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132
나는 회귀했다 132
야마다 신조가 물었다.
“내가 자넬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중국은.”
이휘가 빙그레 웃었다.
“비록 한국이 사이에서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다지만, 일본과도 좋을 게 없는 관계입니다. 당장에 동맹국인 미국이 위태로워지면 일본도 타격을 입을 테고요.”
“감수하고 있네.”
야마다 신조가 마주 웃었다.
“우린 그 대신 중국에서 수익을 낼 거야. 지금까지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너무 오랜 치욕을 겪어왔지. 이제는 그 옛날 세계를 전율시키던 국격을 되찾을 필요가 있어.”
이휘는 하마터면 욕 한 바가지가 튀어나올 뻔했다. 지금 눈앞의 이 자는 착각해도 크게 착각하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일본은 세계 2차 대전을 일으킨 전범국이 아니다. 그는 진심으로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승리할 수 있었다고 믿는 것 같았다. 그리고 현재에는 엔화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안전한 화폐라고 평가받을 만큼 훌륭한 성장세를 보인 세계의 강자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물론 철저한 우민정책 하에 이뤄낸 일본의 경제적 성장까지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민의 품격과 별개로, 일본의 국격을 딱 오랑캐로 보는 이휘로선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그렇게 대단한 나라에서 역사왜곡 같이 치졸한 짓을 하진 않죠.”
“역사를 미화하는 것을 가장 잘 하는 곳이 미국과 유럽이야. 꼭 총칼을 겨누어야 전쟁이겠나? 역사는 국격의 근본이며, 성장의 근간이기도 하지. 그리고 하나 더. 질서정연한 나라, 완벽한 통제가 이루어지는 나라는 충분히 강자로 거듭날 자격이 있는 법일세. 그게 바로 일본이고, 22세기에는 세계 모든 나라 위에 우뚝 설 제국이지.”
“포부가 대단하시군요.”
“그런데 자네가 자꾸 거슬리는 짓을 하더군.”
야마다 신조가 작은 눈을 날카롭게 빛냈다.
“꼭 중국 때문은 아니야. 미국과도 당분간은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할 생각이네. 하지만 한국은 우리한테 하등 도움 될 것 없는 나라야. 한류니 뭐니 쓸데없는 바람을 넣어서 우릴 피곤하게 만들고 있지. 지치지도 않고 끊임없이 국제사회에 괴담을 퍼뜨려 우릴 골치 아프게 만들어. 그 작은 나라가 우리 경제에 보탬이 되면 얼마나 되겠나? 그럼에도 우린 강자라는 이유로 한국에 어마어마한 금전적 후원을 하고 있어.”
그게 후원이라니.
그야말로 미친놈이다.
이휘는 억지 미소를 지었다.
“잘못된 신념은 역시 놀라운 논리를 낳는군요.”
“어쨌든, 지금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기회네. 자네는 그런 의미에서 고마운 존재지. 어쩌면 자네 덕에 한국의 목을 베고 중국을 장악하고 십 년 후에는 미국까지 고꾸라뜨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그 속내에 얼마나 깊고 시커먼 계획이 들어있을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자신이 내뱉은 계획에 대해 충분한 구상이 있을 거라는 점이었다.
대략 예측해보면 이휘를 넘기고 중국에 외교적 우위 관계를 점한 뒤, 겉으로는 미국과 결속력을 다질 것이다. 동시에 두 대국을 등에 업은 채 이휘를 미끼로 한국을 압박하리라.
오히려 이휘 한 사람이, 파트리아 펀드 한 회사가 가진 위상이 높아질수록 그게 강력한 무기가 될 수도, 도리어 약점이 될 수도 있게 된 셈이다.
‘어쩌면…… 나랑 그리 다른 생각도 아니군.’
이휘는 쓰게 웃었다.
자신도 야마다 신조와 비슷한 인간일까?
그 역시, 러시아를 위기에서 구해줌으로서 뒤로는 외교적 우위를 점했다. 또한 미국과 결속력을 다지면서 지금은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만약 자신이 야마다 신조와 크게 다를 것 없는 모사꾼이라면……
결국 누가 더 냉철하고 비열해질 수 있느냐의 싸움이다.
지금은 상황적으로 불리할뿐더러 연륜에서도 차이가 벌어진 상황이다.
‘그걸 이용해야 한다.’
이휘는 머릿속을 차갑게 가라앉혔다. 야마다 신조의 장점을 단점으로 만들고,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바꿔야 한다. 머리를 굴리던 그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제가 어떤 말을 해도 흔들리지 않겠군요. 야마다 씨의 신념은 너무도 확고하니까요.”
“물론이네. 아직 시간이 있으니 좀 더 대화를 나눠도 좋아.”
그가 손목시계를 쳐다봤다.
“삼십 분 후면 중국 대사가 올 거거든.”
“삼십 분이라.”
이휘가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배가 고파서요. 빨리 먹을 테니 근처에서 뭐 좀 사다 주시면 안 됩니까?”
“뭐?”
야마다 신조의 눈이 살짝 커지더니,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하하. 여유로워 보이는군.”
그는 사람을 불러 음식을 시킨 뒤 차가운 표정으로 덧붙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빠져나갈 수 없을 걸세. 나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거든.”
“그래서 저한테 이런저런 말씀을 하신 겁니까?”
“어차피 사라질 사람이니 무슨 말인들 못하겠나?”
“이번에는 중국 정부가 저를 제거할 수 있으리라 확신하시나보군요.”
“아니었다면 자네를 여기 잡아오는 경솔한 짓 자체를 저지르지 않았겠지.”
“그럼 실수하신 겁니다.”
“그건 보면 알 테고.”
이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보면 알 일이죠.”
야마다 신조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대체 뭘 믿고 그리 방자하게 구는 건가?”
“아니, 뭐 그렇게 궁금한 게 많으십니까? 찜찜하세요?”
“단순한 호기심일 뿐이네.”
역시, 도발에 쉽게 걸려들지 않는다. 심리적 빈틈을 만들고 상대가 흥분한 상태에서 대화를 이어가면 좀 더 수월하게 원하는 바를 캐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은 그게 영 불가능했다.
‘어려운 길을 가야겠군.’
이휘가 말했다.
“바이러스 속보, 일본에서 터뜨리시죠.”
이번엔 통했다.
야마다 신조가 미간을 찌푸렸다.
“뭐……?”
“아마 그 정도면 차차 군사주권을 수복할 수 있을 겁니다. 중국과의 외교적 이점을 차지하고 미국을 압박한다 해도 군사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결국 빛 좋은 개살구 아닙니까?”
“무슨 꿍꿍이지? 자네에 대해 알아보니 약속을 어긴 적이 없던데. 미국과 약속을 파하고 내게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를 주겠다?”
“그럼 총리님과의 약속도 어기지 않겠죠.”
“그러니까, 이 제안에 숨겨진 함정이 있다고 볼 수 있겠지.”
만만한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이 오랜 세월 한계선을 넘지 못하는 건 지형적 악재와 미국을 상대로한 세계 2차 대전의 전범국이라는 점이 큰 비중을 차지하죠. 아닙니까?”
“멍청한 생각이지.”
야마다 신조가 덧붙여 물었다.
“그래서?”
“현 중국 정부가 바이러스를 퍼뜨리려 했다, 는 사실을 묻어버리는 게 아니라 공표한다면 여러모로 국제적 이미지를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이건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는 제안이에요.”
“흐음.”
야마다 신조가 턱을 만지작거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수지가 안 맞아. 지금도 일본에 투자하고 싶어하는 외국인들이 널렸네. 내수경제도 잘 돌아가고 있고. 우린 부족한 게 없어. 현 중국 정부를 상대로 외교적 우위에 설 수 있는데 굳이 모험할 필요 없지. 자네가 말한 문제들은 차근차근 해결해나가겠네.”
“문제는 그겁니다. 제가 중국에 가면 가장 먼저 할 일은 현 일본 정부가 이 모든 사안을 알고 있다고 인지시켜주는 겁니다. 중국은 결코 다시금 일본에 굴복하고 싶지 않아 해요. 그들 입장에선 싫든 좋든 미국을 자빠뜨리기 전에 먼저 부수고 지나가야 할 상대가 일본이란 겁니다.”
“지금 협박하는 건가?”
“아시다시피 중국은 방식이 그리 신사적이지 못해요. 뒤통수 치는 데도 일가견이 있고.”
“우린 중국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미비한 수준이네. 결코 중국은 우리의 위협이 되지 못해.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걸세. 우린 그들을 상대로 외교적 우위에 설 거야.”
“희망회로를 돌리는 건 좋습니다. 문제는 중국이 이 문제를 은폐하는 순간 미국이 곤란해진다는 거죠. 일본은 중국, 미국 양쪽에 적을 둔 상태로 눈치를 봐야 할 겁니다. 중국을 이용해 미국을 쓰러뜨리는 게 아니라 중국이 이용할 기회를 주는 거죠.”
“듣던 대로 혀가 잘 돌아가는군. 머리는 더 잘 돌아가고. 이쯤하지. 생각해 볼 가치도 없는 이야기야.”
“그렇군요.”
이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알겠습니다.”
“그게 끝인가?”
“네. 가진 카드를 다 써서요.”
“……”
야마다 신조는 묘한 눈빛으로 그를 보더니, 몸을 돌려 제 갈 길을 갔다.
이휘는 나머지 양복 사내들에게 이끌려 감금됐다. 핸드폰을 빼앗긴 것은 당연지사. 배 부르게 식사를 하고 낮잠 한 숨 때리던 참에 다시 돌아온 양복사내들이 그를 깨웠다.
양복 사내들을 따라 별장으로 가자, 야마다 신조와 중국 대사가 이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이 좋군.”
야마다 신조가 말했고, 중국 대사는 야마다 신조를 향해 말했다.
“이제 할 얘긴 끝난 것 같으니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그러시오.”
이휘는 중국 대사와 함께 있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탄탄한 체격만 봐도 훈련을 받은 군인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도 이휘를 보았는데, 적당한 긴장감을 두른 눈빛만 봐도 범상치 않았다.
야마다 신조가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이 대표는 우리가 데리고 있겠소.”
“그게 무슨…?”
대사가 흠칫했다.
야마다 신조는 나지막이 덧붙였다.
“적절한 때가 올 때까지요. 오늘 약속한 내용을 중국 정부에서 발표하면 그때 신변을 내드리지.”
“…우리 측에서 달가워하지 않을 겁니다.”
“그건 관심 없습니다. 그럼 편히 가시오.”
세 사람이 나가고, 야마다 신조가 맞은편 소파를 가리켰다.
“앉지.”
이휘가 자리에 앉자 그가 말했다.
“자네 제안을 생각해봤어. 두 가지 선택지를 주지.”
“말씀하세요.”
“자네가 중국에서 구한 샘플을 제공하면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는 우리 쪽에서 터뜨리겠네. 그리고 하나 더. 비공식적으로 파트리아 펀드… 아니, 파트리아 그룹이라고 불러야 맞겠지. 자네 회사의 최대지분을 넘겨. 이에 동의한다면 중국 정부와 협상해서 자네 신변을 보호해주지. 미국이나 한국의 구조를 기대하는 거라면 포기하는 게 좋을 거야. 자네한테는 그만한 시간이 없으니까.”
이놈 봐라.
또 다른 꿍꿍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휘는 야마다 신조의 계획을 알아내는 것을 포기했다. 시장경제나 사람 속내나 흐름이라는 것은 변수가 많다. 흐름을 파악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대응할 카드를 잔뜩 마련해두는 거다.
“좋습니다. 둘 다 드리죠.”
야마다 신조는 설마 바로 수락할 줄 상상도 못했던 것처럼 눈을 치떴다.
그런 그를 보며 이휘가 씨익 웃었다.
“시간 끄는 짓 따위는 안 합니다. 지금 바로 계약서를 쓰시죠. 원하는 모든 걸 들어드리겠습니다. 저도 이제 슬슬 지치네요. 모든 걸 천천히 정리하고 재야로 돌아갈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저는 장사꾼이고, 두 가지 조건에 대한 정적가는 생각해두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이네.”
야마다 신조가 사람을 시켜 계약서를 가져왔다. 이미 모든 게 준비된 것이다. 아마 이휘가 어떤 움직임을 보이든 그에 대한 대응도 준비해놨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이휘가 준비한 카드는, 그 자신조차 대경실색할만큼 놀라운 변수였다.