 웨이.
지금 대외적으로 쓰는 위장신분은 제이 첸이었다.
“이렇게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별 말씀을요.”
“복잡한 절차 때문에 실례를 범했습니다.”
“이곳에 초대해주신 것만으로도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휘가 겸손하게 대답하자 웃고 있는 첸 웨이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하하, 듣던 것과는 많이 다르시군요.”
“제 소문이 어떻게 났던가요?”
“그야… 영웅호걸이라는 소문이 자자했지요. 그만큼 호방하고 자신감 넘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이야길 듣고 제멋대로 이미지를 그렸나 봅니다.”
“괜찮습니다. 젊은 놈이 오만하기 짝이 없다고 소문이 났겠죠.”
“아, 그런 뜻은 전혀 아닙니다.”
첸 웨이는 손사래를 쳤다.
중국 놈들의 가식이란.
속내를 감추는 것이 당연한 일본에 비해 호방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놈이나 저놈이나 그 밥에 그 나물이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 단군 할아버지가 위치선정을 잘못했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뭐, 그렇게 치면 멀쩡한 곳이 어디 있겠냐만은.
“오해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저도 흘려 들었던 소문이니까요. 그나저나, 듣던 대로 정말 크고 넓은 곳이군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그런데 의뢰군요.”
“뭐가 말입니까?”
“설마 북쪽 사람들이 우리 연구시설에 대해 입에 담으셨을 줄이야… 여러모로 의외였습니다.”
“제가 강제로 알아낸 게 아니었다는 것쯤은 확인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입니다. CIA에 잡힐 때도 영양이나 건강상태가 굉장히 양호했다더군요.”
“CIA도 줄이 있으신 겁니까?”
“그러니 알아볼 수가 있는 거지요. 하지만 단언컨대 정부는 뚫어도, 우리 연구시설의 보안만큼은 CIA도 뚫지 못할 겁니다.”
대단한 자신감이다.
그러니,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걸 테고.
이들이 무슨 연구를 하는지 알아낸다면 아마도 CIA는 뒤집어질 터였다.
“그럼 제가 CIA와 사이가 아주 안 좋다는 것도 아시겠네요.”
“그렇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정말이지 악랄한 짓을 했더군요. 기업이 무슨 죄라고 일국 정보기관에서 건드린답니까?”
분통은 터뜨리는 것 같지만, 그저 공감해주는 것뿐이다.
이휘는 인상을 쓰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니까요. 그래서 저도 복수를 좀 했습니다.”
“복수요?”
“워런 버핏을 만났거든요.”
“아! 그게 정말입니까?”
“네. 미국의 실물경제에 타격을 좀 주고 싶어서요. 그래야 그쪽에서도 정신을 차리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거기도 손을 써놨는지 반응이 영 시원찮더군요. 간만 보고 돌아갔습니다.”
“이런… 그래서 저희를 찾아오신 거군요. 그렇게 된 거였어요.”
이 자식은 지금 단 한 마디도 믿지 않고 있을 것이다. 맞장구를 치고 있고, 이휘도 그에 대한 맞장구를 쳐주고 있다. 이런 대화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적당히 예의 차리는 대화가 오간 뒤, 이휘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인데 중국이라면 미국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직은… 시기상조이지요. 우선 우리가 발전하는 게 관건입니다. 발전해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지요.”
“애초에 공정한 경쟁이 아닌데 발전한다고 뭐가 바뀌겠습니까. 사람들의 입에 1, 2위로 오르내린다 해도 결국 정상적인 방법으론 미국을 넘지 못할 텐데요. 안 그렇습니까?”
“이거 대답을 정해놓고 노골적으로 물으시니, 뭐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제가 대답을 한다면 지금부터 나누는 이야기에 따라 이휘 씨는 이곳을 나갈 수 없으실지도 모릅니다.”
“여길 들어오는 순간부터 정해진 것 아니었습니까? 툭 까놓고 얘기하고 싶은데요. 그걸 위해서 중국어도 열심히 연습해 왔습니다.”
“하하하, 어려서부터 영재셨던데 너무 겸손하시군요. 알리에도 큰 지분이 있으시고, 하루 이틀 공부한 솜씨가 아닌데요.”
빙그레 웃은 이휘가 깍지를 꼈다.
“그럼 본론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음… 좋습니다. 저도 위에서 지시받은 게 있으니 이휘 씨에게 모든 계획을 들려드리지요.”
다음 첸 웨이가 들려준 이야기는 놀랄 것도 없었다. 이미 이휘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찾아왔으니까.
대략적으로, 이 연구소에서 하는 일이 바이러스를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다. 몇 가지 실험용 변이체를 살포하고 수차례에 걸쳐서 상황을 지켜볼 예정이란다. 이는 이번 계획 자체가 들키는 순간 중국 전체가 매장당할 수도 있는 일이기에,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 자국에 먼저 손을 쓰고, 국민들이 죽어 나가도 인구조정 효과로 삼고 방관할 거라는 이야기. 그리고 몇 차에 걸쳐서 상황이 진전된 후 핵심적인 타격을 가할 시기와 바이러스가 나오게 되면 우회적으로 접근해 미국의 실물경제를 무너뜨릴 계획이라는 거다. 경제를 무너뜨리고 줄도산을 하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중국 경제가 어느 지점에 다다라야 한다는 조건도 덧붙였다.
즉, 농담이 아니다.
진짜 이 개 같은 짓을 저지르려는 심산이다.
이러니 중국에서만 훨씬 비위생적이고 비상식적인 식습관을 가진 아프리카에서도 안 터지는 종류의 바이러스가 터지고, 대처 또한 늘 미진한 것이다.
“그럼 마지막은 치료제나 백신 개발로 종지부를 찍게 되겠군요. 미국이 국제경찰로 떴다면 중국은 국제 구조대 정도가 되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미국 경제가 가라앉으면 중국도 피해가 가는 것 아닙니까?”
“10년, 20년은 그럴 겁니다. 하지만 우리 계획대로만 된다면 30년, 40년 후에 중국은 미국을 넘는 대국이 되어 있을 겁니다.”
안타깝게도, 그 계획은 실패한다.
미국 놈들이라고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중국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조커를 숨기고 있다.
그리고 그 작전에 이휘도 투입됐던 기억이 있었다.
또한 당연히, 김정판과 장문택이 입을 열었다는 건 순전히 거짓말이었다.
미래를 살면서 이 사건과 깊게 개입되어 있던 사람이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오지 않은 이상 알 수 없는 내용이었기에 중국 정부에서도 의심하지 않은 거고.
이들이 이휘를 믿게 되는 데에는 최근 CIA와의 갈등도 한 못했다.
입을 딱 벌린 이휘가 고개를 저었다.
“이런… 30년 후에 제가 몇 살이겠습니까? 저는 지금 당장 위기 상황이라 찾아온 겁니다. 이렇게 되면 제가 중국과 손잡고 미국에 끝까지 대항할 이유가 없어요.”
“아니, 아니지요.”
첸 웨이가 빙그레 웃었다.
“설마 저희가 이휘 씨를 이런 험난한 일에 끌어들이겠습니까? 그저 이휘 씨는 미국에 투자하던 돈을 빼서, 우리한테 힘을 실어주시면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중국 정부가 나서서 이휘 씨를 미국으로부터 지켜드릴 겁니다.”
“…그럼 그 돈 중에 일부가 연구시설에 투자되는 겁니까? 그렇게 되면….”
“당연히 완벽하게 세탁할 겁니다. 이곳에서 벌어진 일을 아무도 모를 테고요. 아니면, 기업에 투자하셔도 됩니다. 우린 각 기업에 협조를 받아둔 주요인물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알리에서 겪고 계신 문제도 단번에 해결될 겁니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요.”
“이거… 좀 그런데요. 일부러 이런 상황을 연출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럼 어떻습니까?”
이휘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뜻입니까? 일부러 날 엿 먹였다는 겁니까?”
“아까운 인재가 가까운 대국을 두고 먼 곳에서 파트너를 찾으니 제대로 된 방향으로 이끌어드리는 것뿐입니다. 이휘 씨는 세계 제일의 부자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알릴 겁니다.”
“지금도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자꾸 날파리가 꼬이지 않습니까? CIA도 그렇고요.”
이휘는 일부러 내키지 않는 액션을 취하며 턱을 긁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쁜 건 여전합니다.”
“기분따라 사업하시는 분이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아닙니까?”
“그건 정보가 좀 잘못됐군요. 반반입니다.”
“그런 분이 100퍼센트에 가까운 성공률을 낸다… 그건 더 놀랍군요. 그 재능을 우리에게 빌려주신다면, 우린 황제 못지 않은 대우를 해드릴 겁니다. 공정한 자본주의 국가에선 받기 힘든 대우를 말입니다.”
입 안의 혀처럼 군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까짓것, 그래 시원하게 손 잡고 인생 한 탕 치고 가자.
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괜히 아시아의 마피아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다.
이 자들은 똑똑하다.
미국만큼.
심지어 인구나 땅덩어리조차 앞서있는 마당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니 얼마나 억울할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이휘는 속내와 다른 이야기를 지껄였다.
“바이러스는 잠시 접어두십시오. 제 계획대로 하면 바이러스 없이도 승리를 앞당길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만 약속해주십시오. 바이러스를 폐기할 것.”
“…음.”
“그걸 확실히 약속해야 손을 잡을 겁니다.”
아마, 이 자들은 분명 이휘 자신의 성향을 완벽히 분석했을 것이다.
그대로 손잡는다고 하면 필시 의심을 살 터였다. 아니, 이곳을 빠져나가기 전에 총으로 쏴서 죽일지도 모른다.
아니나 다를까 첸의 눈빛이 미세하게 달라졌다.
“쉬운 부탁이 아닙니다.”
“손 더럽히지 않고 미국을 차지하는 계획. 심지어 시기도 앞당길 수 있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있습니까?”
“말미를… 좀 주시지요.”
“얼마든지요.”
“그전에는 여기서 지내셔야겠습니다.”
이제 양해를 구하고 있지 않다. 이편이, 진짜 얼굴이다. 이휘는 상대의 마스크를 벗긴 뒤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대신 한 배를 탔으니 이곳저곳 둘러보게 해주시겠습니까? 제가 가만히 있으면 좀이 쑤셔서요.”
“물론입니다. 원하시는 게 있으면 뭐든 말씀하십시오. 술, 여자, 도박. 뭐든 결과가 나올 때까진 이휘 씨가 원하신다면 황제처럼 모시지요.”
“마지막 만찬이 안 되길 바랍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첸이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이휘는 그와 악수를 나눴다.
첸은, 이휘에게 말했다.
“제 생각에는 아마 그 계획을 듣고 싶어하실 겁니다. 이건 팁이니, 잘 준비해보세요.”
얼씨구, 고마워라.
이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끔찍한 말을 지껄인 첸의 모가지를 돌려버리고 싶은 걸 애써 참으며 웃었다.
“그냥 살짝 언급만 해주십시오. 러시아와 중국의 합작이라고.”
아니.
중국만 가라앉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국과 자신은 아무 것도 잃지 않을 거다.
신념은 물론 명예와 양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